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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머리에
방랑 노래 이혼여행 에어컨 라미 쫑 바라나시에서 온 편지 김용사 죽음 삼촌 참새 거짓말 통표 보증인 시간을 병 속에 벚꽃 합창 동경 타지마 씨의 세 딸 읽지 않은 성경 마쓰자키 선생 고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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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바다가 불러낸 한 사진가의 내면풍경
생의 고비 혹은 전환점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든다. 감쪽같이 매설돼 있는 지뢰를 밟듯 어느날 불현듯 나를 호명하는 아득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잠시 정신을 놓았다 눈을 떠보면 신새벽 후미진 시외버스 터미널이거나 구름이 만져질 듯한 산꼭대기, 혹은 옛 동네 등 낯선 시간과 공간 속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속울음처럼 깊이 감춰두었던 자신과 비로소 독대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마흔에 접어들면서 이 순간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가 찾아간 곳은 갯벌에서 풍기는 삶의 비린내가 생생한 변산반도의 해지는 겨울바다. 크고 작은 죽음을 통해 인생을 알아간 소년, 한때 히피를 꿈꾸었고, 자신만의 철학이 담긴 사진을 찍기 위해 혹독한 수련을 거친 청년, ‘사람 사는 기 어데 간들 안 똑 같나’라는 어머니의 한마디를 바랑 속에 넣고 방랑길에 올랐던 그는 해지는 변산바다 앞에서 비로소 절망과 좌절, 방랑 속에서 길어올린 인생의 진리와 소중한 인연들을 풀어내고 있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났다. 바다로 뜨는 해만 보았지 지는 해는 본 적이 없다. 내게 바다는 일상이자 희망이었다. 언젠가 변산에 간 적이 있다. 변산의 지는 해를 바라보고 전율했다. 그때 나는 마흔을 넘기고 있었다. 나는 그후 내가 매혹된 변산바다를 자주 찾았다. 변산바다에서 나의 방랑을 멈출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 '글머리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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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에 실린 19편의 글들을 각각 <방랑> <죽음> <동경>에 나누어 담았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체에 실린 그의 짧은 글들은 마치 한 편의 성장소설처럼 드라마틱하고도 밀도 있게 전개되고 있다.
<방랑>에 묶인 글들은 주로 젊은 시절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얻은 소중한 인생의 경험들이 담겨 있다. 동남아 일대와 인도, 유럽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정체성과 인생을 고민하는 청년에게서 느껴지는 진지함과 풋풋함은 잔잔한 웃음을 머금게 한다. <죽음>에는 유년시절을 추억하는 저자의 애틋한 심정이 녹아들어가 있다. 그와 함께 유달리 죽음이 많이 등장한다. 삼촌과 참새, 그리고 아끼는 후배의 죽음을 써내려간 글들에서 인생을 좀 더 깊이 숙고해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동경(東京)>에는 어려웠던 일본 유학시절의 이야기와 함께 그의 스승인 마쓰자키 선생의 이야기가 인상깊게 펼쳐진다. “사진가란 사상가다. 카메라란 네 사상을 옮기는 연필 같은 도구다. 철학 없이 사진을 찍는 사람은 그저 찍사에 불과하다”는 스승의 말을 가슴에 담아둔 그의 사진에 대한 열정은 무엇보다 뜨겁다. 사진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함께 사진가의 길을 선택한 자의 지난함과 행복을 동시에 엿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