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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제1부 믿음의 천상 질서 1장 하나님께 사로잡히다 2장 불신을 폐위시키다 3장 더 높은 차원의 믿음을 발견하다 4장 하나님께 받을 준비를 하라 5장 말씀으로 영혼을 확장하라 6장 하나님의 보물창고로 이끄는 믿음 7장 경이로운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 배우기 8장 하나님이 주신 것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9장 하나님의 눈으로 보기 10장 하나님의 숨결 11장 반석같은 믿음 12장 능력과 함께 오는 말씀 13장 자연의 능력보다 더 위대한 능력 14장 살아 있는 믿음, 죽은 믿음 15장 믿음의 웃음 16장 훨씬 더 많이 믿음을 구하라 17장 하나님의 말씀 안에 뛰어드는 삶 18장 천국에 취하다 19장 그분 안에 있는 능력 20장 두 종류의 믿음 제2부 치유와 기적의 역사 21장 병자를 위한 지침 22장 치유와 기적, 하나님의 방법 23장 신성한 생명은 신성한 건강을 가져온다 24장 예수님은 치유하기를 원하신다 25장 여러 질병 치유 이야기들 26장 네가 낫고자 하느냐? 27장 오순절의 성령과 기적 제3부 궁극적인 능력 28장 하나님의 능력에 압도되다 29장 그 이름의 능력 30장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하는 능력 31장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 32장 하늘의 능력 33장 능력의 임재 안에 거하라 |
Smith Wiggleswo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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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신학도였던 20대 초반, 내 영혼은 갈증으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당시 나는 수많은 영적 도서를 닥치는 대로 탐독하며, 활자 너머에 존재하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어떤 책을 읽다가 한 인물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신학 박사도, 유려한 언변을 자랑하는 웅변가도 아니었습니다. 투박한 손을 가진 영국의 배관공, 글을 읽을 줄 몰라 아내에게 글을 배워야 했던 전도자, 그러나 성경 한 권이면 충분했던 사람, 바로 믿음의 사도 스미스 위글스워스였습니다. 책을 통한 그와의 만남은 내 신앙의 지형도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정제된 신학적 논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날것 그대로의 복음이었고, 타협하지 않는 믿음의 선포였으며, 무엇보다 성령의 불과 기름 부음이 임하는 현장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그의 생애와 사역, 그리고 그의 입술을 통해 선포된 설교들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십 권에 달하는 그의 전기와 설교집을 구독하고 자료를 찾느라 밤을 지새웠고, 그의 단순하지만 강력한 믿음의 원리가 내 삶에 스며들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 위대한 믿음의 사도의 글을 한국 교회에 소개했습니다. 이미 도서출판 예찬사를 통해 그의 저서 두 권을 번역하여 출간했고, 이 책, 『스미스 위글스워스의 오직 믿음과 기도, 권능과 기적으로』을 한국 최초로 번역하여 독자들 앞에 내놓습니다. 이 책을 번역하는 내내, 나는 마치 100여 년 전 위글스워스의 집회 현장 한가운데 앉아 있는 듯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이 책은 1917년부터 1945년까지, 위글스워스의 사역 초기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선포된 주옥같은 설교들을 담고 있습니다. 어떤 메시지는 속기사가 현장에서 급하게 받아 적은 날것의 현장감이 살아있고, 어떤 메시지는 잡지에 기고하기 위해 다듬어진 정교함이 묻어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글을 관통하는 하나의 대주제는 명확합니다. 바로 “믿기만 하라.”입니다. 위글스워스의 신학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그는 성경이 말하면 그대로 믿었고, 믿으면 그대로 행했습니다. 현대의 많은 그리스도인이 믿음을 지적 동의나 심리적 위안 정도로 격하시킬 때, 위글스워스는 믿음을 실체이자 행동으로 정의했습니다. 그는 이 책 곳곳에서 우리에게 “당신은 믿습니까? 그렇다면 왜 행동하지 않습니까?”라고 도전합니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위글스워스가 강조하는 세 가지 핵심을 보게 될 것입니다. 첫째는, 말씀의 절대성입니다. 그는 평생 신약성경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15분 이상 성경을 읽지 않고는 15분 이상 다른 책을 읽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이 책에 실린 설교들 역시 철저히 말씀에 근거합니다. 그는 상황이나 환경, 의사의 진단이나 인간의 이성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실재한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실체이며, 보이는 것은 잠깐이다”라는 그의 외침은 오늘날 눈에 보이는 현상에 일희일비하는 우리에게 거룩한 충격을 줍니다. 둘째는, 성령의 역동성입니다. 위글스워스는 성령을 이론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령을 인격적으로 모셔 들였고, 그분께 온전히 사로잡혔습니다. 이 책에는 그가 강단에서 설교하다가 방언으로 말하고 통역하는 장면, 성령의 감동에 따라 즉흥적으로 찬양하는 모습들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는 사도행전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고 경험했습니다. 그에게 성령 충만은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매일 숨 쉬듯 경험해야 할 현재진행형의 사건이었습니다. 셋째는, 예수님 이름의 권세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할 때 일어나는 놀라운 일들을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이 책에는 그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죽은 자를 살린 놀라운 간증들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지 않습니다. 그는 철저히 자신을 감추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광 받으시기를 원했습니다. 자신은 단지 배관공일 뿐이지만, 자기 안에 계신 분은 세상을 지으신 분이라는 그의 태도는, 오늘날 사역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위글스워스가 믿음의 행위를 강조하는 대목들입니다. 그는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사건을 해설하며, 믿음은 수동적인 기다림이 아니라 능동적인 접촉임을 역설합니다. “믿음은 뚫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쟁취하는 것입니다”라는 그의 설교문을 읽다 보면, 앉아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믿음의 발걸음을 내디뎌야 할 것 같은 거룩한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그는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던 그 야성적인 믿음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이성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고, 의학적으로는 사형 선고가 내려진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아멘”이라고 외치는 믿음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며, 기적을 창조하는 재료라고 그는 말합니다. 