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제1부
보풀은 나의 힘/ 엔딩 크레딧 석양이 다 내려갈 때까지/ 배웅/ 수액/ 설거짓거리/ 저울질/ 자장자장/ 높은 파도가 치는 푸르빌/ 합선/ 김밥/ 새떼에게/ 촌년/ 수지침/ 명랑핫도그/ 조문/ 잔기침 제2부 구름 세차장/ 수제비/ ㅅ/ 널 키워준 아빠/ 공유/ 동짓달/ 향해/ 외달도/ 플라세보/ 자긴 점점 개미 색을 닮아가/ 뜰채의 힘/ 바라나시/ 우이행/ 건망증/ 신앙 제3부 당근마켓/ 옥상/ 반석네거리/ 파란/ 투명한 바늘/ 휘모리장단/ 월급/ 전쟁/ 벤자민/ 동주/ 등잔불/ 안복진/ 나비잠/ ㄴ/ 각질/ 안압지 제4부 씻나락/ 외갓집/ 그 많던 구기자는 누가 다 땄나/ 청양 1/ 청양 2/ 울린 감/ 서리태/ 동상/ 상추/ 오래된 풍경/ 홍어 무침/ 조개껍데기/ 색칠 공부/ 사랑의 단상/ 단추통/ 송년회 공지 |
박송이의 다른 상품
|
굽 나간 구두라거나
헌옷수거함 보풀이라거나 금 간 사이 비단풀이라거나 우리가 이따위일 때 아무도 우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린 하찮고 시시하여 날마다 배가 고프고 날마다 끼니로 질투를 먹습니다 어떤 날엔 두 끼니 어떤 날엔 세 끼니 먹고 또 먹는데 참 신기합니다 때울수록 허기가 지는 이상한 식사법이니 말입니다 아무리 쥐어 본들 부들부들 주먹이 허공을 쥡니다 폐건전지 공복감으로 펼쳐지는 이상한 손의 습성 미친 듯이 질투를 구걸하느라 정작 빈 밥그릇에 동전 한 닢 떨구지 않고 휙휙 지나쳐 버린 금 간 사이 굽 나간 구두와 뭉쳐진 보풀과 비단풀을 빈 손바닥에 올려두고 그 무용한 풀떼기들을 정말로 사랑하고 싶습니다 온기가 사라진 그러나 여전히 바스락거리는 보풀의 힘으로 꾹꾹 끄적이기 위하여 헌옷수거함에서 스웨터를 도로 꺼냅니다 ---「보풀은 나의 힘 ― 기형도 시인」중에서 한 번도 숨 쉬는 일이 만만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어느 땐 숨이 막혔고 어느 땐 숨을 멈추기도 했습니다 숨을 잃어버린다는 게 얼마나 큰일인지 알기에 꾸역꾸역 먹고 게워냈습니다 은행 의자에서 번호표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먼 데 숲이 붉어지고 있었습니다 멧새야, 이 숨 쉬고 다음 숨이 펼쳐지도록 우리가 애타게 구한 건 무엇이었을까 허공 난간을 가르던 멧새는 날개를 접고 무료로 상영하는 석양을 관람하고 있습니다 엔딩 크레딧 석양이 다 내려갈 때까지 ---「엔딩 크레딧 석양이 다 내려갈 때까지」중에서 무너질 것 같은 마음일 때 무너져 내리는 빗줄기를 맞습니다 빗줄기를 밧줄로 고쳐 읽는 동안 거짓말처럼 빗줄기가 그칩니다 이 빗줄기가 내 것만이 아니듯 무너질 것 같은 이 마음도 거짓말처럼 건져 올릴 수 있습니다 ---「뜰채의 힘」중에서 ㅅ ㅅ ㅅ ㅅ ㅅ ㅅ ㅅ ㅅ ㅅ ㅅ ㅅ ㅅ입니다 날아다니고 둥지를 틀고 알을 낳습니다 나뭇가지 잎사귀 지푸라기로 집을 짓습니다 자유롭고 경쾌하고 구구구 울고 구구구 웃는 날짐승입니다 나뭇가지에 앉았다 날갯짓할 적마다 ㅅ의 깃털 허공에 부려 놓다가 땅에서 떠오르자 우리의 길을 만드는 ㅅ입니다 ---「ㅅ」중에서 허무의 젓가락으로 허공을 떠먹는 새 폐가의 거미, 거미의 헛배 같은 새 혀끝에 밀알 하나 올려놓고 으스러질 때까지 고독을 반죽 삼아 생을 주무르던 수제비 같은 새 툭 끊어질까 봐 차마 와락와락 껴안지도 못하는 골방 사람들의 끼니였던 새 ---「수제비 ―최승자 시인에게 바침」중에서 |
|
존재를 고양시키는 인식의 빛
