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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목숨을 드리다 9
2 그대의 목숨을 받다 35 3 물소리 65 4 굶주린 자는 먹인다 93 5 새야 새야 파랑새야 121 6 남도방랑 149 7 서대문감옥 179 8 상해 뒷골목 209 9 문지기는 집을 지킨다 235 10 밤에 쓰다 265 11 김구 암살작전 289 12 지켜낸 사람들 313 13 남의 땅, 남의 하늘 아래 341 14 대가족 367 15 정직한 거부 393 16 길 위의 젊은이들 415 17 빛의 방향으로 441 18 고향 개도 만나면 반갑다 467 19 비밀문서 489 20 갈라지는 땅에서 509 21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 537 22 겨레의 약속 563 23 비원(悲願) 591 24 강산에 눕다 617 주 643 참고문헌 651 역사의 별이 된 사람들|작가의 말 6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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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군이 충주를 침략하자 다인철소 사람들은 철광석, 제련한 철, 무기, 제철시설 등을 몽골군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일치단결해 싸웠다. 지도자도 없었고, 칼과 창마저 떨어지자 철소의 하층민들은 호미와 낫을 들고 싸웠다. 저항의 역사는 피에 스며든다. 동학 농민들 또한 호미와 낫을 들고 일어났고, 대나무를 잘라 죽창을 만들며 제 목숨을 걸기로 맹세한 것이다.
---「4장 굶주린 자는 먹인다」중에서 고산지대의 하늘은 수시로 색이 바뀌었다. 청록색이었다가 물색이었고, 푸르다가 잿빛이었다. 바람엔 묘한 기운이 실려 있고, 머리 위로는 안개가 흘러갔다. 골짜기에 들어서면 풀과 나무들이 바람에 쓸리는 메아리가 일어났고, 골짜기를 벗어나면 하늘과 땅이 위잉 이윙 하며 호흡을 주고받는 소리를 들려줬다. 둘은 조선의 마지막 능선을 따라 걷다가 이내 혼강(渾江, 훈강)이 흐르는 협곡에 다다랐다. 강물은 잔잔했지만, 그 깊이는 짐작할 수 없었다. 먹물을 푼 듯한 회청색 물이 소리를 삼키고 흘렀다. ---「5장 새야 새야 파랑새야」중에서 그는 이름을 김구(九)로 바꿨다. 구는 숫자라기보다 결기였다. 그는 다짐했다. ‘무어라 단정할 수 없고, 끝을 알 수 없는 숫자 구(九), 그 숫자를 이름에 넣은 사람은 꺾이지 않고 끝까지 견뎌야 한다.’ 그리고 연하(蓮下)라는 호를 백범(白凡)으로 고쳤다. 백정(白丁)과 범부(凡夫) 두 단어의 앞 글자를 따서 ‘백범’이라고 지었다. 그들 모두 나라를 사랑해야 우리가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 그들 속에서 나는 다시 태어나 살아간다. 김구는 유치장 마당을 빗자루로 쓸 때나 유리창을 닦을 때마다 하느님께 기도했다. “우리도 언젠가 독립정부를 건설해 제가 우리나라 정부 건물 마당을 쓸고, 창문도 닦는 일을 해보고 죽게 해주십시오.” ---「7장 서대문감옥」중에서 나라를 빼앗긴 울분과 한으로 수를 헤아릴 수 없게 많은 혁명가가 나왔다. 독립운동가와 투사, 그 아류와 난류들은 저마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실력을 겨루고, 칼을 꽂거나 총을 난사했다. 이런 삼각파도의 한복판에서 백범은 모두의 중심이었다. 마마 자국이 있고 광대뼈가 발달한 고집스런 얼굴, 두툼한 손바닥의 힘으로 상징되는 김구의 열정과 고집, 이런 것이 하나의 서사를 이루고 있었다. 모든 혁명 난류들은 김구의 그 힘을 민족 의기의 표상이라고 인정했다. ---「11장 김구 암살작전」중에서 밥은 하늘이 낸 음식이다. 땅의 힘과 인간의 땀으로 만들어진 밥은 생명을 살리는 하늘을 닮았다. 밥은 순리이기에 고맙다. 밥이 입에 들어올 때 사람들은 그 오묘함을 생명의 맛이라고 여긴다. 오랜 시간을 굶은 사람이 한 그릇의 밥을 먹을 때 가장 먼저 느끼는 것은 너그러움과 감사함이다. 밥심으로 너그러워지고, 전신으로 퍼지는 혈관의 생동함에 감사한다. 밥을 먹은 나그네는 노동으로 그 고마움에 답한다. 밥은 하늘을 닮아 인간을 자랑스럽게 만든다. ---「14장 대가족」중에서 백범의 말은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늙은 투사의 독백이었다. 그가 저음으로 ‘독립’을 말하는 순간 청년들은 깨우쳤다. 아니, 깨우치기 전에 보았다. 선배 독립운동가들의 늙은 등허리를! 청년들은 그 야윈 등허리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이국에서 바친 고통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17장 빛의 방향으로」중에서 “동포 간의 증오와 투쟁은 망조다. 우리의 용모에서는 화기가 빛나야 한다. 우리 국토 안에는 언제나 봄기운이 가득해야 한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되 그것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요,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꽃을 심는 자유다. 힘든 일은 내가 앞서 하니 사랑하는 동포를 아낌이요, 즐거운 것은 남에게 권하니 사랑하는 자를 위하기 때문이다.” ---「23장 비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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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개의 물줄기, 하나의 큰 강이 되다