이 책에는 그가 겪었던 수많은 치유 사역의 현장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암 덩어리가 떨어져 나가고, 굽은 척추가 펴지며, 결핵으로 죽어가던 자가 피아노를 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장면들은 소설이나 우화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이 역사하는 현장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들입니다. 위글스워스는 이 기적들이 특별한 은사를 받은 자신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믿는 모든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강조합니다. 그는 “믿는 자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라는 약속이 오늘 당신에게도 유효하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100여 년 전의 투박한 설교가 왜 필요할까요? 우리는 지금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초지성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세련된 설교와 잘 짜인 예배 시스템, 안락한 신앙생활이 보장된 듯 보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영적인 무기력함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시대, 이성이 신앙을 압도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스미스 위글스워스의 생생한 메시지는 잠자던 우리의 영혼을 깨우는 강력한 경종이 됩니다. 그는 우리의 신앙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손과 발로 내려와야 한다고 도전합니다. 그는 품위와 예의라는 가면 뒤에 숨어 성령의 능력을 제한하는 현대 교회의 모습을 질타합니다. 이 책은 단순히 과거의 기록물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늘날 무기력에 빠진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초청장입니다. 더 깊은 기도의 자리로, 더 강력한 권능의 현장으로, 더 놀라운 기적의 일상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나는 이 책이 한국 교회와 성도들에게 단순한 읽는 책이 아니라 먹는 책이어야 하고, 살아내는 책이어야 합니다. 위글스워스가 가졌던 그 뜨거운 열정,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 그리고 영혼을 향한 불타는 사랑이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의 심장에 전이되기를 기도합니다. 당신의 삶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습니까? 오랫동안 당신을 괴롭혀온 질병이 있습니까? 혹은 영적인 침체 속에 빠져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 책을 펴십시오. 그리고 위글스워스가 가리키는 그분,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 당신을 통해서도 동일하게 역사하기를 원하십니다. --- 「옮긴이의 글」 중에서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이야말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진실하다는 증거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의심하지 않는 믿음은 모든 것을 믿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 11:1,2).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살후 3:2).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면류관을 빼앗을 자는 없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약속의 말씀을 보고, 그 약속을 하나님의 것으로 간주하고 주장합니다. 그 약속은 항상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큽니다. 믿음은 자신뿐만 아니라 그 사실을 믿는 모든 사람을 돕습니다. 살아 있는 말씀이 살아 있는 믿음으로 활성화되면,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증거를 가져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이미 이 땅에서 영광을 보았습니다. 사람 안에 하나님이 계시면 그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흔들리지 않게 되고, 하나님께 온전히 복종하여 걱정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그분의 성령으로 채우셔서 그가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웃고 믿을 수 있게 하십니다. 여호수아는 아이성의 싸움에서 실패하였을 때, 금덩이와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을 탐한 아간을 다루었지만, 그의 죄는 제거되어야 했고 백성들은 항상 하나님의 심판에 “아멘”으로 화답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은혜의 대체적인 역사이고, 전가된 의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시 125:1). 이는 그들이 그분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분의 말씀을 지키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심으신 살아 있는 믿음, 그분의 뜻에 따라 역사하는 믿음의 실체를 지키십시오. 우리는 구원 받았으며, 불가능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겨났습니다. 믿음은 창조적입니다. 여리고 성벽은 믿음으로 무너졌습니다. 아벨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방식으로 제물을 바쳤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통해 믿습니다. 하나님은 피를 존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이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 18:7-8). 그들은 누구입니까? 피로 사신 성도들입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우리가 필요한 믿음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믿음은 예수님께 대한 충성이고, 피를 근거로 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의 증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과 함께 역사하셨습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 의를 전하는 설교자였습니다. 그는 흔들리거나 하나님에 대한 실재를 잃지 않았습니다. 근처에 바다가 없었지만 하나님이 홍수를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셨으니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는 원리가 있으며, 그 안에 평화가 있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완전한 평화와 기쁨을 누리며, 언제든 환호합니다. 진정한 믿은 항상 승리를 봅니다. 진정한 믿음이 방주를 지었지만, 진정한 믿음이 문을 닫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십니다. 모두가 방주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이 문을 닫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닫으시면 아무도 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완전히 갇히게 되면, 그 일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큰 배가 폭풍 속에서 흔들릴 때, 자연적인 사람은 두려워하며 “과연 우리가 육지에 닿을 수 있을까?”