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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검은 산/해초의 꿈/귀퉁이/그녀는 꽃/겨울나무들/당신의 금목서/금병산 바람재/겨울산/남도의 봄/신발/매화/부엽토 사랑/민들레 그녀/민들레들아/살가웠던 사람아/슬픈 회색/비암사 닫집 제2부 오늘만/새벽 5시/악의 꽃/봄날 기다리며/오월 광주/심장소리/새벽 라면/수제튀김 할 때마다 새를 생각해/가온마을 소나무/무등산 아래서 살았네/작업복/전 부치는 날/토담집 겨울/청춘 코끼리/비상하시라/갯벌 여인 제3부 푸른 노을/파리 목숨/파도/소란들/곰팡이/하루살이 화석/봉황천/풍경이란 동화를 품고/삼월/울타리/껌딱지/등대풀/도깨비 사랑/2020 수국 제4부 유목/효자손/길/박하사탕/푸른 무덤/요가하는 거북이/가을의 전설/내 아들 문재학/연꽃/노곤한 감나무/웅덩이/물, 그리고 거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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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서풍 타고 온 황사
태양을 달처럼 만들어 역병으로 덧칠한다 높이 돋아 비추는 달빛 담장과 대나무 잎 사이 서늘하게 만들며 금간 문 사이로 들어와 사람들 쉽게 잠들지 못하게 한다 달빛 한 조각 눈썹에 머물러 가느다란 빛으로 눈썹 도드라져 보이게 하면 그 빛으로 새싹 돋아나 기나긴 허기짐으로 날아간 백련사 동백 숲길, 나비 벌 찾아오지 않아도 스스로 위로하던 동백꽃에게 동박새 날아와 꽃가루 묻히는 남도의 봄 --- 「남도의 봄」 중에서 어질러 놓아야 공간이 있다는 걸 알고 갈망이 있어야 걸어갈 길 보인다며 가온마을에서 모질게 살아남은 소나무 가파른 절벽에서 굽은 어깨 휘어진 등으로 온 힘으로 제 몸 밀어 올렸던 그 소나무였구나 * 가온마을: 옛 지명은 충남 공주군 장기면 당암리 막은골. 지금의 세종시 다정동에 위치한 아파트단지 이름. --- 「가온마을 소나무」 중에서 새로 튼 둥지에서 오일 지나고서 무덤을 생각했고 다시 이십 일 지난 후에 삼십 년 살아야 할 ‘보금자리입니다’ 하고 신고했다 날마다 지지고 볶으며 밥 짓고 신 메뉴 개발하다 보니 온 세상 갈등이요 몸부림이다 오고 가는 사람 천 이백 명 중 확진자 한 명만 나와도 선별 검사하는 겨울나무들 콧구멍을 통해 폐로 들어간 긴 면봉의 움직임 그 찜찜한 느낌으로 수없이 메말랐다가 펴지길 빌다 보니 아침이다 ‘음성입니다’라는 문자 확인 후에도 긴장감 사라지지 않는 나날들 그 틈으로 눈 내리고 바닷가의 벗 찾아와 뜨락에 쌓인 눈 바라보며 십년 만에 눈 만나 좋고 이십 년 만에 눈송이 본다며 함박웃음 터트린 겨울나무다 심한 재채기와 콧물 훌쩍인 나는 지금도 세상 곳곳 겨울나무의 뼛조각들 찾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분명 새벽 오고 있음을 아는데 이도 저도 하지 않고 어찌 두 팔 벌려 새날을 맞이할 수 있으랴 --- 「겨울나무들」 중에서 시시때때로 곤두박질치며 터벅터벅 걸어왔던 길 우리 모두 알고 있으니 서럽거나 외로워 하지 마라 걷고 걷다가 이리저리 부딪치며 흠뻑 젖은 발바닥으로 긴 시간 견디어 내고 두리번거리다 군데군데 상처 입어 만신창이 되어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으니 그 비장함으로, 무거운 삶을 향해 굵은 땀방울들 소금밭으로 흘러와 꼭 살아야 한다며 소금꽃으로 피어나니 다시 신발 끈 꽉 메어 신으면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긴 울림으로 거침없이 걸어갈 너, 나의 신발들 --- 「신발」 중에서 한 치수 큼직한 작업복 입고 한 치수 큼직한 고무장화 신고 뼈라도 묻을 것처럼 비장하게 들어선 현장 크나큰 입 벌리고 보채는 가마솥 3개 간담마저 서늘했지 수제튀김 할 때마다 새들을 생각해 엄청난 공포로 날아오른 새들 천 번 만 번 날아도 천 번 만 번 그 공포 줄지 않았지 가마솥에 식용유 부을 땐 머무적거리지 말고 긴장 풀어 사고 나기 십상이야 기름에 데면 어쩌려고 스스로 독려하며 깊숙이 모자를 눌러썼지 보호안경에 수건으로 목을 감아도 0.1초 사이로 200도의 기름 튀어 눈가장자리, 코 잔등, 귓볼 목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머리에서 발끝까지 검붉은 새들을 생각해 다들 미친 듯이 일했지 시간은 서너 배 빠르게 돌아갔지 그보다 빠르게 늙는 우리들이야 뭐 얼굴, 손, 폐, 쓸개, 심장 날개까지 긴 울음으로 울었지 --- 「수제튀김 할 때마다 새를 생각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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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시인정신》으로 등단해 시집 『이카루스의 날개』, 『등에 핀 꽃』을 출간한 정미숙 시인이 세 번째 시집 『수제튀김 할 때마다 새를 생각해』를 냈다. 