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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감사의 글 도입 1장 자기 1. 자기 탐색하기 2. 자기 해방하기 3. 자기 객체화하기 4. 자기 수량화하기 5. 자기 생산하기 6. 자기 조절하기 7. 맺음말: 자기 다스리기 2장 상호작용 1. 시공간의 재구성 2. 미소-사회성의 급격한 증가 3. 가시성 체제 4. 프로그래밍된 사회성 5. 맺음말: 접촉 끊어지기 3장 문화 1. 문화가 ‘콘텐트’가 될 때: 풍요의 양면성 2. 탈상품화 혹은 재상품화? 3. 민주화: 참여, 창의성, 권력 4장 경제 1. 플랫폼 2. 하부구조적 권력 3. 노동 4. 맺음말: 블록체인 유토피아주의 5장 정치 1. 앎의 체제 2. 감정 체제 3. 거버넌스 체제 4. 맺음말: 포퓰리즘과 기술관료주의 사이에서 결론 미주 참고문헌 |
Rogers Bruba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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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결성의 ‘초’는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연결하는가에 관한 것일 뿐만 아니라, 언제 그리고 어디에서나 연결하는가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초시공간적 연결성은 이전의 뚜렷이 구별되는 삶의 영역들 간의 경계를 허물었는데, 이전에 삶의 영역들은 각각의 고유한 시간과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실리콘 밸리가 그리는 미래에는 연결성이 단지 어디에서든 어느 때든 연결된다는 개념이 아니라, 모든 곳에서 항상 연결된다는 개념이다. 스마트 기술에 대한 현재의 기술 담론은 마크 와이저의 ‘편재적 컴퓨팅’에 대한 초기 비전을 재해석하면서 연결성과 컴퓨팅이 ‘눈에 띄지 않게 주변 환경의 일부가 되는’, 즉 스마트폰과 같은 중요한 중심 기기에 집중되기보다는 환경에 녹아들면서 환경 전체로 분산되고 있는 것으로 본다.
디지털 초연결성은 ‘사물’도 아니고, ‘힘’도 아니며,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일어나게 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커뮤니케이션의 환경, 지형, 생태계이고; 인간, 기계, 프로토콜, 관행 및 데이터들의 망이며;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 연산 절차, 물질적 인공물, 사회적 관행, 체화된 습관, 조직 형태, 경제적 인센티브 및 법적 프레임워크로 구성된 복잡한 사회기술적 배치이다. 네트워크화된 디지털 기술은 어떤 행동은 더 쉽게, 어떤 행동은 더 어렵게 만들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다른 가능성은 배제하는 특정한 ‘어포던스’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는 용도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디지털 초연결성에 의해 촉발된 사회적 변환은 네트워크화된 디지털 기술 자체의 성질에 의해 미리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기술과 그것을 중심으로 서서히 생겨나는 관행이 문화적으로 이해되고, 사회적으로 체계화되고, 법적으로 규제되고, 정치적으로 쟁점이 되는 방식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 「도입」 중에서 많은 대인 간 디지털 감시가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이루어진다. 물론 소셜 미디어는 상업적 감시의 주요 전달 경로이자 정부 감시를 위한 점점 더 중요한 자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는 또한 대인 간 감시의 거대한 엔진이기도 한다. 소셜 미디어의 핵심은 사람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서로에게 (그리고 플랫폼 자체에게) 보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의 아키텍처는 가시성을 기록하고 수량화할 뿐만 아니라 촉진하도록 설계되었으며, 공유와 개방성(“세상을 더 열려 있고 더 연결되게 만드는 것”)에 호소하는 소셜 미디어의 이데올로기는 연결성의 이데올로기일 뿐만 아니라 가시성과 투명성[“당신은 (오직)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다”]의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용자들에게 다른 이용자들에게 보이는 가시성은 버그가 아니라 하나의 기능이다. 이용자들은 특정 형태의 원치 않는 가시성에 대해서 걱정할 수도 있지만 ‘비가시성(invisibility)’의 위협에 대해 더 걱정한다. --- 「2장 · 상호작용」 중에서 플랫폼들이 여러 분야에서 사회생활을 재편해 오면서 노동이 조직되고, 수행되며, 통제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플랫폼들은 표준 고용관계 ‘밖에서’ 대면 직접 서비스와 원격 근무를 포함한 노동을 조정하고 노동계약을 하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그러한 변화를 가장 두드러지게 이끌어왔다. 