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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도전
1장. 성경의 결말: 야만적인 하나님에 대한 찬양? __ 9 2장. 성경의 중심: 의미는 중간에 있는가? __ 35 제2부 문명 3장. 양심 __ 63 4장. 폭력 __ 87 제3부 계약 5장. 창조와 계약 __ 109 6장. 축복과 저주 __ 129 7장. 예언과 기도 __ 145 8장. 지혜와 하나님 나라 __ 169 제4부 공동체 9장. 이스라엘과 로마의 도전 __ 197 10장. 예수와 하나님의 급진성 __ 215 11장. 그리스도와 문명의 정상성 __ 237 12장. 로마와 카이사르의 도전 __ 257 13장. 바울과 그리스도의 급진성 __ 279 14장. 바울과 제국의 정상성 __ 301 에필로그: 우리의 밤의 그림자를 뛰어넘기 위해 __ 323 옮긴이의 말 __ 341 성경 색인 __ 3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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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때로는 구약성경의 하나님은 보복과 처벌의 하나님이었던 반면에, 신약성경의 하나님은 용서와 자비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식의 주장이 성경의 하나님의 성격에 관한 양면성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내가 배운 방식이었다... 구약성경의 하나님은 “나쁜 경찰”이며 신약성경의 하나님은 “착한 경찰”이라는 주장은 그리스도교 성경 전체를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만 설득력을 갖고 있었다.--- p.27~28
이제 나는 길가메쉬와 엔키두 이야기로부터, 창세기 2-3장의 아담과 하와의 서사시로 넘어가겠다. 나의 질문을 다시 묻겠다. 우리가 길가메쉬와 엔키두 이야기를 모체로 삼을 때,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를 다르게, 즉 올바르게 보게 되는가? 아담과 하와 이야기의 모체에 대한 단서로서, 이 두 이야기가 다음과 같은 점에서 근본적으로 평행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p.75~76 영생이라는 질문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혹하며 정직한 사실주의를 가르쳤다. 이스라엘은 지리상으로 이집트 영토와 가까웠지만, 지적으로는 메소포타미아 신학과 훨씬 가까웠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그 역사의 대부분 기간 동안(기원전 마지막 2세기까지) 영생에 대해 전혀 인정하지 않은 채, 토라의 권위, 예언의 영광, 시편의 아름다움, 지혜의 도전을 창조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났을 수는 있지만, 결코 메소포타미아를 떠나지는 못했다.--- p.80 에덴동산의 영생의 나무 이야기나 길가메쉬의 불로초(영원한 젊음의 식물) 이야기는 낙원(paradise)을 상실한 비극들이 아니었다. 그 이야기들은 단순히 불가능성에 대한 비유들이었다. 인간의 운명은 영원한 젊음을 주거나 행복한 내세를 주는 것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메소포타미아는 이집트가 아니었다. 그런데 죽음 이후의 내세에 대한 믿음과 관련해서, 도대체 왜 메소포타미아는 이집트와 그처럼 달랐는가?--- p.82 이스라엘이 스스로 홍수 이야기를 창조했다기보다 메소포타미아의 홍수 전승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받아들였다는 점을 인정하고, 또한 하나님이 “다시는” 그런 신적인 테러리즘을 수행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는 점을 받아들인다 해도, 우리가 성경의 처음 열 장을 다 읽기도 전에,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정의를 회복하는 차원보다는 훨씬 더 일반적인 보복의 차원에서 보복적 정의를 행사하는 분으로 나타나셨다.(도대체 동물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홍수로 쓸어버리셨는가?) 내가 이 책에서 더욱 강하게 도전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들로서 도대체 어떻게 우리의 성경을 읽어야 마땅한가? 성경의 처음 몇 장이 거의 즉각적으로 제시하는 하나님은 우리의 최선보다 훨씬 더 훌륭하신 하나님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최악보다 훨씬 더 잔악한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p.104~105 나는 아시리아 방식의 종주-봉신 조약들 가운데 하나의 전형적 사례를 제시하면서, 특히 그 스타일과 형식에 주목할 것인데, 이것은 봉신들이 장차 충성하지 않을 경우 스스로 저주 받을 것을 서약하는 상벌규정의 폭력과 테러리즘에 주목하겠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런 것들이 앞의 5장에서 살펴본 히타이트 방식의 조약에 나오는 전문, 역사, 법, 증인, 상벌규정과 얼마나 다른가를 알게 된다.--- p.132 신명기 계약의 상벌규정에 대한 관점은 두 방향으로 나타났다. 하나는 현재로부터 미래로 향한다. 