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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민족 과학
현재환
문학과지성사 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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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들어가며: 인종 과학에서 다민족 과학으로?
1장 과학 연구와 미끄러지는 용어들
2장 아시아인 유전체 주식회사
3장 포스트민족주의 과학의 굴레
4장 국가주의적 다민족 과학
5장 새로운 인종 과학
나가며: 구별의 과학과 포용의 과학

후기
출전

저자 소개 1

한양대학교에서 역사학, 철학, 과학기술학을 공부하고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현 과학학과)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UCLA 사회와 유전 연구소 방문연구생, 도쿄이과대학 공학부 및 막스플랑크 과학사 연구소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부산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현재는 한양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공저로 『마스크 파노라마』 『과학과 가치』 『우리 안의 우생학』 『Ordering the Human』 『The Order of People』 등이, 옮긴 책으로 『유전의 문화사』와 『유전상담의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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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4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172쪽 | 192g | 128*187*10mm
ISBN13
9788932045160

책 속으로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인종’이라는 단어만 피하면 되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과학사에서 이 단어들은 결코 서구의 분류처럼 명쾌하게 분할되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 사회에서 ‘민족’은 단순한 문화적 집단을 넘어 단일한 혈통이라는 생물학적 믿음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즉, 우리가 ‘민족’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서구의 ‘인종race’이 가졌던 생물학적 배타성과 본질주의적 사고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인종이라는 단어를 배척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집단을 나누고 그 차이를 생물학적으로 고정하려는 시도 자체를 경계해야 한다.
---pp.24-25 1장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세계 생명과학계는 유전자가 곧 자본이 되는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생명공학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부상했고, 1990년 미국 주도로 시작된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는 그 정점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인체의 신비를 밝히는 학문적 탐구가 아니라 유전 정보라는 미래의 핵심 자원을 누가 선점하느냐를 두고 벌이는 기업 간, 국가 간 경쟁이었다. 바야흐로 생명체 자체가 자본 축적의 원천이 되는 생명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pp.46-47 2장

이 시기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민족 정체성 논쟁은 단순히 이념적인 것이 아니었다. 논쟁은 현실의 인구 문제, 경제적 필요, 그리고 영토 안보와 직결된 현실정치적 문제였다. 다문화주의자들은 한국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순혈주의를 타파해야 한다고 외쳤고, 민족주의자들은 국가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한민족의 단일성을 사수해야 한다고 맞섰다. 그리고 이 논쟁의 한복판에 유전학이라는 과학이 소환되고 있었다.
---p.72 3장

우리에게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필요하다. 우리의 과학은 과연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복무하고 있는가? 단순히 차이를 식별하고 관리하는 것을 넘어, 차이가 차별의 근거가 되지 않는 정의로운 과학을 상상하는 일은 과연 불가능한 것인가?
---pp.120-121 4장

과학은 오롯이 자연의 거울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편견이 얽힌 복잡한 구성물이며,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권력을 부여하는 정치적 과정임을 직시해야 한다. 다민족 과학이 진정한 포용의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지식 생산의 첫 단계부터 현재 채택한 분류나 연구 목표가 사회적으로 어떤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지를 고민하는 인식론적 전환이 필요하다. 멈추지 않는 혐오의 재생산 고리를 끊을 수 있는 힘은 과학이 사회와 분리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과학자들의 자기성찰과, 이를 감시하고 더 정의로운 과학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연대에서 비롯될 것이다.

---pp.146-147 5장

출판사 리뷰

인종, 민족, 다문화, 그리고 다민족 과학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 DNA가 99.9퍼센트 동일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인종’은 생물학적 실체가 아니라 사람들을 위계적으로 분류하기 위해 고안된 사회정치적 구성물이라는 이해가 확산되었다. 이에 따라 국제 과학계에서는 생물학적 인종을 가리키는 ‘race’라는 용어 대신 ‘유전적 유사성genetic similarity’이나 ‘지리적 조상geographic ancestry’ 같은 용어 사용이 권고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여전히 인종과 민족, 종족 등의 용어가 편의적으로 혼용되고 특히 민족 개념이 생물학적 범주처럼 사용되면서 인종적 차이가 실재하는 것처럼 오인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다민족 과학』의 저자 현재환은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며, 단지 ‘인종’이라는 단어를 배척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집단을 나누고 그 차이를 생물학적으로 고정하려는 시도 자체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다문화 정책에 기초한 시민권 관리와 DNA 검사의 경우에도 ‘순수 한국인’을 중심에 두고 주변부 존재들을 끊임없이 분류하고 관리하는 새로운 통치 기술로 기능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북한이탈주민, 조선족, 결혼 이민자, 그리고 그 자녀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한국인과 생물학적으로 다른 존재로 간주되어왔다는 것이다.

