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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
서문 “물리학”이라는 전문용어에 관하여 서론 1장 만물은 수數 2장 수학자로서의 신 3장 천구天球들의 조화 4장 기계론의 승리 5장 수학적 인간(남성)의 등장 6장 신, 여성, 새로운 물리학 7장 구원으로서의 과학 8장 과학 성자 9장 양자역학과 “만물이론” 10장 수학적 여성의 등장 해설: 인류 최고의 물리학은 아직 오지 않았다(임소연) 미주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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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태양 둘레를 도는지 태양이 지구 둘레를 도는지가 도대체 왜 문제인가? 물리학책 대다수에서, 교실 대다수에서, 이는 그저 중심에 있는 것이 푸른 점이냐 노란 점이냐 하는 천체 기하의 문제로 제출될 뿐이다. 그리고 사실상 아무런 맥락 없이 우리는 코페르니쿠스가 마침내 노란 점을 중심에 둠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라고 배운다. 대다수 학생에게, 이 모든 것은 추상적인 수학적 게임으로만 보인다.
하지만 이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우주 체제의 중심이 태양인지 지구인지는 천체 기하만의 문제가 아니라(물론 그 문제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문화에 대한 심오한 문제이다. 중세의 지구 중심적 우주론과 17세기 말의 태양 중심적 우주론 사이의 선택은 우주적 체제 안에서 인간의 위치를 근본적으로 다르게 보는 견해 사이의 선택이다. 우리는 자신을 천사들로 가득 찬 우주, 모든 것이 신과 관련된 우주의 중심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광막한 유클리드 공간 안에서 목적 없이 회전하는 거대한 암석의 주민으로 볼 것인가? 지구중심설에서 태양중심설로 이행하는 과정은 경험적 천문학의 승리만이 아니라 서구 문화사의 전환점이었다. --- p.12~13 이 책에서 나는 서구 문화에서 물리학의 발전 과정을 종교적 정신에서 비롯한 것으로 추적하려 한다. 갈릴레이 사건이 있었음에도, 17세기 물리학자들과 신학자들이 앙숙이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13세기에서 18세기까지, 수리과학의 기수들은 의식적으로 교회와 제휴하고자 했다. --- p.26 여성은 한편으로는 성서를 해석할 권리를 놓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적으로 신의 “또 다른 책”으로 여겨왔던 자연을 해석할 권리를 놓고 싸워야 했다. 하지만 여성은 이제, 로마가톨릭교회만을 제외한다면, 그리스도교 교파 대다수에서 성직에 참여하고, 마찬가지로 물리학만을 제외한다면, “과학 교회” 분야 대부분에 참여한다. 그러니까 물리학은 말하자면 과학의 로마가톨릭교회인 셈이다. 이런 유비는 그저 기발한 은유만은 아닌 것이, 물리학이란 그 뿌리가 종교와 가장 긴밀히 얽혀 있는 과학이기 때문이다. “과학 교회”의 가장 정통적 교파로서, 물리학은 여성이 뚫고 들어가기에 가장 힘든 분야이다. --- p.29 문제는 물리학을 남성이 수행한다는 데에 있지 않다. 물리학을 지배해온 남성들이 특이한 부류라는 것이 문제다. 수학적 인간(남성)의 문제는 수학이나 남성성 그 자체가 아니라, 그가 그처럼 쉽사리 사로잡히곤 하는 유사 종교적 이상과 자기상 들이다. 그는 성전환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격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 p.37~38 피타고라스적 이원론이 등장했다. 한편에는 선의 자질과 홀수성과 남성성이, 다른 한편에는 악의 자질과 짝수성과 여성성이 확연히 구분되었다. 대체로, 고상하고 좋게 여겨지는 자질은 남성 편으로, 저급하고 나쁘게 여겨지는 자질은 여성 편으로 나뉘었다. 일반적으로, 피타고라스적 수학자의 의무는 개별 수(홀수든 짝수든)의 특성과 그들 사이의 관계(수적이든 윤리적이든)를 발견하는 것이었으며, 따라서 수학자는 어쩔 수 없이 윤리학의 생도가 되었다. 수학과 윤리학을 별개로 보는 현대적 사고방식은 피타고라스를 기겁하게 했을 것이다. 그는 수학이 파괴적 기술 개발에 동원될 수 있으며, 따라서 도덕적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이해했던 최초의 인물이었다. --- p.51~52 당시 기록에 따르면, 이 박식한 주교는 정기적으로 신부들을 시켜 수녀들에게서 젖이 나는지 짜보게 했다고 한다. 