즉 만일 당신이 순종하면 복을 받을 것이며,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 둘째는 현재로부터 과거로 향한다. 즉 당신이 복을 받았다면 당신은 순종했기 때문이며, 당신이 저주를 받았다면 당신이 불순종했기 때문이다.--- p.136 신명기 신학은 신명기 전승 자체 안에서조차 작동하지 않았다. 므나쎄 왕과 요시아 왕의 경우처럼, 고전적인 불일치 때문에 역대기 저자는 역사를 신학에 맞도록 역사적 “수정”을 할 필요가 있었다. 더 나아가, 이와 똑같은 일이 신명기 전승 바깥에서는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p.140 네로 황제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주적인 로마제국을 파멸시킬 것이며, 그 신격화된 로마 황제와 로마의 모든 제국을 파괴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이 일을 위해서 사용할 폭력은 로마제국이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어떤 폭력보다도 훨씬 더 능가하는 폭력이다. 매우 끔찍하고, 또 끔찍하며, 또 끔찍한 역설적 방식으로, 요한계시록은 돌아오는 네로 황제와 그의 파르티아 군사력을, 돌아오는 그리스도와 그의 천군천사로 대체시켰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요한계시록의 최악의 명예훼손이며, 예수에 대한 최악의 중상모략이다. 이것은 또 성령에 대한 최악의 죄이기도 하다.--- p.254 신약성경이 그토록 재빠르게 로마의 문화 속에 적응하고 변용되어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준비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슬픈 일이다.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가?”를 결코 배우지 못한 모든 사람들이 겪게 된 수난, 특히 그리스도를 가짜 그리스도(pseudo-Christ)에 반대되게 읽어야 하고, 바울을 가짜 바울(pseudo-Paul)에 반대되게 읽어야 하는 문제가 관련될 때, 이런 분별력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겪게 된 수난에 대해 적어도 탄식할 수는 있다. --- p.3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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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를 통해 모두에게 당신의 형상을 골고루 나누어주시고 안식일을 창조의 면류관으로 삼아 모든 식구들뿐 아니라 노예들과 가축들까지 편히 쉬게 하시고, 희년법을 통해 철저한 분배 정의를 가르친 하나님께서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점차 보복하시는 하나님이 되어 계시록에서는 온 세상을 피바다로 만드는 분이 되셨는가? 저자는 율법, 예언서, 시편, 지혜, 종말론, 복음서들과 바울의 편지들을 치밀하게 분석하여 제국들의 폭력성이 어떻게 성경 속의 하나님 이해에 큰 영향을 끼쳐서 그처럼 잔혹하게 보복하는 신으로 그렸는지, 그러나 예수는 어떻게 본래적인 하나님, 즉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는 급진적 사랑의 하나님을 가르치고 살아내셨는지, 또한 바울은 어떻게 예수처럼 유대인들의 율법주의에 대해 도전하고 로마제국을 변화시켰는지를 치밀하게 밝혀준다.
이 책의 질문들 성경의 결론은 계시록의 재림 예수가 군마를 타고 심판하는 대량학살인가? 성경 자체는 왜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계속 부정하며 또 전복시키는가? 하나님의 폭력적인 심판과 보복을 믿으면서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분배 정의는 비폭력적인 반면에 보복적 정의는 폭력적인 것인가? 성경이 가르치는 진짜 원죄는 무엇이며 교회는 원죄를 어떻게 오해했는가? 복음서의 비폭력적 예수와 계시록의 폭력적 예수 중에 누가 참 메시아인가? 고대 근동 제국들은 성경 저자들의 하나님 이해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세례자 요한과 예수가 목숨 바쳐 가르친 하나님 나라는 서로 어떻게 다른가? 바울은 어떻게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계승했으며, 로마제국을 변화시켰는가? 전대미문의 위기에 봉착한 인류가 성경에서 배워야 하는 지혜는 무엇인가? 서평들 “존 도미닉 크로산의 저술들은 독창적이며 흔히 논쟁을 불러일으키지만, 오늘날 신약학자들 사이에 매우 격렬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 Elaine Pagels “크로산은 총명한 저술가이다.” ― Times Literary Supplement “크로산은 가장 통찰력이 넘치며 생각을 자극하는 주석가 중 한 사람이다. 그의 탁월한 명료함과 방법론은 성경연구에서 최고이며 마음을 사로잡는다.” ― Booklist “번득이는 천재성을 지닌 크로산은 깊은 이해와 연민을 갖고 책을 쓴다.” ― San Francisco Chronicle “크로산은 신약학자들과 특히 예수 연구자들 사이에서 가장 칭송을 받을 뿐 아니라 가장 논쟁적인 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 Library Journa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