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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을 위한 해학곡
해파리Medusa 구멍 폭식 광대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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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본 장곡도의 모습, 그 첫 만남의 설렘을 어떻게 다 말로 할 수 있을까. 그는 위아래로 검은 셔츠와 바지를 입고 있는 것이 마치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의 모습 같았다. 머리는 거의 다 빠지고 없었다. 그러나 눈빛만은 맑고 건강했다. 간간이 터져나오는 기침 탓에 얼굴이 자주 일그러졌지만 다시 완만히 피부가 펴지는 것을 보며 뭔가 신선함을 느꼈다. 그의 얼굴 안에는 아이의 모습이 들어 있었다. 내가 현관에 들어섰을 때 그는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기침을 하고 있었다. ‘기침을 하자, 기침을 하자’의 기침이 었다. 또 그 기침은 타인과 정상적인 어법으로 소통하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p.33, 광인을 위한 해학곡」 중에서 “아직도 UFO 따위를 믿는 구석기 시대인이 있나?” 부겸은 TV 앞으로 바짝 다가갔다. 그 외국인은 틀림없이 토니였다. 오후에 본 하얀 물체가 당연히 대형 해파리라고 믿고 있던 부겸으로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밑에서 불이 번쩍번쩍 나오긴 했지.” 부겸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작은아들이 말했다. “에이, 그건 UFO 믿는 광신도들이 매일 써먹는 얘기죠. 유리 겔러가 밥숟갈 구부리는 게 진짜 초능력이라고 생각하세요?” 작은아들의 말에 부겸은 눈을 부라렸다. “20년 전,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 유리 겔러가 숟갈 구부리는 거.” “에이, 그건 다 마술이라고 판명 났잖아요.” ---「p.78, 해파리Medusa」 중에서 사태가 악화되자 서울시 곳곳에서 집단 공청회와 토론회가 열렸다. 비대위 측은 매일 아침 서울시에 몰려가 꽹과리와 북을 두드리며 대책 마련을 해 달라고 시위를 했다. 그러나 시는 꿈쩍하지 않았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을뿐더러, 서울시가 적극 추진 중이던 환경 미화 사업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멍에 대한 처리 권한을 백년구청으로 떠넘겼다. 백년구청은 무허가 주민들을 위한 주거지를 내줄 만한 예산이 없었다. 백년구는 서울시에서도 손꼽히는 부유한 구였으나 쓸데없는 곳에는 돈을 쓰지 않 는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백년구를 둘러싼 잡음이 커지자, 세금의 방만 운영과 횡령 등의 혐의를 받고 있던 백년구청장은 옷을 벗어야 했다. ---「p.114, 구멍」 중에서 “폭식의 비결이 뭡니까?” “마치 영성체 의식과도 같습니다. 씹는 것보다 삼키는 데 더 의의를 두면 음식물과 영적인 교류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형화된 답변을 원하고 있었다.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삶의 희망을 안겨 줄 수 있는 답변. 거기에 신파적인 내용이면 더 좋았다. 사람들의 질문에는 이미 스스로 듣고 싶어 하는 답이 들어 있었다. “그렇다면 폭식 광대로 살면서 가장 힘든 일은 무 엇입니까?” 한 관객이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졌다. 이에 폭식 광대는 사람들의 희망을 배반하는 답변을 했다. “매일 토해야 하는 것입니다.” ---「p.142, 폭식 광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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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멍도 언젠간 하품을 멈출 날이 올 거여.”
서민의 삶까지 삼켜버리는 거대 자본과 사회에 대한 메시지 ‘여기 사람 있어요.’ 작가 권리는 재개발 아파트 건설로 인해 터전을 잃은 소시민의 인터뷰 한 마디가 이 소설집을 탄생시켰다고 말한다. 사회는 무엇으로 지탱될까? 그 속에 사람의 영역은 얼마나 될까? 『폭식 광대』는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거대 자본에 의해 돌아가는 사회 시스템을 비판한다. 표제작인 「폭식 광대」는 폭식을 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한 남자의 서글픈 최후를 그리고 있다. 평범했던 남자가 폭식으로 일약 유명인이 되면서 계속해서 더 많이 먹어야만 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폭식 광대가 사회의 암적인 존재로 여론이 형성되고 더 이상 아무도 그의 폭식에 열광하지 않는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카프카의 단편소설 「단식 광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여기에 오늘날 한국적 현실을 더해 이상하고 외로운 한 남자의 이야기를 완성했다. 「구멍」은 도공동의 빈촌 게딱지 마을을 중심으로 거대한 구멍이 생기면서 일어나는 일을 담고 있다. 강남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그 앞에 있는 판자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으로, 현실을 바탕에 두고 독특한 상상력을 더해 한국 사회의 현실을 꼬집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환상과 질서에 관하여 『폭식 광대』는 건조한 문체와 독특한 상상력으로 우리 시대의 민낯을 그려내고 있다. 소설집에 실린 「광인을 위한 해학곡」과 「해파리medusa」는 냉소적이고 신랄한 문투와 비현실적 상황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환상과 사회 질서를 표면 위로 끌어올린다. 출간 전, 두 작품 모두 문예지 발표 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4차 문예지 게재 우수작으로 선정됐다. 「광인을 위한 해학곡」은 미술가 ‘장곡도’를 주인공으로 한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그의 사기에 가까운 메시지와 그림들이 대중에게 예술계의 신화로 자리매김 하는 것을 보여주며 예술이라는 이름 뒤의 허영과 환상, 실제를 보여준다. 「해파리medusa」는 해파리가 인천 앞바다를 공격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일어나는 일을 담고 있다. 주인공 김부겸은 평소 필리핀 총각 토니를 무시하지만 해파리를 잡아 영웅이 되기 위해 그와 함께 바닷가로 나가게 된다. 부겸이 토니가 함께 생활하며 주고받는 언행들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들의 생활을 생각하게 한다. 낯설고 새로운 감각으로 무장한 권리의 소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없다. 권리의 첫 소설집 『폭식 광대』는 13년 동안 그녀가 시도해온 소설적 모험들로 가득하다. SF적 설정, 키치 문학 등을 클래식 소설에 적극 끌어들여, 독자들이 읽기 쉬우면서도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과감한 문학에 도전하고자 했다. 그러면서도 앞서 발표한 장편소설들과 산문집에서 보여준 작가 권리만의 무심한 듯 날카로운 스타일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문장과 문장 사이, 현대사회에 대한 날선 비판을 툭 던져 놓고 다시 다음 이야기로 시선을 옮긴다.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며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권리 소설집 『폭식 광대』, 유연하고 감각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아이러니를 짚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