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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 학문의 경계를 허물고 참된 지식인으로
오세정(서울대학교 자연대학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1. 담장 높은 인문학자의 연구실: 선을 넘어라, 인문학자여! 이필렬(한국방송통신대학교 과학사 교수, 에너지대안센터 대표) 2. 소칼의 목마와 나선 문화 익히기: 과학전쟁의 역사와 미래 이상욱(한양대학교 철학과 교수) | 2-1 | 물리학자 앨런 소칼의 유쾌한 속임수_마틴 가드너 3. 과학과 인문학은 어떻게 만나는가 이인식(과학문화연구소 소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 3-1 | 과학의 본성에 대한 인문사회학적 이해_최경희(이화여자대학교 과학교육과 교수) 4. 생명공학의 부화실에 놓여 있는 인문학: 생명복제 논쟁을 중심으로 황상익(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한국생명윤리학회 회장) | 4-1 | 준비되었는가, 그렇지 못한가?_그레첸 보겔 5. 디지털 복제 시대의 지식 백욱인(서울산업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6. 과학기술은 세계관과 윤리관념을 지배하는가 박병상(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대표) 7. 과학기술문명의 좌표를 찾아서 송성수(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
이인식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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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생명을 파괴해도 되는가?_이필렬
2004년 봄 황우석 교수가 인간배아를 복제했다는 소식이 온 ‘대한민국’을 뒤흔들어 놓았을 때 한국의 인문학자들이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만남’이라는 토론회를 열었다. 주제 발표자로 황우석 교수가 초대되었고, 두 사람의 초청토론자와 ‘인문사회연구회’ 구성원들이 다수 지정토론자로 참여하였다. 그야말로 한국의 ‘최고과학자’와 대표적인 인문학자들의 ‘만남’이었다. 시점도 주제도 그러한 만남을 위해서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세계최초의 인간배아복제에 온 사회가 정신이 팔려있던 때, 인문학자들의 ‘인문적인’ 한마디 화두가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기회였다. 황교수는 자신의 연구에 대해 감성에 호소하는 특유의 설득력 있는 어조로 청중을 ‘매료’했다. 그의 발표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슈퍼맨, 척추마비 가수, 서울대 병원 휠체어 어린이의 간절한 호소도 소개되었다. 그는 내로라하는 인문학자들 앞에서 한국의 ‘최고과학자’로서 최선을 다한 셈이었다. 다음에 인문학자들의 토론이 시작되었다. 인간배아 복제에 대한 인문적 시각의 날카로운 비판이 감성에 호소하는 자연과학을 단번에 찔러 들어가야 균형이 잡힐 터였다. 그러나 초청토론자를 제외한 다섯 명 인문학자의 토론은 추를 인문학 쪽으로 되돌려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인간배아 복제가 지닌 엄청난 인문학 요소들을 한두 개 건드리다 마는 꼴이었으니 판정은 자명한 것이었다. 어떤 인문학자는 황교수에게 감격에 겨운 찬사를 바치며 인문학자들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 p.1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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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색 장미는 인류복지를 의미하는가_박병상
2002년 5월 이스라엘 과학자들은 깃털 없는 닭을 개발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이 온다!”던 이 땅의 민주화 투사를 위해 개발했을 리 만무하고, 사위 오면 닭 잡아주는 대한민국의 장모들을 위해 수출용으로 개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깃털이 없는 만큼 성장 속도가 빠르고 도축처리가 쉬운 장점은 닭을 포드주의로 튀겨내는 자본을 위한 배려일 뿐이다. 파란색 장미는 인류복지인가. 사전적 의미로 ‘파란장미’는 ‘불가능한 일’을 뜻한다지만 생명 공학자에게 대단한 돈벌이로 도전할 대상에 불과하다. 이미 수년 전 파란색 카네이션을 개발해 비싸게 팔고 있다지 않은가. 분명한 사실은 파란색 장미로 인류복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 유전자를 넣어 날개가 다리로 바뀐 닭은 개처럼 뛰어다닐지, 어색하게 뛰다 개에 물려죽을지 모르지만, 성공한다고 해도 역시 인류복지가 아니다. 다리가 4개이므로 아이들이 식탁 앞에서 닭다리 놓고 싸우는 일은 줄어들지 몰라도, 조작된 유전자가 38억년 동안 안정된 자연 생태계를 단번에 오염시킬 가능성을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 것이다. --- p.204~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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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위기, 이공계의 위기를 넘어선 건강한 지적 담론을 위한 새로운 시도.
