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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차단기가 열렸습니다
번개 배송/ 즉석요리/ 그림자/ 과속/ 봄, 커피숍을 나서며/ 잡아당기지 마세요/ 나를 사 가세요/ 자영업자/ 인공지능 무인 편의점/ 구의역 9-4 승강장에서/ 로봇 노동자를 보며/ 질주/ 하이패스 제2부 업데이트 중입니다 생계부生計簿/ 포장/ 고용계약서/ 마케팅/ 종합격투기/ 자동 업데이트/ 고객마저 팝니다/ 청년 백수/ 사과문/ 추억 쇼핑/ 쇼핑 유전자/ 가을 신상품/ 내가 스팸문자였다/ 커피 가격표 제3부 ‘좋아요’를 수집합니다 시장 동향 보고서/ ‘좋아요’를 수집합니다/ 인공지능 면접관/ 백화점 문화센터/ 신상품/ 먹방을 보다가/ 나를 정리한다/ 하루 32시간/ 소비자기본법 제5조/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 구글 위성지도를 보며 제4부 나를 떠날 것입니다 샤넬백/ 을지로 지하상가에서/ 의심/ 양봉업자/ 짜장면 한 그릇/ 자가격리/ 아바타/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신탁/ 밤하늘 보호 공원 제5부 외로움으로 외로움을 버티는 시절 오늘의 요리/ 드디어 고독을 벗어났다/ 접속/ 도난당하고 싶어요/ 사회적 거리두기/ 메신저/ 데이터가 소진되었습니다/ 좋은 시절/ 밤하늘 별들도 독거한다/ 비밀번호 변경/ 속도/ 전철에서/ 나를 심었다/ 반려로봇 장례식/ 미륵불과 메시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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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스스로 주문하고, 다소곳이 가져와 마시며
커피숍 창 너머 시위를 음미하고 있었다 창가에 버티고 선 목련이나 라일락도 비정규직이라고 단정하면서 비정규직 시위대의 어깨 처진 깃발 보며 우리가 비축한 사랑의 재고를 뒤적이는데 유통기한이 지나 폐기할 것들만 수북했다 난처한 마음은 벌써 커피숍을 나섰지만 몸은 남아서 작업 지시대로 순순히 플라스틱, 종이 구분하여 뒷마무리 커피숍을 나서면서 우리가 한 일이 단지 몸에 밴 놀이일까, 노동일까 약속일까, 고용일까를 의심하는데 갑자기 시위대 함성이 펄럭였다 목련에 이어 봄을 노동하는 라일락은 교대근무일까, 대체근무일까 가늠할 때는 봄햇살 겨드랑이에서 비린내가 풍겼다 셀프 커피숍에서 애써 사표를 쓴들 봄은 여름으로 인계하거나 식당, 주유소나 대형마트 말단 부서로 가차 없이 고용 승계되겠고 포인트 카드라는 단정한 신분증을 줄 것이며 우리 일상은 점수로 적립되고 점수로 삶의 부피가 조금은 달라지겠지만 여태 궁금한 것은 봄을 살찌우는 목련, 라일락은 무급 노동이고 자연은 무급 노동으로 번성하는지 목련, 라일락에서 절은 지폐 냄새가 꽃피었다 ---「봄, 커피숍을 나서며」중에서 그대의 번민은 차마 아름답습니다 세상 기슭에 앉아 오늘을 읽는 음성과 시선 번민하는 그대 영혼의 풍경이 담긴 액자로 세상에 전시됩니다 좋아요 3명, 댓글 0개, 공유 0회일지라도 그대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잘 압니다 그대의 헌신을 감동합니다 그대 영혼이 무관심으로 투명해질 때 살아있음을 채색할 글과 사진 그대마저 분장하고 ‘좋아요’ 를 기다리겠지요 댓글 폭우가 쏟아지고, 공유가 범람해도 ‘좋아요’ 허기를 채울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합니다 ‘좋아요’ 는 세상을 영업하기에 정말 좋습니다 그대와 ‘좋아요’ 로 연결된 또 다른 그대들의 번민과 헌신 ‘좋아요’ 를 꼼꼼하게 수집하면서 감정과 사상까지 골골샅샅이 뒤적이면서 그대 위한 맞춤형 제품을 