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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라는 문자로 기록된 옛 문헌을 연구하는 길 위에서, 나의 기분 역시 한자 바깥이 아닌 한자 안에서 맺히고 흩어진다. 이는 내가 공부하는 과거의 세계가 지금의 나와 괴리되어 있지 않고 흡착해 있음을 열렬히 느끼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책은 모양도, 역사도 각기 다른 여러 한자의 기분에 기대어 풀어지고 매듭지은 기분 기록장이다. 내 기분을 맡길 한자를 골라, 한자의 기분을 빌려 나의 기분을 말해보는 일의 반가움과 기쁨을 나누고 싶었다.
--- p.11 한자 자전에서는 녹색(綠色)을 이렇게 정의한다. 완전히 다른 두 색이 혼합되고 번지다가 마침내 도착한 녹색. 나뭇잎의 표정이 계절마다 다른 색으로 물드는 건 그 안에 여러 겹의 색을 품고 있어서일까. 초록을 품은 채 주황으로 지내는, 주황을 숨긴 채 노랑으로 웃는, 나뭇잎들의 안부를 묻고 싶다. 초록 표정을 품은 채 주황 표정으로 생활을 견디는 건 나에겐 상처였다. 주황 표정을 숨긴 채 노랑으로 웃고 나면 나는 슬퍼졌다. --- p.37 팔을 벌리고 선 사람의 겨드랑이 아래 옆구리 뒤로 달이 떠 있다. 이것은 밤 ‘夜’ 자가 품은 장면이다. 먼 옛날 사람들은 왜 캄캄한 밤의 어둠을 이런 형상으로 표현했을까. ‘夜’ 자는 양 겨드랑이 아래 점을 찍어둔 모습인 ‘역亦’ 자와 캄캄함을 나타내는 ‘석夕’ 자가 합해진 글자다. 이때 ‘夕’은 반달을 본뜬 것이다. 달빛을 품고 선 사람은 그 밤에 혼자가 아니었을 것만 같다. (…) 나란히 걷는 밤 산책길에 별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나의 투정을 들은 사람이 손을 힘껏 뻗어 가로등 불빛을 가려준다면, 그이는 나를 몹시 아끼는 것일 테다. --- p.46 연해지고 나면 날카롭고 분명한 것들에 의해 다치기 십상인 세상에서, 우리는 자꾸 나쁜 마음을 먹고 못된 말을 내뱉는다. 연한 말들, ‘연어(軟語)’만으로 채워진 세상일 순 없을까. ‘연어’는 도란도란 나누는 부드럽고 완순한 말을 이르는 단어로 옛 시에 자주 등장하는 시어이다. 이슥한 밤하늘에 뜬 환한 달을 사람들과 함께 올려다보다가 저마다 달이 어떻게 아름다운지 나직하게 연어를 내뱉는, 한시(漢詩) 속 한 장면 같은 세상이 어딘가에 있었으면 좋겠다. --- pp.52-53 몹시 밝은 빛을 비출 땐 형체도, 티끌도, 눈에서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해[日]와 달[月]이 함께 뜬 ‘明’과 같은 글자가 조명하고 싶었던 건 자세히 보려는 대상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지우고 싶거나 흐리게 보고 싶은 무언가를 비추기 위함이었을 수도 있다. 태양이 비추는 쪽으로 시선을 향할 때 빛이 시야를 가득 채워 복잡한 풍경은 한순간 백지가 되듯, 보름달이 뜬 하늘을 고요히 오래 응시하다 보면 달 바깥은 전부 검정으로 파묻히듯. 명백(明白)하게 사랑하거나 혹은 미움이 깊이 엉킨 피사체는 낱낱이 들추어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다. --- p.65 단서(端緖)를 이룬 ‘緖’라는 글자가 새삼스럽다. ‘緖’는 실마리이다. 실[?]로 직조된 면의 가장 첫머리 실밥 하나를 당기면 얼기설기 얽혀온 전체의 면이 금세 풀리고 마는데, 그 결정적 실밥이 곧 실마리이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복잡한 심사(心事)의 해결책도 결국엔 꼬여버린 일의 가장 앞에 놓인 마음에 있을 것이다. 그곳으로 찾아가 초심을 잡아당기면 언제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실마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으니 돌아갈 용기만 있으면 된다. --- p.85 ‘向’이라는 글자 가운데의 ‘口’ 모양은 바람이 불어오는 북쪽을 향해 난 창문을 형상화한 것이다. 바람이 불어올 방향을 정확하게 가늠하고 실패 없이 그쪽으로 창문을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디에서 불어올지 가늠이 어려운 바람들의 소용돌이 안에 놓인 기분이다. 자초한 불안정이지만. 지금껏 살아본 경험상 이런 기분의 너울을 빠져나가면 삶의 국면이 크게 한차례 전환된다. --- p.93 내가 가진 많은 걸 잊어버리고 싶다. 