그럼으로써 그로스테스트는 “누가 타락했는가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또한 여성이나 가족이 완벽히 배제된 생활을 이상으로 삼았으며, 그가 그린 완전한 지식인 공동체란 전적으로 남성적인 세계였다. 그래서 그는 피타고라스-플라톤적 형이상학을 구축하면서도, 여성에 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여성이란 정신적으로 불완전하며, 한 몫의 인간에 미달하는 존재라고 보았던)의 편을 들었다. 여성에게 정신적 결함이 있다는 생각은 이후 세기 동안 여성이 대학 즉 수학 교육의 중심지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 또 다른 걸림돌이 되었다. --- p.83 천구들의 완전성은 신과 얼마나 가까운가에 정비례했다. 인류가 사는 영역은 신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가장 비천한 것이었다. 그리스도교 시대 전반에 걸쳐, 이처럼 층위를 이루는 우주는 농부를 맨 밑바닥으로, 왕을 맨 꼭대기로 하는 계층 사회의 질서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태양중심설은 근본적으로 다른 모형을 제시했다. 먼저, 이 체계에서는 지구도 행성의 하나로 분류되었다. 지구는 이제 다른 여러 천체와 한 가족이 되었으며, 우주의 시궁창으로는 보기 어려웠다. 둘째, 태양신 아폴론에 대한 피타고라스적 숭배에서 비롯한 전통에 따라, 코페르니쿠스는 신을 머나먼 별들보다는 태양에 두었다. 그리하여 그의 우주론에서는 지구가 신으로부터 우주의 반대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가까이 있는 셈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또한 지구를 포함한 모든 행성이 태양 빛을, 다시 말해 신의 광명을 직접 받는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인류는 하나님의 광명을 다른 어떤 천구의 여과도 거치지 않은 채 그대로 받는 것이었다. 인간 사회의 질서에 대한 전형으로서, 태양중심설은 그러므로 엄밀히 위계적인 사회를 정당화하는 데 지장을 초래했고, 이는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뿐 아니라 생활양식 전반을 위협했다. --- p.107~108 세기 초의 프랑스 기계론자처럼, 영국 과학의 새로운 지도자들도 혹시 이단적으로 보일 만한 것(여자도 포함되었다)을 멀리하기에 열심이었다. 왕립학회의 또 다른 창설 회원인 월터 찰턴Walter Charleton은 여성에 대한 자기 동료들의 적대감을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했다. “그대들은 살가죽의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미혹하는 하이에나들이요 …… 지혜에 대한 배신자들이요, 산업에 대한 방해물이요, 미덕에 대한 장애물이요, 우리 모두를 악덕과 불경건과 파멸로 몰고 가는 선동자들이오.” 학회의 초대 서기였던 헨리 올덴부르크Henry Oldenburg는 학회의 시급한 목적은 “남성적인 철학을 북돋아 …… 인간(남성)의 정신이 견고한 진리들에 대한 지식으로 고상해지게 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영국 과학의 이 방어 요새는 1945년 이전까지 여성을 정회원으로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역사가 론다 시빙어가 심술궂게 지적했듯이, “거의 300년 동안, 왕립학회에 유일하게 상주했던 여성은 해부학 표본으로 보존된 해골이었다.” --- p.155~156 종교재판관들은 만일 갈릴레이가 결정적 증거를 제시한다면 자신들의 관점을 재고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지만, 갈릴레이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태양중심설이 하나의 가설일 뿐이라고 인정해야 했다. 이것이 저 유명한 재판의 결과였다. 갈릴레이는 태양 중심적 우주론 및 그것이 지구 물리학에 미치는 영향 등에 관해 생각하기를 포기하라는 명령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는 단지 그 주장이 가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던 것뿐이다. 17세기 초에, 로마가톨릭교회는 수리과학에 반대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다만 교회는 고작 그렇게 빈약하고 애매한 증거만으로 저 하늘 위의 일에 관한 권위를 수학적 인간들에게 넘겨야 할 이유가 없었다. (……) 결국 태양중심설의 타당성이 입증되었더라도 교회가 잘못이었다고는 할 수 없다. 