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길을 떠나기 전에
-『열하일기』와의 만남 일야구도하 / 2002년 연행단 / 서점에는 『열하일기』가 없다 -연암, 그가 떠난 지 200년 연암의 일생 / 연암과 가는 여행을 1장: 국경에 서다 -압록강에서 『열하일기』의 첫 페이지를 쓰다 국경에서의 사진촬영 / 평생의 장한 여행, 연행의 첫걸음 / 구련성에서의 첫날밤 -슬픈 압록강 압록강의 섬들 / 우리의 반쪽 / 호산장성과 통군정 / 단교의 치마저고리 -연행길의 구첩, 신연행길의 코드 둘 CODE 1 - 비뇨기 / CODE 2 - 더욱 더 -연암, 중국에 들다 책문 풍경 / 안시성이 어딘지 모르다니··· -벽돌 예찬 벽돌의 공덕 / 벽돌은 돌만 못하고, 돌은··· -정 진사는 나중에 『열하일기』를 읽었을까? 초란선생 정 진사 / 눈 뜬 장님들 / 중국은 되놈의 나라 -통원보 스케치 항왜원조 항미원조 / 스케치(1) / 스케치(2) / 스케치(3) / 스케치(4) / 스케치(5) -간단히, 아무거나, 알아서, 제대로 닭대가리 / 답동 /지도자들이 그랬으니 2장: 오동벌 1,200리 -큰 울음 터로다 사람은 슬플 때만 우는가? / 요동벌의 이정표, 백탑 -병자호란의 기억 역사의 현장에서 / 인기 있는 한국식 시공법 -연암은 밤에 중국을 보았다 발 안마 / 밤 연행 -심양 고궁에서의 야외 강의 140만 평의 무덤 / 조선은 선비의 나라 / 조선 사신 구타 사건 / 연암의 고궁 구경 -연암도 ‘양반’이었다 낙타가 어떻게 생겼더나? / 연암은 운동가는 아니었다 / 하늘 끝은 어디로 돌아갔는가? -요동벌의 간판장이 요동벌 일출 / ‘기상새설’ 네 글자 이야기 -연암의 사자후 - 과연 무엇이 장관이더냐? 선비들의 대답 / 나의 장관은 기와조각과 똥이었소! 3장: 산해관을 향해 -조선 사신들의 오아시스, 의무려산 언어는 다르지만 글자가 같으니 / 발해는 보이지 않았다 / 이재현은 대롱으로 바다를 봤다 조선인 이성량 -산해관으로 가는 길목 금주처녀 첸치 /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 봉림대군이 머물던 곳, 영원성 -중국의 제도를 알려면 산해관을 보아라 -천하제일관 / 산해관에서 전투는 없었다 / 조선 사신들의 산해관 통과 광경 장성에 오르지 못하면 남아가 아니다 -연암은 강녀묘에서 무엇을 보았나 열녀 사당 / 우리가 제사는 왜? -만리장성, 바다에 발을 담그다 노룡두 / 북대하의 워크숍 / 진황도의 샤브샤브 4장: 세계의 중심 북경 -쓰레기에 묻힌 백이 숙제 대륙의 소나기 / 백이 숙제묘 -「호질」의 탄생 남의 글을 베끼다 / 범의 꾸짖음 / 「호질」의 문학성 -흔적 없는 조선 사신들의 숙소 세계의 중심 / 옥하관 -서양 문물 수입의 메카, 천주교회 소현세자의 당 / 홍대용의 남당 / 연암의 남당 / 나의 남당 -지식의 바다, 유리창 아름다운 이야기 / 유리창에 홀로 서서 / 재미있는 처방들 5장: 만리장성을 넘어 -열하로 떠나다 황제의 부름 / 가장 슬픈 이별은··· -연암의 문장론 새로운 일행 / 성·색·정·경 -바로 그곳, 일야구도하의 현장 나의 신상발언 / 「일야구도하기」 / 오랑캐들의 기이한 모습 -장성을 넘다 「야출고북구기」 / 강희제의 만리장성 -드디어 열하에 평생의 괴이한 구경 / 무박 5일 / 이상하게 생긴 바위 -중국의 축소판, 피서산장 산장의 건설 / 중국 최대의 황실정원 / 주인 잃은 만수원 -라마 불교의 법왕을 만나다 서번의 성승을 만나보라 / 조선 남아의 기개 / 이 불상들을 어이 할꼬! -천하의 두뇌, 열하 외팔묘 / 천하의 정세 -소동파는 고려를 싫어했다 동파육 / 고려를 미워한 까닭 -마음의 눈으로 보라 눈을 속이는 요술 / 도로 네 눈을 감아라 -열하를 떠나며 노변 좌담 / 위기의 자각 -마지막 블랙 코미디 두 산은 서로 마주볼 수는 있지요 / 청심환 소동 찾아보기 |
최정동의 다른 상품
|
이렇게 극단적인 자신의 장관론을 내세워 조선사회의 주류인 상사, 중사의 견해를 정면으로 반박한 연암은 이제 타이르듯이 이야기한다.