잊는 것은 내가 잘못하는 일 중에 하나다. 나는 망각(忘却)에 자신이 없다. 잊는 게 두려워서 전부 기억하려고 애쓰며 살아왔다. 언젠가는 쓸모 있을까 싶어 낱낱이 헤아리며 끌어안고 사는 조각들, 나를 반성하고 미워하기 위해 되새김질하는 조각들. 작은 조각도 너무 많이 모이면 무겁고 따갑다. (…) 망각을 이룬 ‘忘’이라는 글자가 시키는 대로, 이제부터는 마음[心]에서 지난 기억들이 쉽게 미끄러져 달아나버리도록[亡] 내버려두는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다. --- p.104 사나운 기세의 더위는 ‘폭(暴)’이란 글자가 수식해 폭염(暴炎)이라 한다. 매서워 보이는 이 글자는 원래 햇볕에 말린다는 뜻으로, ‘햇볕[日]으로 나가[出] 두 손을 모아 담은 쌀[米]을 말리다’라는 순한 이야기에서 비롯해 만들어졌다. 시간이 흐르며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처음의 모양새와 마음새를 잊은 채 나쁘게 변해버리는 것들이 세상에는 아주 많다. 마치 바다에 풍덩 빠졌다가 나온 여름날, 젖은 몸을 말리려고 잠깐 햇살 아래 누웠는데 까무룩 잠이 들어 살이 벌겋게 타버리는 것처럼. --- p.152 학창 시절부터 지금껏 종이에 많다는 의미를 적어야 할 땐 ‘多’라고 쓰곤 한다. ‘붐비는 사람들’ 대신 ‘사람 多’ ‘빼곡한 나무들’ 대신 ‘나무 多’와 같이. ‘夕’을 위아래로 두 번 적으면서, 여러 번의 저녁 시간이 끝도 없이 자꾸 되돌아오듯이 연이어지는 삶의 지난한 시간이 담긴 글자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반면 명망 있는 옛 학자들은 ‘夕’이 고깃덩어리의 형상이라고 해석했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켜켜이 쌓아 올려둔 고깃덩어리들처럼 무언가 중첩되어 풍성한 상태를 표현하는 글자라고 본 것이다. --- p.175 나의 사랑은 나의 마음[心] 속에 존재하는 것. 마찬가지로 너의 사랑은 너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고. 그러니 누군가가 나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알 방법은 마음을 꺼내어 드러낸 그 사람의 표현을 통해서뿐이다. 아무런 인기척 없는 사랑을 나는 알 도리가 없다. (…) 그 사람을 생각하며 샀지만 망설이다가 끝내 건네지 못하고 한여름 태양 아래 다 녹아내려 버린 아이스크림처럼. 드러내놓지 않으면 영원히 번역되지 못한 채로 마음 안에서 희석되고 말, 어떤 사랑. --- p.194 옛날 사람들은 세상이 어두워지고 나면 식물에서 추출한 기름을 등잔에 담아 불을 붙였다. 글을 밝힐 기름 살 형편이 안 되는 가난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늦도록 학문에 몰두하기 위해 밤빛이 필요했다. 궁리 끝에 반딧불을 모았고, 모은 반딧불을 주머니에 넣어 글을 비추며 읽었다. (…) 공부하는 책상을‘형안(螢案)’이라 부르고, 공부하는 방의 창문을 ‘형창(螢窓)’이라 일컫게 된 것은 모두 이 차윤이라는 사람의 책을 밝혔던 반딧불에서 비롯했다. --- p.209 ‘箴’ 자의 본래 뜻은 바늘이다. 흐트러져 갈피 잃은 나를 따끔하게 찔러 제자리로 돌아오도록 해주는 바늘 같은 글이 곧 ‘箴’인 것이다. 바늘처럼 가늘고 미미해 보이더라도, 나의 본성을 잃지 않게 단속하는 센 힘을 지닌 글이다. 스스로 지어둔 엄격한 ‘箴’은, 길고 짧은 방황 끝에도 결국에는 다시 나를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자리로 되돌려놓아주는 역할을 한다. 나의 ‘箴’ 제목은 평정잠(平靜箴)이다. 쉽게 초조해지는 마음을 단속해 평정심을 불러주는 나만의 잠언. --- pp.224-225 우리나라에선 아홉수에 결혼을 피하지만 중국의 많은 연인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9월 9일에 결혼식을 올리는 이유다. 《주역》의 풀이에 따르면 ‘九’는 양(陽)의 기운이 극에 달한 숫자이다. 그래서 ‘九’가 두 번 겹치는 9월 9일은 ‘중양절(重陽節)’로 삼고 향연을 여는 풍습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침울한 아홉수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관념이다. 