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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우리의 자화상
세계화된 세련됨으로_ 고속철 역사 최대한 위엄 있게_ 관공서 저 높은 곳으로 임하시는_ 교회 할리우드 키즈의 양식_ 영화관 지역의 맹주_ 백화점 그리스 신전을 모방한 디즈니랜드를 모방한 에버랜드를 모방한_ 모텔 모사본의 세계_ 모델하우스 날로 광폭해지는_ 아파트 창이 안 열리는_ 초고층 아파트 촘촘히, 빼곡히, 층층이_ 대형 의류매장 유교 자본주의의 메카_ 대치동에서 신림동으로 가장 수치스러워해야 할_ 테헤란로 온 국민이 좋아하는 상업 고전주의_ 코린트식 양식 한국 근대사의 자주권 문제_ 파고다공원과 파고다학원 양극단이 혼재하는 우리의 현실_ 최소공간과 최대공간 능선 보호법을 만들자_ 능선파괴 골목 속 놀이터를 살리자_ 광장 ‘맨공기 권리’를 제언하다_ 금연 서울의 진짜 나이를 생각하며_ 도심복원 에필로그_ 지켜야 할 세 가지 것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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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재가 말하는 임석재
철들면서 시작된 사춘기 때 나의 관심사는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사람들 사는 방식에 대한 관심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집이라는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조형환경은 끝없는 호기심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나는 서울의 오래된 골목길을 돌아다니는 취미를 갖게 되었다. 다른 한 가지는 시였다. 한국 현대시의 고전들을 암송하고 스스로 시작을 해보기도 하였다. 이 두 가지 관심이 합쳐져 나는 지금 건축 역사와 이론을 연구하는 학자의 길을 가고 있다. 아직은 사춘기 때의 감성과 열정이 유지되고 있다고 자평하는 편이다. 나는 사람들 사는 방식에는 관심이 많지만 정작 사람 그 자체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거리를 유지하려 애쓴다. 주관적 인간주의가 갖는 위험성과 편협함을 경계한다. 그 대신 객관화된 인간관계와 감정이입을 통한 간접경험으로부터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키워간다. 사람들은 나를 차갑고 비인간적이고 이기적이라 욕한다. 하지만 싸구려 주관화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과 객관화를 통해 인간에 대한 합리적 가치를 지키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따뜻하고 인간적이며 이타적인 것인지는 따져봐야 할 일이다. 나는 일 년 내내 대부분의 시간을 책 읽고 책 쓰는 데 보낸다. 건축에 요구되는 실용성과 현실성은 간접경험을 통해서 얻는다. 골목길 산책과 매체도 중요한 통로이다. 세상은 나를 공부만 하고 글만 쓰는 사람으로 알지만 나는 누구보다도 설계를 하고 싶고 잘 해낼 자신도 있다. 그동안 공부하면서 느꼈고 깨달았던 내용들을 작품을 통해 창작물로 표현해보고 싶은 바람이 간절하다. 늘 촉수를 설계에 맞추며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손바닥만 한 수첩에 스케치를 한다. 스케치도 꽤 쌓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에게 일거리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아직 나의 작품이 없다. 언젠가는 기회가 오리라 기다리고 준비하며 살고 있다. 나의 연구 분야는 다양하다.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들로 분류하자면 20세기 서양 근현대 건축사, 한국 현대 건축사, 서양 건축사, 한국 전통건축, 현실비평 다섯 분야로 나뉜다. 각 분야에 대해 방대한 양의 저서 시리즈를 기획하여 매일 열심히 공부하며 집필하고 있다. 이미 상당수가 출판되었다. 내 연구의 목표는 나만의 건축 사상과 이론을 세우고 그것을 작품으로 구현하는 데 있다. 혼탁한 세상에 한 줄기 빛을 던질 수 있다면 더 이상 원이 없을 것 같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살아가는 법이 달라진다. 30대와 40대가 다르고 50대와 60대는 또 다르다. 자신만의 전공분야에서 개인 업적을 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 그렇다. 40을 넘기면서 나는 대작이란 것에 뜻을 두기 시작했다. 현재 쓰고 있는 서양건축사 통사는 그 가운데 하나이다. 또 하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다. 대작은 반드시 양이 많은 것만은 아니다. 청년의 순발력과 노년의 관록이 겹쳐가는 40대 때 아니면 못하는 일이 있다. 현실에 대한 비판이 그것이다. 30대까지는 아직 덜 익었던 것 같다. 50넘고 60넘으면 자꾸 선문답 같은 예언이나 하려 들 것 같다. 지금 그 중간의 시기가 세상에 대해 조그마한 기여를 할 수 있는 때인 것 같다. 이번 책을 진보적 성격이 강한 인물과사상사에서 내게 되면서 잠시 생각해보았다. 내가 진보적인가. 사실 나의 성장 배경은 자본주의의 혜택을 비교적 많이 받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이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만의 삐뚤어진 현실일 수도 있고 자본주의 자체에 내재된 한계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나 스스로가 좌파이거나 진보적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주위에 물어봤다. 당신은 합리적 자유주의자라는 말과 차가운 열정의 소유자라는 두 가지가 가장 듣기 좋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