비록 지금은 오랑캐가 중원을 차지하고 있지만 중국의 성곽과 건물과 인민들이 에와 같이 남아 있고, 정덕, 이용, 후생의 도구도 파괴된 것이 없으며, 역대 중국의 저명한 문벌과 성리학도 사라지지 않았고, 한, 당, 송, 명의 아름다운 법률제도도 변함없이 남아 있다. 청나라가 비록 오랑캐지만 역대 중국의 제도가 자기들에게 이로움을 알고 이를 빼앗아 마치 본시부터 자기들이 지녔던 것 같이 하고 있다. 천하를 위해 일하는 자는 진실로 인민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될 일이라면 그 법이 비록 오랑캐에게서 나온 것일지라도 이를 거두어서 본받아야 되는데, 하물며, 한, 당, 송, 명 여러 나라의 고유한 것임에랴. 한마디로 지금의 청나라를 열심히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청나라가 오랑캐니, 북벌을 해야 한다는니 따위의 이야기는 이제 그만 하고 백성을 위해 청나라를 철저히 벤치마킹하자는 얘기다. --- p.175 '연암의 사자후 - 과연 무엇이 장관이더냐?' 중에서 |
|
■낯설지 않지만, 낯선 그 이름《열하일기》
2005년, 올해는 연암 사후 200주년이 되는 해다. 우리는 이런 특별한 때가 되어야만 어느 한 구석에서 잠자고 있던 연암 박지원을, 실학을, 그 외의 실학자들은 톡톡 깨워낸다. 잊고 있던 숙제를 해내듯 박지원과 관련된 세미나를 열고, 행사를 개최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시킨다. 그래, 연암 박지원. 그래, 《열하일기》. 하지만 그뿐이다. 더구나 이러한 학술행사는 청계천 복원과 선거, 중국 김치 파동 등과 같은 다른 커다란 사건들에 묻혀 쉽게 잊혀져버린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청계천과 선거, 기생충 알이 들어 있는 김치를 묻어두고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까? 연암 박지원과 《열하일기》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박지원이 어떤 사람이고 그가 쓴 《열하일기》가 무슨 내용인지 자세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연암 박지원을, 《열하일기》를 항상 마음에 품고 있던 한 사람이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줄 수 있을 것이다. ■연암과 함께 떠나는 연행길!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실려 있는 <일야구도하기>. 시뻘건 흙탕물이 곤두박질치듯이 급하게 흐르는 강을 하룻밤 동안 아홉 번이나 건너는 이들의 모습. 학창시절 국어 시간에 배웠던 글과 그 글이 주는 이미지는 한 학생의 마음에 각인되었고, 그 이미지는 성인이 된 어린 학생의 글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연행’이란 조선의 사신들이 중국 청나라의 수도인 연경에 가는 것을 말한다. 저자가 포함된 2002 연행단은 조선 시대 사신들이 갔던 연행길을 따라 중국 현지를 답사했다. 이 연행단에는 특별한 인물이 한 사람 포함되어 있다. 바로 《열하일기》를 지은 연암 박지원이다. 박지원은 단동에서 출발해 요양, 심양을 거쳐 요동벌을 가로지른 후 산해관을 거쳐 북경으로, 그곳에서 다시 만리장성을 벗어나 열하까지 가는 먼 길을 동행한다. 시간을 초월한 만남. 불가능해보이지만 이러한 만남이 《연암 박지원과 열하를 가다》 안에서 이루어진다. ■연암이 살아서 움직인다 200년 전 연암 일행은 북경을 거쳐 열하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모습이 200년 후 또 다른 현재형으로 묘사되고 있다. 연암도 현재형, 그 뒤를 쫓는 저자 일행도 현재형.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현재형 문장으로 생생하게 다시 살아난 연암은 21세기에 다시 우리들을 중국으로 안내한다. 