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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여성들의 죄악 타락 여성들에게 말하기 사랑에 관하여 결론 찾아보기 |
Georges Du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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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불가능에 도전하는 새로운 역사학
‘12세기의 여인들’이라는 제목부터 이 역사책이 대단한 영역을 선구적으로 파고들어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지금까지 역사와 역사학의 주체로 독점적인 자리를 차지해온 남성들과 관련해서도 많은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자료들 12세기에 역사가의 시선을 던진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도전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금까지 역사학의 주류적 시선에 의해 어두움 속에 방치되어온 여성들의 역사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얼핏 보면 과감한 용기를 넘어 무모한 만용처럼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뒤비의 태도는 이처럼 사료가 전혀 부재하고 어두움 속에 묻혀 있는 역사적 소수자의 역사에 대해 하나의 도전으로서의 역사학을 넘어 상상력으로서의 역사학으로 나아가려고 하는데, 이것은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따라서 이렇게 되면 빼어난 중세학자로 이름 높은 저자의 이러한 작업은 단순히 남성 사학자의 여성사 연구라는 새로운 도전으로서만이 아니라 상상력과 역사와 소수자라는 우리 시대 인문학의 여러 고민을 선구적으로 아우르고 있는 셈이다. 그의 작업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기, 지금까지 배제되어 왔던 것을 그러한 배제를 주도해온 지배적?남성적 권력의 시선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동시에 새롭게 구성하는 것을 기본적인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하늘의 절반, 인류의 절반을 차지해왔으면서도 인문학이나 역사학에서는 거의 아무런 지면도 차지하지 못했던 여성의 역사를 12세기라는 가장 어두운 구석에서 탐구하는 뒤비의 시선은 그리하여 오늘날의 여성학, 남성의 지배적 담론, 역사적 상상력에 대해 재검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고 있다. 여성사, 여성의 역사라는 말이 등장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21세기는 여성들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여성에 관한 연구는 최근 가장 각광받는 연구 분야 중의 하나가 되었다. 역사가 정치사, 경제사를 중심으로 연구되던 과거 여성은 역사에서 희미한 배경 이상의 역할을 하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뒤비의 이 책처럼 당당히 역사 서술의 주체로서 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이른바 심성사의 도입과 더불어 역사가의 시선이 개인적, 사적인 영역에까지 미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연구와 시선의 확대는 동시에 남성과 여성의 관계나 내지 사회사로 확대되지 않으면 자폐적이고 일면적이기 쉽다. 아마 뒤비를 비롯한 아날학파의 선구자들이 추구한 여성의 역사에 대한 관계사적 관점에서의 접근이 빛을 발하는 지점이 바로 이곳일 것이다. 즉 여성을 여성 자체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남성들의 관력과 집안에서, 궁정에서, 사회에서 어떤 관계를 역사적으로 형성해왔는지를 탐구하는 것이야말로 남성 중심주의를 해체하는 동시에 여성 고립주의를 동시에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여성사 연구에 앞장선 남성 역사가, 조르주 뒤비 프랑스 신(新)사학을 대표하는 역사가의 한 사람인 조르주 뒤비(1919~1996)는 1980년대 이후 만년을 여성사 연구에 바쳤으며,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발표한 ?12세기의 여인들Dames du ?e siecle?