보여드려 좋습니다 그대의 번민과 헌신, 일체를 영업합니다 ---「‘좋아요’를 수집합니다」중에서 전반적으로 세상 모든 것의 상품화가 원만히 진행되는 국면임 극소수 사람들이 자신은 상품이 아니라고 저항하지만 무시할 수준임 무엇보다 고독, 죽음의 상품화가 시대의 빅히트 상품임 고독, 죽음에 대한 맞춤형 상품이 다양하면서 고품질로 개발 중임 인간의 감정 고갈에 대한 소비자 니즈 파악이 필요함 질 높은 감정 보충제의 개발 소식에 시장 반응이 폭발적임 기후 위기는 곧 시장의 기회 창출이 될 것임 기후 위기 불안의 상품화는 장기 호황이 예상됨 장기적으로 공기세 도입에 대비한 선제 대응이 요구됨 수도세 도입으로 물 시장의 축소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함 빌딩, 거리의 광고판 설치는 포화 상태임 하늘을 광고판으로 하는 우주광고 시대를 본격화해야 함 현재 시장도 포화 상태로 이윤 창출의 한계에 이르렀음 미래를 가불해서라도 시간과 공간의 확장이 간절함 ---「시장 동향 보고서」중에서 자동 업데이트 기능을 분명히 해제했는데 오늘도 나는 업데이트 당했다 내 기능이 망가졌는지 그가 나를 강제로 사랑하는지 미세먼지가 묻은 말들의 독소를 빼내려고 아침 주스를 물 한 방울 들어가지 않은 착즙 주스로 수정 세상이 두 겹으로 혼란스러워 눈 건강 영양제를 새로 입력 짓눌려 살며 밤의 무게도 견디기 힘든데 이불마저 무거워서 양털 이불로 교체 날마다 내 욕망이 업데이트된다 쏟아지는 신제품을 업데이트하려고 시장을 험담하는 의식의 찌꺼기나 부피만 큰 해묵은 사랑의 파일은 말끔히 삭제하며 욕망의 목록은 자동 업데이트 중이고 목숨의 용량은 다시 설정하고 싶은데 궁금하지 않았다 그가 이미 업데이트 했을지 ---「자동 업데이트」중에서 내가 없어도 세상은 안녕하고 내가 있어 불화였다고 깨달은 봄 빛마저 찾아오기 힘든 산방에 나를 유기했던 어느 봄날 벌거벗고 유혹하는 네온사인 쓰러질 때까지 퍼붓는 광고의 폭풍우 더 많은 조회 수를 삼키려고 구토하는 뉴스 눈 감고 웅크리고 앉아 작은 창문으로 바깥세상 내다볼 때 안개 겹겹이 가려도 잘 보이네 햇빛의 융단폭격, 폭발하는 꽃들 바람의 인해전술, 진격하는 초목들 사방에서 침략하는 봄의 군사들 내 심신 거침없이 점령하여 향기로운 유언비어로 통치할 봄, 나를 경작하며 수선할 봄에게 오늘 기꺼이 신탁하기로 했네 ---「신탁」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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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화되어 디지털 상에서 배분되는 단순하고 균질적인 노동은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노동자 사이에 불평등하게 배분되며 무급 노동의 잉여를 발생시키는 것만이 아니 소비자에게도 배분된다. 그래서 이 시의 화자는 자동 주문기 앞에서 자동화 이전 같으면 종업원이 했을 노동을 대신하고, 커피를 다 마시고는 매뉴얼에 따라 뒤처리를 하며 역시 이전 같으면 종업원이 했을 노동을 대신하며, 이것이 “몸에 밴 놀이일까, 노동일까/약속일까, 고용일까를 의심”한다. 하지만 식당, 주유소, 대형마트 등 일상이 이미 소비자에게 배분된 노동으로 가득 차 있어서 화자는 결코 이 무임노동에서 벗어날 수가 없고 “셀프 커피숍에서 애써 사표를 쓴들/ 봄은 여름으로 인계하거나/ 식당, 주유소나 대형마트 말단 부서로/가차 없이 고용 승계”될 뿐이다. (「봄, 커피숍을 나서며」 해설에서)