현대의 다민족 과학은 피부색과 골상을 바탕으로 인종 간 우열을 매기던 과학적 인종주의와는 분명 다르지만 이 책이 보여주듯 그 경계가 흐릿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과학적 선의에서 시작된 연구가 차별의 근거를 제공하는 인종 과학으로 미끄러질 수 있는 비탈길 위에 서 있는 셈이다. 저자는 과학자들이 무심코 열어둔 인식론적 틈새가 실험실이나 학술지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로 흘러나와 악용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인종주의적 시민과학이 출현하는 과정을 추적하며 더욱 사려 깊고 책임감 있는 과학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한국의 ‘다민족 과학’에 대한 짧지만 밀도 높은 성찰

이 책은 과학기술학의 관점에서 2000년대 이후 한국에서 과학과 보건 정책, 다문화주의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얽혀왔는지 심도 있게 탐구한다. 우선 1장 「과학 연구와 미끄러지는 용어들」에서는 체계적 문헌 고찰을 통해 1945년부터 2022년까지 유전학적 데이터를 다루는 논문과 보고서를 전수 조사해 인간 집단을 어떤 용어로 명명하고 분류하고 있는지 분석한다. ‘민족’과 ‘인종’ 개념이 혼용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통해 저자는 다민족 과학이 식민지 시기 인종 과학과 완전히 결별한 것이 아니라 그 유산 가운데 만들어지고 있음을 확인한다. 2장 「아시아인 유전체 주식회사」에서는 한국의 유전체 연구 대상이 ‘한국인’에서 ‘아시아인’으로 확장된 과정을 검토한다. ‘아시아인 건강을 위한 과학 연구’라는 슬로건은 일견 포용적 제스처로 보이지만, 그 실제 배경에는 시장 개척을 위한 생명공학 기업들의 상업화 전략과 ‘생명추출주의’가 놓여 있었음을 밝힌다.

3장 「포스트민족주의 과학의 굴레」에서는 2000년대 ‘다문화주의’의 부상과 민족주의적 역사 분쟁이라는 두 충돌하는 요구 사이에서 유전적 역사라는 포스트민족주의 과학이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 살펴본다. 유전학자들은 북방계와 남방계 이중 기원설을 통해 단일민족 신화를 비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 동북공정에 맞서 ‘유전적 동질성’을 증명하라는 요구에 부응해야 했다. 이 장에서는 이 딜레마가 어떻게 유전학을 민족주의의 굴레에 가두었는지 분석한다. 4장 「국가주의적 다민족 과학」에서는 유전자 검사, 범죄 수사, 생의학 및 법의학 연구 등이 생명정치적 통치의 도구로 활용되는 과정을 상세히 살핀다. 5장 「새로운 인종 과학」에서는 다민족 과학에서 생산된 지식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와 같은 대중적 장에서 어떻게 순환하며 ‘새로운 인종 과학’의 재료가 되었는지 사례 연구를 통해 확인한다.

저자는 다민족 과학이 이와 같은 새로운 인종 과학을 막는 방파제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를 위해 과학 연구자들은 정부뿐 아니라 인문사회 연구자와 일반 시민, 나아가 이주민들의 목소리를 폭넓게 경청해야 하며 당사자 중심의 과학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과학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복무해야 하는가
이주민에 대한 연구에서 이주민과 함께하는 연구로

과학은 결코 진공 상태에서 수행되지 않으며, 항상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과 사회문화적 맥락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다민족 과학이 진정한 포용의 과학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인식론적 전환이 필수적이다. 이주민을 자원이나 데이터, 객체로만 다루는 인식에서 벗어나, 이들이 주요 수혜자이자 지식 생산의 동등한 참여자라는 이해를 바탕으로 이들이 필요로 하는 과학 연구가 수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이제 다민족 과학은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주민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것인가?

이주민에게도 정의로운 과학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과학은 한국인과 이주민에 대한 구별 없는 상호 돌봄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다민족 과학은 절차적 포용주의를 넘어 비로소 진정한 포용의 과학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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