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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동무론』, 혹은 공부와 연대가 겹치는 지혜에 관해서
2강 라이얼 왓슨의 초자연론과 현명한 관념론의 길 3강 한물간 검객이지만 칼은 매일 갈지요 4강 생활인의 공부론 5강 2025년, 응해서 말(답)하기 6강 거인들은 왜 사라졌는가? |
金永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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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든 자원이든 돈이든 혹은 인간관계든, 잉여의 것을 사용하는 방식은 곧 그 사람이 자신의 인생을 대하는 방식을 나타냅니다.
--- p.26 100미터 단거리 육상 선수가 긴 연습 끝에 신기록을 세우면 그 성취는 육상협회만이 아니라 인류의 몸의 역사에 기록되고 기억되며 반복됩니다. 먼 옛날 물에서 진화해 나오면서 폐와 다리가 생긴 어느 생물의 도약은 생명의 역사에 기록됩니다. 당신이 옛 버릇을 없애고 새롭고 좋은 버릇 하나를 몸에 장착하면 그것은 당신 생활의 역사에 기록되지요. 이렇게 기록이 된 사건은 가능성의 길이 됩니다. 바로 이 가능성의 중심을 이룬 길로부터 새로운 역사는 시작되며 다른 사람과 생명들도 이 길에 차츰 동참할 수 있습니다. --- p.27 ‘자신은 자신 바깥에 있다’는 말처럼 나는 너에게, 인간은 그 초월성에, 자연은 초자연에 그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을 터, 이 강의는 이들 양자를 통합하는 좁은 길의 가능성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 p.33 이는 죽음 같은 자기 포기의 밤이다.” 베르그송도 덧붙이기를, “진정한 신비가는 그저 그를 침투해 들어오는 직접성의 흐름에만 마음을 연다”. 이 대목에서는 하이데거에게 특유한 사유가 공명을 일으키기도 한다. “우리가 사유의 본질을 숙고하는 가운데 진정으로 바라는 것, 그것은 제가 의욕하지-않기를 바란다는 것이지요. ‘의욕하지-않음’이라는 표현은 모든 종류의 의지에서 완전히 벗어난 채 그대로 머물러 있는 그런 상태를 의미합니다.” 내가 오래전부터 큰 공부를 위한 자리에서 ‘존재론적 겸허’를 요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43~44 어쩌면 통합一과 분석多은 존재 전체의 운동을 표현하는 기본적인 양대 형식일 듯하다. 분석 가능한 다양화, 다변화는 미래를 향하는 힘이며 흔히 진화의 틀에 의해서 그 세세한 모습이 드러난다. 그러나 통합은 하나였던 과거의 기원을 기억하는 힘이며 흔히 현실에서는 과람한 해석 속에서 신비한 무엇인 양 나타나기도 한다. --- p.73 나는 근자에 함께 공부하는 학생과 후배들에게 ‘당신이 혼자 있을 때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곧 현재 당신의 공부가 도달한 실력의 지표’라고, 그리고 ‘혼자 있을 때 무엇을 어떻게 반복하고 있는지가 결국 공부의 알짬’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게다가 학인은 개個별자가 아니라 고固유자이므로, 단독獨자적 기풍을 잃지 않은 채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생활양식을 꾸리는 것으로 공부의 시작을 삼아야 합니다. 정체성이니 주체성이니 뭐니 말할 것도 없이, 나는 무엇보다 내 생활입니다. 생활은 곧 다양한 반복이므로, 우선 이 반복을 성찰하고 재구성하는 게 생활의 메타적 재구성으로서의 공부가 됩니다. --- p.91 어느새 세월이 깊어, 이제는 자발적 독신자라기보다는 흔한 독거노인의 한 사람일 뿐인 처지가 되었습니다. (…) 내 인생에 묘처妙處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혼자’와 공부길이 겹치는 순간과 그 계기였을 법합니다. 학인이란 더불어 살고 공부하기에 앞서 근본적으로 혼자만의 삶의 양식을 발명하고 유지하는 주체이므로 어쩌면 내 삶은 ‘혼자-살기’라는 과제를 풀어내는 긴 과정으로 서술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 p.93 혼자 사는 생활은 이러한 주체 생성을 위한 틀이 되기도 하고, 때에 따라 끝없이 시시한 에고의 늪이 되기도 합니다. --- p.95 시간을 정해 하루에 두어 차례 명상에 듭니다. 내가 쓰는 말로 ‘적경寂敬’이라고 하는데, 그 요령은 중심을 낮추는 훈련입니다. 혼자 사는 생활에서 빈발하는 외로움이나 우울은 ‘낮게 떨어져서 바닥에 붙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관련이 있지요. 그것은 낮음 속의 평안과 그 창의성을 체득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뜨고 생활이 부박浮薄해지는 즉시 혼자의 시공간을 견디지 못합니다. --- p.96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문제시할 때라야 진실로 공부길이 열린다고 할 수 있다. 공부에 관한 한 ‘게으른 평화’에 순치된 일상의 흐름처럼 한심한 상태도 없다. --- p.120 자유와 자율을 명분으로 내세운 시시한 에고들이 우울증적 쾌락과 자학적 냉소, 혹은 떼거리 환상과 허무의 늪 사이를 우왕좌왕하는 중에 다만 소비자로서 만나게 되는 문화·교양·예술·종교 속에는 진정한 동기도, 일관된 의욕도, 꾸준한 실천도 잘 보이지 않는다. 