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제1부 자연을 듣다
순천만 노을/ 물수제비/ 꼬리/ 호박이 담장을 넘어간 이유/ 구름/ 가을 아침/ 마른 나뭇잎/ 낙엽의 기도/ 민들레꽃 한 송이가/ 감꽃 피는 아파트/ 밀알의 꿈/ 섬 소년/ 싸락눈/ 씨톨 제2부 시간에 머물다 4월/ 귀뚜라미/ 모기/ 틈/ 밤바다/ 숲처럼 흔들리며/ 거미줄 엮기/ 옥탑방 강 씨/ 산사의 오후/ 함박눈/ 소리는 신호다/ 빗소리/ 탈피/ 싸전다리 제3부 상처를 마주하다 서두른 죄/ 저승 감나무/ 게으른 죄/ 하루살이의 변/ 그리마의 꿈/ 삼대 이야기/ 추석/ 치매/ 일기 20200518/ 실업/ 그해 겨울 눈보라/ 북소리/ 노숙/ 낡은 관 제4부 일상을 걷다 손금/ 신발/ 첫사랑/ 교실 창가에서 1/ 영화관을 지나다/ 웃음/ 우유부단/ 달콤한 도시/ 가/ 쓰러짐에 대하여/ 우렁이 색시/ 23시의 시내버스/ 창을 닦는 사람들 |
|
마을을 떨쳐 나온 갯벌에
넉넉한 집 한 채 지어놓고서 한낮의 태양을 움키던 아직도 붉게 타는 집게발이 갈대의 정강이를 슬쩍- 뜨겁지, 무지 뜨겁지? 장난을 걸어오는 게에게 간지럽다, 간지러워 죽겠다! 몸을 뒤틀어 흔드는 갈대 언젠가 내 손길이 스치자 얼굴 붉어진 여인 추억처럼 빈 하늘에 물들어 있었다 이대준 시집_ 거미줄 별꽃 --- 「순천만 노을」 중에서 밤하늘에 떨어지는 유성을 보면서 날이 밝으면 앞동산에 가리라 별똥별을 찾아 헤매다 이슬에 함빡 젖은 여치 한 마리 손바닥에 올려놓고 쓸어주고 불어주다 포롱포롱 멧새 떼 뒤를 쫓다가 별똥별은 잊고 축 처진 꼬리를 끌고 집에 돌아가 엄마에게 지청구를 듣다 어른이 되었는데 무엇이든 감추는 버릇이 생긴 건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원망 들을 일이 사라지고 그런 날이 계속될수록 꼬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나는 큰마음을 먹고 병원에 가 필요 없는 꼬리를 잘라 내 버렸다 꼬리가 없으니 가끔씩 비틀거리거나 넘어지는 일은 있으나 더 이상 감출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는 오롯이 나만의 두 다리로 설 수 있었다 싫어하거나 좋은 사람을 만나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온전한 성인이 될 수 있었다 --- 「꼬리」 중에서 거미줄처럼 엮인 항공로 지도를 떠올리며 그 줄 한 가닥에서 반짝이며 날아가는 비행기를 본다 신호를 기다리던 거미처럼 사람들의 기다림과 만남은 비행기가 흔드는 설렘을 따라 이대준 시집_ 거미줄 별꽃 달려갈 것이다 3월의 매화나무 가지에 매달린 꽃처럼 하얀 별들이 무성한 밤하늘도 이 별에서 저 별로 저 별에서 그 별로 다시 그 별에서 이 별로 거미줄을 치고서야 비로소 별빛 하늘다운 하늘이 된다 매화나무가 언 땅을 더듬다 초롱초롱 별꽃으로 태어나듯 별들도 그렇게 어둠을 더듬어 무더기 무더기로 빛나다가 펼친 그물을 지상에 쏟아 도시의 빌딩과 빌딩 사이 포장마차와 포장마차 사이 산골짜기 마을 사이사이까지 낯꽃 환한 등불을 밝힐 때 세상은 별처럼 빛이 난다 때로는 거미가 떠나버린 빈 거미줄 접착력이 사라진 거미줄에서도 아침 이슬이 빛나는 걸 본다 누군가의 눈물일 것인데 멀리서 날아가는 비행기의 설렘처럼 반짝 기다림에 엮여 있으면 슬픔도 별꽃이 된다 --- 「거미줄 엮기」 중에서 쇼윈도 환한 불빛 아래서 당신을 처음 만나고 당신이 내 안에 들어왔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당신의 진한 체취에 길들었습니다. 당신과 나는 산을 들어 올리고 강물을 길어 올리며 먼 길을 함께 하였습니다. 