직접 차량 호출 서비스와 배달 서비스는 그와 같은 ‘파괴적인’ 형태의 플랫폼 -기반 노동의 전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원격 작업 플랫폼은 디지털 노동 또는 디지털화 가능한 노동을 작업화하고, 외주화하며, 오프쇼어링함으로써 표준 고용을 붕괴하고 표준 고용에 따른 고비용의 복리후생, 보장 및 경직성을 우회할 수 있는 훨씬 더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는 덜 두드러지지만 마찬가지로 중요한 점은 플랫폼과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표준 고용관계 ‘안에서’ 노동을 지시, 평가 및 규율하는 데 점점 더 중심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다른 이용자와 광고주에게 플랫폼이 매력적이게 만드는 작업에 이용자들을 일반적으로 무보수(또는 저보수)로 동원하고 지휘하는 데 어떻게든 성공해 왔다. 플랫폼들은 이처럼 점점 더 우리의 일과 여가 모두를 지휘하는데, 중요한 부분은 이 둘 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면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 「4장 · 경제」 중에서 소셜 미디어 네트워크는 도덕적 격분을 표현하는 데 드는 비용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는 데 대한 대가로 얻는 새로운 이점도 제공한다. 소셜 미디어 네트워크는 자신의 메시지를 널리 퍼뜨리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수용자를 모아주며, 즉각적이고 눈에 띄고 명확하고 수치화되며 매우 만족스러운 사회적 피드백을 제공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소셜 미디어 네트워크는 ‘도덕적 허세꾼’, 즉 집단이나 네트워크 내에서 자신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수용자를 겨냥한 도덕적 발언을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완벽한 환경을 제공한다. 그리고 누구나 디지털 미소-유명인(micro-celebrity)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누구든 (관심을 끌 수 있는) 자신만의 연단을 가질 수 있는데, 왜냐하면 도덕적 허세는 미소-유명세처럼 팔로워 수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수용자들을 상대로 연기를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 「5장 · 정치」 중에서 디지털로 강화된 통제, 주의 분산 및 조작 기술들, 그리고 오웰이나 주보프의 전망만큼이나 현대판 헉슬리의 전망은 모두 편재적 감시를 전제로 한다. 즉, 그것들은 모두 지식의 축적을 통한 권력 행사를 전제로 한다. 감시적 통제는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측정하는지 아는 것, 다시 말하면 누가 어떤 기준에 부합하는지, 누구의 점수나 등급이 어떠한지, 그리고 누가 어떤 범주에 속하는지 아는 것에 달려 있다. 이러한 지식은 디지털 게이트와 체크포인트는 어떤 기회, 어떤 재화, 또는 어떤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지를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해준다. 감시적 주의 분산은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디지털 콘텐트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심지어 어떤 기분 상태에 있는지까지 세밀하게 아는 것에 의존한다. 이러한 지식은 플랫폼과 콘텐트 제공 업체들이 우리의 주의를 끌고 계속 몰입적으로 참여시킬 수 있게 한다. 감시적 조작은 우리가 실험적으로 변화된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아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취향, 선호도, 성격 특성을 아는 것에도 의존한다. --- 「결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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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결성과 ‘나’