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평화가 있습니다. 그분은 바다를 그분의 손바닥 안에 두십니다. 이 어두운 세상은 죄와 환난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그분 안에는 완전한 평화가 있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이미 이 땅에서 영광을 발견했습니다. 이 모든 불안한 시대에도 그렇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사 26:3).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요일 4:18). 그분 안에는 온전한 사랑과 온전한 평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라”고 말씀하셨고 그는 갔습니다. 그는 그 땅에서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은 그가 믿었기 때문에 그 땅을 소유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것은 자연적인 삶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영적인 진보입니다. 우리는 함께 온전해져야 합니다. 주의 말씀은 영원히 지속됩니다. 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갔습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들어갔습니까? 그들이 믿었을 때 하나님께서 계획을 실행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더 나은 나라, 즉 하늘에 속한 나라를 사모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한 성을 예비하셨습니다. 그것은 말씀에 따른 성령세례입니다. 의인은 하나님과 끊임없이 교제하며 성령으로 역사하심을 입고, 성령을 통해 의의 열매를 맺고, 모든 것을 분별하고 선한 것을 굳게 붙잡을 것입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9-10). 그들은 이전에 있었던 모든 것을 뛰어넘는 믿음의 실체를 가졌습니다. 그들은 더 나은 나라, 곧 하늘 나라를 사모했습니다. 그들은 보았고, 확신했고, 받아들였으며, 고백했습니다. 즉, 그들은 그 능력 안에서 살았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놀라운 일들을 예비하셨습니다. (로랜드 스트리트 선교회에서 전한 메시지) --- 「제1부 믿음의 천상 질서, 1장 하나님께 사로잡히다 (1917년 2월 4일)」 중에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분은 우리를 위해 위대한 일들을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염려가 우리의 눈을 가리도록 내버려두기 때문에 이해력이 둔해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열려 있다면, 그분은 우리가 과거에 보거나 꿈꿔왔던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한 미래의 계획을 우리를 위해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전능함으로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들을 이루어주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든 일에서 오직 그분의 길로 행할 때, 모든 안개와 오해는 걷힐 것입니다. 나는 오늘 아침 여러분을 위한 메시지를 주님께 구했고, 그분께서 나에게 베드로후서 1장 1절부터 8절까지 시작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벧후 1:1-8). 아마도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보다 더 위대한 말씀을 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은 영원에서 영원까지 계신 하나님께서 항상 그분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을 소유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분은 그들을 조명하시고, 확장하셔서 그들 안에 하나님의 능력을 방해할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 “보배로운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기꺼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이 믿음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나라들을 정복하고, 의를 행하고, 그리고 필요하다면 사자들의 입을 막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히 11:33 참조).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승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 안에 어떤 도움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도움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옵니다. 우리의 도움이 오직 하나님 안에만 있다면, 우리는 항상 강하고 절대로 약하지 않습니다. 항상 믿음으로 충만한 사람들, 좋은 평판을 가진 사람들, 결코 투덜거리지 않는 사람들, 승리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 인간의 질서가 아닌 하나님의 신성한 질서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분은 우리 믿음의 창시자이시며, 우리의 믿음은 항상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에 근거합니다. 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에는 우리가 생각하기에 매우 좋은 말씀이 있습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엡 3:18). 오늘 아침 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은 아브라함의 믿음 때문에 복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은 아브라함이 가졌던 것과 동일합니다.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의 능력의 실체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에 어떤 방해물이 있기 때문에 이 믿음을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내 삶에 수많은 거대한 압력이 닥쳐와 나를 부수고, 이 믿음이 내 안에서 역사할 수 있는 자리로 나를 이끌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에 들어가는 길은 오직 육신이 깨어진 영혼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이처럼 깨어질 때, 우리는 영원히 우리 자신의 일을 멈춥니다. 왜냐하면 다른 분, 곧 그리스도께서 통치권을 잡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을 통해 옵니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든, 우리가 믿음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것은 진실입니다. 여러분의 능력, 여러분의 의로움, 또는 여러분의 어떤 일에 대한 여러분 자신의 평가가 어떠하든, 여러분은 믿음보다 나은 것이 없습니다.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정말로 놀랍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은 세상을 이깁니다. 그러나 어떻게 세상을 이깁니까? 여러분이 그분을 믿으면, 여러분은 그분이 순결하신 것처럼 정결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그분이 강하시기 때문에 강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그분이 온전하시기 때문에 온전하게 됩니다. 