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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시작하며 ― 카페, 사교와 놀이 그리고 담론
이스탄불, 카페는 오리엔트로부터 ― 카페의 탄생과 동방 취미 파리, 카페 프로코프 ― 프랑스 최초의, 그리고 유럽 최초의 문학 카페 파리, 되 마고와 플로르 ― 파리의 멜랑코리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베네치아, 카페 플로리안 ― 카페 플로리안으로 가자” 로마, 카페 그레코 ― “만세 로마, 만세 그레코!” 마을 골목길, 멋스러운 카페를 찾아서 ― 잃어버린 시간을 위하여 런던, 커피하우스와 클럽 ― 좋은 취미를 위한 한 잔의 차 빈, 카페 첸트랄 ― 세기말 미학의 빛과 그림자 베를린, 로마니셰스 카페 ― 보헤미안들의 벨 에포크 프라하, 카페 우니온과 아르코, 슬라비아 ― “저기에 사후의 명성이” 부다페스트, 카페 제르보와 뉴욕 ― 도나우강에 흐르는 커피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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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는 갖가지 모습을 지녔다. 가끔은 가난한 서생(書生)이 재미있는 이야기로 손님들을 즐겁게 하며 푼돈이라도 벌어들이는가 하면 의젓한 학식자가 도덕적인 열변을 토하기도 하였다. 카페에서의 잡담이나 화제에는 음담패설이 많았다. 정숙한 여성에 관해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퍼뜨리는 짓은 이슬람법에 의해 80회의 채찍형을 받게 되어 있었으나 카페 단골들은 여전히 금단의 이야기를 즐겼다.
-이스탄불 ; 카페는 오리엔트로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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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대, 혁명 전야는 ‘검은 소문’이 난무하고 사람들은 스캔들을 요구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카페는 대부분 서푼짜리 문사들이 익명으로 쓴 포르노류의 희문(戱文)이나 비방문서의 발신처이기도 하였다. 당시 원한이 쌓인 민중의 가장 좋은 타깃은 고위 성직자와 루이 16세, 특히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그녀는 탐욕스럽고 음탕한 여인으로서 그럴싸하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청년 장교 나폴레옹(대단한 커피광이었던 그는 하루에 커피를 열 잔씩 마셨다고 한다)도 프로코프에 자주 드나들어 찻값을 지불하지 못할 때는 군모를 두고 갔다고 한다. 훗날 ‘프랑스 혁명의 맏아들’임을 자처한 나폴레옹의 역사의식도 그가 철학 카페의 단골이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 파리, 카페 프로코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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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뉴욕은 건물의 두 층을 쓰고 있었다. ‘깊은 바다’로 불린 아래층에는 보헤미안 타입의 가난한 작가, 예술가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언제나 빈털터리인 어느 유머 작가는 “가불 없이 문학은 없다”고 호언장담하였다. 그의 말은 ‘깊은 바다’ 단골들의 슬로건이 되었고 그러한 그들에게 카페 뉴욕은 화끈하게 돈을 빌려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가난한 그들을 위해 ‘작가 전용’ 특별 메뉴까지 만들어 푼돈으로 빵과 소시지를 듬뿍 먹을 수 있게 하였다.