나는 당신의 기척만 듣고도 당신이 어디로 향할지, 그곳에서 또 얼마나 머물지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신 또한 내 사랑을 주체하지 못하여 내 아픔을 불어주시고 얼굴엔 어여쁜 화장까지 해 주었습니다. 지난겨울 당신과 내가 찾았던 오동도의 기억은 참으로 특별하였습니다. 활짝 핀 동백을 보면서 소설 동백꽃 속의 점순이와 순박한 그의 남자 친구를 그리다, 그보다 더한 우리들의 사랑에 그만 정신을 잃고 비탈길에서 하나로 굴러 버린 일은 아직도 입가에 조그만 미소로 남았습니다. 이제 당신은 나를 찾지 않습니다. 나는 늙고 병들어 골방에 누웠습니다. 그러나 내 몸은 여전히 당신의 향기로 가득합니다. 지난겨울 오동도에서 보았던 떨어진 눈 위에서 외려 빛나던 꽃잎들, 그 붉은 사랑이 자꾸만 눈길에 밟혀 이 어둠 넉넉히 견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신발」 중에서 선생님은 풍금을 치시고 우리들은 한 명씩 불려나가 풍금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등굣길에서 잡은 산토끼 두 귀를 치켜들고 와 교실에 풀어놓고 신이 났던 산골짜기 아이들 음정 박자 모두가 엉망이었다 순서가 거듭될수록 도시에서 갓 오신 선생님 얼굴이 점점 붉어지고 차례가 다가올수록 손바닥에 땀이 찼지만 나는 숨을 고르고 더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한두 소절이 끝났을까 돌연 선생님의 목소리가 화산처럼 폭발했다 “가!” 노래를 잘 불러서 가도 좋다, 믿은 나는 슬쩍 입꼬리를 올린 채 자리로 돌아갔다 시간이 흘러 받아 든 통지표 음악 과목 성적 란에는 ‘가’라는 글자 하나 또렷이 박혀 있었다 --- 「가」 중에서 |
|
시인의 말
낮과 밤을 오가는 작은 집 하루가 빚어낸 사소한 풍경들 - 흙내음과 바람, 손때 묻은 농기구와 구절초. 소박한 일상이 길어낸 담담한 이야기들. 밭고랑을 흐르는 바람의 말과 흔들리는 생명들의 일상을, 피부에 스미는 감각을 따라 차곡차곡 모았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자리,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그 소리의 아픔과 무게를 알 수 있듯 이 시집의 소리가 누군가의 쓸쓸한 오후에 작은 온기로 남기를 바라며. 2025년 가을, 삼천동 국다정정에서 이대준 |
|
이대준 시인의 시어와 시구에는 토속적 향취가 짙게 배어 있다. 기성세대가 공감할 만한 과거의 회상과 상황에 걸맞은 적절한 사투리, 그리고 담화적 구문 구조가 어우러져 정감 어린 분위기를 빚어낸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이대준의 시는 남의 이야기도 내 이야기처럼 다가오고, 우스우면서도 슬프고 슬프면서도 우스워 괜스레 눈물이 나는, 고향 친구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무릎 맞대고 나누는 이야기 같다. - 이세재 (시인)
|
|
이대준 시인의 시가 추구하는 가치는 너그럽고 넉넉한 세상을 이루는 데 있다. 그는 각기 다른 모습이 모두 나름의 의미를 지닌 대등한 존재임을 깨닫고, 이를 애틋한 긍정으로 받아들인다. 그의 시는 모든 존재가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다고 말한다. 이는 만물이 평화롭게 어울려 새로운 생명을 낳고 이어가는 우주적 순환을 보여주는 것으로, 참으로 아름답다. - 김영호 (문학평론가,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