중요한 것은 ‘알고리즘적으로 형성된 자기(self)’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팔로워 수, 댓글, ‘좋아요’, 공유, 즐겨찾기, 리트윗, 조회수까지 플랫폼의 모든 활동이 끊임없이 수량화되어 일련의 숫자로 사용자에게 피드백되는 디지털 초연결성하에서, ‘자기(self)’는 쉽고 일상적으로 수량화된다. 지속적인 수량화는 상호작용의 게임화에 기여하며, 우리의 숫자들을 향상하도록 자극하면서 우리가 소셜 미디어와 더 깊게 상호작용하도록 만든다. 절대적인 가치가 아닌 상대적인 가치로 규정되는 ‘위치재’와 같은 숫자들 속에서, 타인과의 끝없는 비교에 놓인 자기는 풍요와 결핍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수량화된 자기는 만족할 줄 모르는 매우 탐욕스러운 자기”라는 저자의 지적은 디지털 플랫폼과 소셜 미디어에서 우리가 매 순간 마주하는 숫자들이 우리를 형성하는 동시에 우리를 압박하기도 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자기 자신을 객체화하고, 수량화하고, 생산하며, 조절하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는 알고리즘적으로 객체화되고, 수량화되고, 생산되며, 조절되는 것 사이에 발생하는 긴장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알고리즘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파악해서 우리에게 제공할 뿐 아니라, 자신이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을 우리가 원하도록 우리를 훈련한다. 이때 저자는 자기의 ‘식민화’라는 은유를 끌어오는데, 이는 자기가 식민 세력들의 우월한 기술과 유혹적인 감언이설에 대한 약한 방어력만을 가진 채 취약한 상태에 있음을 암시한다. 자기가 그러한 세력들에 의해 규율되고, 그들의 일상적인 행정적 절차에 끌려들어 가고, 그들에게 데이터를 제공하는 데에 길들여지며, 그들을 위한 노동을 제공하는 데 동원되어 왔음을 시사하는 이 은유는 초연결성과 자기의 관계에서 짚어보아야 할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초연결성과 ‘우리’ 디지털 가시성이 감시로 이어지는 지점에서 성찰해야 할 것은 ‘지금 여기’에 공존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는 흐려지고, 모두가 각자의 디지털 기기를 가진 채 하는 병렬적인 상호작용의 풍경은 흔해졌다. 초연결성의 편의성과 마찰 없음은 새로운 상호작용 방식을 만들어내고, 그 문턱을 낮추었으나, 상호작용에서 우리의 주의력은 분열되었고, 이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우리의 ‘기기’로 관심을 기울이는 습관을 정당화하고 그러한 습관을 강화하였다. 또한 소셜 미디어는 상대의 삶과 상대와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서로 훨씬 더 잘 볼 수 있게 하고 상대의 관심을 불필요하게 끌지 않으면서도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크게 확대했다. 저자는 이러한 초연결성이 만들어낸 새로운 ‘디지털 가시성’이 사람 간의 관계를 변화시켰다는 사실, 즉 디지털 가시성이 감시로 이어지는 지점에 주목한다. 바로 최근 떠오르고 있는 이슈인 ‘디지털 과잉-가시성’과 ‘과잉-공유’인데, 이때 사람 간의 관계에서 감시를 둘러싼 갈등은 적절한 가시성의 범위를 중심으로 벌어진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볼 수 있어야 하고, 보아야 하는가?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 이상을 볼 수 있게 하고, 우리가 드러내는 것 이상이 보여지게 하는 디지털 과잉-가시성을 진지하게 짚어보아야 할 때다. 초연결성과 ‘문화’ 무한한 선택지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선택조차 불필요한 것으로 만드는 초연결성의 힘, 매듭 없는 사용성의 승리, 그 이면에 수동적인 소비문화가 만연한 현실 초연결성하에서 개인은 문화 소비자일 뿐 아니라 문화 생산자이기도 하다. 개인은 문화의 소비, 유통 및 생산에 능동적이고 창의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 끝없는 문화 콘텐트와 그 끊임없는 흐름 속에서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요구받는데, 이러한 ‘선택의 과잉’은 우리의 역량을 강화하기보다는 우리를 압도할 수 있다. 선택의 과잉은 프로그래밍된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도록 하거나 우리 자신보다 우리의 취향을 더 잘 알 수도 있는 알고리즘에 우리의 선택을 맡기도록 유혹할 수 있고, 실제로 우리의 취향을 강력하게 형성할 수도 있다. 따라서 ‘마찰이 아닌 흐름’과 ‘선택이 아닌 편의성’을 약속하는 오늘날 디지털 플랫폼의 마케팅 전략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선택조차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도록 밀어붙이는 초연결성의 힘이다. 넘칠 정도로 풍부한 디지털 콘텐트의 마찰 없는 초접근성은 문화적 객체의 가치를 감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디지털화된 문화적 객체는 무한히 복제될 수 있고 마찰 없이 배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문화 소비는 개인화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기 주도적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디지털 이전의 대중문화 소비 형태보다 더 적극적이지도 않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소셜 미디어에서, 디지털 플랫폼에서 매 순간 마주하는 화면에서 때로 소비자는 어떠한 선택도 하지 않거나, 마음이 끌리지 않는 동영상의 나머지 부분을 건너뛸 수 있도록 손가락을 휙 움직이는 동작을 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관여도 하지 않는 일이 많다. 