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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슬픔을 맞이하는 자세
아나키스트/ 바람 사이로 보이는 것/ 미끄러지는 맛/ 관심의 날들/ 고비 사막이 되어라/ 흉터/ 숲으로 떠난 여자/ 아마데우스의 눈물/ 가난은 죄/ 슬픔을 맞이하는 자세/ 보이지 않는 주소/ 달과 같이 살기/ 화장/ 박힌다는 거/ 어느 날의 다짐/ 풀처럼/ 사잇길에서/ 걷는다는 행복 제2부 다시는 어둡지 말 것 말/ 하루가 길다/ 섬/ 다시는 어둡지 말 것/ 지난 것들을 묻지 말자/ 그 남자 이야기/ 꽃이 진 자리에/ 녹색/ 허락하는 시/ 여물어 가는/ 빈틈을 가리다/ 안부/ 어느 순간/ 봄밤/ 등 따신 게 제일이야/ 그들이 감아버린 단어의 세습/ 하늘 물고기/ 서식지 제3부 가슴속의 별 그들이 지나간 곳에/ 사막/ 당신/ 문밖에 서서/ 연한 먼지가 날아오른다/ 혈, 창세기/ 메시아/ 화석의 기억/ 다시 공존하는 법/ 미아리 고개를 넘는다/ 녹조/ 올려다보기/ 고택/ 경대 서랍 속/ 엄마 재봉틀/ 남는 것은 우리 것이 아냐/ 가슴속의 별 제4부 꿈틀거리는 것들과 함께 박제/ 이카로스의 날개/ 욱하고 터트리지 마세요/ 비탈/ 부활/ 사랑/ 덩그라니 물음표가 되어/ 삐끗/ 꽃이 된 그대에게/ 누워 잔다는 것/ 낭만을 찾아/ 우주 부동산/ 뫼별/ 파수꾼/ 문을 건너 닿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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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족쇄를 풀며 말한다
채우지 말라고 자유를 사랑하는 날 미워하지 말라고 천국의 노래를 믿는 자여 숨을 쉬는 모든 생명은 꿈꾸는 열을 가진 생명의 근원이지만 날마다 순간순간 공중에서 떨어져 승천하는 먼지를 보라 아름다운 빛으로 사라지며 향기를 뿌리는 것을 옷깃을 날리며 광활한 실크로드를 누비는 나라는 기차, 너라는 역 우리는 여전히 붉은 새벽을 기다린다. ---「아나키스트」중에서 바람은 때때로 울렁거리는 빛깔이었다 주인의 구타로 피멍이 들어도 곁을 떠나지 않는 순둥이의 충성에 한숨을 몰아쉬던 앞집 아주머니 저 멍청한 것은 때리면 도망가야지 뭣이 좋다고 인간을 따라 다니나 몇 대 더 얻어맞겠네 짐승을 길들이는 방법은 때려야 한다던 아저씨 기억이 사라진 그분은 순둥이가 유일한 가족이었다 고향도 집도 잃어버린 외눈박이 누렇게 삭은 양철 끝에 걸려 살가죽이 떨어져 나가도 순둥이는 이유도 없이 맞아야만 했다 붉은 피가 흘러도 노하지 않는 순둥이 부르면 기다린 것처럼 달려간다 아저씨는 월남 전쟁 고엽제 환자로 진통제와 술로 버텼다 바람 사이로 보이는 저 고통을 순둥이는 코끝에 묻고 바람이 부는 대로 충성했다 자꾸만 슬펐다 바람과 사람 사이 길게 풍경이 서 있었다. ---「바람 사이로 보이는 것」중에서 소멸한 흔적이나 안개를 휘저으며 당신, 쌓인 시간을 바라보고 있다 반기고, 보내고, 약속하고 다시 새순으로 일어서고 먼 길 끝 수평선을 바라보는 당신 묵었던 정신을 씻고 지금 일어서고 있다 지나는 바람의 숨소리에도 펄럭이는 노을처럼 이곳에 필사적으로 머무르려는 푸른 의지의 당신 나는 지금 잔잔한 웃음과 새어 나오는 한숨이 교차하는 길 위에 서 있다 기울어진 삶이더라도 한때는 자랑스러웠다 이제는 방명록의 이름으로 남아 있는 당신 세상의 손님일 뿐인 당신 다녀갔거나 다녀가실 이 세상 잘 살다 갔거나 잘 살다 가실 당신. ---「당신」중에서 물속에도 벽이 있고 집이 있고 주소가 있다 해파리의 미끌미끌한 촉수 사이로 날카로운 독이 있다는 것을 알아버린 날부터 물고기의 생사도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의 생사는 보이지 않는 주소다 주소 끝을 보지 않기 위해 빛이 있는 곳에서 인생을 펼치고 춥고 어두운 곳은 피한다 운명을 짊어진 용감한 용사는 많다 카멜레온의 진화된 거죽을 닮아서라도 어두운 집 주소로 가지 않으려고 덜컹대며 달린다 하지만, 신은 우리의 주소를 모두 알고 있다. ---「보이지 않는 주소」중에서 별처럼 많은 눈물 흘리며 심장을 더 작게 만드는 사람 평생 흘릴 눈물, 흔적을 여미나 슬퍼 울어야 했던 순간들 찢듯이 나누어 던지면 마침내 내가 되고 우리가 되나 끝내 말 못하는 짐승이 되어 그렇게 가슴에 새겨지는 이름 하나로 떠도는 뫼별이 되나. ---「뫼별」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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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세상에 뿌려진 많은 행복을 자연 속에서 깊은 생명을 시 안에서 평생 닦을 발우를 만났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시를 쓰는 일은 존재를 확인하는 최소한의 몸부림이다. 다시 먼 길을 가기 위해 시작되는, 끝내 따라가야 할 것들을 찾아 네 번째의 발자국을 뗀다. 2022년 가을 황은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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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경의 이번 시집에 실려 있는 시들은 스펙트럼이 아주 넓다. 순수 서정의 시들이 있는가 하면 사회 참여의 시들도 있다. 그렇다. 그의 이번 시집에는 추상적 의식이 중심이 되는 시들이 있는가 하면 구상적 형상이 중점이 되는 시들도 실려 있다. 물론 이는 그의 시적 관심이 그만큼 크고 풍성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좀 더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충만한 서정과 생생한 서사를 잃지 않고 있는 시들이다. 「바람 사이로 보이는 것」, 「흉터」, 「미끄러지는 맛」, 「가난은 죄」, 「그 남자 이야기」, 「하루가 길다」, 「등 따신 게 제일이야」, 「당신」 등의 시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 시는 한결같이 시인의 구체적인 사람살이와 함께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러한 논의는 그의 이들 시가 생생한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서정 및 서사를 거느리고 있다는 지적을 포함한다. 이들 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무엇보다 벅찬 사랑의 감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 그의 시이다. “나를 위해 이제는 사랑을 품어야지/이별도 아니고 아픔도 아닌 사랑을”(「사랑」)이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 시인 황은경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이은봉 (시인, 광주대 명예교수, 대전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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