이번 시집에는 광주와 세종이라는 장소성을 바탕으로 역사의 아픔을 아우르는 시선과 신도시에 내재되어 있는 자연성을 포착한 시선이 교차되고 있다. 광주에서의 체험은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상상력과 깊이 연결되어 있고, 세종에서의 체험은 새롭고 낯선 공간을 만나면서 발생하는 신선한 서정으로 가득 차 있다.
또한 이번 시집에서 주목할 것은 노동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노동현장의 희로애락이 곡진하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정부부처 구내식당 조리사로 짐작되는 화자는 표제작 「수제튀김 할 때마다 새를 생각해」를 비롯해 “내일 여길 뜰 거야//파트타임 노동자에게//내일 같은 건 없어//이곳에는 오늘만 있어//난 내일 이곳을 뜰 거야”(「오늘만」 전문) 등의 시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의 애환과 “먹고사는 일의 소란함”을 구체적으로 담아내며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 외에도 30년 미싱사로 일한 한 여성노동자의 삶을 압축한 「그녀는 꽃」이라거나 정부부처 앞에서 피켓을 든 노동자들 곁으로 다가가며 “곁에 서는 것만으로도/쿵쿵 울리는 위로”를 그려낸 「심장소리」 등을 통해 시인의 깊은 노동자 연대의식을 알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세종이라는 신도시는 김대중 대통령의 뒤를 잇는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과 기획에 의해 태어난 만큼 민주화라는 대의를 상당한 정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화라는 대의만으로 미루어 보면 광주와 세종은 일정 정도 교집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정미숙 시인은 한때 살았고, 이사해 현재 살고 있는 두 장소를 넘나들며 역사의 흐름에 소외되고 그늘진 존재의 모습을 포착한다. 노동이 빛나는 세상, 작고 연약한 존재들이 지친 어깨를 펴고 힘차게 두 발을 내딛는 세상을 꿈꾸며 희망과 위무의 시선을 전한다. 해설을 쓴 정훈 평론가는 정미숙의 시 세계를 “푸른 생명의 날갯짓을 위한 노래”로 응축하며 “노동의 거친 숨결과 역사의 상흔에 괴로워하지만, 끝내 그러한 세계의 그늘을 벗어던지고 건강하고 힘찬 생명의 발걸음으로 앞을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어떤 면에서 보면 삶의 진실을 찾고, 삶의 진실 속에서 움트는 세계의 빛을 끄집어내려는 몸부림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척박하고 거친 세계의 표면을 응시하면서도 세계 뒷면에 감춰져 있는 존재의 빛을 노래하는 시들이 이번 시집 곳곳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시인의 말 많이도 흔들리며 온 길 금강 물빛에 실어 보낸다 수면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새의 날갯짓 새와 금강이 하나로 만나는 공중 그 공중의 힘으로 오늘도 노래하며 걷는다 2022년 봄 세종 금강가에서 정미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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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행사장에서 만난 귀여운 여인이었습니다.
시를 쓴다 했고 시집을 낸다 해서 시 원고를 좀 보자 했습니다. ‘문장은 사람이다’란 말이 있듯이 시 또한 귀엽고 둥글고 살가웠습니다. 삶에서 얻은 온갖 그늘과 양지를 글로 남겼군요. 인생은 누구에게나 부질없지만 글로 남기는 인생은 영원합니다. 영원한 인생을 꿈꾸는 시인을 축복하고 시인의 글을 축복합니다. 내일날, 더 넓은 세상에서 더욱 성장한 자신의 시와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나태주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