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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적은 풍등이 뒤뚱거리며 오르는 동안
양장
최선희
애지 2024.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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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지시선

책소개

목차

제1부

봄이 왔다/ 목소리 지문/ 달항아리에 누드를 담다/ 봄잠에 들다/ 연두/ 분홍물고기/ 위험한 이주/ 이맘때 꽃은 왜 모두 하얄까/ 춘몽春夢/ 매화佛/ 홀가먼트/ 계단의 수를 세는 것만큼 부질없는 의문 앞에서/ 천리향

제2부

첫사랑/ 페이스 투 페이스/ 소원을 적은 풍등이 뒤뚱거리며 오르는 동안/ 유음遺音하다/ 가족사진/ 고구마 쪽지/ 그러거나 말거나/ 디지털 실어증/ 단추가 있던 자리/ 비문飛蚊/ 우울한 입맛/ 깡깡이마을 양다방/ 땅따먹기

제3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단풍/ 엽서 한 장/ 밥情/ 연이/ 검은 타월/ 계첩을 받다/ 犬公 진돌이/ 돌탑을 쌓다/ 봉발탑 앞에서/ 슬픔이 온다/ 휑하다/ 댄스는 별책부록/ 견성암

제4부

불안한 동창/ 블루블랙/ 멸종되는 것들의 목록/ 십일월 장미/ 팔 쓰는 일을 하세요?/ 아기 업은 소녀/ 워킹모델/ 동굴벽화를 보다가/ 먼지夢/ 목숨줄/ 핑계 난무하다/ 미라/ 무승부/ 월요일을 낚는 남자/ 비 오고 바람 불고 눈 내리고/ 자화상

저자 소개 1

경남 의령에서 태어났다. 2013년 ≪문예시대≫로 등단하여 시집 『콩잎여자』, 『꽃똥』, 『할머니, 아직 시인이세요?』 가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9월 13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44쪽 | 258g | 128*188*13mm
ISBN13
9791191719291

책 속으로

아침에 내린 봄눈이 늦게 도착한 편지처럼 반갑습니다

그곳에서 평안하십니까?

잠시 스친 봄바람에 목련 꽃봉오리 꿈틀대고 울타리 사철나무에서 참새 떼 날아오르고 개구리 우는 소리에 수련 잎 이슬 굴러떨어집니다

나는 잘 지냅니다

계곡물은 지나쳐 온 계절을 추억하느라 쉼 없이 조잘댑니다 생강나무 가지 끝 새순들은 작설처럼 돋아 나오고요

혹시 기다리셨습니까?

법고 앞 비구니 가사 자락 펄럭여 새벽 산안개를 피워 올립니다

딱-따그르 목탁 소리에 꽃망울 몇 개 터진 늙은 백매 우듬지에서 까치 한 마리 날아오르고요

안부 고맙습니다

어린 풀잎 몇이 봄눈을 피해 절간을 기웃거리네요 저기에 가봐야겠습니다
---「연두」전문

사거리 버스정류장 앞 김밥가게 김밥이 마르고

벚나무 이파리 아스팔트 위에서 몸을 뒤집고

분꽃은 일제히 깨어나고

온천천 물고기 여저기서 고개 내밀고

지친 구둣발 소리에 낙엽들 뒤척이고

딱따구리 부리 짓에 팽나무 진저리를 치고

고장 난 뻐꾸기시계 뻐뻐꾹 딸꾹질하고

늙은 버들강아지 꼬리를 흔들며 저만치 뛰어가고

할머니 무릎에서 오빠의 휘파람 소리가 나고

시월의 마지막 밤이 발길에 차이고

어제와 조금 다른 하루가 털털거리며 굴러가고
---「소원을 적은 풍등이 뒤뚱거리며 오르는 동안」전문

아침잠을 깨우는 지빠귀 노래

백만 년 후에 부르는 구슬픈 한오백년

여름방학 강둑에서 한 소절씩 따라 부르던 오빠의 클레멘타인

빠르게 식어가는 액자 속 나의 두 번째 심장

말풍선 속에서 말라가는 속말

사랑, 너무 오래 아껴둔 말

바람이 지워버릴 23시 59분

환청으로 남은 참매미의 마지막 울음

체크무늬 반바지를 입고 남구에서 배회 중인 허종명 씨(남, 89세)

아들을 오빠라 부르는 구순 엄마의 오늘

당신 주머니 속의 온기
---「멸종되는 것들의 목록」전문

통도사 절 마당
미륵불 모신 용화전 앞
석가모니 부처님 발우가 탑처럼 세워져 있다

밥그릇 탑이라니
예나 이제나 먹고 사는 일이 중요했을까

삼단의 기단석 위에 무겁게 얹힌 뚜껑 덮인 밥그릇

부처도 밥을 먹는구나
밥 먹는 사람이었구나

보리떡 다섯 개와 두 마리의 물고기로
오천 명을 먹였다는 예수의 기적처럼
밥 한 그릇으로
부처님은 몇 명의 중생을 제도하였을까

통도사 봉발탑 앞
미래불인 미륵불에게
하필이면 밥그릇을 넘겨준 의미를 새겨보는데

먹는 일이 미래세에도 중요하다는 듯
꼬르륵 뱃속에서 신호를 보낸다
---「봉발탑 앞에서」전문

일출 한 시간 전 바다 빛깔입니다
그 시각 하늘도 닮아 있습니다

동짓달 스무아흐레 달의 뒷면이거나
곧 불 켜질 등대를 감싸도는
바람의 기색이라면 이해가 될까요

좁고 거친 길 끝
어슴푸레 빛이 새어나는 신의 집
십자가에 매달린 기도의 색깔과도 흡사합니다

낯선 길모퉁이
환청으로 듣는 목소리처럼
금 간 아스팔트 틈 사이 겁에 질린 냉이꽃
불쑥불쑥 돋아나는 그 얼굴처럼

블루가 다 블루가 아니고
블랙이 다 블랙이 아닌 것처럼

---「블루블랙」전문

출판사 리뷰

시인의 말

지우지 못한 것들 꺼내지 못한 것들 틈에서
나를 찾아가는 길

2024년 가을
최선희

추천평

“목소리 닿은 목덜미부터 차례로 짙어지는/ 몸 주름들”(「목소리 지문」) 안쪽에 시린 사유를 숨겨놓은 최선희의 시를 읽다 보면, ‘나’로부터 ‘타자’로 향하는, 또 ‘타자’를 ‘나’에게 적용하는 가치를 만날 수 있다. 시집 『소원을 적은 풍등이 뒤뚱거리며 오르는 동안』은 일상의 서사를 몸으로 빨아들여 사유에 이르기까지, 경험에서 꺼낸 묘사는 진솔하고 여백은 상상의 자리로 넉넉하다. 과하지 않고 담백한, 부분을 비워 너른 자리를 만드는 서정은 입체적 진동을 일으킨다. 그의 시는 사유를 배경에 두고 시가 스스로 움직이게 한다. 시인이 제시한 여백은 이면의 화두이며, 그 여백은 넓고 때로는 깊어 독자가 오래 머물거나 허우적거려도 넉넉할 만큼의 공간으로 정의해도 좋을 것이다. - 최은묵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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