내 생에 남은 아홉수의 나이가 돌아올 때마다 보란 듯이 오히려 신나는 일을 저지르며 살아야지. --- pp.240-241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처럼 쓴 일을 견뎌낸 끝에는 반드시 나에게 달고 맛있는 걸 먹 인다. 맛을 느끼는 입의 감각은 잠깐이나마 빠르게 생의 의지를 돋우니까. 애초에 달다는 뜻의 ‘甘’ 자는 입[口] 속에 맛있는 음식[一]을 머금고 있는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날이 밝고 좋아하는 카페에 찾아가 앉아 달콤한 레몬 케이크를 한입 베어 물면 마음은 금세 또 밝은 자리를 찾아가리라고, 풀죽은 밤의 기분을 다독인다. --- p.2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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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하게 두려워 외면하던 대상의 뿌리를
자세히 보고 나면 덜 두려울 수 있다고 믿는다” 한자의 자원(字源)을 따라 빚어낸 한 글자 마음사전 작가는 열두 가지 기분에 따라 한 글자 한자들을 사전 형식으로 섬세하게 직조하며 마음의 근원을 알려준다. 이를테면 1부 ‘살아 있다는 기분’에서는 ‘嵌’(산골짜기 감) 자를 길어 올린다. 해가 막 떨어지기 시작한 여름의 초저녁 두 사람이 동네 뒷산을 산책하러 갔다가 생각보다 깊고 캄캄한 산길을 마주한다. 길 양쪽 끝에는 헝클어진 나무와 나뭇가지들이 빼곡했는데, 그 순간 둘뿐이었던 산골짜기[嵌]는 더 공활하게 느껴졌다. 이 커다랗고 어두운 동굴 속에 둘만이 빠져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작가는 일상과 다른 장소에서 우리도 모르게 계속 존재하던 세계를 발견한 기분이 드는 순간, 불쑥 삶은 오래 살아볼 만하다는 생각이 샘솟았다고 말한다. 2부 ‘색깔의 기분’에서는 ‘灰’(회색 회) 자를 두고 활활 타오르던 불이 꺼지고 난 뒤의 잿빛 불을 떠올린다. 작가는 인간이란 무언가를 해낸 뒤 느끼는 성취감이나 안도감보다 아슬아슬한 과정의 시간 동안 느끼는 불확실한 희망에 기대어 사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불사르고 난 뒤 재로 남은 시간을 만지고 되새김질하며 또다시 시도와 굴곡을 거듭해 자신이 가장 편안해지는 곳을 찾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7부 ‘계절의 기분’에서는 ‘靄’(안개 애) 자를 꺼내어 보여주는데, 봄으로 한참 걸어왔다고 생각했던 어느 이른 아침 들판에 서리가 내려앉은 모습을 보고 작가는 생각에 빠진다. 열띤 봄기운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던 시간을 빠져나와 모든 게 천천히 식어버린 기분. 기척 없이 피어올랐다가 금세 또 흩어지는 이 봄날의 안개가 끼는 새로운 상황에 놓인 그때, 작가는 내일의 날씨를 예견하는 감각이 자신을 구하고, 살게 했음을 위안으로 삼는다. 10부 ‘읽는 기분’에서는 ‘餘’(남을 여) 자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옛글에선 겨울·밤·장마의 시간을 아울러 ‘삼여(三餘)’라고 썼다는데, 이 세 종류의 시간에는 여유롭게 독서에만 몰두하기 좋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한다. 눈 내리는 겨울, 세상이 잠시 멈춘 밤, 비가 쏟아지는 여름은 모두 소란한 세상의 반대편에 마련된 비밀기지와 같고, 불완전한 시공간의 방에서 잠시 불을 꺼두고 웅크리며 숨어 있다 보면 완전히 안온하다는 기분이 찾아와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箴’ 자의 본래 뜻은 바늘이다. 흐트러져 갈피 잃은 나를 따끔하게 찔러 제자리로 돌아오도록 해주는 바늘 같은 글이 곧 ‘箴’인 것이다. 스스로 지어둔 엄격한 ‘箴’은, 길고 짧은 방황 끝에도 결국에는 다시 나를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자리로 되돌려 놓아주는 역할을 한다. 나의 ‘箴’ 제목은 평정잠(平靜箴)이다. 쉽게 초조해지는 마음을 단속해 평정심을 불러주는 나만의 잠언.”(224~225쪽) “애초에 달다는 뜻의 ‘甘’ 자는 입[口] 속에 맛있는 음식[一]을 머금고 있는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날이 밝고 좋아하는 카페에 찾아가 앉아 달콤한 레몬 케이크를 한입 베어 물면 마음은 금세 또 밝은 자리를 찾아가리라고, 풀죽은 밤의 기분을 다독인다.”