그분 자신에 대한 계시 때문에 그분의 모든 충만함이 여러분 안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 말씀의 살아 있는 원리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우리 자신을 내어줄 때, 우리는 신성하게 하나님의 깊은 것으로 인도될 것이며, 진리와 계시와 그분의 모든 마음이 우리에게 너무나 분명하게 되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것도 작은 규모로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읽은 구절에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벧후 1:2)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곱셈의 원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아침 주님께서 우리를 그 길로 인도하기를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이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얻어지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말씀의 권위에 따라 하나님의 의로 채워져야 합니다. 그분의 의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합니다. 만약 내가 주님을 제한한다면, 그분은 내 안에서 일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자신을 하나님께 열면, 그분은 반드시 나를 채우시고 나를 통해 흘러 넘치게 하실 것입니다.우리의 기도가 응답받기 위해서는 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말을 들으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의 말을 들으신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가 구한 것을 얻은 줄로 아는 것입니다. 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가서 그분께로부터 우리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들어보십시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23절에서 우리는 산이 옮겨지고 모든 어려움이 사라지는 것을 봅니다. 언제 옮겨지고 사라집니까? 사람이 마음으로 믿고 의심하기를 거부할 때 옮겨지고 사라집니다. 우리는 실체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임재 안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은 하나님을 아는 것을 통해 은혜와 평화 속에서 계속해서 늘어납니다. 그것은 우리의 발을 반석 위에 올려놓고, 우리의 믿음을 무제한적인 자리로 이끌어갑니다. 이 믿음은 여러분이 하나님과 함께,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어떤 것도 감히 할 수 있게 만듭니다. 여러분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위에만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상상이나 자신의 생각 위에 자신을 세우면, 여러분은 잘못된 길로 갈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기원은 초자연적이고, 지속성은 영원하며, 가치는 형언할 수 없고, 범위는 무한하며, 능력은 새롭게 하며, 권위는 무오하고, 관심은 보편적이며, 적용은 개인적이고, 전체가 영감을 받았습니다. 성경을 읽고, 기록하고, 기도하고, 실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십시오. 성경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인격을 가져다줍니다.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의 편지가 될 때까지 변화시킵니다. 성경은 그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그의 성품을 바꾸며, 그를 은혜에서 은혜로 이끌고, 성령 안에서 그에게 유산을 줍니다. 하나님은 그 안에 들어와 거하시고, 그와 함께 걸으시고, 그를 통해 말씀하시고, 그와 함께 식사하십니다. 여러분의 평화가 더욱 커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크게 기뻐해야 합니다. 오, 신부는 신랑의 음성을 듣고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는 신랑을 한량없이 사랑하고, 그분께서는 우리를 한량없이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사랑스러우시며, 그분의 얼굴은 너무나 자비로우십니다. 예수님의 임재 앞에서는 다른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오, 나의 형제, 나의 자매여, 우리는 우리 삶의 가장 위대한 흐름을 맞이했습니다. “늦은 비”의 능력과 같은 흐름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위해 얼마나 놀라운 것들을 가지고 계신지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의 마음에 이 진리를 새겨주고 싶습니다. 하나님에게는 평범한 사람을 위한 자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을 체에 걸러내어 비범한 믿음의 자리로 데려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영혼의 갈망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만족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은 여러분을 만족시키고, 그런 다음 여러분에게 더 높은 것에 대한 비전을 주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지점에서 멈춘다면, 여러분이 실패했던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하늘의 정결하게 하는 빛과 능력과 열심 아래에서 다시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지입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새롭게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새로운 계시는 새로운 헌신을 가져옵니다. 그분을 찾읍시다. (샌프란시스코 글래드 타이드 타버너클 & 바이블 트레이닝 스쿨에서 전한 메시지) --- 「하나님께 받을 준비를 하라 (1922년 8월 1일)」 중에서 방언을 통역한 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낙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인도했던 하나님이 여러분 위에 강림하십니다. 여러분이 가지 않는 곳으로 반드시 여러분을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나 이 목적을 위해 그분이 여러분을 불러내셨으니, 여러분을 데리고 가고, 성령의 신성한 기름부음으로 여러분을 움직여서, 여러분이 자연에 의해 즐거워하지 않고, 그분과 함께 들려 올라가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진리를 말하고, 그분의 마음을 품고, 그분의 뜻을 알고, 교제하며 잠잠히 있고, 보이지 않는 그분을 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의 큰 흐름을 부어줄 수 있게 하려 함입니다. 그 생명의 흐름이 움직이는 곳마다 모든 것을 살릴 것입니다. 성령은 한량없이 부어집니다. 믿음으로 우리에게 부어집니다. 곧 헤아릴 수 없는 분량으로 부어집니다. 이는 우리가 그분을 알고, 다가오는 날에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알게 하려 함입니다. 이 날은 우리를 위해 정해진 날이며, 이는 다가오는 날을 여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께서 오늘 아침 여러분에게 믿음의 원리에 대해 말씀하기를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1-6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 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1-6). 