『백범 강산에 눕다』는 전통적인 전기소설과는 다르다. 이 작품은 총 24개의 장으로 구성되었으며, 각 장은 독립된 단편처럼 읽힌다. 그러나 이 분절된 장면들은 흩어지지 않고 백범 김구의 삶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서사로 수렴된다. 작가는 그의 생애를 연대기적으로 배열하는 대신, 시간의 순서를 넘나들며 ‘생존-희생-감당-죽음’이라는 인류 보편의 구조 속에 배치한다. 사건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의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이 구성은 영웅의 업적을 나열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어떻게 감당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틀이다. 이 작품에 가공의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모든 사건은 사료와 기록에 근거한다. 그러나 작가는 기록을 설명으로 봉합하지 않는다. 축약된 서술과 절제된 문장은 독자에게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역사적 사건은 선악의 구도로 단순화되지 않고, 선택의 무게로 제시된다. 그 결과 독자는 ‘위대한 인물’을 바라보는 위치에 서지 않는다. 오히려 선택의 장면 앞에 함께 놓인다. 『백범 강산에 눕다』는 백범을 우상으로 숭배하지 않고, 책임을 감당한 인간으로 다시 세운다. 이것이 이 소설이 취하는 가장 분명한 태도다. 특히 이 소설은 백범의 삶을 ‘성공의 역사’로 정리하지 않는다. 분단을 막지 못한 정치가, 해방정국의 주도권을 쥐지 못한 지도자, 끝내 암살로 생을 마친 인물이라는 결말까지 숨기지 않고 끌어안는다. 그러나 작가는 패배를 변명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패할 걸 알면서도 타협하지 않는 백범의 단호한 역사관을 드러내준다. “내가 북한에 가서 실패하면 실패한 기록이 남을 것이고, 그런 시도가 거듭되면 누군가는 그 실패를 넘어설 것이다.” 남북회담을 앞두고 백범이 남긴 이 말에는 역사와 미래 세대를 생각하는 정치인의 자세가 담겨 있다. 『백범 강산에 눕다』는 승패를 넘어, 역사의 격동 속에서 꺾이지 않은 한 인간의 태산부동(泰山不動)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한국 소설에서 이만큼 주인공의 성격이 강력하게 살아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왜 지금, 백범인가 『백범 강산에 눕다』는 ‘위인의 복원’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 소설이 그려내는 백범 김구의 삶은 오늘의 한국 사회를 향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해방 이후의 혼란과 분열, 이념의 갈등과 권력의 다툼은 먼 과거의 이야기 같지만, 사실 상황만 조금 바꾸면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가 신뢰를 잃고, 공동체의 방향이 흔들릴 때 우리는 어떠한 기준을 세우고 선택해야 하는가? 이 작품은 이 오래된 질문에 대해 거창한 정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한 인간이 끝까지 붙들었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에 주목한다. 언론인으로 오랜 세월 한국 사회의 명과 암을 지켜본 임순만 작가는 10여 년에 걸친 자료 조사와 집필 끝에 백범을 역사 속에서 끌어내 오늘의 세계로 옮겨놓는다. 그리고 묻는다. 정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지도자의 용기란 무엇인지, 실패를 알면서도 기록을 남기려고 했던 그 태도는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는지를. 우리는 빠르게 편을 가르고, 서로의 말을 끝까지 듣기보다는 믿고 싶은 주장만 취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돈이나 성공이라는 물질적 가치가 앞설수록 윤리의 기준은 뒤로 밀려나기 쉽다. 이런 현실 앞에서 백범 김구가 일생을 통해 보여주는 태도는 더욱 선명하다. 그는 유리한 편에 서기보다는 스스로 세운 기준에 맞게 선택했고, 성공의 가능성보다는 역사에 남을 책임의 무게를 먼저 생각했다.『백범 강산에 눕다』는 우리에게 다시금 묻는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