(249쪽) “기분이 엉망인 순간에 숨어 들어가 웅크리고 울 수 있는 곳이 이 작은, 하나의 한자(漢字) 안이었으면 좋겠다” 마음에 획을 긋는 한문학자의 언어 세계 20세기 초, 미국의 언어학자 에드워드 사피어와 벤저민 리 워프는 인간이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고방식의 체계가 달라진다고 이야기했다. 언어가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를 넘어 사용자의 세계관과 인지적·정서적 영역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이라는 문자는 고유의 언어 체계이지만, 많은 단어가 한자어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아시아의 문자 체계와 한자문화권의 철학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작가가 마르고 찢겨 얼룩진 글자들의 오랜 흔적을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자의 세계는 방대하고 유서 깊다. 저마다의 한자들은 수천 년 세월을 거듭하는 동안 사람들이 울고 웃으며 생활한 긴 서사를 그 안에 응집하고 있다. 그래서 설명할 수 없는 아득한 기분이 들 때 한자 자전(字典)을 펼치면 반드시 어떤 글자 하나는 나를 언어화해줄 수 있다. (…) 한자문화권에 뿌리내린 우리는 한자를 통해 자신의 오래된 성정과 조우하며 자신이 존재하는 양상을 충분히 이해받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10~11쪽) 온기 어린 옛글에 기대어 지나온 날들을 끈질기게 기억하고 과거와 현재를 정갈하게 연결 짓는 일은 작가가 현실에 발붙인 채 살아내기 위한 시도였으며, 한자에 기대어 마음을 나누며 형성해온 하나의 세계였다. 스스로의 상태를 인지하고 단어로 규정할 때 비로소 자신의 심리를 정확하게 깨닫게 되는 것처럼, 작가는 “기분을 맡길 한자를 고르고 그 뿌리를 찾아 한자의 기분을 빌려 자신의 기분을 말해보는 일의 반가움과 기쁨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평소에 자신이 즐겨 썼던 단어들이 어떤 의미를 품었는지 그 근원을 쫓아 한자의 표정을 한 획 한 획 읽어 나가다 보면 막연하게 두려워 외면하던 대상의 뿌리를 마주하게 되고 자신도 몰랐던 마음이 명료해질 것이다. 일상에서 점점 멀어지는 한자를 붙잡아 기분을 말해보는 일만으로도 삶이 얼마나 풍성해질 수 있는지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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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늘 말이 아니라 글로 남는다. 최다정 작가가 탐독하는 고서들처럼 인간의 믿음은 경전으로 남았고 인간의 선과 악은 법의 조문으로 남으며 인간의 사랑과 미움은 문학으로 남았다. 가끔은 남은 자리 자리마다 폐허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다보는 일보다는 돌아보는 일이 잦은 탓이다. 또 어느 순간에는 세상 읽을 것이 한없이 거대하고 무겁게만 다가오기도 한다. 그리하여 책장을 덮고 내 캄캄한 눈을 돌리는 날도 있다. 하지만 읽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래된 나의 마음이 새로 쏟아져내리는 탓이다. 여전히 낯선 너의 눈빛이 내게 막 당도한 까닭이다. 읽는 데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그간 무엇을 얼마나 읽어왔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과거에만 머무르는 문자는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읽기 위해서는 걸음을 처음 배우는 아이처럼 한 자 한 자 디뎌볼 수밖에. 바람을 담아 한 획 한 획 그어보기도 하며. 오늘은 《한자의 기분》을 꼭 쥔다. 지식은 권력이 아니라 힘이 되어야 한다는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기분을 온전히 내가 느끼며. 다시 먼 길을 시작한다. -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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