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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3
시나리오·7 영화 〈청포도 사탕〉 제작연보·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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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 소라를 돌아본다.
정은 : 나 때문에? 소라 :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난 언니 기분이 어떤지 알고 싶어요. 선주 : (소라를 보며) 너 왜 그래? 정은 : 무슨 기분? (낯설게) 뭘 알고 싶은 거야? 소라 : 언니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 정은 : (차분하게 말을 자르며)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다고? 글 쓰는 사람이면 이렇게 맘대로 찾아와서 자기하고 싶은 말만 하고, 얻고 싶은 것만 얻으면 된다고 생각해? 선주 : (소라에게) 이제 그만 해. 소라 : (지지 않고) 그때! 언닌 왜 부모님과 함께 이민을 가지 않은 거죠? 그때 여은이가 얘기해 줬어요, 이민을 간다고. 그리고 자세한 얘기를 하려던 거였는데… 정은 : (마음속에서 뭔가가 무너진다) 뭐? 여은이가 그런 얘길 했어? 우리 집이 이민 간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소라. 정은, 무언가 심한 동요를 느낀다. ---p.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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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서문]
한 인간의 사라짐에 우리가 가슴 저려하는 것은 사실 그와 우리 사이에 존재해 있었던 그 암호 때문이었는데 한 존재의 사라짐과 더불어 그 암호가 무용하고 텅 빈 것으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Patrick Modiano ‘Villa triste(슬픈 빌라)’ 중에서 1. 〈청포도 사탕〉은 2009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 있는 물랑 예술가의 집에서 쓴 시나리오이다. 이 물랑 예술가의 집은 칸영화제와 협약을 맺어 레지던스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운 좋게도 한 해에 한 명만 뽑는 시나리오 레지던트로 선정되어서 삼 개월 간 머물 수가 있었다. 계약조건도 자유로워서 기간은 삼 개월이지만 체류 시간은 파리에 있다가 물랑에 내려가면 그곳에 있는 시간만 계산하기 때문에 반 년 정도를 유럽에 머물 수가 있었다. 그렇기에 〈청포도 사탕〉의 분위기는 다분히 노르망디의 기운을 띄고 있다. 한 번은 한 밤중에 시나리오를 쓰다가 묘한 기운에 방 밖을 나가서 하늘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내 머리 위로 커다란 달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썼던 장면들이 기억난다. 자연의 기운이 느껴지는 그 씬은 선주가 소라와 차를 타고 밤중에 숲길을 헤매다가 고라니를 만나는 장면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자연의 신비로움은 시나리오 곳곳에 묻어있다. 특히 인트로에 나오는 선주와 소라의 파도치는 태종대 장면은 대표적이다. 2. 〈청포도 사탕〉에는 그림과 음악 모티브가 중요하게 쓰인다. 그림은 Caspar David Friedrich의 〈바닷가의 수도사〉이다. 푸른색 바다를 배경으로 수도사로 보이는 사람이 서있는 그림인데 영화의 분위기를 잡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극 안에서 주인공들이 어렸을 때 함께 보던 그림이자 현재까지도 그들을 잇는 그림으로 나온다. 2012년 〈청포도 사탕〉이 폴란드 바르샤바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아 여행하던 중 독일 베를린 미술관에 가서 이 그림을 직접 본 적이 있다. 그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무언가 완결되는 그런 감정이었다. 음악은 브람스의 레퀴엠으로 영화 안에서 디제이가 하는 멘트로 나오며 영화의 의미를 함축할 수 있는 내용이라 중요하다. 디제이 브람스의 레퀴엠은 그 출발점부터 카톨릭의 그것 과는 달랐는데요. 카톨릭의 레퀴엠이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한다는데 기반을 두고 있다면 브람스 의 독일 레퀴엠의 근본사상은 죽음에 의해 남겨진 사람,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해 주고자 하는 것으로 오히려 주관적인 것이었습니다. 3. 2018년도에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초청으로 〈청포도 사탕〉을 특별상영 했었다. 그 자리에 주인공들의 어린시절 역할을 했던 세 여배우가 다 참석해서 의미 있었는데 ‘김보라, 강민아, 김유미’ 아역배우였던 이 세 배우가 이제 성인이 되어 많은 영화와 텔레비전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 자리를 빌어 그들의 앞날에 응원과 축복을 보낸다. 4. 〈청포도 사탕〉을 쓰는 내내 나에게는 하나의 이미지가 있었는데 그건 빈 책상 서랍에 남겨져있는 여은이가 즐겨 먹던 청포도 사탕이었다. 그 사탕을 즐겨먹던 여은이는 이제 없다, 그리고 남겨진 친구들은 그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성인이 된 다음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 역시 내내 생각하던 질문이었다. 결국 창작하는 사람은 질문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기억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성수대교 붕괴사고는 내가 기억하고 언젠가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한 사고였다. 촬영 전에 촬영감독과 성수대교 추모비에 다녀왔는데 이상하게도 길을 찾기가 쉽지 않은 추모비였다. 그리고 영화를 촬영하는 내내 계속 비가 내렸다. 촬영하는 내내 성수대교는 그렇게 계속 우리 곁에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의 기억과 질문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기를 조심스럽게 바래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