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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혁명가
체 게바라가 쓴 맑스와 엥겔스
오월의봄 201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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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책

책소개

목차

[편집자의 말] 체 게바라, 맑스에게서 답을 찾다

비범한 두 인물의 역사적인 만남
지칠 줄 모르는 힘찬 인간성
혁명의 물결, 공산당선언의 탄생
고달픈 삶, 『자본』을 쓰다
제1인터내셔널과 파리코뮌
거대한 정신의 죽음
엥겔스, 최초의 맑스주의자

체 게바라가 읽은 맑스, 엥겔스 저작 목록
맑스, 엥겔스 연표
체 게바라 연표
옮긴이 주
[해제] 진짜 체는 누구인가

저자 소개 1

체 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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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nesto Guevara de la Serna

본명 에르네스토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Ernesto Rafael Guevara de la Serna. 여전히 가장 사랑받는 혁명가. 라틴 아메리카의 게릴라 지도자이자 혁명이론가. 그는 또한 남미의 예수라고도 불리운다. 지난 세기 낭만적인 혁명가로 ‘소비’되었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맑스주의에 입각한 경제 정책을 고안하고 실행했던 정치가로 활발한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다. 그는 1928년 아르헨티나에서 건축가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중산층의 가정에서 자라나 운동, 여행, 문학을 사랑하는 청년으로 자라났고 1953년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
본명 에르네스토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Ernesto Rafael Guevara de la Serna. 여전히 가장 사랑받는 혁명가. 라틴 아메리카의 게릴라 지도자이자 혁명이론가. 그는 또한 남미의 예수라고도 불리운다. 지난 세기 낭만적인 혁명가로 ‘소비’되었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맑스주의에 입각한 경제 정책을 고안하고 실행했던 정치가로 활발한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다. 그는 1928년 아르헨티나에서 건축가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중산층의 가정에서 자라나 운동, 여행, 문학을 사랑하는 청년으로 자라났고 1953년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미국의 지원을 받은 용병대 쿠데타로 인한 과테말라 정부의 붕괴로 제국주의와 남미의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강한 문제 의식을 갖게 된다.

혁명만이 라틴아메리카를 구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과테말라에서 혁명을 시작한다. 1954년 멕시코에서 망명 중이던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고 밤샘 대화를 통하여 혁명 동지로 거듭나게 된다. 그는 쿠바원정대가 되어 게릴라 전쟁을 도와 쿠바의 독재자 바띠스따(Fulgencio Batista)를 축출했고 그가 이끌었던 산타 클라라 기지의 전투는 그 결정적인 계기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카스트로가 쿠바의 정권을 잡은 뒤, 체 게바라는 "쿠바의 두뇌"라고 불리우며 산업부장관, 국립은행 총재들을 역임했다. 그러다가 1965년 그는 쿠바에서 사라진다. 그는 혁명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멈추지 않았고 다시 무기를 들고 혁명의 전선에 서게 된다. 볼리비아의 반군 지도자로 1966년 다시금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으나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붙잡혀 1967년 10월 발레그란데(Vallegrande) 근처에서 총살되었다.

그는 많은 글들을 남겼는데, 혁명 중에도 일기장을 기록했으며,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틈틈이 엽서를 부쳤다. 볼리비아에서 붙잡혀 그의 혁명이 마감되던 순간, 볼리비아 장교가 체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마지막 질문을 했었다. "게바라, 당신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소?" 체는 대답했다고 한다. "혁명의 불멸성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는 중이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신념을 추구했던 사람. 그 모습을 존경하기에, 체 게바라의 생각과 자유로움, 혁명에 대한 열정이 그대로 담겨있는 글들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체 게바라의 저서 중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 『체 게바라 자서전』, 『체 게바라 시집』, 『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일기』,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체의 마지막 일기』, 『체 게바라의 라틴 여행 일기』, 『먼 저편』 등이 있다.