급진적인 신新이론에 대해 구체적인 증거를 요구하는 것은 폭정이 아니라 훌륭한 과학적 태도이며, 과학자들 자신도 그보다 덜 요구하지는 않았을 터이다. --- p.174 뉴턴이 사적으로는 어떤 이단 사상을 지녔든, 공적으로는 자신의 과학으로 정통 신앙에 기여하고자 했으므로, 뉴턴의 자연철학은 곧 과학과 그리스도교(특히 영국 성공회)의 강력하고 새로운 연합의 기초가 되었다. 과학은 점차 세속적인 환경에서 연구되었지만, 뉴턴의 영향을 받은 수학적 인간들은 여전히 재속사제在俗司祭나 다름없는 역할을 했다. 그를 본받아, 여러 세대의 뉴턴주의자들은 그들의 과학을 신 및 신과 세계의 관계에 대한 정통 프로테스탄트적 입장들을 옹호하는 강력한 도구로 삼았다. 갈릴레이가 물리학자와 신학자 간의 긴장 관계를 시사했다면, 뉴턴은 상호부조적 관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갈릴레이는 자연에 대한 인식 능력을 교회에서 탈취하는 데에 열심이었지만, 뉴턴은 그 힘을 교회와 나눠 갖고자 했다. 데카르트적 기계론의 무신론적 경향들을 물리치고, 자신의 우주론을 적극적으로 섭리하는 신성의 논거로 사용함으로써, 뉴턴은 과학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했다. 그에게는, 우리 주위의 세계를 완전하게 인식하려면 과학과 종교가 모두 필요했다. 이 불멸의 수학적 인간이야말로 교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협조자였으며, 물리학과 종교를 더없이 긴밀하게 결속시킨 인물이었다. --- p.193 퐁트넬은 귀족 여성을 새로운 과학의 잠재적 동업자로 보았다고는 하지만, “학문 활동을 살롱의 대화와는 상반된 것으로 정의했다”라고 테랄은 지적한다. 그는 새로운 과학을 전파하고 합법화하는 데에는 여성의 도움을 이용했지만, 과학 지식이 실제로 생산되는 공식적인 장소에까지 여성을 초대할 의사는 전혀 없었다. 여성은 과학의 관중이고 전파자는 될 수 있어도, 그 활동은 남성의 특권으로 남아야 했다. 바꿔 말하자면, 아카데미 회원은 살롱에 갈 수 있었지만, 살롱 여성은 아카데미에 갈 수 없다고 퐁트넬은 분명히 선을 그었다. 『세계의 다수성에 관한 대화』에서 그는 후작 부인은 이해할 수 있는 데까지만 이해하면 되고 그 나머지 많은 부분은 여성으로서는 몰라도 된다고 강조했다. 이 “고차원의” 진리는 학회의 고상한 남성적 정신의 몫으로 남겨졌다. 그리하여, 프랑스에서도, 과학은 “사제적인” 핵심을 견지하고 있었고, 그 공식 장소(아카데미)는 엄밀히 남성적인 것이었다. --- p.204~205 물리학에 대한 유사 종교적 태도는 자연의 “법칙들”에 대한 탐색은 오로지 남자에게만 어울리는 “사제적” 행위라는 오랜 믿음에 기름을 끼얹는 부작용을 낳았다. 칸트(신학자 훈련을 받았고, 평생토록 여성을 멀리했다)는 과학은 의당 “남성적인 풍모”를 지닌다고 선언하면서 감히 이 신성한 영역에 들어서려는 여성들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다시에Dacier 부인처럼 머릿속에 희랍어가 가득한 여자, 샤틀레 후작 부인처럼 복잡한 역학 토론에 끼어드는 여자는 수염이 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는 편이 그가 추구하는 심오함을 더 알아보기 쉽게 해줄 테니까.” 또 다른 글에서는 이렇게도 썼다. “여성은 데카르트의 소용돌이가 영구히 돌도록 상관 말고 내버려 두라.” 이렇듯, 18세기 후반의 물리학 분야에 여성이 없는 것은 과학의 종교적 기조 탓만이 아니라, 교육받은 여성 일반에 반대하는 계몽주의적 감정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가령, 1788년 괴팅겐 대학 교수이던 크리스토프 마이너스는 네 권짜리 역사책을 써서 유럽을 “현학적 여성이라는 재앙”에서 구하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런 사회적 반대가 아니더라도 물리학의 기저에 있는 암암리의 종교성은 여전히 여성에게 강력한 또 하나의 장벽으로 작용했다. --- p.221~222 화이트와 드레이퍼의 목표는 특히 기성 종교를 실추시키는 데 있었다. 드레이퍼는 로마가톨릭교회가 주도권을 잡았던 천 년을 지적 침체기로 묘사했다. 그가 이 시기의 “암흑”에 대하여 대표 사례로 중세인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다는 것을 들었는데, 역사가 제프리 버턴 러셀이 보여주었듯이, 중세의 제대로 된 학자치고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드레이퍼는 교회와 그 추종자들이 무지했다고 주장하는 한편, 과학은 진리를 향해 장족의 진보를 이루어왔고 미국의 노예제도나 러시아의 농노제도가 사라진 것도 모두 과학 덕분이라고 설파했다. 