오늘 아침 우리는 여기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어제 아침의 주제를 계속해야 할지 매우 복잡한 심정이었지만, 주님께서 오늘 아침 이 방향으로 바꾸신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그분의 좋은 보물들을 열어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보고에는 우리가 아직 얻지 못한 많은 놀라운 보물이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고린도전서에는 우리를 위한 약속이 있습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 2:9). 오늘 아침 우리 안에 그분께 온전히 초점을 맞추는 깊은 굶주림과 목마름이 있기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분은 분명히 모든 것이고,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이 장의 첫 부분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1-3). 오늘 아침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 기초 위에 세우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신성한 삶에서 어떤 진전을 이루려면, 우리는 진정한 기초를 가져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믿음의 기초 외에 다른 기초는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움직임과 우리에게 오는 모든 중요한 것들은 우리가 반석 위에 서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반석 위에 있다면, 어떤 세력도 여러분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의 믿음을 굳건히 세울 반석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원리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여러분 안에 확고하게 세워진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 외에는 여러분을 확고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없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모래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무너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것, 즉 상상, 감정, 특별한 기쁨, 또는 어떤 느낌 위에 집을 짓고 기초가 없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어야 합니다. 한번은 어느 도시에서 블랙풀로 가는 전차를 타고 있었습니다. 블랙풀은 조수 간만의 차가 커서 사람들이 많이 가는 멋진 휴양지이고, 바다가 거대한 산과 같은 파도를 일으키는 멋진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차를 타고 갈 때, 나는 건너편을 보며 한 건축가에게 “사람들이 저 집들을 모래 위에 짓고 있군요”라고 말했습니다. “아, 당신은 모르시는군요. 당신은 건축가가 아닙니다. 우리가 모래를 바위처럼 될 때까지 굳힐 수 있다는 것을 모르십니까?”라고 그가 말했습니다. 나는 “그건 말이 안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논쟁이 득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만두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산과 같은 파도가 밀려오는 블랙풀에 도착했습니다. 나는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납작하게 무너진 집들을 보았고, 그 사람의 주의를 끌며 “오, 저 집들을 보세요. 얼마나 납작하게 무너졌는지 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이전 대화를 잊고, “아시다시피 이곳은 조수 간만의 차가 매우 커서, 이 집들이 모래 위에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모래보다 더 나은 것을 가져야 하며, 말씀 외에는 모든 것이 모래입니다.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하늘과 땅이 뜨거운 열에 두루마리처럼 녹아내릴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할 것이며, 그분의 말씀의 한 점이나 한 획도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오늘 나를 다른 어떤 것보다 더 만족시키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여호와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시 119:89)라는 말씀입니다.그리고 시편 138편에 있는 또 다른 말씀은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시 138:2) 하고 말합니다. 나를 위한 바로 그 확고함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원리로 나아갑시다. 요한복음을 보면 그곳에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주목하고 깊이 생각할 가치가 있습니다. 나는 내가 보는 것보다 더 많은 성경책을 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중요합니다. 만약 내가 지갑 없이 집을 나선다면, 그것이 중요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의 성경은 천만 개의 지갑과 그 내용물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니 지갑을 찾으러 돌아가는 것보다 여러분의 신약성경이나 성경전서를 찾으러 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생명의 말씀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마음에 그것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들에게 장과 절을 알려주고, 그들 스스로 읽도록 요청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말씀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소망에 대해 항상 좋은 이유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아침 우리의 신앙 성장을 위해 잠시 요한복음 1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이 이 집회를 마칠 때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도록, 여러분이 그 위에 세울 진정한 기초를 만들어야 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1-3). 여기서 우리는 모든 것의 기초인 말씀을 얻습니다. 그것은 실체입니다. 그것은 능력입니다. 그것은 관계 이상입니다. 그것은 인격입니다. 그것은 이 말씀을 통해 태어나고, 이 말씀으로 창조되고, 이 말씀을 아는 특권 속으로 들어가는 모든 영혼에게 주어진 신성한 명령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실체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볼 수 없는 것을 가져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무에서 유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어진 세상에 살고 있으며, 그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것이 실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은 나타나지 않는 것들로 그것을 만드셨습니다. 