디지털 플랫폼은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해 노동하지 않는다. 콘텐츠를 생산하는 노동은 플랫폼 네트워크에 접속된 소비자들이 한다. 소비자들은 관계에 대한 욕망 때문에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는 노동을 하고 그 노동은 다른 소비자들로부터 좋아요 정도를 받는 헌신적인 무급 노동이다. 디지털 플랫폼은 이 관계에 대한 번민과 헌신적인 무급 노동, 그에 대한 소비자들의 좋아요 반응을 수집하고 관리한다. 이렇게 수집된 번민과 헌신은 “감정과 사상까지 골골샅샅이 뒤적이면서/그대 위한 맞춤형 제품을 보여드려” 소비자의 상품 소비 패턴을 조작하고 관리하는 자료가 된다. (「‘좋아요’ 를 수집합니다」 해설에서) 일정한 트랜드로 세팅된 시스템 속에서 그 시스템을 넘어서는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는 그 때문에 많은 상처를 안고 교육과 관련된 공직에서 은퇴하여 포천의 어느 산 중턱에 산방을 마련하였다. 그는 산방에서 그간의 일을 회고하며 “내가 없어도 세상은 안녕하고/내가 있어 불화였다”고 자신의 집착을 깨닫는다. 그리고 거리라는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본다. 그러면 더 넓은 시야에서 “벌거벗고 유혹하는 네온사인/쓰러질 때까지 퍼붓는 광고의 폭풍우/더 많은 조회 수를 삼키려고 구토하는 뉴스”로 시끄러운 세상이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잘 보이는 것은 “햇빛의 융단폭격, 폭발하는 꽃들/바람의 인해전술, 진격하는 초목들/사방에서 침략하는 봄의 군사들//내 심신 거침없이 점령하여/향기로운 유언비어로 통치할 봄”이다. 이중현 시인은 봄 즉 자연에 자신을 신탁하기로 하고 그에 근거하여 급변하는 세상을 문명사적으로 성찰한다. 시인의 말 먼 길을 왔다고 생각했는데 제자리였다. 몇 년 동안 나를 산자락에 세워놓고 관찰했다. 풍경으로 어울릴까 싶었는데 내가 보이지 않는 자리에 부끄러움만 우거졌다. 2022년 가을 이중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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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묶은 이중현의 이번 시들은 현실 자본주의의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누리는 현대인의 도시 정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위해 존재하는 다양한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을 치열하게 드러낸다. 편편의 시들을 읽으면 지금 여기의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일상 삶의 절망과 희망들이 서로 교차 되며 친근하게 다가온다. 또한 자본의 문명에 대한 부정성과 존속성 그리고 대안적 성찰 등을 보여준다. 그의 시적 대상의 인물을 보면 택배기사, 무인 편의점의 인공지능, 일당 생활 노동자, 배달 라이더 16살 고등학생, 고속도로 요금 수납원 등 소시민들이고 시적 장치를 위한 내용으로는 가을 신상품, 커피 가격표, 엘리베이터, 스팸문자, 시장 동향 보고서, 클릭, 유튜브, 티비 요리 프로그램, 데이터 소진, 비밀번호 변경 메시지 등 현실 자본주의의 모든 일상이다. 그는 이를 통해 소시민이 살아내는 현실 삶의 내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시인 또한 발가벗겨진 그 소시민으로서의 자신을 보며 내면의 켜켜에 숨어 살고 있던 또 다른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는데 그 울림이 매우 크다. - 박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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