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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예니
카를 마르크스와 함께한 삶, 예니 마르크스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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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책

책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1. 예니, 태어나다
2. 예니, 마르크스를 만나다
3. 언제나 거기에 ‘예니’를 적겠어
4.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길
5. 갈리아 수탉의 커다란 울음소리
6. 우리의 시대가 오고 있다
7. 결단의 해: 1848~1849
8. 런던의 지옥 같은 생활
9. 죽음의 거리
10. 외롭고 깊은 겨울
11. 공산주의 사회로 가는 길
12. 사라져간 혁명가들

후기
옮긴이의 말
감수자의 말
미주

저자 소개

저자 :하인츠 프레데릭 페터스
1910년 드레스덴에서 태어났다.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하자 독일을 떠났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미국의 OSS(전략정보국)에서 복무했다. 이후 뮌헨 대학의 미국연구소, 포틀랜드 주립대학의 중앙유럽연구센터 등을 창설해 활동했다. 독일 정부와 괴테협회로부터 문화 간 연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5년에 공로 훈장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 《루살로메의 사랑과 생애》 《차라투스트라의 여동생: 엘리자베트와 프리드리히 니체》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가면과 남자》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5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292쪽 | 362g | 135*210*20mm
ISBN13
9788997889624

책 속으로

영국 사람들은 그녀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그 이후에도 그녀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붉은 메시아roten Messias의 이름이 전 세계에 긍정적인 또는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을 때에도, 즉 카를 마르크스의 이름을 둘러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녀의 이름은 희미한 메아리로만 남아 있었다.
--- p.5

예니는 이런 말에 감동을 받았다. 한쪽에서는 탐욕적인 이윤 추구, 다른 한쪽에서는 빈곤과 굶주림, 이러한 만인 대 만인의 각축전이라는 부르주아 세계의 영원한 불확실성과 비교해볼 때 공산주의 사회는 진정한 인간성에 대한 이상을 구현할 것처럼 보였다.
--- p.109

트리어에서 그녀는 전 세계를 잠시도 가만두지 않는 혁명운동의 유명한 지도자의 아내로 지냈다. 그것은 흥미롭고 흥분되는 것이었다. 전혀 알지 못한 사람들까지 예니에게 찾아와 이 어지러운 상황에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공화주의자 또는 민주주의자를 선택해야 하나요? 왕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으면 살인 행위나 유혈극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모두 자신의 재산만 보호하려 할 것 같은데요. 예니는 자기 남편의 정신에 입각해서, 우리는 거대한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고, 다가올 사회질서는 자본가들의 지갑에 의해서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의지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p.142

엄마의 역할과 당의 비서 역할을 동시에 해내기는 쉽지 않았고, 반동 세력들이 혁명의 성과물인 언론과 집회의 자유를 대놓고 파괴하려 하고 있는 지금은 특히 더 어려웠다.
--- p.146

이 끊임없는 정치적 분투의 시기 동안 공산주의 운동 지도자 개인의 상황은 대체로 절망적이었다. 마르크스는 이 시기에 세 명의 아이들(네째아이인 팩스첸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 예니 그리고 렌첸과 함께 딘 스트리트의 셋집에 살았다. 욕실도 없고 수도 시설도 없는 두 개의 좁은 방에서 일곱 사람이 지냈다.
--- p.170

사람들은 종종 모든 정치적인 것을 혐오하면서 회피하고자 합니다. 나는 우리가 이 정치 분야를 순수한 ‘아마추어’로서 지켜볼 수 있기를 바라지만 불행하게도 우리에게 정치는 언제나 생사가 걸린 문제이죠.
--- p.228

이런 모든 투쟁이 일어날 때마다 사소하기 때문에 어려운 일은 우리 여자들의 차지가 됩니다. 남자들은 외부 세계와 투쟁하면서 힘을 얻고, 적들과 대면하면서 강해집니다. 그런데 적들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을지라도 우리는 집 안에 앉아 양말이나 꿰매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걱정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매일의 사소한 걱정들은 느리게 그러나 확실하게 삶의 의욕을 갉아먹습니다. 나는 30년 이상 겪은 경험을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 p.259