그 말씀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진리에 이르면, 우리는 건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알 수 있을 것이며,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나를 다른 어떤 것보다 더 돕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사실들 안에서 살고, 사실들 안에서 움직이며, 지극히 높으신 분의 원리들에 대한 지식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실재이시며, 우리 가운데서 그분의 위대하심을 증명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신성한 계시에 열고, 성령에 속하지 않은 모든 것을 제거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힘있게 우리를 성령 안에서 이끄시고, 있는 것들을 움직이시고, 없는 것들을 있도록 만드실 수 있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지혜는 풍성하고 깊습니다! 나는 우리가 이 아침에 넓혀지기를 원합니다. 야베스는 우리가 알아야 할 신성한 원리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그 너머에, 그리고 그 안에 위대함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주께서 내게 후하게 대하셨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자신에게 있던 모든 샘이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그의 얼굴을 빛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능력, 진리, 계시, 내재, 신성한 지식을 우리 안에서 증언하십니다. 그분은 증인이십니다. 나는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나는 내가 말하는 모든 것에 대해 지식의 기반을 가져야 합니다. 설교자로서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설교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가르침 속에 있어야 합니다.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매우 충실하게 만드셔서 그분이 자신을 드러내시고, 구름을 걷으시고, 그분의 임재 앞에서 안개가 사라지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하시는 전능한 분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것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모두 거대하십니다. 그분은 큰 지혜와 인류를 위한 그분의 계획과 설계의 신비와 장엄함을 펼쳐 보이십니다. 그리하여 인류는 무의미해지고,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의 위대함이 우리를 움직여서 우리가 하나님의 지식 안에서 능력, 계시, 힘, 그리고 강함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합니다. 오, 구원은 경이롭습니다! 그것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그것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취하신 것을 봅니다. 그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말씀은 예수님이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나는 이 순간 신앙을 성숙하게 할 만한 놀라운 말씀이 요한일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완전한 자유의 법을 들여다볼 때, 그것은 내게 종종 매우 강력한 계시로 나가옵니다. 요한일서 1장 1-3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요일 1:1-3). 그분은 말씀이십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원리이십니다. 말씀은 하나님에게서 보내신 계시입니다. 모든 충만함이 말씀 안에 거했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말씀입니다.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가 모두 받았으니, 은혜 위에 은혜입니다. 우리는 연약할 때 힘을 얻고, 가난할 때 부요하게 됩니다. 오, 형제들이여, 이 말씀은 불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뼛속에서 타오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삶의 모든 조직에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과 생명이 여러분 안에서 매우 강력하게 솟구쳐 나와, 여러분의 자아는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역사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아는 모든 지식 속으로 사로잡힐 수 있다 는 것은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내가 새로 창조되었다면, 그것은 위대한 창조이기 때문에 나는 나를 세우고 싶습니다. 우리가 잉태된 후 세상에 태어나기까지는 9개월이 더 걸렸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로 태어나는 데는 한순간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첫 번째 형성은 9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두 번째 형성은 한순간, 한 행동, 한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믿는 자는 그것을 소유한다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분을 영접할 때, 여러분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태어난 것입니다. 오, 내가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낳은 것과 같은 씨로 태어났습니다. 그분께서 성령으로 태에 잉태되셨듯이, 우리도 믿는 순간 잉태되었고, 약속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수 있는 마음의 원리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만물은 아들됨을 갈망하고 신음합니다. 로마서에 말씀이 하나 있는데, 오늘 아침 그것을 읽는 것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아들됨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제공합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나는 그것을 보며 너무나 즐거워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이 내게는 큰 즐거움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숨겨진 보물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는 것은 매우 큰 잔치입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입니다.우리는 말씀이 너무나 필요합니다. 말씀은 생명입니다. 이 첫 번째 말씀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로마서 1장 4절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3절과 4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롬 1:3-4). 여기에 큰 축복의 절정이 있습니다. 이는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이여, 오늘 아침 우리에게 그분의 열정 이후의 이 거룩하고 내면적인 길을 불어넣어 주십시오. 여러분, 들어보십시오.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아들들은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사람과 함께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온 세상보다 위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탄과 악을 대적하는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나와 함께 생각해 주기를 바랍니다. 