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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력이 필요한 역사 읽기
진시황, 평생 남에게 통제당하며 살았던 대황제 투기꾼의 투기 상품이었던 출생의 비밀 / 여불위의 통제를 받으며 살다 / ‘축객령’의 역사적 배경 / 다시 이사의 그늘에서 살다 / 무고하게 살해된 한비자 사건의 본질 / 누가 ‘분서’ 명령을 내렸나? / 몸은 죽고 나라는 망하다 유방과 항우, 성공과 실패로 영웅을 논하지 말라 사마천은 성공과 실패로 영웅을 논단하지 않았다 / 항우는 싸우고, 유방은 열매를 따다 / 내게도 국 한 그릇 나눠주라 / 천기를 누설한 두 사람의 대화 조조, 후세에 재앙을 남긴 간웅 ‘재앙이 후세에 미쳤다’의 두 가지 의미 / 조조는 어떻게 자손에게 화를 미쳤나? / 조조는 어떻게 천하 후세에 재앙을 남겼는가? / 후대 야심가들의 모범이 되다 / 제갈량의 선택은 옳았다 유비, 삼고초려는 없었다 집도 절도 없이 동분서주했던 유비 / 천하의 기재, 어떻게 탄생했나? / ‘삼고초려’는 진실인가, 거짓인가? / 제갈량의 고뇌 아두, 아둔함 속에 숨긴 지혜 정말 구제불능인 유황숙 / ‘아두’는 가능성이 있었다 / 아두는 자기 자신을 잘 알았다 / 아두는 합리적인 군주였다 / ‘이렇게 즐거운데 촉 생각은 왜 하는가’ 수 양제 양광, 속 좁고 변덕스런 혼세마왕 시 한 수 때문에 화를 당한 설도형 / 아주 편하게 천하를 얻은 양견 / 양광의 180도 대회전 / 남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다 당 태종 이세민, 세상을 속여 명예를 도적질한 성군 충고를 잘 받아들인 이세민의 속사정 / ‘납간’의 진상 / ‘사형수를 풀어준’ 미담의 진상 / 비열한 수단으로 『난정서』를 빼앗다 / ‘현무문 정변’의 후유증 무측천, 소인배를 잘 다룬 대담한 여황제 소인은 나라를 그르친다 / 밀고를 장려하고 죄를 날조하다 / 소인이 소인을 잡아들이다 / 소인을 다루는 무측천의 솜씨 당 현종 이융기, 양귀비를 죽인 냉혹한 카사노바 개원 연간의 유능했던 군주 / 성군에서 혼군으로 / 이융기가 자초한 안사의 난 / 「장한가」는 백거이의 실패작이다 / 깊숙한 규방에서 자라 아무도 몰랐네? / ‘임금은 얼굴 가린 채 구해주지 못하였고’라니? 후량 태조 주온, 황제가 된 살인마 중국 대륙을 휩쓴 ‘군대 전염병’ / 살인을 놀이처럼 즐기다 / 그보다 더 나쁠 수 없다 남당 이후주, 황제 노릇보다 문학에 더 심취했던 이단아 가련하고 박명한 군왕 / 왜 망국 군주가 되었을까? / 시인이었던 황제 / 실패자가 아니다 송 태조 조광윤, 갈등과 모순을 해소한 위대한 정치가 행운으로 얻은 천하, 노력하여 모순을 해결하다 / ‘배주석병권’의 ‘윈-윈’ 효과 │ 안정과 조화를 추구한 큰 정치가 명 태조 주원장, 평민 황제의 본색 적은 공격하지 않고 우군만 때리다 / 평민 황제인가, 부랑아 황제인가? / 맹자를 죽이려 하다? / 죽는 날까지 쉼 없이 사람을 죽이다 / 주원장에 대한 민간의 평가 숭정제, 세계의 흐름을 앞서 내다본 청년 황제 세상을 바로 본 최초의 동방 황제 / 새로운 정치를 실행하려 한 청년 황제 / 어째서 망국 군주가 되었나? / 나라를 잘못 다스린 죄를 고백하다 옹정제, 독창적인 문자옥을 자행한 얼뜨기 정신 학대법의 창안 / 모든 관원에게 비난하는 시를 쓰게 하다 / 『대의각미록』의 왜곡 황제가 대체 뭐하는 물건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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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은 평생 남에게 통제당하며 살았다. 진시황은 카리스마 넘치는 대황제가 아니었다. 그는 친아버지인 여불위와 모략가 이사의 그늘에서 살았던 의지박약의 인물이었다. 한비자의 죽음도 진시황의 의지가 아니었다. 진시황이 한비자를 찾았을 때는 이미 이사에 의해 독살당한 뒤였다. 그렇다면 일대의 대사건인 분서갱유는 과연 진시황의 의지였는가? 사마천의 『사기』에는 이때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박사 순우월이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고대를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고, 진시황은 순우월의 이 말을 토론에 부치라고 했다. 하지만 당시 승상이던 이사가 즉각 토론을 반대하는 한편 자신이 제정한 ‘분서’ 명령을 발표하고 결국 이를 실행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카리스마 넘치는 진시황의 죽음은 어떠했는가? 그는 죽을 때조차도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었다. 장남 부소와 장군 몽염은 환관 조고와 아들 호해, 그리고 이사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맞고 이로 인해 진나라는 결국 망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앞에 두고도 진시황을 카리스마 넘치는 대황제라 평가할 수 있는가? 어렵다고 본다.
