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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미안해서
온전한 것/ 하얀 나비/ 겨울꽃/ 역/ 행진곡/ 유효기간/ 뚝, 툭, 톡/ 미안해서/ 슬픔의 맛/ 유목민/ 단절/ 말의 꽃말/ 멈춘 시계/ 소리 없는 저격수/ 낙원 제2부 몸의 꽃 먼 곳에 있/ 마중 가는 길/ 몸의 꽃/ 습지/ 구겨진 계절 앞에서/ 인생 투사/ 스페어spare/ 가림막 - 공명/ 슬픈만큼 슬픔을 구하는 길/ 저항/ 그림자의 고향/ 짧/ 계산서/ 누수/ 사구에 핀 꽃 문 제3부 삐딱하게 불 꺼진 집/ 아스페리타스의 외출/ 좌초된 돛단배/ 뒤로, 뒤로/ 부레/ 풍경을 읽다/ 아픈 것들의 마을/ 발치/ 번 아웃/ 탈/ 삐딱하게/ 당신과 함께 사는/ 연꽃/ 일엽편주/ 쥐의 내면 제4부 통증을 기다리는 법 통증을 기다리는 법/ 통증의 처방/ 통증 1/ 통증 2/ 통증 3 - 자동 선택/ 통증 4/ 통증 5 - 폭식/ 어미 새/ 백일홍 피던 날/ 로망/ 쓸쓸한 사라짐/ 광합성/ 눈물이 나는 날은/ 서랍 속에 감춘 말/ 고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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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이 예쁜 활명수 병을 만지면
어릴 적 내 아픈 배를 쓰다듬던 손이 떠올라 거친 깍쟁이가 붙은 조개껍질 느낌 찬물에 담근 손은 차가웠고 손을 떼면 더 아프다고 뒹굴었던 시간이 자꾸 날 울려 배를 갈라 자식을 꺼낸 자리 쓰다듬으며 자식 키우던 출렁이는 삶 신기루처럼 사라져 남아있는 흉터가 올라와 붉게 국경을 만들어 울퉁불퉁 하얀 나비로 날아간 나뭇잎처럼 물드는 마른 꽃 같은 마음은, 숨 쉬는 일도 두려운 출렁거림은 엄마, 울컥울컥 이별을 생각하며 살지 않을래 -- 「하얀 나비」 중에서 사랑이 뻗어가던 자리를 자르고 외투를 덮어주었네 잎 하나 허투루 버려지지 않았지 가벼이 사라진 것들이 무거운 뿌리가 되어 긴 시간 서로 눈 맞춤하며 침묵을 배우는 동안 잎 진 자리에 마데카솔 가루처럼 하얀 눈이 내리고 하늘이 덮어주는 온기만으로 상처는 깊고 푸르게 잠들었어 믿어볼게요 상처에 갇힌 영혼이 옹알이처럼 미약한 빛으로 스스로를 터뜨릴 순간을 깊은 겨울의 끝에 아름다운 사랑은 무엇 하나 조건 없이 피어날 것을 --- 「겨울꽃」 중에서 그늘로 사느라고 애썼다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 뗄 수 없던 방황의 징검다리 나무로 살던 그림자 사람으로 살던 그림자 꽃과 나비로 살던 그림자 서산으로 뉘엿뉘엿 지던 노을의 그림자 가둘 수 없는 망망대해 허공 너의 그림자 웃기도 울기도 하는 순간 허물을 벗는 인간의 나약함 집도 절도 없는 고독한 발칙함으로 -- 「그림자의 고향」 중에서 인연의 실타래를 풀다 보면 아득한 먼 강가 안개가 보일 때가 있다 복잡한 인연의 부름을 뒤로 한 반쪽의 그림자를 놓는 마음이겠다 그렇게 바라보다가 한쪽 손 놓고 가는 날 뒷모습 보며 남은 손 놓고 저기, 엽록소 닮은 색으로 태양에 닿는 편지를 써 보니 올록볼록 새김보다 편안한 숨쉬기 멈출 수 없는 우주의 선물 그렇게 바라보다가 다친 발 놓고 초록 커피 마시며 남은 발 놓고 초록 부처가 세상에 오시던 날 --- 「광합성」 중에서 초록이 울다 지치면 먹구름이 몰려온다 습한 바람으로 날릴 저녁도 온다 화가 나면 더 세찬 먹빛의 터널을 만들고 조물주가 만든 긴 밤 짧은 낮을 던진다 산빛에 걸린 오묘한 신의 옷자락 밤새 사락사락 내리는 빗길을 물었다 활활 타오르는 가슴을 숨겨둔 연옥 별보다도 아름다운 슬픈 망각 검은 눈물이 가득한 세상의 경계다 네가 바라는 자유는 어둠보다 밝고 내가 바라는 평화는 새벽만큼 조용하고 평등은 아침만큼 당당하다 너는 눈물의 방랑자 내 안의 숨만큼 고통스럽지 말기를 독한 무정에 아프지 말기를 통증을 앓는 가슴에 매립된 것들 사라질 수가 없는 슬픔의 징표이다 꿈틀거리는 세상을 그리는 화가들이여 다른 외출을 꿈꾸며 나설 낯선 성자여 그대는 레테의 푸른 꽃잎을 보았는가 --- 「아스페리타스의 외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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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춥고 어두운 새벽이 지났다. 거친 항해를 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선장을 생각하며 시대의 트라우마를 새긴 심장을 다독인다. 하루를 쪼개면 한 시간을 더 늘리고 사는 느낌이랄까? 나이 들면서 더 바쁜 거는 왜일까? 아직 갈증을 채우지 못해 세상에 할 일이 많나 보다. 자유롭게 되기까지의 수많은 저항 아름다운 사슬을 풀어가며 고통을 즐기는 중이다. 또다시 마지막 계절이다. 2025년 늦가을 입구에서 황은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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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는 무엇을 품고 자라는 걸까? 『아스페리타스의 외출』은 세상에 흩어져있는 감정을 변주하여 삶을 투과시키는 기록이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잠시만 시간을 거슬러도 그곳에는 “묵은 귓밥에 얹어 들었던 말”(「가림막」)이나 “창가에 선 사람들의 말”(「단절」)이나 “시퍼런 곰팡이 피어난 말”(「서랍 속에 감춘 말」)이 수북하다. 이런 소리는 여전히 제 그림자를 떼어내지 못한 채 은밀하다. 황은경의 시편이 조곤조곤 깔리는 목소리를 지닐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림자로 남은 것들의 떨림을 고스란히 옮기려는 긴장 때문이다. 세상 모두와 똑같은 오늘이 아니라 시인의 가슴에서 새롭게 정의된 “해 저물 무렵에 다녀간 오늘”(「저항」)처럼 이 시집은 불쑥 “냄새 없는 풍경으로 다가오기도 한다”(「고해」). 이처럼 냄새 없는 그림자들의 물음을 가만가만 짚다 보면 우리는 마침내 황은경 시인이 펼쳐놓은 안쪽 세계에서 ‘아스페리타스’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최은묵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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