이 생각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악을 순수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악한 것은 결코 그런 의미에서 순수해지지 않습니다. 불순물을 순수함으로 창조하는 것은 결코 없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에 결코 복종하지 않으며, 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방법만 있습니다. 그것은 파쇄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께서 순수하지 않은 것을 내쫓으신 상태로 여러분과 함께 가고 싶습니다. 나는 사탄이 모든 기회를 가지고 영광 속에 있었지만, 그의 교만 때문에 그가 망한 것을 여러분이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교만은 끔찍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아닐 때 우리가 무언가 된 줄 생각하는 것은 마음의 교만입니다. 우리 자신으로부터 인간적인 성품을 쌓아 올리는 것은 교만입니다. 오, 그렇습니다. 마귀는 항상 여러분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을 결코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항상 사탄이 와서 “넌 정말 멋진 설교를 했어! 그는 정말 멋지게 그것을 했고, 멋지게 기도했고, 멋지게 노래를 불렀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모두 마귀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조금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비전은 매우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비전을 가져야 하는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 더 필요합니다. 비전이 없으면 사람들은 항상 망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비전과 계시와 나타내심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계시가 없는 채로 성령을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본성으로 변화되지 않은 채로 성령을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유일한 자격은 그들이 성령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기름 부음과 능력과 변화와 신성한 성취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자아는 사라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자아가 사라진 곳에 충만하게 앉으셔야 합니다. 방언을 통역한 글 “그분은 그분이십니다. 그분은 오셨고, 모든 것을 비우셨습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은혜를 가져왔습니다. 그런 다음 그분은 우리를 정결케 하기 위해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온전하고 모든 것에서 자유롭게 되게 하려 함입니다. 이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 그분을 보고, 신성한 능력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위대함의 광활함 외에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하려 함입니다. 이는 우리가 세상에서 약속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탄을 내쫓으셨습니다. 나는 그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사탄은 나가야 했습니다. 그는 어떻게 나갔습니까? 그분의 능력의 말씀으로 나갔습니다. 그는 끝까지 내쫓길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더 사악해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서의 마지막 날에 대해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가장 큰 전쟁, 즉 아마겟돈이 아니라 그 너머의 전쟁이 사탄의 군대와 하나님의 군대 사이에서 일어날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일어날까요? 칼이나 다이너마이트, 또는 다른 인간의 능력으로 일어날까요? 아닙니다. 그분의 임재의 광채, 거룩하심의 거룩하심, 순결하심의 성결하심으로 일어납니다. 그곳에는 어둠이 머물 수 없고, 죄가 설 수 없으며, 오직 거룩함과 순결함만이 남을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영원히 심연으로 도망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죄의 권세에 대한 이 능력의 말씀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 말씀의 충실함이 인격적으로 함께해야 할 필요성과 가르침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말씀을 먹고 마셔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으로 그것을 먹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눈에서 항상 안개를 걷어내고 그분을 계시해야 하는 그 거룩한 계시가 필요합니다.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매일이 진보의 날이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제 이후로 어떤 진전도 이루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어느 정도 퇴보한 사람입니다. 갈보리와 영광 사이에는 여러분을 위한 한 가지 길만 있습니다. 그것은 전진입니다. 매일 전진하는 것입니다. 뒷걸음치는 날은 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진보하는 것입니다. 그분과 함께 성령 안에서 협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매일 같은 수준에서 산다면, 비전은 시들고, 원리들은 그 진지함을 잃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주님의 비전을 붙잡는 사람들처럼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방해하는 모든 열정 속으로 침투해야 하고, 거룩하지 않은 모든 것을 도살장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 시대에 우리가 저 높은 곳에 앉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순종하기만 한다면, 우리를 높은 곳에 앉히는 원리들은 우리와 함께 남아 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우리는 오늘 아침 건축해야 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건축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초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여, 악한 권세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그것을 분명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치우셔야 할 것들과 계속해서 직면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7, 8년 전 카자데로에 있었을 때, 그 집회에 온 첫 번째 사람은 완전히 귀가 먹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집회를 가질 때마다, 내가 몇 마디 말을 하기 위해 일어서려고 하면, 이 사람은 자신의 의자를 일반적인 줄에서 가져와 내 바로 앞에 놓았습니다. 그리고 마귀는 “네가 하는 일은 소용이 없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나는 “아니, 내가 하는 일은 소용이 있다. 