초연결성과 ‘경제’ 플랫폼-매개되는 노동은 유연하지만, 점점 더 작은 단위로 소형화되고 디지털 감시의 대상이 된다 경제 영역에서 이 책은, 거대 플랫폼인 아마존, 구글/알파벳, 페이스북/메타를 예로 들어 논의를 전개한다. 이 같은 플랫폼들은 핵심적인 경제, 사회, 정치, 문화 및 인지 하부구조에 대해 확고한 사적 권력을 행사하는데, 이때 기반적이고 편재적이며 일반화되고 점점 더 필수 불가결한 사회기술 시설을 통제하면서 하부구조적 권력을 행사한다. 또한 플랫폼들은 기존의 노동 제도를 해체하고 새로운 형태로 짜 맞추고 있다. 플랫폼-매개 노동의 가장 큰 특징은 ‘유연성’이다. 플랫폼들은 기존에 하나로 묶여 있던 일자리(job)를 분리하고 떼어내어 더 작은 단위들로 작업화한다. 유연성의 핵심 요소는 소형화인데, 플랫폼들은 점점 더 작은 단위의 노동을 구매할 수 있게 해준다. 많은 크고 복잡한 디지털 작업을 쉽게 나눌 수 있다. 즉, 작은 단위로 쪼갤 수 있고 작업이 완료된 뒤에는 다시 그러모을 수 있다. 알고리즘에 의해 작동하는 시스템은 디지털 방식으로 매개되는 작업 프로세스의 모든 측면에 의해 생성되는 데이터를 포착하고, 고객을 노동자 평가에 참여시키며, 센서를 효율적으로 사용해 신체적 움직임, 상세한 운전 데이터, 노동자들 간의 커뮤니케이션 패턴, 심지어 건강 및 운동 데이터까지 포함해 점점 더 광범위한 데이터를 기록함으로써 노동자를 평가한다. 간단히 말해서, 알고리즘적 평가는 만연해 있는 디지털 감시에 의존한다. 초연결성과 ‘정치’ 초연결성은 어떻게 도덕적 격분을 생성하고 장려하는가? 정치 영역에서 이 책은, 유해한 정치적 정동(affect)의 동원과 관련된 한 측면, 즉 초연결성이 어떻게 도덕적 격분을 생성하고 유통하며 경험하게 만들며 그것들을 장려하는가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디지털 마찰 없음으로 인해 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상과의 디지털적 거리감이 격분을 표현하는 데 드는 감정적 비용도 줄여주기 때문에, 격분을 표현하는 데 드는 비용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 결과, 격분할 만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의 임곗값이 낮아졌고, 그로 인해 미소-격분(micro-outrage)의 형태들이 급증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극도로 최소화된 정치적 참여 형태들의 등장과 격분할 만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에 대한 낮아진 기준 모두에서 디지털 미디어가 매개하는 ‘소형화’가 작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플랫폼들이 누가 무엇을 믿을지를 ‘통제’한다는 것이다 ‘알고리즘이 보장하는 객관성’이라는 허울 이 책이 말하는 ‘거버넌스 체제’란, 초연결성으로 가능해진 새로운 양식의 ‘알고리즘적 거버넌스’를 의미한다. 알고리즘적 거버넌스는 ‘정부’에 국한되지 않는다. 실제로 그것은 민간 부문에서, 특히 거대 기술 플랫폼들에 의해 훨씬 더 발전되어 있다. 이러한 플랫폼들은 공공부문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정교한 형태의 알고리즘적 거버넌스를 구사할 수 있는 데이터 및 기계학습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이 같은 플랫폼들이 거버넌스 사업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플랫폼들은 플랫폼 안에서 그리고 플랫폼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디지털 아키텍처의 설계와 통제를 통해 이용자들의 활동을 통제한다. 그들의 거버넌스 권력은 공적 생활 영역으로까지 더 광범위하게 확장된다. 플랫폼들은 사교와 오락 영역은 물론이고 지식, 상거래, 노동, 정치 영역에도 점점 더 필수 불가결한 하부구조를 제공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플랫폼들이 누가 무엇을 보는지를 관리 및 통제하고, 따라서 어느 정도는 누가 무엇을 알거나 믿는지, 그리고 누가 무엇을 느끼는지를 통제한다는 것이다. 플랫폼들은 또한 점점 더 개입적인 방식으로 디지털 공론장에서 누가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를 통제한다. 거대 플랫폼들은 민간기업이 소유하고 운영하지만, 그들은 분명 공적 기능을 수행한다. 더 완전하게 자동화된 사전 콘텐트 조정이 이루어지는 세계에서 민간 플랫폼들은 공적이든 사적이든 플랫폼이 매개하는 ‘모든’ 표현에 대해 엄청나면서도 불투명하며 대체로 책임지지 않는 알고리즘적 권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주의력이 제한된 인간 조정자와 달리 알고리즘은 모든 콘텐트를 면밀히 검토할 수 있다. 이러한 자동화된 알고리즘적 콘텐트 조정이 플랫폼-매개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하부구조의 일부로 당연시되게 되면서, 테러리즘, 혐오 표현, 집단 따돌림 등에 대한 정의가 갖는 궁극적으로 정치적인 성격이 기계가 보장하는 객관성이라는 허울 아래 숨겨질 위험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