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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그대 꽃이니 나도 꽃/마리오네트marionet를 생각하며/아버지/2차 방정식/장밭 고갯길/파스타 이야기/늙은 시인의 노래/산소의 조부님을 뵙고/봄바람/마지막 꿈/몇 번째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보는 사람들을 위해/윤정희를 위한 변주곡/꽃/천사를 대신한 그녀에게/그대의 된장찌개 제2부 나의 요리철학을 위해/새움/르네 마그리트 선생에게/조르조 데 키리코에게/꿈/나/니카노르 파라 오마주/김여정 동무께/박근혜 파면-사건번호 2016 헌나 1. 오백삼번을 위한 큐시트/역경을 딛고 별을 향해/비 오는 3월 어느 날/민들레/오, 그대/개꿈/비단강 금강/관타나모의 아가씨 제3부 레퀴엠 ― 레퀴엠Requiem의 개괄적 진실 혹은 고의아마도 쓰레기/매진賣盡/공업共業/푸른 기와집/스테이크, 스테이크, 스테이크/나는 페니스적 파시즘의 대명사/한순간/귀환/추위에 흐느적거리는 영혼에 대한 영적 고찰/없는 무/모터사이클 옆 작은 텐트에서/나무상자/독도/나를 보며/카메라 옵스큐라 제4부 무제/길/나는 광대였다/잃어버린 소리/오, 그대 죽음이여/추방당한 감각과 상상력의 변조變調를 위하여/AI에 대한 대박 기회를 알아차리기/천국 전화/흑백사진에 대한 소고/환경비상계엄 선포문/그게 인생이다/설사/色과 空/Das Man/여자와 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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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라는 사치를 부려본 사람이라면
가끔은 외로움의 무게가 버겁다는 것을 안다. 그런 것을 해결하려 프로메테우스의 반지를 끼었다면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드는 진한 에스프레소를 즐겨야 한다. 알겠다, 아내가 최고의 애인이기는 하나 영원한 애인은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다. 그녀는 네가 너 자신을 재료로 해 만든 너 자신의 존재다. 그녀는 너 없이는 아내가 될 수 없다. 그녀를 미워하거나 배반하거나 그녀와 겪고 있는 고민에 대해 친구들에게 이야기하지 마라. 그것은 너의 구부러진 손가락을 네가 욕하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혼자라는 사치를 부려본 사람이라면 어두운 방의 스위치를 켜본 사람이라면 욕망의 구조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그대가 땅에 떨어질 시간을 안다. 가끔은 산수가 아닌 이차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ax^2+bx+c=0 어허, 집중하세요. 사랑을 입은 배려는 날개를 달고 숨겨놓은 옷을 찾아 떠나는 선녀처럼 슬프디 슬픈 한 줄기 멜로디는 그대에게 내미는 아주 오래된 청구서. --- 「2차 방정식」 중에서 드넓은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들던 때가 언제이던가 이제 그만, 정말 그만 그에게 영혼을 불어넣어야 한다. 저들의 무대에 그는 서 있을 사람이 아니다. 인형의 옷을 입고 억지로 무대에 선 것은 바보 같은 선량함으로 관객의 마음을 다잡아 행복의 반석에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맞다 하나의 줄만 풀면 자유의 몸이 될 줄 알았다. 그는 하나의 줄을 풀기 위해 3개의 줄을 빌렸다가 이들 줄에 여기저기 얽혀 넘어지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았는데 예루살렘 법정에서 아이히만이 그랬듯 광주의 법정 앞에서 그는 ‘이거 왜 이래’ 소리쳤다. ‘왜 나만 갖고 그래”보다는 짧았다. 실로 조정되는 인형 마리오네트. 눈 감으니 흰 모시 적삼을 깔끔히 차려입은 늙은 시인 미당이「 자화상」을 읊고 있었다. 나도 미당처럼 팔십이 넘은 마리오네트에게 멋들어진 송시 하나 써 볼까나. 혹시 아는가 청와대에서 점심식사라도 초대될는지 말이다. 설익은 민주주의 그렇게 다시 땅속에 묻혔다. --- 「마리오네트marionette를 생각하며」 중에서 혹시 그대들 지금보다 더 높은 세계에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대들 드디어 걸려들었군. 하기야 굵은 쇠갈고리로 만든 낚시 바늘을 드리우고 오수를 즐기며 기다렸지. 그대들도 눈치 빠르니 알겠지만 모든 인간이 다 빛의 몸은 아니지. 지구 옷을 입은 그대들은 모두 그렇게 될 수 있을 뿐, 뿐. 