(전3권)로 긴 학문적 생애를 마감함으로써 여성사 연구에 앞장선 남성 역사가라는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여성의 역사는 그의 학문적 여정의 귀결점이었고, 그 후로 중세의 여성들 자체가 그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여성을 사회적 관계나 망탈리테, 제도 등으로부터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아니며 그럴 수도 없는 일이지만, 문제는 그러한 사회적?종교적?경제적 틀보다도 그 가운데서 여성에게 주어진 삶의 여건이나 여성에 대한 당대의 시각이 어떤 것이었던가 하는 것이었다. 1980년대 이후 뒤비는 강의와 세미나들을 통해 이런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루었으며, 1990년에는 미셸 페로와 함께 ?여성의 역사?의 편집을 총지휘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러한 노력의 결실로 나온 ?12세기의 여인들?은 노대가의 마지막 저서로 또 특유의 유려한 문체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12세기의 여인들은 윤곽도 깊이도 개성도 없는 흐릿한 그림자일 뿐 12세기는 서양 중세 사회가 고대 문명 몰락 후의 침체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시작하는 이른바 ‘12세기 르네상스’의 시대로, 중세 천년 중에서는 비교적 많은 조명을 받는 시기이다. 하지만 초점이 개별 인물에 이르러서도 뚜렷한 윤곽이 드러나기에는 아무래도 먼 시대이니, 이 시대의 남자들, 가장 유명한 남자들, 세상을 바꿔놓은 자들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그만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여자들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녀들은 윤곽도 깊이도 개성도 없는 흐릿한 그림자일 뿐이다. 따라서 이 연구의 대상은 사실상 12세기 프랑스의 여인들 중에 사료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계층인 귀족 계층의 여인들 즉 귀부인들에 국한된다. 뿐만 아니라 이 여인들에 대해서도 남아 있는 사료란 너무나 희박한 것이어서 드문 초상과 유물들 외에는 텍스트, 그것도 주로 남성들에 의해 씌어진 글이 전부이다. 그러니 역사가가 포착할 수 있는 여인들의 모습이란 실제의 모습이라기보다 남성들의 눈에 비친 모습일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우선 12세기의 여인들 중 그나마 이름이 남고 모습이 분간되는 몇명의 여인을 소개하고(1권), 상류 귀족가문에서 전해져 오는 선조 여성들에 관한 기록을 통해 당대 기사들의 여성관을 추적하고(2권), 이어 고해지침서 및 신앙지침서들을 통해 성직자들의 여성관을 검토한다(3권). 시간의 지층을 조심스레 파헤쳐가는 이러한 탐사를 통해 12세기의 여인들은 과연 얼마나 모습을 드러낼까? 알리에노르 다키텐, 엘로이즈, 쥐에트 프랑스의 왕비였다가 영국의 왕비가 된 알리에노르 다키텐, 그 유명한 사자심왕 리처드의 어머니였던 그녀는 문학사에서도 이른바 궁정풍 연애와 궁정풍 소설이 발흥하는 무대가 되었던 궁정의 여주인으로 이름이 높다. 하지만 알리에노르는 남성들의 권력 게임에서 한갓 장기말로 이용당하는 처지였으며 첫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두번째 남편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남성 역사가들에 의해 음욕과 방탕의 화신으로 그려졌다. 성서에 나오는 여러 명의 마리아도 이 시대에 이르면 동일한 인물로 선포되고 막달라 마리아는 단연 죄많은 여인이자 참회하는 여인이 되었다. 이 시대의 여성들은 남성들의 죄된 정욕을 만족시켜 주는 동시에 그 정욕의 근원으로서 참회해야 마땅한 죄인들로 여겨졌던 것이다. 아벨라르에게 사랑을 호소하는 엘로이즈는 육신의 정욕을 대변하며, 그런 엘로이즈를 달래고 타이르는 아벨라르는 육신의 정욕을 종교적인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교회의 입장을 대변한다. 그리고 중세문학의 대표적인 사랑 이야기인 트리스탕과 이죄의 이야기는 남녀간의 사랑을 이처럼 벗어나야 할 육신의 정욕으로 치부하며 두 연인이 약 기운에서 해방된 후에도 육신의 정욕을 넘어서 서로 사랑했다고 전한다. 역사상 중요한 인물도 아닌 쥐에트라는 이름의 젊은 과부는 중세남성들의 욕망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채 죄인 취급을 받는 상황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그럼으로써 독자적인 권력까지 획득한 은둔수녀였다. 여성들에게 육신의 정욕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라던 남성들의 요구를 그대로 실천함으로써 그녀는 오히려 남성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중개자가 됨으로써 여성 추종자들은 물론이고 남성 성직자들에게까지 군림하는 권력을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여성이 남성 본위 사회에서 용인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도시 성직자들에 맞서려는 개혁 수도회들이 그녀를 이용했기 때문이었다. 