체 게바라의 다른 상품

역자 : 한형식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학원강사, 출판사 직원, 부동산 중개와 관리 등의 일을 했고 식당과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다. 일을 하면서 연세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세미나네트워크 새움 회원으로 맑스주의의 대중화를 위한 교육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당인리 대안정책발전소 부소장으로 현실 경제 분석과 대안적 경제 정책을 개발하는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을 보조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맑스주의 역사강의』(그린비), 『인도사회운동사』(그린비, 근간), 『독일현대철학』(공저, 동녘, 근간)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5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54쪽 | 226g | 128*188*20mm
ISBN13
9788997889228

책 속으로

체 게바라는 적대적이고 가혹한 환경에서 자신의 여정을 추구하면서 다시 한 번 공부와 사색을 시작했고 맑스의 여러 저작들을 읽었다. 이를 통해 그는 맑스주의의 기원으로 다시 나아갔다. 이런 사실을 보면 우리는 체가 맑스 저작의 기념비적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도한 어떤 공식이나 지침 없이도 발전해나갈 수단들을 발견하는 혁명적 길, 위험, 그리고 잠재력을 이해하기 위해 맑스의 저작을 읽을 필요를 느꼈다고 생각된다.--- p.19

두 사람 모두 포이어바흐에 매혹되었고 각자 별개로 그의 사상을 연구했다. 이 비범한 두 인물은 독특하면서도 역사적인 동반자 관계를 맺으면서 포이어바흐의 사상을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발전시켰다. 그들의 동반자 관계는 대단히 충실하고 완벽한 우정이었다.--- p.26

맑스는 얼마 후 그 문제의 근원이 되는 지점에 도달했지만 그의 힘찬 인간성은 지칠 줄 모르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나온 길들을 탐험하는 데 열중했다. 위에서 아래로, 다시 아래에서 위로, 모든 갈래 길을 따라가면서도 원래의 주도로를 놓치지 않았고 켤코 낙담하는 법이 없었다.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그는 마침내 《자본》이라는 승리의 결과물을 얻게 되었다. 그의 평생의 삶과 연구는 바로 이 위대한 걸작을 위한 준비였던 것이다.--- p.42

아들 애드가가 이 시기인 1855년에 죽었는데 이 일은 이후 그들의 결혼생활에 무척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남기게 된다. 우리는 맑스가 언제나 훌륭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그의 아내와 아이들을 매우 사랑했지만 그의 필생의 작업이 가족들에 우선한다고 느꼈다. 그가 사랑하는 두 가지 대상, 가족과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헌신이 공존하기 힘들며 서로를 배척한다는 사실은 모범적인 남편이자 아버지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이 둘이 양립하도록 애썼고 둘 모두에 의무를 이행했다.--- p.62

그의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전 세계 고통 받는 모든 이들에게 미쳤다. 그러나 그토록 헌신적인 투쟁과 불굴의 낙관적 메시지를 남긴, 그렇게 인간적인 사람이 역사에 의해 왜곡되고 돌로 된 우상으로 변질되었다. 그의 모범이 더욱 빛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를 구해내어서 그에게 인간의 차원을 부여해야 한다.--- p.86

(엥겔스의) 작업이 맑스주의에 상당한 기여를 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더구나 그의 편지들은 그가 프롤레타리아 정당들이 올바른 개념들을 고수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 노력했던 철저하게 일관된 혁명가였음을 보여주었다. (…) 그의 눈은 항상 경계하고 있었고 그의 펜은 이론과 혁명적 입장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한 논쟁에 언제든 참가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p.98

한국에서도 체 게바라는 잘 팔리는 상품이다. 한국 사회에서 체가 소비되는 방식도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특히 서구에서처럼 한국에서도 체를 맑스주의자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나 자신조차도 체 게바라가 맑스주의에 대해 알긴 했을까 하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책은 체 게바라 스스로의 목소리로 이런 오해를 불식시킨다.--- p.136

