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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법 불법 합법
2. 사람들 속내 천야만야 3. 이산타령 친족타령 4. 1991년 초겨울의 서울 모스끄바 평양 5. 아버지초 6. 살 7. 탈각 8. 타인의 땅 9. 용암류 |
李浩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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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는 1945년 8월, 중국 상해(上海)에서 광복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때의 실제 정황으로 말한다면, '광복'의 실감은 아직 멀고, '패전'쪽의 분위기에 더 가까웠던 모양이다. 나라를 되찾게 되었다는 환호의 소리가 상해 임정 골목을 비롯하여 전혀 없던 것은 아니로되, 그때 상해에 사는 교민들 태반은 매일매일이 첨예한 불안의 나날들이었다는 것이다.
광복을 맞은 고국으로 하루빨리 돌아들 가야 하였지만, 배편을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나 매한가지인데다, 설령 돌아간다 한들 앞으로 무얼 해먹고 살 것이냐 하는 점으로도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는 것이다. 응당 그랬을 터였다. 세상이 송두리째 뒤집어질 때는 노상 어디서나 이런 유의 소용돌이를 한번씩 치러내게 되어 있었지만, 더구나 그때의 그이 입장으로 말한다면 그런 쪽의 저간 몇년간의 자신의 신상 이야기까지 속속들이 죄다 털어놓기에는 그로부터 사십여년이 지난 1999년 오늘에 와서도 썩 개운치가 않고 조금은 창피하고 쑥스러울 터였다. 당시 일본군의 대륙 진출에 따른 일본군 휘하의 군속 신분으로, 견장 없는 군복 쪼가리 차림으로 상해 바닥을 활보하고 다닌 모양이었으니 안 그랬을 것인가. 아니, 이야기는 딱부러지게 하자. 중일전쟁을 벌이면서 일제가 마지막 발악으로 조선청년들까지도 당시의 '총력연맹' 산하에 묶어넣으며 학도의용군을 모집하려 들 때, 양심적이고 식견있는 열혈 조선청년으로 응당 그에 반항, 우리 임정이 건재하고 있다는 중국땅으로 어렵사리 내빼갔는데, 곧바로 중일전쟁이 터지며 눈 깜짝할 사이에 일본군이 상해로 진주해왔으니, 그이로서야 어쩔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상해 현지에서 낭인 비슷이 몇달 동안 동가식서가숙으로 돌아가고 있던 그이는 어느새 눈앞의 세상 돌아가는 형편대로 자연스럽게 현지 일본군의 군속으로 휩쓸려들어갔던 것이다. 당시의 그 급격한 정황 속에서 그이로서는 그밖에 딴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양자강을 따라 오지로 오지로 내빼들어가, 끝내 중경(重慶)이라는 곳에 전세방 하나를 얻고 든 우리 임정을 악착같이 쫓아서 가기에는, 당시의 그이로서는 도무지 앞날을 예단할 수 없는 막막천지였을 터이다. --- pp.76-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