사회는 그녀에게 그런 효용 이상의 영향력을 허락하지 않았으니, 그녀는 결국 시성(諡聖)되지 못했고 그녀의 권력은 계승되지 않았다. 마지막 여인은 ?클리제스? 라는 문학작품 속의 인물로 주인공 클리제스와 페니스의 관계를 통해 남녀의 자발적인 애정에 기초한 결혼이라는 새로운 이상을 제시한다. 명성과 지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남성들에 의해 객체화되는 것을 면할 수 없었던 알리에노르에서 시작하여 그런 수동적 위치에 머물기를ㄹ 거부하고 자발적인 애정의 주체로 등장했던 소설의 여주인공에 이르기까지 남성들의 눈에 비친 그녀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미미하나마 변화를 읽을 수 있다. 2권에서는 상류 귀족 가문에서 전해져오는 가계문학을 통해 선조 여성들의 모습을 추적하는데 역시 뒤로 갈수록 여인들은 좀더 힘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귀부인들의 덕성과 그들이 자신들의 가계에서 수행한 역할을 기리는 12세기의 문헌들을 근거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이러한 계보학적 작품들로부터 이 여인들이 영위했던 삶, 그들이 지닌 가치, 그리고 그녀들에게 불멸성을 부여한 성직자 작가와 기사도 작가들이 그녀들을 바라본 방식에 대한 생생한 그림이 떠오른다. 1부에서는 망자들이 - 기억과 전설에서 - 어떻게 12세기의 귀족 사회를 결속시켰는가를 간추려 보여준다. 2부에서는 뒤동 드 생 캉태의 작품 ?무훈시?를 끌어오면서 중세의 가문들을 자리잡게 한 거대한 권력의 변동과 전쟁의 시기에 부인들과 정부들 그리고 다른 여인들이 수행한 역할을 되짚어보고 있다. 3부에서는 아르드르의 사제였던 랑베르의 작품을 통해 아내, 어머니, 과부로서의 여성의 모습을 재구성해낸다. 3권에서는 12세기 유럽에서 여성과 교회 사이에 형성되었던 관계를 탐구한다. 그 당시 교회는 점점 커져가는 여성의 역할과 성취욕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있었으며, 이에 따라 “여성 문제”를 주제로 한 성직자들의 글이 세상을 뒤덮게 된다. 이 글들을 살피면서 원죄 개념에 어떻게 성(性)이라는 개념이 새로이 끼어들게 되었으며 어떻게 여성이 마술, 불복종, 음탕함 등과 같은 각각의 죄악들의 구현체이자 행위자로 손가락질 받게 되었는지를 고찰한다. 그 다음으로 이브 때문에 인간(남성)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것을 다루고 있는 ?창세기? 부분에 대해 12세기 사람들이 남긴 논평들을 평가한다. 이러한 글들과 그것들이 근거하고 있는 이전 작품들을 이용하여 여성이 불안정하고 호기심이 많으며 경박한 존재라고 보는 시각 뒤에 감추어진 논리를 분석해낸다. 이러한 논리를 수녀와 고귀한 지위에 있는 여성들에게 성직자들이 보낸 편지에서도 찾아낸다. 이러한 편지들에서는 비록 아내와 어머니로서 그들이 보여준 전통적 미덕에 대한 찬사가 산을 이루고 있다 해도, 불안정성과 경박함이라는 죄목이 여성들에게 돌려진다. 마지막 장에서 앙드레 르 샤플랭(안드레아스 카펠라누스)의 유명한 작품 ?사랑의 기술?과 12세기에 등장한 궁정식 사랑의 전통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궁정식 사랑을 여성 그리고 그들이 죄악 및 교회와 맺고 있는 관계를 둘러싼 논쟁에 대한 계산된 해결책으로 간주한다. 중세가부장사회에서 펼쳐지는 여성의 삶과 사랑에 대한 새로운 통찰 남성의 권력이 여성들에게 치는 장막 아래로, 권력이 그녀들을 가두어두려는 성벽 너머로, 그리고 역사가의 눈을 가로막는 남성들의 모욕과 경멸이라는 장벽 뒤로, 그네들끼리 나누는 비밀과 사랑으로 단단히 결속된 여성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녀들은 가속들에게는 아내라는 지위를 통해, 자녀들에게는 모성을 통해 , 주위에 모여드는 기사들에게는 자신들의 교양과 아름다움, 신비한 힘을 통해 큰 힘을 행사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그녀들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남성들은 그녀들을 죄악의 불안으로 약화시키려 애썼던 것일 터이다. 12세기의 프랑스 귀족 여성에 대한 뒤비의 삼부작 마지막 권인 ?이브와 교회?는 이 탁월한 역사가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중세사와 여성사를 공부하는 학생과 연구자 모두뿐 아니라 여성과 종교를 둘러싼 오늘날의 논쟁에 관심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언제까지나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