― 부다페스트, 카페 제르보와 뉴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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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이 사랑한 아름다운 카페들, 그곳에 가면 유럽이 보인다
카페는 일상으로부터 해방되어 ‘한가’와 ‘자유’, 그리고 ‘일탈’을 즐길 수 있는 가벼움의 공간이다. 또한 이렇다 할 목적 없이 그저 걷고 싶고 스스로 이방인이 되고 싶은 이들의 은밀한 퍼포먼스의 장이기도 하다. 이것이 카페와 카페 문화가 꽉 짜여진 근대 도시 한복판에서 뿌리를 내린 본질적인 이유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카페는 명문 카페 플로리안이나 프로코프에서 알 수 있듯 신문이 만들어지고 혁명이 속삭여진, 자유의 깃발이 나부낀 공간이기도 하다. 광장 문화와 함께 독특한 카페 문화를 발전시켜 온 유럽의 카페에는 유럽 문화의 주요 특징인 담론과 사교의 풍토가 짙게 깔려 있다. 또한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역사의 증인이자 무대로서, 시인과 작가가 자신의 새 작품을 선보이는 공간이자 정보를 교환하고 정치적 담론을 나누는 터전이기도 했다. 그래서 카페는 늘 반체제적인 ‘결사(結社)’가 될 위험을 안고 있었으며 실제로 여러 번 반란자들의 회합 장소가 되기도 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유럽의 카페맨들은 대개 집보다 카페를 더 사랑한 도시의 보헤미안들이었고, 그들 중에는 유럽의 문화사를 빛낸 시인, 작가, 미술가, 음악가, 그리고 사상가들이 적지 않다. 카페는 그들에게 마음 편한 사랑방이며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 수 있는 자유로운 놀이방, 그리고 창작의 공방(工房)이었다. 이스탄불, 파리, 베네치아, 로마, 런던, 빈, 베를린, 프라하, 부다페스트, 그리고 이름없는 작은 마을 카페까지 역사상 최초로 카페 문화를 일군 이스탄불에 16세기 처음 커피가 전해진 후 커피는 포도주에 비유되어 찬반양론을 일으켰지만 600여 개의 카페가 생겨나는 등 호황을 누렸다. 유럽에서 한때 일어났던 동방 취미(오리엔탈리즘)의 발신처가 또한 이스탄불이었으며 거기에는 커피가 큰 역할을 했다. 유럽 최초의 문학 카페는 파리의 카페 ‘프로코프’이다. 예술가와 사상가, 문학가들이 서로 허물없이 사교와 담론을 즐기던 프로코프는 프랑스혁명을 맞아 혁명의 드라마를 이끈 주역들의 은밀한 사랑방이 되기도 했으니 혁명가 에베르를 비롯하여 당통, 마라, 로베스피에르 등이 밤이면 프로코프에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혁명 작전을 모의한 곳이었다. 파리에 모여든 가난한 예술가들의 무대였던 몽마르트르와 몽파르나스. 그곳에 자리잡은 문학 카페 되 마고와 플로르 두 카페는 좋은 라이벌 관계를 이루며 파리 카페 문화의 황금시대를 구가했다. 특히 카페 플로르는 계약결혼의 주인공인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단골 카페로 유명하다. “나에게 플로르로 가는 길은 4년 동안 자유로 가는 길이었다”고 말한 사르트르는 이곳에서 원고를 쓰고 친구들과 담론을 즐겼고 보부아르의 눈치를 살피며 틈틈이 몇몇 여성들에게 연애편지를 썼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로 불리는 베네치아의 명문 카페 플로리안. 괴테에서 바이런, 바그너, 모네, 마네, 하이네, 니체, 릴케, 토마스 만까지 이어지는 플로리안의 순례자들은 생애를 통해 베네치아와 카페 플로리안을 사랑하고 예찬하였다. 그 밖에도 카페 플로리안과 함께 초기 유럽 카페 문화를 상징하는 로마의 명문 카페 그레코, 영국식 삶의 양식을 대표하는 런던의 커피하우스와 클럽을 거쳐, 빈의 문학카페 첸트랄, 화가와 시인들의 사랑방이자 창조적 정신의 대합실로 불리는 베를린의 로마니셰스 카페, 카프카의 산책길 끝의 기항처였던 프라하의 카페들, 이국적인 정념의 도시 부다페스트에서 카페 문화의 황금기를 구가한 카페 제르보와 카페 뉴욕에 이르기까지 모두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의 주역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 명문 카페들이다. “당신의 단골 카페는 어디입니까?” 저자는 또한 마을 골목길에서 마주칠 수 있는 멋스러운 작은 카페 순례도 잊지 않는다. 좋은 카페란 결국 집 가까운 곳에 혹은 자주 거니는 산책길에 들를 수 있는 자기만의 카페가 있다면 그곳이 가장 좋은 카페이며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축복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월간미술』에 일 년여 간 연재되었던 ‘유럽 카페 기행’을 저자가 다듬고 추가하여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멋스러운 문장 속에 녹아들어 있는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카페에 얽힌 많은 이야기들이 150여 컷의 아름답고 귀한 사진자료들과 함께 어우러져 읽는 재미와 보는 재미를 모두 만끽할 수 있는 이 책은, 유럽의 문화와 역사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문화기행서이자 유럽 여행길에 들고 갈 좋은 안내서이기도 하다. 언젠가 파리의 프로코프에 들르게 된다면 독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힌 메뉴판을 받아볼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00년도 훨씬 전에 아마도 당신이 앉은 자리에서 볼테르, 보마르셰, 마라, 당통, 로베스피에르, 벤저민 프랭클린, 베를렌과 감베타,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같은 사람들도 식사를 했을 것입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프로코프에 오신 당신을 환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