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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 또 하나의 자화상과 마주하며 4
Ⅰ 언더도그 효과 세 가지 육십을 누리는 삶 12 과대 포장한 재능기부 15 장수 시대의 노후문제 18 장롱면허의 반납 21 닮아가는 부부 24 질박한 번개시장의 아리랑 27 새내기를 위한 붓방아 30 전설의 한일합섬 터 33 웰 라이프의 반추 36 최고 폭염 책임자 39 역사 교훈 여행 43 언더도그 효과 48 Ⅱ 의사·열사·지사 여름 화로와 겨울 부채 54 채우고 나서 비우는 지혜 58 꿈과 욕심 62 삶에서 평가 67 온량공검양 72 봉황에 새겨진 함의 75 상주의 지팡이 80 서얼(庶孼)의 차별 85 용에 함축된 의미 90 백서 95 의사·열사·지사 99 법당의 이해 104 Ⅲ 혼인 50주년 아내의 생일과 외식 111 꽃가루 알레르기 115 몽당연필 119 낡은 책가방 123 아내의 검진 127 아내의 특별 외출 132 주님의 기도 1,000번 쓰기 136 아내가 날개를 달았나 140 동짓달에 첫눈 145 거듭된 백신 접종 149 후각과 미각의 마비 153 혼인 50주년 158 Ⅳ 봄날의 푸성귀 을사년을 여는 날 165 아홉 번째의 등산화 169 엄나무와 오가피 순 174 무더위에 기진맥진 178 아파트 뜰의 단풍 향연 182 점점 힘겨워지는 벌초길 185 치아 상태는 종합병동 189 봄날의 푸성귀 193 봄의 삼중주 197 청량산 정상 길 202 벌레의 한자 표현 206 새의 이름 210 Ⅴ 쉰을 넘는 저서 출간 화비화(花非花) 217 화비화 1(花非花 1) 221 글쓰기와 등산 223 백일장의 수상자 등급 226 예시예종 230 시월의 마지막 밤 235 과분하고 감사하지만 239 만시와 만남 244 제30회 신곡문학상 대상 수상의 변 248 동음이의어와 이음동의어 252 쉰을 넘는 저서 출간 256 표현의 다양성 소고 263 Ⅵ 단골 제사상에서 조율시이의 함의 270 숫자 ‘오(5)’를 바탕으로 한 표현 275 교통복지카드 유감 282 퇴물 상아 도장을 들여다보다가 287 지문 인식 불능 292 경기전에서 유감 296 밤에 대한 얘기 301 학창 시절의 앨범 306 아닌 밤중에 홍두깨 311 어렵고 힘들어야 진가를 315 단골 319 오, 2G폰이여! 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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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삶에서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거나 욕되게 언행을 했던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전생의 업보를 되돌려 받았던 벌(罰)일까? 30대 중후반 무렵(1982년 8월 6일) 고속버스의 추락사고로 두 아이와 부부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병고로 병원을 드나들며 가볍지 않은 수술과 입원 치료를 받았다. 그것으로 끝났으면 오죽이나 좋았을까. 지금은 부부가 노인성 질환으로 종합병원 장기 환자로 등록하고 번갈아 가며 찾아가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아 복용해야 하는 고약한 구석으로 몰려있다. 이런 입장에 처하니 호호백발이 되어도 병원을 모르고 사는 이들이 외계인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무척 부럽다.