한마디로 그에 따르면 과학은 그 광명을 기꺼이 받아들인 모든 사회에게 위엄과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 인류를 무지와 암흑 가운데 붙들어두려는 신학자들과는 대조적으로, 화이트와 드레이퍼가 그려 보이는 과학자는 진리와 진보를 위해 과감히 일어선 자들이다. 그런 이상형이 바로 신화적 인물이 된 갈릴레이, 즉 인간 정신에 있는 모든 선한(좋은) 것의 권화로서의 수학적 인간이다. --- p.245~246 여성 과학자들은 남성과 더불어 주류에 참여하지 못하고, 여성만의 몫으로 구분된 불평등한 영역으로 밀려났다. 이런 사태의 결과, MIT처럼 신기술에 기초한 교육과 사고의 중심에 있는 학교에서 일하는 여성은 거의 없었다. 그리하여 여성은 이제 일상생활을 변혁하고 있는 바로 그 일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 또한 과학의 전문화는 학교의 과학 학과의 전문화도 가져왔다. 과학이 수십 가지 전문화된 분야로 세분화하기 시작함에 따라, 대학들은 분야마다 별도의 학과를 개설하기 시작했으며, 곧 이학박사Science PhD도 창안되었다. 그리하여 대학원들이 생겨났다. 이학박사니, 대학원이니 하는 혁신은 또다시 여성을 한층 더 소외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는데, 대학원들은 거의 언제나 시설이 더 좋고 재정도 더 든든한 남자 대학들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여자대학은 전문화된 과정을 개설할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과학 분야에서 좋은 직장을 구하려면 박사 학위가 점차 더 필요해졌고, 박사 학위 없는 여성은 진급도 바랄 수 없었다. --- p.251~252 아인슈타인의 우주적 종교는 기성 종교들에 대한 대안으로 제출된 것이다. 실로 그는 기성 종교들이 과학의 적이라고 믿은 사람의 하나였으며, 자신의 “우주적 종교 감정”이야말로 유일하게 진정한 믿음이라고 피력했다. 위의 인용문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난다. “이 물질주의적 시대에 진지한 과학자들이야말로 유일하게 종교적인 사람들이라고, 우리 시대 누군가가 한 말에는 일리가 있다.” 근래에는 아인슈타인 자신이 대제사장으로서의 과학자를 구현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의 우주론적 이론, 신에 관한 그의 인용할 만한 발언들, 과학의 과정 자체에 대한 수수께끼와 같은 발언 등이 한데 엮여, 종교적 신비가로서의 물리학자라는 대중적 인물(그가 가장 먼저 고취한 이미지이다)을 만들어내기에 이른 것이다. --- p.279~280 이 새로운 세계상은 전적으로 남성이 만들었다. 양자역학의 창시자와 상대적 우주론의 초기 탐색자 중에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후 물리학의 대부분이 이 생산적인 몇십 년간의 통찰을 정교하게 다듬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왔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기간 동안 물리학 분야에서 여성이 없었다는 사실은 17세기 물리학 분야에 여성이 없었다는 사실만큼이나 의미심장하다. 20세기 초 유럽 과학계가 여성에게 얼마나 배타적이었던가는 아인슈타인과 동시대를 살았던 여성 과학자 두 명(독일 수학자 아말리에 에미 뇌터Amalie Emmy Noether(1882-1935)와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Lise Meitner(1878-1968))의 생애를 비교해보면 잘 드러난다. 아인슈타인 자신이 학계 상아탑에서 받았던 냉대는 이 여성들이 당했던 처사에 비하면 하잘것없다. --- p.284~285 물리학은 단일성이 아니라 난처할 정도의 다양성(한없이 증가해가는 아원자입자들을 비롯하여)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게 엄연한 반대 증거들이 있는데도 그런 다양성 뒤에 단일한 원리가 있다고 믿으려면 대단한 믿음의 도약을 거쳐야 한다. 나는 그런 믿음이 순전히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다기보다는, 문화적 전통, 특히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의 일신교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우주가 다양한 원리(다신교의 과학적 변형)에 따라 조성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물론 힘들의 단일성을 시사하는 과학적 증거들이 전혀 없지는 않다. 분명 그런 증거도 있다. 하지만 확실히 압도적 증거가 되기에는 한참 모자라며, 단일성에 대한 만물이론 물리학자들의 광신적 믿음은 현재까지 입증된 증거들을 넘어선다. 