(…) 체는 맑스주의가 무오류의 교의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또한 맑스주의의 현학적이고 이론주의적인 경향이 맑스주의 철학의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 맑스주의는 영한한 진리인 거창한 체계가 아니라 혁명적 행동을 위한 지침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현실에 기반을 둔 맑스-레닌주의의 창조적 발전이 그에게는 필요했다.--- p.141

체에 대한 수많은 오해와 편견들 그리고 일면적 해석들 뒤에 있는 진짜 그의 모습은 이론과 실천, 말과 행동의 통일을 이루려 한 엄격하고 일관된 인간이다. 이러 그의 삶과 사상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혁명의 대의에 온전히 자신을 바침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p.142

맑스와 엥겔스에 대한 전기적 소개인 이 책은 체 게바라의 이런 사회주의관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면서 실존적 차원에서 윤리적 삶과 사회주의의 미래를 위한 실천을 통일시키려 했던 체의 모습이 이 책에 담겨 있다.

--- p.152

출판사 리뷰

체 게바라와 함께 시작하는 맑스주의 입문서!

세기를 넘어 가장 사랑받는 비운의 혁명가,
시가를 입에 문 낭만적 급진주의자, 소비되는 저항의 아이콘…
진짜 체는 누구인가?


체 게바라는 여전히 가장 사랑받는 혁명가이자 잘 팔리는 상품이다. 한편 체 게바라와 맑스주의는 매우 생경한 조합이다. 지금까지 체 게바라를 맑스주의자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책을 옮긴 한형식 또한 “체 게바라가 맑스주의에 대해 알긴 했을까”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이 책은 체 게바라 스스로의 목소리로 이런 오해를 불식시킨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체 게바라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특히 최근 연구는 그가 죽은 뒤 수십 년이 지나도록 잘 알려지지 않았던 체의 면모, 바로 맑스주의자로서 체 게바라, 맑스주의에 입각한 구체적 경제 정책의 고안자이자 실행자로서의 체 게바라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러한 재조명은 신자유주의 그리고 자본주의 자체를 넘어선 새로운 대안을 꿈꾸는 이들에게 체의 경제사상이 많은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맑스주의자로서 체 게바라를 이해하는 것은 한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넘어 체가 바랐던 다른 세상,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꿈을 함께 꾸는 것이다.

2008년 체 게바라의 미발표 원고를 모아 출판된 이 책은 체가 콩고에서의 혁명운동이 실패한 뒤 탄자니아와 체코에 머물면서 볼리비아에서의 마지막 실천을 준비하던 시기에 쓴 것이다. 그리고 이 원고는 소련에서 나온 1963년판 정치경제학 편람에 대한 비판적 논평과 함께 작성되었다. 체가 그 짧은 생애의 끝부분에서 소련의 공식적인 정치경제학과 결제 정책에 거리를 두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혁명의 성공과 실패, 그 환희와 좌절의 순간을 거쳐 온 체는 왜 맑스와 엥겔스의 저작을 다시 읽으며 그들의 생애를 좇았던 것일까? 맑스와 엥겔스의 삶과 그들의 사상 속에서 그는 무엇을 찾고자 했던 것일까?

그는 왜 마지막 게릴라전을 앞두고
맑스와 엥겔스 저작을 공부하고 맑스와 엥겔스의 삶을 글로 남겼나?
이론과 실천의 통일을 추구했던 체 게바라의 맑스, 엥겔스 이야기


쿠바혁명이 성공한 이후 국립은행 총재, 산업부 장관 등 혁명정부의 요직을 거치며 국제무대에서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던 체 게바라. 그는 1965년 4월 어느 날 홀연히 모습을 감췄다. 게릴라전을 위해 변장을 하고 콩고로 잠입한 것이다. 콩고에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체는 탄자니아와 체코 프라하에 체류하며 이 책을 집필한 뒤 다시 볼리비아에 잠입하여 게릴라전을 벌이다 정부군에 의해 생포당하고 볼리바아 정부 지시와 CIA의 묵인 아래 사살되었다. 체 게바라 스스로 맑스와 엥겔스에 대한 “전기적 종합”이라고 불렀던 이 책은 맑스와 앵겔스의 만남에서 시작해 그들의 삶과 함께 맑스주의 사상의 근간이 되는 맑스와 엥겔스의 저작들이 어떠한 시대적 배경과 고민에서 탄생되었는지 꼼꼼히 짚어준다.