뒤늦게 삶을 되돌아본다. 좀 더 일찍 철이 들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큰 대목이다. 가정을 꾸리며 지나친 탐욕이나 허황된 생각은 과감하게 내려놓거나 비우고 버리는 게 바람직했으련만 그렇지 못하고 되레 그들의 볼모로 잡혀 곤혹을 겪었던 적이 숱하게 많았었다. 힘겹게 틀어쥐고 아옹다옹 가슴앓이를 할 게 아니라 내려놓거나 좌고우면하지 않고 과감하게 버리는 편이 정신건강이나 현실적인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는 첩경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깨우치지 못했던 지난날이 후회막급이다. 지난 일에 대해 끌탕을 치며 후회한들 무슨 쓸모가 있으랴. 지금부터라도 쓸데없는 생각이나 바람은 제아무리 욕심이 나고 구미가 당겨도 단호하게 내치는 과단성을 견지해 볼 작정이다. 옛날에 비해 과학이나 문화가 발달했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움을 누리는 백세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그렇다고 선조들보다 행복하고 삶의 질이 개선된 걸까. 그 옛날 선조들은 삼갑(三甲)을 누려야 진정한 복을 받은 삶이었다고 했다. 여기서 삼갑 이란 첫째로 회갑(回甲)을 넘도록 수(壽)해야 하고, 둘째로 혼인 이후에 부부가 함께 예순 해를 해로(偕老)하여 회혼(回婚)을 맞아야 하고, 셋째로 남자가 과거에 급제하여 60년을 나라에서 녹(祿)을 받는 회방(回榜)을 누려야 한다는 철학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회갑, 회혼, 회방 등 3가지의 갑(甲)을 누렸을 때 진정 행복한 삶을 누렸다고 했다. --- 「혼인 50주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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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흔적을 기록한 한 권의 사유
생각의 흔적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다 사람은 살아가며 수많은 생각을 남긴다. 어떤 생각은 순간의 감정처럼 흩어지고, 어떤 생각은 기억 속에 묻혀 서서히 희미해지며, 또 어떤 생각은 글이 되어 삶의 흔적으로 남는다. 한판암의 수필집 『사유의 잔흔』은 바로 그러한 생각의 흔적들이 모여 이루어진 한 권의 기록이다. 이 책은 거창한 사건이나 극적인 삶의 이야기로 독자를 끌어들이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살아가며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의 장면들 속에서 조용히 떠오른 질문과 성찰, 그리고 세월 속에서 숙성된 깨달음을 담담한 문장으로 펼쳐 보인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한 개인의 삶을 따라가면서 동시에 자신이 지나온 시간과 생각의 흔적들을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된다. 여섯 마당으로 엮은 삶의 사유 『사유의 잔흔』은 2023년부터 2025년 사이에 쓰인 72편의 글을 여섯 개의 마당으로 엮은 수필집이다. “언더도그 효과”, “의사·열사·지사”, “혼인 50주년”, “봄날의 푸성귀”, “쉰을 넘는 저서 출간”, “단골”이라는 여섯 갈래의 구성은 서로 다른 삶의 장면을 보여 주면서도 하나의 흐름 속에서 이어진다. 사회와 역사에 대한 성찰, 인간의 삶과 가치에 대한 질문, 오랜 세월을 함께해 온 부부의 이야기, 자연 속에서 길어 올린 사색, 글쓰기와 학문의 여정, 그리고 일상 속에서 발견한 작은 생각들까지 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매우 넓다. 그러나 그 모든 글의 중심에는 언제나 한 인간의 진솔한 성찰과 삶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자리하고 있다. 일상에서 길어 올린 삶의 의미 이 수필집의 큰 특징은 삶의 사소한 경험들이 깊은 사유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번개시장이나 오래된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며 민초들의 삶을 떠올리고, 산업화의 흔적이 남은 공간을 통해 시대의 변화를 되짚는다. 때로는 장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노후 문제를 성찰하며 사회 구조의 변화와 인간의 삶을 함께 생각하고, 때로는 ‘장롱면허의 반납’ 같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내려놓음의 지혜를 이야기한다. 또한 ‘닮아가는 부부’와 같은 글에서는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온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이해하고 닮아가는지를 따뜻하고도 솔직하게 그려낸다. 