그대들 모두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할 수는 없지. 그대들 모두 분별력 있는 빛의 존재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대들 의식의 에너지는 반짝이지. 임무를 마친 후에 독자적인 존재로 남아 반짝이려면 빛의 몸의 구조를 지탱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지. 그것은 주의력을 집중하는 자에게만 가능하지. 그렇지 않으면 그대들 자신을 잃게 되지, 마치 빛의 소멸처럼, 소리의 바람처럼. 그대들 이제 의식의 에너지 속으로 흡수되어버리려 하지. 그대들 본래의 빛 속으로 돌아가니 단단히 자신을 챙겨 떠나시게. 그대들 만들었다는 그분 앞으로. 그대들 아오. 이 세상은 시간과 공간이 뒤틀려 모든 사물이 존재하고 모든 사건이 발생하는 무대였으니 어서 무대에 올라 기름 먹은 종이처럼 활활 타올라야 하지. 그것이 그대들 사명이지. 그러니 명심하시게, 그대들. 시간은 다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으며 스스로 존재하며 외부의 어떤 힘에도 상관없이 항상 같은 속도를 가지나니 이제 마지막 때에 이르러. “기쁘고 즐거워하며 소를 잡고 양을 죽여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며 취하라, 내일 곧 죽으리니.” --- 「마지막 꿈」 중에서 돌멩이가 하늘을 날다가 사람으로 변하던 시대, 님프가 월계수가 되고 호수와 강이 되던 시대, 인간이 밀랍의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던 시대, 곰이 동굴에 들어 쑥을 먹고 선인이 되던 시대, 이제 그런 판타지의 시대는 지나가 버렸다. 그래도 아직 내게는 깊은 비밀이 하나 있다. 쉿! 집에 아무도 모르게 감춰둔 우렁 색시 하나 피그말리온의 생생한 전설 X 280~89. 집으로 돌아온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사랑하는 이 우렁 색시의 조각상에게로 간다. 끌어안고는 입을 맞춘다 천천히 온기가 느껴진다. 그녀의 허리를, 가슴을, 어깨를 자꾸만 더듬는다. 이윽고 저 딱딱한 뻣뻣하던 여인 조금씩 부드러워진다. 히메투스의 왁스가 녹는다. 천천히 심장이 뛴다! 손바닥 아래 맥박이 느껴진다! --- 「나는 광대였다」 중에서 비로 저거야 피사체와 마주친다. 조리개 구멍으로 빛이 쏜살같이 걸어 들어오기를 인화지에 마법처럼 앉게 되기를 기대와 기대들이 하나의 전설로 회자되기를 욕망하는 낯선 바람 파랑새, 후드득 난다. --- 「카메라 옵스큐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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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희의 시들은 통이 크고 선이 굵다. 그의 시들에서는 짜잘하고 찌질한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언제나 우렁찬 눈으로 세계를 보고 웅혼한 목소리로 그것을 노래하는 것이 유태희의 시들이다. 내심으로는 “서정적 감흥이 넘치는 시”(「시인의 말」)를 쓰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는 “수억의 별들 우주를 떠돌다가/이곳 생명의 땅”에 “뿌리내린 뒤” 비로소 “피어나는”(「그대도 꽃이니 나도 꽃」) 꽃을 노래하는 것이 그의 시이다. “드넓은 광화문 광장에서/촛불을 들던 때”(「마리오네트를 생각하며」)를 잊지 못하는 것이 그의 시들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시에서 그가 “들어라 소인배들아./쓰레기 생산자들아.”라고 노래하는 것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마땅하다. 그렇다. 유태희의 시들은 늘 장중한 목소리와 어조로 “철조망 넘나드는 장자의 나비”(「늙은 시인의 노래」)를 꿈꾼다. 그의 시의 이러한 특징은 거칠 것 없는 무애의 정신, 곧 호방한 기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독자 여러분으로서는 이 시집으로 하여 모처럼 호연지기가 넘치는 심미적 정서를 즐길 수도 있으리라. 이 시집에는 무엇보다 “더 높은 세계에 살고 싶”(「마지막 꿈」)어 하는 그의 마음이 담뿍 들어 있어 더욱 주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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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서정적 감흥이 넘치는 시를 쓰고 싶다.