체 게바라는 청년시절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하면서 가난과 굶주림,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현실을 목격한다. 그는 독서와 관념적 급진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의 구체적 현실 가운데 자연스럽게 맑스주의자가 되었다. 이후 쿠바혁명 세력인 ‘7월 26일 운동’에 가담하면서 체는 쿠바혁명을 맑스주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발전시키려 했다. 라틴아메리카의 영구적인 해방은 선거를 통한 부르주아 민족민주혁명이 아닌 농민과 노동자들의 동맹에 근거한 게릴라전, 사회주의 혁명만이 가능하다고 확신한 것이다.

체는 교조주의적 맑스주의에 단호히 반대했다. 그는 맑스주의 정통 노선과는 달리 조직 노동자가 아닌 가난한 농민들이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적 계급이라고 생각했고, 맑스와 엥겔스의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분석이 부적절했다고 평가했다. 체는 맑스주의가 무오류의 교의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맑스주의의 현학적이고 이론주의적인 경향이 맑스주의 철학의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했다.

혁명의 과정에서, 혁명정부에서, 그리고 다시 혁명을 준비하며…
늘 배우고 사색하고 실천했던 공부하는 혁명가 체 게바라


2차 세계대전 이후 만들어진 냉전체제는 1960년대 중반 서서히 변화의 조짐이 생겨나고 있었다. 소련의 후르시쵸프 정권은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식민지 민족해방 혁명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 반면 쿠바혁명으로 놀란 미국은 제3세계 독재 정권들을 노골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쿠바혁명이 성공한 이후 국립은행 총재와 산업부 장관을 맡게 된 체 게바라에게는 제국주의 수탈로 저개발과 독점자본이 혼재된 쿠바 경제를 자본주의적 메커니즘에 의지하지 않고 사회주의로 이행시키는 과제가 주어졌다.

“체가 중앙은행장에 임명될 때 경제학자(economist)를 공산주의자(communist)로 잘못 알아들었다는 일화가 널리 유포되어 있다. 이 일화는 거의 사실이 아니고 사실이라 하더라도 체와 쿠바혁명 세력이 경제를 하찮게 여겼다는 증거는 결코 되지 못한다. 출처와 사실 여부가 불확실한 이 일화의 유포는 혁명에서 경제 정책의 중요성과 체 게바라가 계획경제의 강력한 옹호자였음을 애써 무시하려는 의도와 공산주의자와 경제학자의 양립을 상상할 수 없는 신좌파적 편견의 산물일 뿐이다. (…) 당시 미국 정부가 쿠바혁명이 사회주의적 성격을 가졌다고 판단한 근거로 체를 지목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옮긴이의 ‘해제’ 중에서

체는 소련식 경제 시스템에 반대하며 쿠바에 대한적인 경제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소련과 논쟁도 벌였으며 산업부 장관을 그만 둔 뒤 국제사회를 돌아다니며 쿠바만이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등 제3세계의 민족해방운동이 거듭 일어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곧 스스로 실행에 옮겼다. 이렇듯 혁명가 체 게바라의 삶에서 맑스주의는 이론과 실천의 통일, 현실 속에서 늘 검증받고 변화하는 사상이었으며 혁명운동의 지침이었다. 그는 청년시절 라틴아메리카 여행에서부터 시작해 마지막 볼리비아로의 게릴라전 까지 늘 맑스와 엥겔스의 저작을 읽고 공부했으며 맑스주의의 기원으로 다시 나아갔던 것이다.