통일의 직접적 증거가 (반세기 동안의 노력과 수억 달러의 투자에도) 그토록 얻기 힘들다는 사실 자체가 신뢰 지수의 정도를 말해주는 것이다. 만물이론 탐색의 종교적 기조는 무의식적이지만은 않으며, 점차 만물이론 물리학자들 자신이 통일이론과 신을 결부시키고 있다. --- p.324 하버드 대학 물리학과는 1970년대에 반反차별법으로 불가피한 상황이 되어서야 여성을 교수진에 받아들였으며, 그것도 전임강사급junior faculty이 고작이었다. 하버드 대학에서는 1992년에야 여성 물리학자를 정년 보장 교수로 임용했으며, 프린스턴 대학에서는 1995년 초까지도 여성에게 정년직을 주지 않았다. 물론 양 대학의 학과들은 그럴 만한 역량을 갖춘 여성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항변했겠지만, 아이젠버그셀러브가 지적하듯이, “하버드에건 다른 어느 대학에건, 이류밖에 안 되는 남자 교수가 많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음과 같이 짓궂은 말을 덧붙였다. “나는 이류밖에 안 되는 여성이 정년직을 받는 것을 보게 되면 비로소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없어졌다고 믿겠다.” --- p.334 아인슈타인이 그처럼 사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경멸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만년에 오로지 그를 돌보는 데 헌신하는 두 번째 아내를 맞이한 덕분이었다. 그가 우주적 조화의 탐색에 몰두해 있는 동안, 엘사는 요리하고, 청소하고, 살림을 꾸리고, 그의 주위에 가정적 안락과 평온의 지대를 만들어주었다. 이는 오늘날의 물리학에서도 드물지 않은 양상이다. 트래윅이 입자물리학계의 생활상을 연구한 것을 보면, 학계의 95퍼센트가 남성인데, 아내가 전업주부로 가사에 전념하고 남편을 돌보는 안정된 결혼을 대단히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고 한다. 트래윅이 면담한 거의 모든 아내는, 엘사 아인슈타인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중요한 과학 연구의 최전선에 있는 남성을 지원하는 자신의 역할을 영광으로 여기고 있더라는 것이다. 극소수의 여성 입자물리학자는 대체로 다른 입자물리학자 또는 적어도 다른 물리학자와 결혼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 p.353 나는 우리에게 새로운 방향의 물리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종교에 가까운 너무나 추상적인 목표에 그처럼 집착하지 않는 물리학, 사회 전반의 필요와 관심사에 좀 더 적극적으로 기여하려는 물리학 말이다. 물리학계를 이런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일이야말로 여성이 일으킬 수 있는 변화일지도 모른다. 모든 여성이 사회복지에 깊은 관심을 지닌 사려 깊은 사람이라거나, 모든 남성은 “하늘”에 닿으려는 망상가라거나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지만, 나는 여성의 대등한 참여가 물리학의 초점을 통일이론에 대한 집착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한 가지 이유는, 무엇보다도, 여성이 이런 종류의 “초월”을 추구하게끔 문화적으로 길들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내 말은, 물리학 그 자체가 좀 더 “땅에 발붙일grounded” 필요가 있으며, 이런 실제적 성격이야말로 우리 문화가 여성에게 길들여온 자질이다. --- p.359 많은 여성 물리학자는 젠더 차이에 관한 이야기를 거북해한다. 이미 일반적인 여성과는 다른 상황이므로, 많은 여성 물리학자는 남성 동료와의 차이보다는 유사성을 강조하려고 한다. 캘리포니아의 포모나 대학에 있는 이론물리학자 캐런 버라드Karen Barad(1956-)는 그런 차이에 관한 글을 썼는데, 여성은 물리학계에서 국외자인 만큼 학계에서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반성이 물리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대한 반성과 이어져 더 기꺼이 의문을 품게끔 한다는 것이다. 가령 자신만 하더라도 젠더에 관해 연구한 결과 양자역학을 다른 방식으로 가르치게 되었다고 한다. 