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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다른 종류의 우울함 1장 마지막 미개척지: 행성 도시화 2장 매인每人이 온다: 도시에 대한 권리에 문제 제기하기 3장 도시적인 것은 통합한다: 중심성과 시민권 4장 마주침의 정치 5장 지구 행성에서 비노동의 도시화 6장 혁명의 리허설? 7장 상상의 화용론과 반란의 수수께끼 해제 공간, 정치, 주체에 관한 두 개의 사유 노선, 그 사이에서―서동진 참고 문헌 찾아보기 |
Andy Merrifield
金炳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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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대한 권리에 문제 제기하기|
전작인 『마술적 마르크스주의』에서 메리필드는 앙리 르페브르의 충실한 후계자답게 ‘도시에 대한 권리’를 옹호하며 책을 끝맺었다. 하지만 『마주침의 정치』에서 그는 ‘도시에 대한 권리’라는 급진적 도시 이론의 오래된 구호가 “너무 광범위하면서도 동시에 협소한 어떤 것, (…) 집합적인 분노를 촉발하기에는 너무 공허한 기표인 어떤 것을 정치화”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품는다. 분노한 이들의 요구가 한 도시의 정치 수준을 걸핏하면 넘어서는 상황에서 과연 ‘도시’라는 공간이 저항을 위한 특권적 지형이라 할 수 있는가? 우파가 모든 공적인 규제와 보호를 무력화하고 개인의 책임을 강조할 구실로 권리를 전유하는 가운데서도 ‘권리’가 여전히 저항을 위한 유효한 토대인 것일까? 무엇보다 “노동과 생활공간이 무너지고 전 지구적인 자본에 잠식되고 있는 상황에서 도시에 대한 권리는 유의미한 정치적 구호인가?” 메리필드는 ‘도시’와 ‘권리’를 모두 의문시하는 가운데 새로운 저항 이론을 모색한다. |마주침의 무대에서 촉발되는 저항의 정치| 메리필드는 이 책의 첫 장에서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파운데이션』의 행성 도시 ‘트랜터’를 묘사하며 우리에게 도시에 정박된 시야를 세계로, 행성 수준으로 확대하라고 촉구한다. 절대 다수 인구가 도시의 영향력 아래 살아가고, 도시가 “주거지와 작업장일 뿐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삶을 선도하고 통제하는 중심지”가 된 오늘날, 더 이상 도시의 안팎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그는 르페브르를 따라 우리의 관점을 도시에서 도시적인 것, 행성 도시화로 이동시킨다. ‘도시city’라는 인식론의 사각지대를 떠나 ‘도시적인 것the urban’이라는 마주침의 무대로 존재론적 도약을 감행하는 것이다. 메리필드에게 도시적 공간은 마주침의 가능성에 실재를 부여하는 공간이다. 마주침은 마치 수직적으로 떨어지던 비가 다른 빗방울들과 이리저리 엇갈려 “서로 연결되고, 서로를 두드리고, 서로를 만나며, 서로에게 쌓이듯” 이루어진다. 그리고 바로 그 우연한 순간 새로운 실재, 즉 새로운 정치적 주체가 형성된다. 그것은 잭슨 폴록이 거대한 드리핑 회화를 그리기 위해 화폭에 물감을 뿌리는 순간과도 같다. 즉 “거기에는 폭력과 아름다움이 있고, 흥분시키기도 하고 선동하기도 하고 위협하기도 하는 그런 동일한 자발적 에너지가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도시에 대한 권리”로부터 솟아 오른 전망을 “마주침의 정치”로 이동시키며 어떻게 혁명적 대중이 형성되는지, 그들은 대체 어디에서 그 에너지를 끌어오는지, 어떤 장소에서 군중들이 일어나는지, 그들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장소란 또 어떤 것인지에 대해 묻고 답한다. “수탈된 사람들과 억압받는 사람들, 박탈된 자들과 불만 세력들”, 제임스 조이스 식으로 말하면 ‘매인들(HCE)’이 바로 그 혁명적 대중이다. 그들은 낡은 이데올로기나 구태의연한 구호를 외치는 것에는 관심이 없으며, 광범위하게 반자본주의적인 의제, 시스템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다. 그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계급의식’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공간 전체에 걸친 ‘친화성’, 스피노자 식의 ‘공통 통념’이다. 그들의 조직은 그물처럼 확산되고 소셜 미디어는 그 움직임에 특유의 “전술, 속도, 지형”을 불어넣는다. 도시적인 것은 이렇게 “마주침의 결과로 생긴 드라마의 장소이자, 드라마 자체를 마주치는 장소가 된다.” |“점령하라”, 그리고 “해방하라”| 물론 이러한 마주침이 일어나는 공간은 “선별된 전문가와 기술 관료, 부자들”의 패권이 작동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즉 분노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질서와 합리성이 주입된 추상 공간”에 묶여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행동함으로써 공간이 된다.” 그들은 그 공간에 말썽을 일으키고 새로운 공간을 생산해 낼 수도 있다. 신체적 차이와 이종성을 강조하는 ‘차이 공간’, 지배적 질서를 교란하는 ‘마이너 공간’이 바로 그것이다. 이 새로운 공간에서 사람들은 “생성의 과정 속으로, 뭔가 다른 것이 되어 가는 과정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광장의 열기가 수그러들고 무언가 교착 상태에 빠진 듯한 무력감에 시달리는 지금, 그 어떤 변혁적 정치의 구호도 김이 빠져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메리필드는 혁명의 씨앗은 바로 지금, 실패와 위기의 순간에 뿌려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저항의 칼날을 더욱 날카롭게 벼린다. 그가 카프카의 『성城』의 우화를 들며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의 출입증을 얻기 위해 성의 논리를 내면화하는 비극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마주침의 정치”란 ‘살아 있는 노동’이라는 것이 멸종 위기에 처한 포스트 노동의 시대, 회복해야 할 중심부가 사라진 포스트 도시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저항 이론의 출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