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부 고독이 고백이 되는
봄밤/ 너머/ 터치터치/ 십자 드라이버가 필요한 오후/ 바니타스/ 새는 저녁을 위해 깃털을 손질한다/ 다초점 안경/ 내향적인 새벽/ 잃어버린/ 오래된 시/ 봄의 장례식/ 기일/ 편두통 2부 유턴이 없는 길 잠꼬대/ 재채기/ 라벤더/ 고장 난 그림/ ㅁ과 ㄴ/ 시그널/ 침대 위의 두부/ 사과를 놓치다/ 아파트/ 무릎/ 한둔 휴게소/ 31일/ 껌딱지/ 환생 3부 발이 시려운 밤 무밍/ 환기/ 수평선을 잡아당기다/ 연속극처럼/ 슈톨렌/ 1박 2일/ 저수지/ 삼켜지지 않는 알약/ 13월의 고독/ 딸꾹질/ 산딸기/ 안녕, 나의 그림책/ 인후염 4부 봄은 짧고 통증은 깁니다 책방골목/ 비행운/ 사랑을 감정해 드립니다/ 한밤의 매실 쪼개기/ 열대야/ 오필리아/ 양밥/ 폭죽/ 3월이라 쓰고 애인이라 읽는다/ 밤의 정석/ 폭우/ 또는 0/ 휴게실 |
|
나는 떠다니는 동굴입니다
이곳을 통과하는 사람들은 말 못할 사연이 많습니다 위스키처럼 취하거나 마시멜로처럼 한 입에 녹아버리는 비밀스런 감정이 미끈거립니다 참을 수 없는 문장은 종유석처럼 자라나고 거짓이 싹을 틔워 석순이 되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어둠이 빛으로 쏟아지면 발작하는 전설 걸음걸이를 조심하세요, 발밑이 미끄러워요 ---「재채기」중에서 우선 헐거워진 안구부터 조여야겠어 의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어 네모난 메모는 너무 반듯했어 느슨해진 우리 사이에 필요한 건 떨림이잖아 사랑은 사탕 같은 것 길이와 깊이 중 어느 쪽이 좋을까 잠들지 않고 꿈을 꿀 순 없잖아 달리자는 남자와 달라지는 남자 수순은 잘못 되었지만 수준은 비슷해 일용직 알바생의 심정을 너는 몰라 너는 내가 되는 경험을 해봐야 해 우리 모두 갑질 아래 새로 태어나곤 하지 사진을 정리하다가 시간을 정리해버렸어 미움은 마음에서 출발해 머리는 항상 미리를 준비했어 망설임은 사치야 네가 생일선물로 준 귀걸이처럼. 취업은 걱정 중 제일 으뜸이지 숲이 술을 대신할 순 없잖아 기능도 못 하면서 가능을 얘기했어 조직은 때로 조작도 해 유인하려면 유연해야 해 정말이지 절망스러웠어 그러니 우리 헤어지는 게 좋겠어 밀려서 여기까지 왔는지 빌려서 여기까지 왔는지 진절머리와 전갈머리는 무슨 관계인지 거울 속에 겨울이 있잖아 말 많은 세상 발밑을 조심해 그럼, 이제부터 그림 공부나 해볼까 ---「십자 드라이버가 필요한 오후」중에서 방이 떠다녀요 아이스크림을 뒤집어쓴 아이의 코는 커졌다 작아졌다 해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밤하늘 무수한 별풍선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세상을 손에 넣었죠 손 안에서 흘러내리는 구름 달콤한 것은 연기 같아요 손끝으로 불러낸 당신 사랑이 너무 쉽잖아요 거품 목욕하는 남자는 입 큰 고양이를 원해요 고양이 발톱에 숨은 악플을 보지 못했어요 풀어놓은 물감 사이로 한 마리 나비가 헤엄쳐요 지구 반대편 소식을 물고 오네요 창 너머 쏟아지는 소문은 가물거리는 꿈이에요 잠시 눈과 귀를 막고 무인도로 떠나요 튜브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요 조용한 절망은 바람 같아요 먼저 내민 위로는 삭제되지 않아요 자, 이제 손가락을 준비하세요 ---「터치터치」중에서 고개를 돌리니 사과나무가 보였다 축 늘어진 가지 당신은 손을 뻗어 가지 하나를 나에게로 당겨주었다 나는 손을 뻗어 사과를 잡으려다 놓치고 말았다 굴러가는 사과를 천천히 지켜보았다 사과를 놓친 심장이 사과를 따라 굴러갔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웅성거리는 소리만 났다 종업원의 얼굴이 내 얼굴을 덮칠 듯 다가왔다가 멀어졌다 우리는 구석진 자리로 옮겨졌다 앉은 자리 옆에 가로로 난 긴 창이 하나 있었다 누군가의 마지막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데 우리는 하얀 식탁에 앉아 있다 천장도 벽도 바닥도 하얀 식당은 빛이 났다 당신과 마주앉은 나는 내가 아니고 내가 놓친 사과는 사과가 아니었다 어제였다 당신이었다 기차역에서 잃어버린 나였다 놓쳐버린 우리의 심장이었다 내가 없는 저 식당 안을 계속 들여다봐도 되는 걸까 나는 식당 바깥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사과를 놓치다」중에서 가까워진 빛, 창을 닫는다 새는 비의 보폭으로 하늘을 박음질하며 날아간다 두고 온 불안 때문에 공기는 머뭇거리고 그래, 질서는 잠시 놓는 거야 만져지는 설레임 구름이 해석되기 시작한다 게으른 새가 되어 한 뼘의 거리를 아직도 날고 있다 새벽에 출발하여 어젯밤에 도착한다 손바닥만 한 하늘은 더 없이 슬픈 새를 이해하고 지구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계절을 건너 뛴 바람이 따라온다 ---「환기」중에서 |
|
■ 시인의 말
하얀 문이 내뱉는 말들을 받아 적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나는 나를 다 모른다 2026년 여름 정희안 |
|
언어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타진한다는 것. 마치 납작하고 둥근 돌을 골라 수면 위에 던지는 물수제비처럼 자세를 낮추고 무릎을 굽히고 수평을 이룬다는 것. 정희안의 첫 시집 『터치터치』는 그렇게 알 수 없는 자신을 언어로 이끈다. 시인의 말처럼 나는 나를 다 모르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으로 출현한다. 행과 행 사이에 있는 침묵으로 존재들 사이에 있는 틈을 잇는다. “새가 하나 둘 나무 위에 피어나”고, “방이 떠다니고”, “손에서 구름이 흘러내리고”, “나비 한 마리가 소식을 물고 온다”. 그렇게 자신만의 세계를 환상적으로 혹은 몽환적으로 재편해 간다. 그래서 “욕실의 타일이 밤하늘에 떠다니고”, “도미노처럼 어둠이 무너진다”. 다른 것들의 배치, 낯선 것들의 접합에서 발생하는 충돌을 견뎌낸다. 백지 위에서 아이처럼 구름처럼 논리적 흐름을 토막 내고 나열한다. “지붕 위로 던진 유치는 별이 되고”, “새는 비의 보폭으로 하늘을 박음질하며 날아간다”. “복숭아 뼈에서 파도 소리가 밀려온다”. - 신정민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