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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제1부 그늘에서 흰 그늘로!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 고리 속의 무궁 제2부 불혹 젊은 생명문학 훈수 몇 마디 종이꽃 소리에 대한 한 생각 자유의 만개를 기다리며 한류 흰 그늘의 미학 (초) 삼은삼현 생명문학의 자발적 가난에 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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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문학이론가도 미학자도 아니다. 다만 그 예측과 예감만을 내어놓을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일견 대수로워 보이지 않는 강의록이나 잡문까지도 모두 묶는다. 그 결과 문자 그대로 들쑹날쑹, 혼돈의 질서가 돼버렸다. 그러나 아무리 얼크러지고 설크러져도 ‘모심’을 견지하면 허물이 없다 했으니 문제의 핵심에 다가가는 후배들과 젊은 예술가, 시인들에게 그 나름나름으로 약간의 도움이 되기만을 바랄뿐이다. --- 책머리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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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인의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가 실천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역시 같은 출판사에서 1999년에 출간되어 논쟁의 복판에 섰던 『예감에 가득 찬 숲 그늘』과 지난해 2월에 나온 『탈춤의 민족미학』을 잇는 저자의 미학강의이다. 최근 저자의 독특한 사상적 행보가 지나칠 정도의 다작으로 이어졌다는 비판도 있는데,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는 그간 저자가 탐구, 제기한 미학생각과 문명담론을 총정리하여 일단락 짓는 저술로서 그 의미가 크다 하겠다.
제1부에서는 명지대학교에서 열 차례에 걸쳐 강의했던 ‘생명시학론’의 강의록을 정리한 「그늘에서 흰 그늘로!」를 비롯, 민예총 문예아카데미에서 네 차례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 등 강의?강연록을 묶었고, 제2부에서는 여러 지면의 글을 통해 발표한 글들과 새로 집필한 원고를 묶었다.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그늘에서 흰 그늘로!」,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 그리고 본서의 정수라 할 수 있는 「흰 그늘의 미학(초)」이다. 현대적으로 해석된 풍류, 생명과 영성의 미학의 교호결합 이 책에서 저자는 ‘고리’를 원리로 하는 민족미학과 ‘그늘’을 최상승으로 하는 민중미학을 생명과 영성, 생명학적 변혁과 깊은 무의식의 명상을 두 기둥으로 하는 동아시아 나름의 ‘흰 그늘의 미학’의 차원에서 결합시켜보고자 하며, 아울러 저자가 21세기 문화현상을 결정하는 근원적 미학원리로 파악하는 ‘디지털-에코’와 관련하여 본격적인 미학사상을 개진한다. 저자에 따르면 민족민중미학의 기초는 ‘풍류’에 있다. 현대 생태학 및 생명미학의 기준 역시 풍류이고 전 세계적으로 대중문화의 앞으로의 담론 방향 또한 풍류이다. 이른바 ‘한류’의 지금 숨은 차원과 미래에 드러날 차원도 역시 풍류이다. 그런데 풍류의 현대적 면목은 ‘디지털-에코’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디지털 시대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노마디즘과 지금의 생태학적 담론은 결국 ‘내면적 영성과 외면적 생명’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의 미학 생각도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적으로 해석된 풍류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혼돈의 시대, 예감되는 흰 그늘의 미학 저자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의 상승을 비롯, 지구촌 여기저기에서 벌어지는 자연 재해와, 통제 불능의 신자유주의가 야기한 경제 사회적 혼란을 ‘대혼돈(Big Chaos)’이라 부르며, 여기서 후천개벽의 징후를 본다. 역시 농경문명과 유목문명이 대결하던 대혼돈의 시기에 두 문명을 결합한 고대 신화 속 치우와, 저자가 ‘태극 또는 궁궁’이라 부르는 ‘혼돈적 질서’의 원리를 드러낸 붉은 악마 세대의 유사성을 주장하면서(붉은 악마의 깃발에 그려진 것은 다름 아닌 치우이다) 저자는 대혼돈 속에서 등장한 이들 세대가 새로운 문명의 원형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 전망한다. 독일의 신비주의자 루돌프 슈타이너가 예언한바, 문명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시기에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 삶을 살 수 있는 ‘원형’, ‘아키타이프’를 제시하는 성배의 민족이 극동에서 나올 것이라고 한 것은 바로 우리 민족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 대혼돈의 시대에 저자는 새로운 우주적 질서가 우리나라에서 출현할 전조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흰 그늘’인가. 앞의 두 책은 각각 ‘그늘의 미학’과 ‘고리의 미학’을 천착한 저술이었는데, 사실 당시에도 미학생각의 이면에는 ‘흰 그늘’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는 최제우와 김일부의 스승인 연담 이운규가 제시한 수수께끼 같은 명제, ‘그늘이 우주를 바꾼다(影動天心月)’에서 사유의 단초를 발견한다. 신산고초를 아는 삶의 경지를 뜻하는 것이 ‘그늘’이라면, ‘엇’은 ‘그늘’을 생성시키는 원리이자, 매개항이 없는 이항대립, 서로 반대되지만 상호보완적인 것, 그렇다-아니다(不然其然)와 같은 ‘혼돈과 생성의 논리학’의 원리가 된다. ‘갈이’와 ‘걸이’란 말로 그 속성을 해명할 수 있는 미학적 원리이기도 하다. 갈아엎고, 시작과 끝이 서로 얽히는 것이다. 이 엇의 작용에 의해 틈이 생성되고, 수용자는 상상력 발동의 여지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은 ‘활동하는 무’, ‘창조적 자유’라고 하는 저자의 우주생명학의 키워드와 상통한다. 한편, 반대되는 것을 묶는 ‘엇’이 있음으로 해서 또한 형성되는 것이 ‘흰 그늘’이다. 구체적으로 감성과 이성, 영성(초자연적이고 신비적인 무엇)이 함께 있을 때 형성되는 그 무엇이다. 달리 말하자면 영적인 성질의 ‘아우라’는 물론 이성적 사유의 기초인 ‘코기토’, 융이 ‘그림자’라고 부르는 현대 대중심리의 불온하고 복합적인 무의식과 광범위하게 확산하고 있는 ‘리비도’를 다 함축하는 개념인 것이다. ‘흰 그늘’이란 엄밀하고 객관적인 해명이 불가능한, ‘신인합일’의 상태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저자는 ‘흰 빛의 떨림’과 ‘검은 그늘의 흐름’을 마치 초월과 중력의 결합처럼 ‘흰 그늘’이라 불러왔다면서, 이것이 자신의 “풍류미학, 미학적 생명학을 ‘흰 그늘의 미학’이라 이름 짓는 한 까닭”이라고 밝힌다. 중앙아시아와 극동아시아, 유럽을 넘나드는 공간적 상상력은 물론이거니와 1만4천 년 전 상고대부터 21세기에 이르는 시간적 상상력, 그리고 그 넓은 시공의 좌표평면에서 펼쳐지는, 마고 신화에서부터 첨단 뇌과학을 아우르는 저자의 해박한 지식이 아찔하다. 강의는 미학사상을 넘어 전 우주의 생성변화로 달려 나가면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늘’에서 ‘흰 그늘’로 넘어온 저자의 화두는 구체적으로 어디로 향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