한 혁명가의 맑스, 엥겔스 읽기
체 게바라를 통해 다시 만나는 맑스와 엥겔스


“맑스가 『자본』의 처음 몇 페이지에서 부르주아 과학이 스스로를 비판할 능력이 없음을 변증론을 사용하여 기술한 부분은 불행이도 오늘날 맑스 경제학 자신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체 게바라의 말처럼 체는 맑스와 엥겔스의 삶을 통해 맑스주의를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이상적인 교의가 아니라 끊임없이 성장하고 도전받고 변형되는 사상이란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체는 또한 맑스의 초기 저작과 후기 저작 사이에 근본적인 ‘인식론적 단절’이 있다고 주장한 루이 알튀세르를 비판하며 맑스주의 철학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어떻게 쓰이고자 했는지를 맑스와 엥겔스의 생애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먼저 체는 맑스와 엥겔스의 역사적 만남에 주목했다. 체는 “두 사람 모두 포이어바흐에 매혹되었고 각자 별개로 그의 사상을 연구”했지만 곧 “이 비범한 두 인물은 독특하면서도 역사적인 동반자 관계를 맺으면서 포이어바흐의 사상을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발전”시켰고 “그들의 동반자 관계는 대단히 충실하고 완벽한 우정”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주로 맑스가 엥겔스를 비롯한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인용하면서 『신 라인신문』, 『독불연보』 등 신문을 통한 맑스와 엥겔스의 정치적 활동, 그리고 『정치경제학 비판 개요』, 『반뒤링론』, 『철학의 빈곤』 등 초기저작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 등을 소개한다.

또한 혁명의 소용돌이 가운데 일어났던 파리코뮌과 제1인터내셔널 시기 맑스와 엥겔스가 어떤 활동을 하였으며 그들의 가장 중요한 저작인『공산당선언』을 어떻게 세상에 내놓게 되었는지, 맑스와 엥겔스 두 사람의 필생의 역작인 『자본』이 어떤 과정에서 집필되었으며 그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한다.

왜 지금 맑스와 엥겔스, 그리고 체 게바라인가?
끊임없이 공부하고 모색하고 실천하는 혁명가의 삶,
그리고 대안 사회와 대안적 삶을 꿈꾸기


“그의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전 세계 고통 받는 모든 이들에게 미쳤다. 그러나 그토록 헌신적인 투쟁과 불굴의 낙관적 메시지를 남긴, 그렇게 인간적인 사람이 역사에 의해 왜곡되고 돌로 된 우상으로 변질되었다. 그의 모범이 더욱 빛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를 구해내어서 그에게 인간의 차원을 부여해야 한다.”

체 게바라가 맑스의 죽음을 언급하며 한 이 말은 체 게바라 자신을 향한 불길한 예언이 되었다. 체 게바라가 교조주의에 빠진 맑스주의를 경고하며 우상이 아니라 동시대 혁명이론으로 맑스주의에 인간적 차원을 부여하고자 맑스와 엥겔스의 생애를 더듬었듯이 소비되는 상품이 아니라 이론과 실천을 일치시킨 ‘완전한 인간’으로서 체 게바라를 재조명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실천했던 혁명가 맑스와 엥겔스, 그들처럼 혹은 더욱 치열하게 공부하고 실천했던 혁명가 체 게바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맑스와 엥겔스라는 두 혁명가이자 사상가의 삶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며 더불어 ‘체 게바라가 읽은 맑스, 엥겔스 저작목록’을 통해 맑스주의 주요 저작에 대한 이해와 그 시대적 배경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옮긴이 한형식의 해제를 통해 이 시대 체 게바라의 사상이 가진 현재적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1990년대 동구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2010년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빨간 불이 들어온 지금 정치적 민주주의에 기반하고 계획경제를 통해 자본주의 시장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회주의를 꿈꾸었던 체 게바라의 구상은 신자유주의 폐해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이 시대, 자신의 삶의 전부를 통해 보여주었던 자본주의적 가치를 넘어서는 삶의 방식에 대한 깊은 성찰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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