유비의 삼고초려는 없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비의 삼고초려 일화는 인구에 회자되는 미담이다. 하지만 이 미담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제갈량의 자작극일 가능성이 크다. 진수의 『삼국지』 이전의 삼국시대 역사 기록으로는 어환의 『위략』이 대표적이고 『구주춘추』 그리고 기타 몇 권의 사서가 있다. 그런데 『위략』과 다른 기록들에는 제갈량이 유비를 찾아간 것으로 되어 있다. 유일하게 삼고초려를 다룬 기록은 바로 제갈량 자신이 쓴 「출사표」 하나뿐이다. 삼고초려가 미담 중에 미담이라면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도 회자되었을 것이고 당연히 『위략』 등 당시의 역사서에도 이 사실이 기록되어야 한다. 그런데 어째서 한마디도 이 사실이 언급되지 않았을까? 『삼국지』에서의 삼고초려 대목은 『삼국지연의』에 이르러 만 자 이상이나 늘어나 소설이 되었다. 그리고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삼국지』를 기록한 진수는 어째서 『위략』 등의 기록을 무시하고 삼고초려를 역사적 사실로 기록한 것일까? 『위략』을 저술한 어환은 위나라에서도 이름난 역사가로, 중국 역사가로는 처음으로 로마사를 기록했으며 그 기록이 충실하여 믿을 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수가 어환의 『위략』의 기록을 무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삼국시대가 마감하고 들어선 진나라는 위나라를 멸망시키고 들어선 정권이므로 이전 왕조의 역사서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당시 진수가 제갈량의 전기를 편찬했는데 진수의 제갈량에 대한 존경이 지극했다고 한다. 따라서 진수는 삼고초려의 설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고, 『삼국지』에 사실로서 기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삼국지』는 중국의 역대 사서 중에서도 가장 불완전한 것으로 평가된다. 『삼국지』의 전문은 30여만 자에 지나지 않는데 배송지의 주석 또한 30여만 자에 달한다. 배송지의 주석을 읽지 않고는 도저히 『삼국지』를 읽을 수 없으며 어떤 대목은 원서보다 주석의 비중이 더 크다. 배송지 또한 삼고초려 대목에서 진수의 기록과 어환의 기록이 어긋남이 심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제갈량이 자작극을 꾸몄을까? 사식 선생은 이 대목에서 제갈량의 고뇌를 이야기하고 있다. 유비가 죽고 어린 아들 아두가 2세 황제로서 촉을 다스릴 즈음, 제갈량은 내부의 혼란을 사전에 방비하기 위해 ‘삼고초려’ 이야기를 지어내 아두에게 들려줌으로써, 자신의 군수권을 유지하며 풍전등화에 놓인 촉을 이후 40여 년 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재 유비는 삼고초려를 할 만큼 아량이나 배포가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당 태종 이세민은 세상을 속여 명예를 도적질한 왕에 불과하다. 당 태종 이세민은 ‘정관의 치’라는 당의 번영기를 구가한 황제다. 하지만 진짜 이세민의 모습은 세상을 속여 명예를 도적질한 황제에 불과하다. 재위 기간 동안 국가는 부강해졌고, 백성들이 문을 잠그지 않은 채 편히 잠을 잘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치세기가 올 수 있었던 까닭은 이세민이 사람을 잘 기용하여 그 재능을 충분히 발휘하게끔 할 뿐만 아니라 신하의 충고를 잘 받아들였다는 데 있다. 특히 직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았던 명재상 위징, 그리고 이런 충고를 허심탄회하게 수용한 태종 이세민의 관계는 아름다운 일화로 전해온다. 이세민은 신하들에게 거침없이 간언하기를 요구했고, 또 간언한 신하들에게 큰 상을 내렸다. 하지만 이세민이 신하들의 간언을 받아들이게 된 데는 속사정이 있었다. 바로 그가 황제가 된 계기인 ‘현무문의 정변’의 추악한 모습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쇼였다. ‘현무문의 정변’으로 이세민은 친형 이건성과 아우 이원길을 죽이고 황제 자리에 올랐다. 이는 끔찍한 살육이었고 패륜이었다. 위징은 바로 친형 이건성의 심복으로, 위징의 간언을 잘 받아들이는 아량 넓은 황제의 모습을 백성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추악함을 무마하려 한 것이다. 이 사실은 여러 가지 역사적 정황으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정사에 적힌 이세민과 관련된 미담 중에 사형수들을 풀어준 미담이 있다. 사형 판결을 받은 390명의 죄수들에게 1년 간 집에 다녀올 수 있게 해주고 1년 뒤에 사형을 받게 한다는 것인데, 이 명령을 받은 죄수들은 1년 뒤 한 명도 빠짐없이 돌아왔고, 이세민은 기뻐하며 이들 모두를 풀어줬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미담은 구양수의 「종수론」을 통해 그 진상이 드러났다. 즉 이세민은 사형수들과 일종의 묵계 내지 담합을 통해 일을 꾸몄는데, 사형수들이 정해진 날짜에 돌아오면 모두 방면하기로 사전에 약속을 했고 사형수들은 그 약속을 믿고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다. 구양수는 이세민이 세상을 속여 명성을 훔쳤다고 비난했다. 정사에서 말하는 이세민의 위상과는 반대되는 것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