버라드는 또한 자신의 경험으로 보아 물리학을 연구하는 여성은 종종 다른 질문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백인이 아닌 남성에게도 종종 보이는 현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17세기 이래로, 물리학은 거의 전적으로 상류 백인 남성의 전유물이 되어왔으니, 다른 문화적 집단에서 신선한 통찰력과 시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p.362~3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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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한국과 미국의 물리학회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여성, 그것도 한국 여성이 회장으로 선출되었다는 것이다. 2024년에 125주년을 맞은 미국 물리학회 회장으로 임기를 시작한 김영기 교수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 아시아인(여성)으로서는 우젠슝에 이어 두 번째로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또한, 2024년 7월 한국 물리학회 차기 회장으로 선출되어 2025년 1월 임기를 시작하는 윤진희 교수는 한국 물리학회 72년 역사상 첫 여성 회장이다.
21세기도 1/4이 지나간 지금에서야 미국과 한국에서 물리학의 수장으로 여성이 등장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화학, 생물학 등의 다른 과학 분과와 비교해도, 물리학은 특히 여성의 비율도 낮을뿐더러 노벨상 수상자 중에서도 여성이 수상한 사례가 적다. 극히 최근(2018년 이후)에서야 여성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나오기 시작했고, 그전의 100여 년 동안 마리 퀴리와 마리아 괴페르트메이어 단 두 명의 여성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왜 물리학에서는 이토록 여성을 보기가 어려운 걸까? 『물리학이 잃어버린 여성』의 저자이자 대학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한 마거릿 워트하임은 이 질문에 대해 도발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2500년 동안의 물리학 역사를 훑으며, 그는 여성이 배제되어 온 이유가 서구 물리학 문화 자체의 문제, 즉 기원전 6세기 피타고라스학파에서부터 21세기 물리학계까지 이어져 온 뿌리 깊은 성차별적 편견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물리학이 다른 과학보다도 여성의 진출이 적었다는 것이다. 마거릿 워트하임은 이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에서 시작해 서구의 대표적 과학자인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브루노, 케플러, 뉴턴, 아인슈타인 등이 남긴 발언, 편지, 문헌, 당시 과학계와 종교계의 사료 원문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과학계가 만들어낸 ‘신화’와 ‘이야기’가 아닌 실제의 역사에서 길어 올린다. 특히 르네상스 이후로 과학과 종교가 대립했다는 ‘신화’에 관해 엄밀한 검토 후 반박하면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정말로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를 그의 생애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원문 표현을 그대로 인용해가며 고증하고, 갈릴레이 재판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상황과 당시 갈릴레이의 주장이 가진 문제점을 여러 각도로 분석하며, 과학의 순교자로 알려진 브루노 또한 과학적 견해가 아니라 종교개혁에 관한 주장 때문에 종교재판에 회부되었고 당대 물리학자들도 그의 과학적 견해에 반대했다는 사실을 짚는다. 그러면서, 저자는 종교가 어떻게 저 유명한 과학자들이 이끈 과학의 발전과 깊이 연루되어 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떻게 여성이 체계적으로 배제되었으며 결국 어떻게 물리학이 여성을 잃어버렸는지를 입증한다. 종교가 처음에 수도원을 세울 때는 여성을 받아들였다가 ‘개혁’을 거치면서 여성의 참여와 대학 입학을 금지하게 되는 과정, 그럼으로써 르네상스 이후 각국에서 학회를 세울 때부터 여성의 참여를 막는 전통이 형성되는 과정을 따라가며, 현대물리학계의 여전히 종교적이고 여성 배제적인 경향이 어떻게 피타고라스학파로부터 아인슈타인과 스티븐 호킹까지 이어지는지를 치밀하게 밝힌다. 