출판사 리뷰

예니와 마르크스의 변함없는 사랑

“나는 눈을 감고 행복하게 미소 짓는 당신의 눈을 그려봐요. 그리고 내가 당신의 모든 것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게 기뻐요.”(예니의 편지) “봐! 난 천 권의 책을 채울 수 있어. 그리고 언제나 거기에 ‘예니’만을 적겠어.”(마르크스가 예니에게 보낸 시)
유년 시절부터 이웃으로 살면서 예니와 마르크스는 일생 동안 ‘부부, 친구, 동지’ 사이로 지냈다. 그 수많은 난관에도 두 사람의 사랑은 죽을 때까지 변치 않았는데, 역사상 가장 로맨틱한 관계의 전범으로 불릴 만한 것이었다. 귀족 베스트팔렌 남작의 딸로 태어난 예니는 미모와 교양과 재능을 지닌 소녀였다. 열일곱 살 때는 트리어에서 ‘무도회의 여왕’으로 소문이 자자했고, 수많은 남자에게 구애를 받았다. 실제로 한 명과 약혼을 하기도 했으나, 곧 그 남자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파혼했다. 그리고 자신과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네 살 아래 마르크스와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랑하기 시작했고, 남몰래 약혼했다. 두 사람이 약혼하고 결혼하기까지는 7년이 걸렸는데, 이 기간 동안 서로 주고받은 편지, 시 등은 그 자체로 명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 마르크스는 많은 시를 썼고, 예니를 위해 두 권의 시집([사랑의 책], [노래의 책])을 묶기도 했다.
“사랑하는 카를. 나는 완전히 빈손으로,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진 채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을 안고서 당신이 있는 집으로 돌아갈 것 같아요.” 결혼한 뒤 잠깐 헤어져 있을 때도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을 정도로 두 사람은 평생 많은 편지를 썼다. 그리고 편지에는 늘 서로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담겨 있었다.
예니는 1881년 마르크스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다. 마르크스는 그 순간을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쓰고 있다. “죽음이 오는 순간을 느꼈을 때, 그녀는 말했다네. ‘카를, 기운이 없어요.’ 이것이 그녀가 마지막으로 분명하게 알아들을 수 있게 한 말이었네. 12월 5일에 그녀는 하이게이트 묘지의 신에게 버림받은 이들을 위한 구역에 묻혔다네.”

운동가 예니, 마르크스의 동지

“사람들은 종종 모든 정치적인 것을 혐오하면서 회피하고자 합니다. 나는 우리가 이 정치 분야를 순수한 ‘아마추어’로서 지켜볼 수 있기를 바라지만 불행하게도 우리에게 정치는 언제나 생사가 걸린 문제이죠.”(예니가 리프크네히트에게 보낸 편지)
예니와 마르크스의 결혼생활은 19세기 혁명사와 맞물려 있다. 이 책에는 파리코뮌 등 19세기 유럽 정치사 속에서 두 사람이 어떻게 활동했는지가 여실히 드러나 있다. 독일, 프랑스, 벨기에, 영국을 오가며 두 사람은 혁명을 위해 활발하게 활동했다.
당시 유럽은 곳곳에서 혁명의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자동맹 등과 활동했고, 예니 또한 [공산당 선언]을 옮겨 적는 등 마르크스와 함께 활동한 동지였다. 실제로 예니는 마르크스의 거의 모든 저작에 관여했고, 마르크스가 관점을 잡는 데 일조했다. 마르크스가 자리를 비웠을 때는 그에게 온 수많은 편지들에 답장을 했고, 엥겔스 등 다른 동료들과 의논하며 일을 결정하기도 했다. 또 각국에서 몰려든 망명가들과 어울리며 토론을 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셰익스피어를 좋아했던 그녀는 말년에는 [프랑크푸르트 신문]에 연극 비평을 쓰기도 했다.
이 책에는 마르크스와 예니가 19세기에 펼친 활약상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또 그들과 함께했던 엥겔스, 하이네, 리프크네히트, 헤르베크 등 당시 활약한 지식인들의 모습도 담겨 있다.

평생 가난에 시달린 슬픔과 고통

“아내는 날마다 아이들과 함께 죽고 싶다고 말한다네. 하지만 정말이지 난 아내를 결코 비난할 수 없어. 왜냐하면 그녀가 이 상황에서 겪어야 하는 굴욕과 고통, 공포는 정말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야.”(마르크스가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
예니는 마르크스와 결혼한 뒤 내내 가난에 시달렸다. 그녀의 소망은 걱정 없이 살 만큼 마르크스가 인세 수입을 많이 벌어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 번도 그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수없이 많이 전당포를 들락거리며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삶을 살았다. 심지어 죽은 아이의 관을 살 돈조차 없을 때도 있었다. 엥겔스가 그때마다 도움을 주었지만, 또 돈이 떨어지는 반복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예니는 일곱 아이를 낳았으나 네 명을 일찍 저세상으로 보냈다. 셋째로 태어난 아들 에드가가 죽었을 때는 절망을 느끼며 이런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의 단 하나뿐인 에드가를 빼앗아갔어요. 그것은 결코 치유될 수도 없고 아물 수도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이 상처는 결코 낡지도 않고 출혈을 멈추지도 않을 가슴 깊숙한 곳에 새겨졌습니다.”
이런 고통과 절망 속에서는 예니는 매번 결연하게 일어서곤 했다. 이런 그녀가 있었기에 그녀의 가족들은 수십 년간의 망명생활, 고통스러운 가난, 악질적인 비방, 굴욕, 박해를 이겨낼 수 있었다. 예니가 있었기에 마르크스도 존재할 수 있었고, 마르크스의 사상도 탄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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