생명공학의 성과 속에 대두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논쟁과 합의에 대한 다각적 논의, 영역을 넘나드는 성찰을 추구하는 21세기 한국의 지식 구상. 도심 속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올라가는 대나무는 환경오염에 따른 이상 기후의 결과다. 대나무의 기치만을 기려 생태시라 읊고 있는 시인은 환경과 자연에 대한 관심과 성찰의 부족을 드러내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디지털 시대에는 지식이나 지식인에 대한 개념 자체에 지각 변동이 일어난다. 21세기의 지식은 더 이상 지식인들만의 소유물도 아닐뿐더러 상아탑에 안주해서는 건강한 지성을 꿈꿀 수 없다. 21세기에는 ‘영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의 학문을 배제하고서는 깊이 있는 연구도, 창작활동도 불가능하다. 학문의 위기는 교육의 위기이고, 산업의 위기이자, 경제의 위기이며, 건강한 지성의 위기다. 따라서 일반 시민들도 뒷짐 지고 구경하듯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적극적인 태도로 논쟁에 참여하고 사회 전반에 걸쳐 발전적이고 올바른 담론이 형성될 수 있도록 의무와 권리를 다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이 책에서는 생명공학의 괄목할 만한 성과를 계기로 대두된 인문학자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부족을 비판하고(1장), 서구사회의 지적 논쟁인 ‘과학전쟁’을 서두로(2장)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어떻게 만나는지 살펴보고(3장), 생명공학계 내부에서 벌어지는 생명윤리 및 가치 판단 논쟁을 다룬다(4장). 이어서 디지털복제 시대에 따른 지식구조의 변동과 지식인의 의미에 대해 고찰하고(5장), 과학기술에 의해 세계관과 윤리관념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성찰하며(6장), 미래사회의 과학기술문명은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하는지 그 좌표를 찾아본다(7장). 또 서구 과학논쟁에 불을 붙인 마틴 가드너의 에세이(<물리학자 앨런 소칼의 유쾌한 속임수>)와 사이언스지 기자 그레첸 보겔의 임상시험에 대한 기사(<준비되었는가, 그렇지 못한가?>)를 관련자료로 첨부하였다. 디지털 시대에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학계 일반과 지식구조, 세계관과 윤리관념까지 대대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가운데 이 책은 미래의 지식 지도를 제시하고 새로운 시대, 건강한 지성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과학논객의 탄생과 새로운 형태의 과학전쟁을 기대하며 1994년 미국 생물학자 폴 그로스와 수학자 노먼 레빗이 함께 펴낸 《고등 미신》이 도화선이 된 자연과학자와 인문과학자들의 논쟁은, 이후 <소셜 텍스트>(1996)에 게재된 소칼 교수의 논문, 그리고 마틴 가드너의 <물리학자 앨런 소칼의 유쾌한 속임수>와 소칼, 브리크몽의《지적 사기》를 거치면서 ‘과학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서구 지식인들의 뜨거운 관심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지적 논쟁의 파장은 국내학계에도 미쳐, 1998년 ‘교수신문’을 통해 열띤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식인들 사이의 ‘과학전쟁’, 그것은 일반인들이 보기에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차원 높은’ 싸움이다. 우선 일반인들은 지식인들이 논쟁하는 내용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 일생에 한번 들어볼까 말까 한 용어들을 그들은 물마시듯 쉽게 쓴다. 그리고 일반인들은 지식인들이 자신과는 다른 세상의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이 무슨 논쟁을 벌이든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여긴다. 그들과 ‘대화’를 할 수 없으니 이는 당연한 일이다. 학문은 이렇듯 어려운 영역이어서 황우석 교수의 세계를 놀라게 한 성과에 우리는 환호를 해야 할지, 아니면 일부 지식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려를 해야 할지, 사실은 명확하게 말하기 어렵다. 논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논리 부족은 비단 일반인들만의 문제는 아닌 듯 보인다. 지식인들 사이에서 ‘왜 인문학자들은 침묵하고 있는가’ 하는 질책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주 당연한 이야기지만 과학과 공학기술의 혁명적인 발전은 인문학과 사회학, 경제학 등 학문 전반은 물론, 기존의 세계관과 윤리의식, 정신세계에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새로운 도전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많은 관련 분야의 종사자들이 규격화된 과거의 틀에 안주하여 학문과 세상을 바라보는 건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벌써 이야기가 나온 지 상당히 오래되어 이미 그 위력이 다한 듯한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 또한 이러한 고정된 시각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며, 그 문제의 해결책 또한 과학과 공학이 만드는 변화에서 찾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본다. 과학과 공학의 경계를 과감히 넘나들며 연구하고, 그리하여 자신의 분야가 아니어도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이라는 큰 틀 속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기반을 다지지 않는다면 미래의 인문사회학 등은 그 근본부터 위협 받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최근 배아줄기세포 복제 기술의 발달로 대두된 생명윤리 문제 등과 관련하여 과학과 공학 분야의 지식인들 또한 인문사회학의 오래된 근본적 질문을 다시 한번 되돌아볼 것이 요구된다. 21세기 지식인에게는 기존의 시각과 고정된 자신의 영역을 넘어 경계 너머에 있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탐험이 필수적인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고즈윈 편집부는 1년여에 걸쳐 ‘과학논객’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여러 필진들에게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토대로 8개의 주제를 확정하여 원고를 의뢰하였으며, 필자들에게는 가능한 대로 주제를 논쟁적으로 풀어가고 과감하고 직설적인 문장으로 집필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또 관련 해외 에세이 2편을 추가하였다. 이 책이 학자들 사이에서만 잠시 일었다 사라지는 수명 짧은 논쟁이 아닌,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건강한 논의의 밑바탕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