대학의 교양국어 시간, 교수님의 첫 질문은 “시란 무엇인가”였다.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 어색해 내가 대답을 하기는 했지만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다. 지금만 같아도 “시는 경험과 느낌을 압축과 은유를 통해 생략된 언어를 구사하는 문학의 한 갈래”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시가 어설프다. 시제를 툭 던져놓고 아직도 마무리를 못 하는 어설픈 시인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여전히 서정적인 시를 쓰지 못하는 미완의 시인 지망생이다. 나는 희망한다, 한 십 년 더 노력하면 존경하는 누구처럼 사람들이 낭송하기 좋아하는 시를 쓸 수 있기를. 시, 하여튼 내게는 늘 대간한 언어예술형식이다. 언제쯤이나 나는 서정적 감흥이 넘치는 시를 쓸 수 있을까. 2021년 10월 세종마을 꼭대기에서 유태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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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희 시인의 시는 젊은 시절 세계 방랑 체험과 딜레탕트의 독서력으로 무한대의 소재와 다양한 주제가 특징이다. 오랜 문화 기자의 경력 때문인지 시적 수사는 날것의 리얼한 언어를 선호한다. 「환경비상계엄 선포문」 같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인류의 탐욕과 환경파괴를 고발한 시가 있는가 하면 “레퀴엠은 죽은이를 위한 조가(弔歌)/레퀴엠은 살아남은 자들의 헌가(獻歌)/레퀴엠은 하늘 문을 여는 열쇠” 「(레퀴엠」) 같은 드라이한 은유로 죽음을 해석한 표현도 있다.
필자는 “선녀처럼 슬프디 슬픈 한 줄기 멜로디는/그대에게 내미는 아주 오래된 청구서.”「(2차 방정식」)와 같은 사랑의 표현과 “내 고향, 영혼의 안식처,/아직도 키 큰 푸른 대나무여/아련하고 따뜻하고 행복했던 곳.) 같은 실낙원 정서의 표현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아울러 “이 세상은/시간과 공간이 뒤틀려 모든 사물이 존재하고 모든 사건이 발생하는 무대였으니/어서 무대에 올라 기름 먹은 종이처럼 활활 타올라야 하지.”「(마지막꿈」) 같은 노장의 사유와 「조르조 데 키리코에게」 같은 초월세상의 숭고미를 드러낸 표현들도 주목하고 싶다. 시집 『카메라 옵스큐라』 시편들은 유태희 시인의 깊은 심혼이 문화의 깊은 광맥에 닿아 있음을 보여주는 시편들이 많다. 유태희 시인의 시업은 문화사의 금맥에 다가가는 sign mining이라는 생각. 필자는 독자들에게 시편마다 금과 은과 희귀 광물의 언어 비경(秘境)이 넘치는 이 시집의 청람(淸覽)을 자신 있게 권한다. - 김백겸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