어긋남의 사무침이 없고 어긋냄의 노동 없이는, 제 삶과 죽음을 구제하려는 희망으로 정향된 공부길이 생길 도리가 없다. --- p.122~123 삶 속의 중용은 역동적 긴장의 형식을 띱니다. 그리고 공부와 함께 얻은 지혜도 이 긴장에 적절히 응대하는 실력입니다. --- p.145 항상 어학 공부가 열어주는 여러 가능성을 향한 의욕을 잃지 말고 꾸준히 살려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지요. 인문학이란 언어성을 그 유일한 아우라로 삼는 실천이니까요. 이는 우선 인문학이란 언어를 배우는 일이라는 기초적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취지가 있습니다. --- p.1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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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혼자’를 어떻게 조형하고 실천하는가에 달려 있다
저자의 공부와 실천론에 대해 어떤 이들은 전기-후기로 나누기도 했다. 다시 말해 2008년 『동무론』을 펴냈을 당시 저자가 인문좌파였다면, 2017년 『집중과 영혼』을 펴내면서는 인문우파로서의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다. 전자가 자본주의적 체제 아래서 인문주의적 연대를 모색·실천했던 반면, 후자는 자기 구제로서의 공부길을 모색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구분법보다 ‘무능의 텅 빈 중심’에서 생겨나는 창의성과 급진성을 생활양식에 적용하면서 중도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서 얻는 실용성이 더 중요할 것이다. 저자의 공부론은 늘 생활에서 벗어나지 않는, 실용성을 기준으로 삼는다. 『생활공부와 현명한 관념론의 길』에서도 저자는 ‘세상을 바꿀 가능성이나 필요 없이 한 사람이 자기 자신과 주변을 바꿀 수 있으면 그 자체로 실재의 역사나 정신의 기억이 될 만하다’고 말한다. 인격과 행위의 진동은 기록되고, 반복 가능성의 지혜를 퍼뜨리기 때문이다. 누군가 한 마을을 구제할 수 있다면 그는 세상을 구제한 것이다. 그렇다고 관념론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관념론과 실천론은 함께 가기 때문이다. 저자는 현명한 관념론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자기 인생을 실험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변화와 성숙을 통한 ‘되기’가 없다면 무엇을 깨치거나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다. ‘되기’는 기존 시스템과 상식에 순응하는 대신 ‘인생은 해보는 것’이라는 의지로써 에고의 지지부진함을 넘어 생각과 생활의 변화를 이루고, 이를 기록한다. 둘째, 초의식·초자연 영역에 대한 해석과 실천에서는 무엇보다 ‘모른다-모른다-모른다’라는 태도로 조심하면서 끈기를 지녀야 한다. 셋째, 실천에서 얻은 앎과 패턴화에서 얻은 이치를 생활에 적용하면서 여러 공부론의 성취와 꼼꼼히 대조하고, 또 기초적 자원이 되는 마음자리를 낮추며 비우는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것은 달리 말해 ‘장소화’다. 장소화는 사람이 사물에 응하는 방식 중 하나다. 정신과 정성이 사물들과 함께 존재하는 곳은 생활 체감을 얻으며 장소화를 이루고, 그곳에서 사람은 평온하게 마음 붙일 수 있다. 저자는 인간의 자기 구제가 정신 혹은 마음에 의해 열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진화론을 돌아보면 인간 마음의 기원과 진화적 미래가 어떻게 자리해갈지 단언할 수 없다. 마찬가지 차원에서 이 책이 비중 있게 다루는 ‘초월’ 역시 ‘모른다’는 겸허함으로 대할 것을 권한다. 앞선 시대의 주체화나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이미 빛바랬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자기 규칙에 대한 복종만이 단단한 주체를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특히 저자 자신의 오랜 경험을 나누며, 공부는 ‘혼자’를 어떻게 조형하며 실천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 “당신이 혼자 있을 때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엇을 어떻게 반복하고 있는지가 곧 현재 당신의 공부가 도달한 실력의 지표”다.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자기의 중심을 충분히 낮추고, 마음을 둘 수 있는 장소와 사물들을 창안해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자기 자신의 존재감을 놓친 채 상품은 상품대로 넘쳐나고, 마음은 마음대로 넘쳐난다면 그에게 이미 혼자란 없으며, 그 존재는 서서히 부스스해지고 부서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