모든 것은 다 이루어졌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남자는 3주 동안 완전히 귀가 먹었습니다. 그리고 약 3주 후, 우리가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그 남자는 마치 폭풍 속에 있는 것처럼 엄청난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는 사방을 둘러보았고, 그런 다음 그는 거의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그는 껑충 뛰었습니다. 그는 뛰기 시작하여 사람들 사이로 나가서 그리고 언덕으로 올라갔고 약 60야드 떨어진 곳에서 그는 노래소리를 들었습니다. 주님께서 “네 귀가 열렸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돌아왔고, 우리는 여전히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돌아오자 우리는 노래를 멈추었습니다. 그는 귀가 열렸을 때,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너무나 엄청난 소음이어서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은 진정으로 능력과 축복, 생명, 그리고 성숙함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가장 약한 자를 취하여 강하고 힘있는 자로 만드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능력, 축복, 힘으로 여기 계시며, 여러분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네 소원이 무엇이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 그분은 너무나 귀하십니다. 그분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너무나 놀라우십니다. 그분은 항상 필요한 곳을 만지십니다. 그분은 너무나 온유하십니다. 그분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자비가 너무나 풍성하셔서 꺼져가는 심지를 타오르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아침 우리를 움직여서 우리가 그분으로부터 선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보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 그분은 정말로 귀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스럽고 자비롭고 놀라우신 분입니다. 그것은 그분 앞에 놓였던 기쁨, 즉 우리를 원수의 권세를 이기는 능력과 그분의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하여 하나님의 온전히 성숙한 성도가 되게 하는 기쁨입니다. 분명히 이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이처럼 응답하시는 다른 신은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아침에 여러분에게 어떤 대가라도 지급하라고 간청합니다. 비용이 얼마든 상관하지 마십시오. 그분의 미소, 그분의 임재를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할 가치가 있습니다. 아니, 진실로 그 이상으로, 그분께서 가지신 것과 같은 소망을 갖는 것은 모든 것을 희생할 가치가 있습니다. 그분께서 나를 얻기 위해 얼마나 큰 소망을 가지셨는지 볼 때, 나는 “주님, 나를 그렇게 다시 빚어주십시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그 소망을 갖게 해주십시오”라고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통과하셨습니다. 그분은 뒤돌아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계속해서 나아가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나사렛 사람에게 여러분 자신을 연합하는 것을 절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항상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죽어가실 때도 왕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을 때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다 이루어졌기 때문에 모든 것이 내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늘에 있는 것, 땅에 있는 것,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내 것이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분은 모든 것에 대한 모든 능력을 가지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통해 계십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위한 분이시기에 예수님은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자신들이 무엇을 구했는지 알았을까요? 분명히 그들은 그들의 요청에 대한 아무런 개념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그분께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할 수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었습니다. 큰 마음을 가지십시오. 크게 “예”라고 말씀드리십시오. 크게 “내가 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십시오.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볼 수 없어도 큰 소망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그들은 그분이 무엇을 가졌는지 궁금해했습니다. 나는 모든 믿는 자들이 같은 것을 원한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마셨을까요? 그분은 그들이 마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세례를 보았을까요? 그분은 그들이 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잔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 잔은 바닥까지 비어졌습니다. 그분의 잔은 달랐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잔 때문에 우리의 잔이 넘쳐흐릅니다. 오, 분명히 선함과 자비가 여러분을 따를 우리는 무엇을 할까요? 여러분, 오늘 그분으로부터 그 겉옷이 여러분에게 떨어지게 하십시오. “네가 내가 가는 것을 보면 그렇게 될 것이다.” 엘리사는 엘리야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겉옷이 떨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능력의 겉옷, 축복의 겉옷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이 이 육신의 장막 안에 있는 이 영적인 계시를 가졌으니, 무엇을 하겠습니까? 몸이 충분히 항복하여 성령의 온전한 성전이 된다면, 충만함이 흘러넘칠 것이고, 생명이 여러분에게 필요한 대로 주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빚어주셔서 오늘 아침에 강들뿐만 아니라 그분의 위대한 바다의 광활함이 우리를 통해 흐르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인도받는 대로 하십시오. 제단이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의 필요를 보고, 그분이 여기 계셔서 여러분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을 알 때, 여러분에게 어떤 압박도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한량없이 주시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어떤 방식으로든 여러분을 인도하시도록 우리는 그분 앞에서 잠잠히 있겠습니다. (샌프란시스코 글래드 타이드 타버너클 & 바이블 트레이닝 스쿨) --- 「5장 말씀으로 영혼을 확장하라 (1922년 8월 2일)」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