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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 한잔 받으시오당신의 말이 떨어질 때마다 나는 웃었다그는 아들을 내려놓지 않았다월식수철리 산 174-1번지모국어그냥 상시간을 공처럼 굴리며가창(歌唱)오리이름 없는 조직육독(肉讀)물 호스가 달빛 속으로우리는 각자도생의 사명을 띠고이백원니들의 시간제2부 · 내 곁에 이 모든 이들 곁에연푸른 혀들훔쳐보다공깃돌은 언제 다시 날까?꽃으로 건너가는 동안다녀오겠습니다모든 이들 곁에연루감긴 눈꺼풀 곁에서파울 첼란에게바다에 달이 뜨고 쪽파 같은 오늘이 운다두통의 환각한국사시간 여행바위뛰기펭귄제3부 · 예전의 심장을 돌려주세요꽃잎 세탁소달이 내 창문을 서성이고 있다살아 있는 집삽목먼 산드림타임우두커니시간 여행시간 여행내 이름은 아르카비명 곁에서 비명도 없이아무리 나눠도삼십년 후, 소년 소녀에게네모난 알제4부 · 당신이 촛불입니다광덕 부르스시간 여행갓 눈 뜬 솔잎 위에잃어버린 문법상복(喪服)잠시 멈춰 서서양미숙의 철화분청사기농담공양(供養)어마어마한 도시락또다른 눈물희망세상당신이 촛불입니다제비원 미륵불해설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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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간힘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곁,그 모든 곳에 김해자의 시가 있다일찍이 한 시인이 “가난한 영혼이 고통을 받는 모든 곳에 김해자의 시가 있다”(문동만, 『축제』 추천사)라고 말했듯이 김해자의 시는 쓸쓸하고 외롭고 가녀린 영혼들을 향한 끝없는 사랑의 노래다. 그의 시를 읽다보면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정의롭고 떳떳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얼굴”(해설)이 저절로 떠오르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발 디딜 땅 한뼘 없”고 “허공마저 비싸서/숨 쉴 만큼의 공기도 허락되지 않”(「감긴 눈꺼풀 곁에서」)는 자본의 땅을 떠나 “마늘에서 막 돋아나는 뿌리처럼/늘 희푸른 말”(「당신의 말이 떨어질 때마다 나는 웃었다」)이 살아 숨 쉬는 마을로 내려온 지 벌써 십오년째, 시인은 “희망 꾹꾹 눌러 담은 고봉밥 같은 마음”(「어마어마한 도시락」)을 다독이며 “살자 살아보자”(「양미숙의 철화분청사기」) 다짐한다. 김해자의 시는 현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자리에서 탄생한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개인과 시대의 기억을 더듬으며 시간여행을 떠난다(「시간 여행」 연작). 이 연작은 역사의 아픔을 격정적인 목소리로 토해내기보다는 차지고 구성진 사투리를 통해 그날의 마음들을 해학적으로 풀어놓는다. 물론 가볍지만은 않다. 전쟁 당시 양민들이 무참하게 학살된 장소에서 “탄피 박힌 두개골”과 “불에 탄 뼈”(「수철리 산 174-1번지」)가 역사의 진실을 증언하는 침묵의 소리를 듣기도 하고, “비명을 깨물다 돌처럼 굳어간 아무개”들의 “관짝 같은 백비(白碑)”(「비명 곁에서 비명도 없이」)를 돌아보며 한국 현대사의 그늘진 이면과 암흑의 시대를 살아온 민중의 삶을 간곡한 언어로 되살려낸다. 시인의 관심은 후쿠시마 원전수 방류(「내 이름은 아르카」)나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달이 내 창문을 서성이고 있다」)으로 이어지는바 “십년 삼십년 육십년 백년 후에 올”(「삼십년 후, 소년 소녀에게」) 세대에게 우리가 어떤 세상을 물려줘야 할지를 독자로 하여금 곰곰 생각해보게 한다. 세상에 가득한 신음과 고통,아직 부를 노래가 이렇게나 많이 남은 이유시인은 1998년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노동자 시의 대모’(김정환)로 불리며 세상의 부조리에 항거하는 리얼리즘 시의 영토를 굳건히 지켜왔다. “모든 생명이 평등하게 공생하는 자리”(해설)에서 만인이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민중의 삶을 시로 써온 지 사반세기, 그러나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한세기가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살과 뼈 타는 냄새”(「두통의 환각」)가 진동하고, “늙어보지도 못한 어린 노동자의 머리통이 스크린도어에 끼이고” “컨베이어벨트 속으로 반죽기 안으로 빨려 들어가”(「두통의 환각」)는 비참한 현실 앞에서 시인은 “신음과 비명이 터져 나오는 시절에 시라니?”(시인의 말) 자문한다. 그럼에도 쓴다. “아직 부를 노래가 남아”(「농담」) 있기에, “죽어가는 나무에게 물을 주는” 간절한 마음으로 “작은 봄맞이꽃 같은 희망”(「바다에 달이 뜨고 쪽파 같은 오늘이 운다」)의 불빛 같은 시를 써나간다. “내가 아닌 것이 떨어져 나가고 바로 너인 것이 내가 될 때까지”(시인의 말). 김해자의 시를 읽는다는 것이 희망을 읽는다는 것과 똑같은 말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일 터다. 시인의 말 시는 아무도 말을 가로채지 않는 대화 같다. 글자에 수많은 얼굴이 비치는 종이거울 같기도 하다. 거울 뒤란에서 잠자고 있던 이름들이 불려 나올 때마다 다시 태어나는 종이거울 안에서, 나는 나무이자 벌목꾼이고 사슴이자 사냥꾼이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공습이 이어지고, 세계가 극단적인 비대칭을 향해 폭주하고 있는 지금, 나는 맞아 죽은 자이자 때려눕힌 자이고 독재자이자 야만적인 인류사다.절망해야 할 이유가 아흔이라면 희망할 근거는 서너조각에 불과했다. 그래서 썼는지도 모른다. 더듬거리며. 신음과 비명이 터져 나오는 시절에 시라니? 그래도 썼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내가 아닌 것이 떨어져 나가고 바로 너인 것이 내가 될 때까지.2023년 늦가을 천안 광덕에서김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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