어둡고 굴곡진 길을 밝혀주는 주체적 시선의 탄생과 내면의 빛 (조해옥 문학평론가) 그의 새 시집 『보풀은 나의 힘』(2023)은 시인의 창작 활동이 역동적인 변모 과정 중에 있음을 잘 보여준다. 새 시집에 실린 시편들은 시 의식과 정조의 측면에서 이전에 발표된 시작품들과는 상당히 다르다. 박송이 시인의 시적 자아는 타자적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나 주체적 자아로 새롭게 태어난다. 그는 따뜻한 온기가 도는 세상을 직접 체험하면서 삶의 본질적인 측면을 이해한다. 그의 현실은 변함이 없지만, 스스로를 이끌어 삶의 어두운 터널을 벗어난다. 시인의 시적 자아는 일상의 모든 것을 새롭게 체험해 가면서 주체적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또 그는 자신의 길을 밝히는 빛을 자각하는데, 그 불빛은 그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때도 한결같이 그의 내면에 밝혀져 있었던 것이다. 새 시집에는 무엇보다도 평온한 일상의 위대함을 발견하는 시인의 인식이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존재론적 절망감에서 벗어나 자신의 독자적인 시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시인의 기쁨이 새 시집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시집 『보풀은 나의 힘』에 나타나는 변화는 첫째, 주체성을 확립한 시적 자아가 자신의 삶을 새롭게 창조해 나간다는 점이다. 둘째, 혼돈의 시간을 벗어나 삶의 본질과 이치를 투명하게 직시하는 시적 자아의 발견과 깨달음이 형상화된다는 점이다. 그는 세상의 아픔이라든가 세속과는 전혀 무관한 존재인 아이와 대면하면서 상상의 시간으로 고요히 침잠한다. 이때 그는 이해할 수 없었던 자신과 세상에 대해 명료하게 인식한다. 아기와 함께하는 시간은 화자가 직접 감각하고 창조해 나가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화자는 아기처럼 세상을 새롭게 배워 나가야 하는 자신을 인식한다. 박송이 시인은 어둡고 굴곡진 길을 밝혀주는 내면의 환한 불빛을 따라가며 자신에 대해, 그리고 그동안의 인연들에 대해 성찰해 나간다. 그가 운명적으로 만났던 인연들과 만나고 이별하면서 이르게 된 지금이라는 시간에서, 평온하고 잠잠한 지금의 자리에서 박송이 시인의 시적 자아는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고양시키는 노래를 부른다. “우리는 한낱 빗물이라네/빗물은 빗물은 실은/스며들고 싶은 뭇별이라네”(「자장자장」)에서처럼 박송이 시인은 새 시집 『보풀은 나의 힘』에서 돌멩이 같은 존재들이 실은 ‘별’과 같은 천상의 존재임을 노래한다. 따뜻한 온기가 도는 노래가 불안하고 비루한 일상을 자장가처럼 다스려 주고 있다. · 독자에게 전하는 시인의 편지-보풀 한 잎 떨구며 안녕하세요. 시 쓰는 박송이입니다. 모두 평안하신지요. 우리 모두 각자의 봄길을 걷고 있겠지요. 마냥 감탄할 수만도 없고 마냥 아파할 수만도 없는 사월 한복판에서 다만 한 잎으로 흩날렸으면 싶은 시집을 다시금 바닥에 떨구었어요. 누군가의 발길에 차였으면 싶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책갈피로 꽂혔으면 싶기도 한 그런 풀떼기 같은 시집을요. 그러니까 이번 시집 『보풀은 나의 힘』은 이 깊고 넓은 세상 속에서 한낱 풀떼기들을 향한 이야기들로 가득해요. ‘고작’이라고만 여겼던 보풀들이 실은 뭉치고 쓸리면서 일상을 펼쳐냈으며 여전히 펼쳐내고 있다는 걸 전 왜 이제야 알게 된 걸까요. 스웨터에 마구 달렸던 보풀들이 한때 제 몸을 살다 간 흔적이었다는 걸 전 왜 이제야 알게 된 걸까요. 