그래서 이 글은 현실감, 현장감이 넘친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탁류가 흐르는 압록강을 건너서, 요동벌을 걸어가며 중국 여인들을 곁눈질하고, 열하의 황제 별장에서 국제 정세를 조망하는 연암, 밤에 몰래 숙소를 빠져나와 무작정 아무 가게, 혹은 아무 집에 들어가 중국인들의 세상사를 듣는 연암을 눈앞에서 보듯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중국의 문화를 몸소 경험하고, 버스 안에서나 밖에서나 강의를 열어 역사적인 사실을 되짚어보며, 좀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2002 연행단의 모습도 눈앞에 그려볼 수 있다. 즉, 독자들은 저자 일행, 연암 박지원과 같은 버스 안에 앉아 중국 현지를 달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 시대의 ‘물건’들과 동행하다 그럼 연행단 구성원의 면면을 살펴보자. 우선 이 여행의 단장은 ‘문화유산 답사’를 국민적 문화 행위로 유행시킨 유홍준 교수(현 문화재청장)였다. 그는 달리는 버스를 움직이는 강의실로 운영해 참가한 학자들의 전문적인 지식을 일행이 공유하도록 했다. 그런 강의는 전문적이고 어려웠으나 유 교수는 그 사이사이를 강력한 입담으로 연결해 버스 안에서는 쉼 없이 폭소가 터졌고 일행은 졸 틈이 없었다. 주한 미 공군 사격 훈련장인 매향리에서 수거한 포탄 껍질로 대형 조각 작품을 제작해 퍼포먼스를 펼친 임옥상 화백. 강렬하고 인상적인 작품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분명히 드러내는 우리 시대의 예술가다. 그가 연암이 갔던 길의 현재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 동행했다. 이 외에도 여러 훌륭한 학자들이 연행에 함께 참여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유 교수와 임 화백 같은 우리 시대 ‘물건’들의 육성을 들으며 그들과 먼 길을 동행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연행 현장을 생생한 사진으로 본다 직업적으로 사진을 찍어온 이 책의 저자는 현장을 보는 눈이 일반인들과는 많이 다르다. 책에는 저자가 현장에서 직접 찍은 사진들이 다수 게재되어 있다. 그는 요동벌에 우뚝 솟아 있는 <요동백탑>을 촬영하기 위해 아파트 계단을 숨차게 뛰어 올라갔으며, 이른 새벽에 국경 도시에서 숨죽이며 재빨리 셔터를 누르기도 했다. 연암이 중국으로 향하는 배를 탄 통군정을 보기 위해 장성 꼭대기에 오르기도 했다. 달리는 버스가 그의 요구에 의해 수시로 멈춰야 했고, 버스가 달리는 중에도 그의 카메라는 주변 풍경을 쉬지 않고 담아냈다. 그리고 이런 어려움을 이겨내며 찍힌 다양한 사진들은 본문 안에 풍성하게 담겨 있다. 현장에 직접 가지 않더라도, 독자들은 《열하일기》의 현장들을 제대로 된 사진들로 확인할 수 있다. ■다시 살아난 박지원, 그가 전하는 말들 <청나라 문물이라도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 합니다> “비록 지금은 오랑캐가 중원을 차지하고 있지만 중국의 성곽과 건물과 인민들이 예와 같이 남아 있고, 정덕(正德), 이용(利用), 후생(厚生)의 도구도 파괴된 것이 없으며, 역대 중국의 저명한 문벌과 성리학도 사라지지 않았고, 한(漢), 당(唐), 송(宋), 명(明)의 아름다운 법률제도도 변함없이 남아 있다. 청나라가 비록 오랑캐지만 역대 중국의 제도가 자기들에게 이로움을 알고 이를 빼앗아 마치 본시부터 자기들이 지녔던 것 같이 하고 있다. 천하를 위하여 일하는 자는 진실로 인민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될 일이라면 그 법이 비록 오랑캐에게서 나온 것일지라도 이를 거두어서 본받아야 되는데, 하물며 한(漢), 당(唐), 송(宋), 명(明) 여러 나라의 고유한 것임에랴.” 《열하일기》를 관통하는 주제는 북학이라 할 수 있다. 연암은 명분만을 앞세워 청나라를 오랑캐라 무시하고 실질적인 힘이 없는 명만을 섬기는 조선의 사대부들을 비판한다. 