이러한 글들은 단순한 일상의 기록을 넘어 삶의 의미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사유의 공간을 마련한다. 고전과 언어, 삶을 비추는 사유의 거울 한편 이 책에는 고전과 언어, 문화에 대한 작가의 깊은 관심도 곳곳에 담겨 있다. 백거이의 「화비화」를 통해 삶의 덧없음과 해석의 다양성을 성찰하고, 공자의 덕목을 설명하는 ‘온량공검양’을 통해 인간의 품격을 되새긴다. 또한 ‘동음이의어와 이음동의어’, ‘표현의 다양성 소고’와 같은 글에서는 우리말과 한자어 문화의 층위를 탐구하며 언어가 지닌 의미의 깊이를 들여다본다. 제사상에 오른 과일 하나, 숫자에 담긴 상징, 오래된 도장 하나와 같은 사소한 소재들까지도 작가의 시선에 닿으면 단순한 사물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들은 인간의 삶과 기억, 전통과 시대의 변화, 그리고 존재의 쓸쓸함과 존엄을 비추는 사유의 거울로 변한다. 학문과 삶이 함께 만든 문장 이러한 글쓰기의 배경에는 한판암이 걸어온 오랜 삶의 여정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컴퓨터공학을 연구하며 수십 권의 전공서를 집필한 학자이면서도 동시에 삶을 바라보는 사색의 언어를 꾸준히 기록해 온 작가이다. 학문과 글쓰기를 병행해 온 그의 시간은 단순한 경력의 축적이 아니라 생각의 깊이를 다져 온 과정이었다. 이미 스물세 번째 수필집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글과 함께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책에서 드러나는 것은 다작의 성취가 아니라, 오랜 시간 삶을 성찰하며 문장으로 남겨 온 한 인간의 성실한 태도이다. 노년의 시선으로 바라본 삶의 풍경 특히 『사유의 잔흔』이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저자가 황혼의 문턱에서 삶을 바라보는 태도 때문이다. 그는 노년을 화려하게 미화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나친 허무 속에 머물지도 않는다. 시월의 마지막 밤을 지나며 지나온 생을 돌아보고, 뜻밖의 문학상 수상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며, 오래된 사진 앨범과 2G폰, 단골 이발소와 병원, 교통복지카드와 같은 일상의 장면들을 통해 세월의 무게를 실감한다. 그러한 모습은 특정한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우리 모두가 언젠가 마주하게 될 삶의 풍경처럼 다가온다. 사유의 흔적이 남긴 조용한 울림 그러나 이 책의 시선은 끝내 허무로 향하지 않는다. 세월 앞에서 인간이 느려지고 쇠약해질지라도, 글을 쓰고 책을 펴내는 일만은 삶의 마지막 의미로 붙들고자 하는 태도는 독자에게 조용한 감동을 전한다. 저자에게 글쓰기는 단순한 창작 행위가 아니라 삶을 정리하고 이해하며 견디는 방식이다. 그래서 『사유의 잔흔』의 문장은 과장되거나 화려하지 않지만, 그 속에는 오래 생각해 온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깊은 통찰과 담담한 진실이 담겨 있다.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는 책 이 책은 또한 독자에게 어떤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삶을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질문들을 조용히 펼쳐 보인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무엇을 채우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가, 세월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변해 가는가. 작가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경험과 사유를 통해 독자가 스스로 답을 찾도록 여백을 남겨 둔다. 그 여백 속에서 독자는 자신의 삶과 생각을 자연스럽게 비추어 보게 된다. 결국 『사유의 잔흔』은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 드러난 사유의 기록이자 세월이 남긴 정신의 흔적이다.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아 의미로 바꾸려는 작가의 시선은 독자에게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조용한 울림을 전한다. 오래 살아낸 사람이기에 쓸 수 있는 문장, 오래 생각해 본 사람이기에 건넬 수 있는 통찰이 이 책 곳곳에 스며 있다. 그래서 『사유의 잔흔』은 한판암 개인의 기록을 넘어 우리 모두의 삶을 비추는 거울 같은 책이 된다.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는 그의 시선은 독자에게도 자신만의 사유의 흔적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은 단순한 독서의 시간이 아니라, 지나온 삶과 앞으로의 시간을 천천히 성찰하게 하는 고요한 사유의 시간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