미움과 절망이라는 주소도 모르는 허깨비 같은 세상을 빠져나와 이제야 ‘쪽창’ ‘뭇별’ ‘조개껍데기’ ‘개미들’ “굴러떨어진 단추들” 그렇게 하나하나 모아 둔 ‘유리병들’ ‘나무젓가락들’ ‘볼펜들’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이 시집은 이상하리만큼 보풀의 힘을 믿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어요. 개미 꼬리 같은 월급을 버는 “나의 노동들” ‘저울질’ ‘당근마켓’을 들락날락하는 궁상맞은 일상에는 또 얼마나 자잘한 보풀들이 살뜰히 피어나 있던지요. 저는 이 시집에서 어떤 어마어마한 힘이 아니라 ‘뜰채’ 그것으로도 우리의 망가진 마음을 건져낼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쌀 한 톨을 얻기 위해 보글보글 시간을 견뎌야 했던 수많은 ‘씻나락들’, 그 씻나락들을 건져 올리는 뜰채의 작은 힘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골방 속에서 물러 터진 삶을 사느라 미처 매만지지 못한 보풀들이야말로 제가 “이토록 애타게 구한” 세상이었다는 걸 고백하고 싶었어요.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꾸역꾸역 먹으면서 우리가 다시금 “얼큰한 삶”을 살아갈 힘을 얻듯이 말이에요. 저는 이제야 보풀들과 ‘합선’하는 중인가 봐요. 이 “저항 없는 마음”이야말로 우리의 보폭이 아닐까요. 하늘에선 새들이 ‘ㅅ’ 비행을 해요. 우리가 못하란 법도 없으니까요. 저는 독자님이 우리가 이 봄에 함께 살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비록 “존재의 검고 연약한 개미 색”을 점점 닮아 간다 해도 ‘단추통’을 열고 ‘통증’을 꿰매는 시절이 온다 해도 우리는 끝끝내 노동의 터널 속에서 톡톡 터져 나올 거기 때문이에요. 바닥을 믿기 때문이죠. 독자님, 우리 각자 뒹굴고 쓸려 다닌 찬기 어린 삶이 있을 거예요. ‘나’의 맨살이 되어 준 나대신 쓸려 다녀 준 보풀들을 ‘헌옷수거함’에서 살그머니 꺼내어 볼래요? 한낱 무용한 보풀이라고만 여겼던 게 실은 나의 힘이었다는 걸 이 풀떼기들의 꺼끌거림을 마주할 독자님의 흩날리는 손을 저는 마냥 믿을게요. · 시인의 말 뒹굴고 쓸려 다녔더니만 보풀로 뭉쳐진 삶을 얻었습니다 먼 데 숲이 붉어지고 있습니다 2023년 봄 박송이 |
|
시집 『보풀은 나의 힘』은 푸릇푸릇한 상추와 물에 불린 씻나락과 아이 손에 든 가시를 빼주는 ‘투명한 바늘’ 같은 시집이다. 은행에서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숲속의 멧새를 호명하는 시인은 지루하고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조차 타자와 교섭한다. 하여, 지금 숨을 나눠 갖는 이 자리를 구원과 공생과 섬김의 성소로 만든다. “도처에 널린” “자본과 상추와 담장” 속에서 “우리라는 자본과 우리라는 상추와/우리라는 담장을 믿어 보겠”(「상추」)다는 시인에게서 궁극적으로 삶은 살 만한 것이라는 대긍정의 힘을 본다.
박송이는 호기심을 잃지 않은 아이처럼 명랑하고 경쾌하며, 난관 앞에서도 낙관과 해학을 잃지 않는다. 그는 무릎 꿇고 앉은 대문자 ‘L’처럼, 매순간 마주치는 존재들과 내통하며 세상이 주입한 명명법을 고쳐 읽는다. “굽 나간 구두”라든가, “뭉쳐진 보풀”이나 ‘비단풀’ 같은 “무용한 풀떼기들”이 “바스락거리는”(「보풀은 나의 힘」) 소리를 살아있는 ‘풀’로 변환함으로써 존재와 관계의 신비에 참여한다. - 김해자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