저자는 수리-물리학이 태동한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남녀 이원론과 여성혐오적 문화가 형성되었고, 중세의 종교 및 철학, 근대과학과 계몽주의를 거치며 이러한 세계관이 더욱 공고해졌다고 말한다. 이로써 우주와 그 우주를 움직이는 법칙 및 섭리는 남성들만이 연구하고 결정하는 것이 되었으며, 여성은 교육받을 수도, 학계에 입회할 수도, 실험실에 들어갈 수도, 마땅히 받아야 할 노벨상을 받을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물리학 역사를 통해, 저자는 여성이 물리학(계)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물리학이 여성을 ‘잃어버린’ 것이며, 과학(계) 그 자체가 여성 배제의 ‘적극적 기여자’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이토록 남성 편향적 물리학이 학계와 사회의 별다른 제동 없이, 만물이론과 같은 유사 종교적 목표를 위해, 인류와 지구 생태계 존속에 쓰일 수 있을 수백억 달러의 예산을 쏟아붓게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성이 화학과 생물학 등의 다른 과학계에 더 많이 진출함으로써 생긴 변화를 나열하며, 물리학계에도 이런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물리학 ‘문화’가 바뀌어야 함을 역설한다. 물리학 문화의 변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사안들, 즉 교육에서의 차별 문제, 남성 위주의 학계에서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여성 배제, 미국 대학 정교수의 여성 비율이 여전히 13%밖에 되지 않는 현실 등을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강조한다. 이는 21세기 전 세계 물리학계 모두와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저자는 명확하게 지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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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물리학을 친근하게 만들 수 있을까?”가 고민이었다는 저자는 그 어려운 일을 결국 해낸다. 이 책에서 딱 한 문장만 골라야 한다면 바로 이 문장이다. “그(의인화된 물리학)는 성전환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격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이 당신의 ‘첫 물리학(사)책’은 아닐 수 있겠지만 ‘재미있게 읽은 첫 물리학(사)책’이 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 임소연 (과학기술학자,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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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가 대체 수학이나 물리학과 무슨 상관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총명하고 대담하고 선동적인 이 책은 논란 이상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 에벌린 폭스 켈러 (MIT 명예교수, 『과학과 젠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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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저술에서 드물고 반가운 종합으로, 상세한 역사 지식과 즐거운 가독성을 인상적으로 결합하고 있으며, 그 모든 것에 이 분야에서는 극히 드문 요소인 깊은 윤리적이고 페미니스트적인 열정을 불어넣고 있다. - 수전 팔루디 (저널리스트, 『백래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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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독성 높은 책은 이른바 물리학이라는, 여성 배척의 경향이 있는 과업에 종교적 존경심을 표한다는 것이 대체 어떤 일인가를 알게 해준다. - 론다 시빙어 (스탠퍼드대학 석좌교수, 『두뇌는 평등하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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