그리고 청나라의 훌륭한 문화를 소개하며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것은 받아들여서 나라와 백성들에게 이익이 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열하일기》의 곳곳에서 드러낸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실학자인 박지원의 모습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다른 나라 문물을 받아들이는 박지원의 이러한 입장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준다. 서양의 문화가 무턱대고 좋은 것이 아니며,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못 사는 나라의 문화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좋고 나쁨, 경제적으로 잘 사는가 못 사는가를 기준으로 삼아 다른 나라의 문화를 무조건 매도하지 말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언인가, 우리나라와 국민에게 유익한 것이 무언인가 잘 따져보며 받아들여야 한다. <작은 것을 통해서도 삶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내 집은 산속에 있는데, 문 앞에는 큰 시내가 있다. 매년 여름에 소낙비가 한차례 지나가면 시냇물이 사납게 불어 항상 수레와 말이 내달리는 소리가 나고 대포와 북소리가 들려와 마침내 귀가 멍멍할 지경이 되었다. 내가 일찍이 문을 닫고 누워 비슷한 것과 견주면서 이를 듣곤 했다. 깊은 소나무에서 나는 퉁소소리는 맑은 마음으로 들은 것이요, 산이 찢어지고 언덕이 무너지는 소리는 성난 마음으로 들은 것이다. (……) 듣는 소리가 다 바름을 얻지 못한 것은 단지 마음속에 생각하는 바를 펼쳐놓고서 귀가 소리를 만들기 때문일 뿐이다.” 연암은 《열하일기》 안에서 삶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강물 소리는 어떻게 듣는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는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내 마음이 괴로우면 세상이 모두 괴로워 보이고, 내 마음이 즐거우면 세상이 모두 즐거워 보인다는, 즉 마음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 세상을 즐겁게도, 괴롭게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연암 박지원이 깨닫게 해준다. <슬픔의 역사는 새로운 역사를 세우는 힘이 됩니다> “세자 일행이 혼하변에 이르자 청나라 조정을 대표한 용골대 등 1백20여명이 강변 백사장에 차일을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이 도착하자 그들은 위로하는 잔치를 베풀었다. 그리고 강만 건너면 심양 땅이니 황제가 아닌 인근 왕후(王候)의 부인은 가마를 타고 다닐 수 없게끔 법도가 돼 있으므로 말을 타고 성안에 들어 갈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우리 측에서 세자빈이나 대군 부인들은 평생 말을 타 본 일이 없으니 예외로 해줄 것을 간청했으나 끝내 들어주지 않았다.” 연암은 《열하일기》 속에서 병자호란과 관련된 치욕의 역사를 ‘내 매번 청음(淸陰) 두 글자를 들을 때마다 머리털이 곤두서고 맥이 빨라져 목 속에서 터져 나오는 말이 있으나 함부로 입 밖으로는 내지 않는다’고 쓰고 있다. 병자호란 당시 끝끝내 척화를 주장한 청음 김상헌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피가 끓는다는 말이다. 그가 직접적으로 병자호란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도 치욕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슬픔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슬픔을 딛고 나라의 힘을 키워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청나라의 발달된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연암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