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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과 삶 사이에서 (큰글자도서)
조형근
한겨레출판 2026.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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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라이브러리

책소개

목차

들어가며_어중간하게 살아온 당신과 나에게

1. 내 안의 타자와 마주하기

함께라서 즐거운 인생
십자가는 못 지더라도
동정도 숭배도 없이 존엄하게
갈 수 있는 유토피아
가장 약한 자가 떠받치는 나라
언니에게 업혀서 여기까지
우리 시대의 마지막 가부장들
내 아버지, 니로샨, 사랑의 말
일본으로부터 절대 배우지 말아야 할 것
중국인을 미워하지 않는 방법
죽어가는 것은 사람이다
우리끼리 드는 촛불도 힘이 될까
봄의 혁명에서 봄의 연대로
미얀마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야성의 부름을 넘어

2. 불평등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기생충〉과 〈어느 가족〉, 그 섬뜩한 유사성
어느 계급 투쟁의 기억
기도하겠다, 사람의 일을 하겠다
나의 이중 언어 생활 고백기
새만금에 돌을 던져라, 하지만
800원 대 50억 원의 정의론
수능 시즌의 라떼 생각
차라리 저출생 대책을 없애자
러스트 벨트의 엘레지는 한국에서도 울릴까?
이제는 버리자, 상승의 사다리를
불평등 축소의 묘수는 어디에?

3. 냉소를 넘어, 꿈꾸는 약자들의 정치

죽은 스탈린, 살아 있는 진영론
깃발 든 보수, 불행한 공동체
인민의 자격, 정치의 자세
위선, 악이 선에 바치는 경배
법치가 괴물이 되어갈 때
노태우의 죽음, 이 체제의 죽음
꿈이 없으면 리얼리스트도 아니다
2.5퍼센트의 뇌 구조는 어떤 걸까?
윤석열 일당을 체포하라
87년 체제의 파국, 응원봉이 내는 길
음모론과 민주주의의 기초 체력
압도적 승리는 21세기 체공녀를 구할까?

4. 중산층의 욕망, 그 범속함을 성찰하기

이기적인 2기 신도시 주민?
지상의 달팽이 집 한 칸
저 낮은 민주주의를 기다리며
중산층의 집 짓기, 로망과 욕망
코스피 4000 시대, 투자자의 마음이 잊은 것
기득권이 된 86세대에게 남은 윤리
좌파 아닌 강남 좌파
그 대학생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토록 기묘한 ‘서민’ 의식
교육을 통해 생각하는 기회 평등론의 허구성

5. 끝나지 않는 질문, 어떻게 살아야 할까?

대학을 떠나며
마을로 돌아와서
코로나 시대의 지식 날품팔이
나를 가르치고 응원해주는 사람들
독립 연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세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
고작 설거지 한 번을 하고서
내 마음속의 부활절 기도
우리는 기억하겠다
밥벌이의 준엄함, 삶의 엄연함
우리가 돈이 없지, 가치가 없을까
내 반제품 인생이 품은 질문들
아모르 파티, 작은 것에 깃들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저자 소개1

사회학자. 늦은 나이에 정규직(한림대) 교수가 되었으나 적성을 찾아 사직하고, 파주 교하의 협동조합 책방에서 집필과 강연에 전념하고 있다. 동네살이의 일환으로 합창단과 미얀마연대 활동에도 참여 중이다. 제국과 식민지 사이를 헤쳐나간 사람들의 삶, 사랑과 상처에 관심을 기울여온 역사사회학자이기도 하다. 저서로 《우리 안의 친일》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 《키워드로 읽는 불평등사회》, 공저로 《근대주체와 식민지 규율권력》 《식민지의 일상》 《제국일본의 문화권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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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4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48쪽 | 176*273*18mm
ISBN13
9791172133962

책 속으로

구조적 부정의란 어떤 것일까? 힘센 개인이나 기업의 불법과 악행, 그들과 결탁한 국가권력의 정책 탓에 발생하는 명백한 부정의와는 별도로, 법을 지키면서 자기 이해를 추구할 뿐인 수많은 개인들의 행위와 제도가 상호 작용한 결과로 발생하는 불의가 바로 구조적 부정의다. 부동산 가격 폭등은 좋은 사례다. 투기꾼과 기업의 탐욕과 불법, 건설 자본을 보호하는 정권의 이해관계만으로는 미친 부동산 시장을 설명할 수 없다. 이 광풍은 좀 더 넓은 집, 학군 좋은 곳에서 살고 싶고 자산 부자도 되고 싶은 수백, 수천만 명 개인들의 평범한 욕망이 선분양이나 전세 같은 한국 특유의 제도와 뒤섞이며 빚어내는 비극이기도 한 것이다.

성숙한 산업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고통 중 상당수는 구조적 부정의라는 틀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기후 위기, 성별, 지역, 인종 사이의 차별, 불평등 같은 문제도 그렇다. 기후를 망치겠다거나 사람을 차별하겠다는 ‘의도’를 가진 악인이 흔할까? 지방이 못 살기를 바라는 서울 사람이 있을까? 그저 편리한 것이 좋고, 친숙한 사람들과 일하고 교류하고 싶다는 평범한 욕망이 모여 풀기 어려운 부정의를 만드는 것이다.
--- p.7

장모님은 며칠 전 우리 동네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새로 온 50대 후반의 중국 동포 간병인은 싹싹한 데다 머리도 잘 감겨주고 힘이 좋아서 화장실에서 부축도 잘해준단다. ‘힘들어요’를 입에 달고 살던 이전 간병인보다 한결 낫다며 장모님도 좋아하신다. 병원을 옮기며 간병비 지급을 위해 주민번호를 확인하니 60대 초반이라던 그 간병인은 일흔일곱, 장모님과 동갑이었다. 간병 받을 나이에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제 나이를 밝히면 일을 못 얻을까 두려웠으리라. 우리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힘들다던 하소연이 계속 머리를 맴돈다. 여기가 대한민국이다. 가장 약한 자가 떠받치는.
--- p.39

세계은행의 2003년 정책보고서 〈성장과 빈곤 감소를 위한 토지 정책〉에 그 성과가 분명히 밝혀져 있다. 1960년 시점에 토지 분배가 평등한 나라일수록 1960년에서 2000년까지의 장기 경제 성장률이 높았다. 경제 성장률 최상위에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등이 있는데, 모두 과감한 농지 개혁으로 토지 분배가 가장 평등하게 이뤄졌던 나라들이다. 중국의 경우는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에 실시된 또 한 번의 농지 개혁이 성장률에 반영됐다. 평등의 힘으로 일어선 나라들이다. 반면 최하위에는 농지 개혁에 실패한 중남미 나라들이 있다.
--- p.103~104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만 짚고 가자. 이 논리에 따르면 민주당은 국민의힘보다 더 나쁜 당이 되기 전까지는 아무리 잘못해도 심판받으면 안 된다. 아니, 자신들의 과오로 정권 상실의 위기가 커질수록 더 열렬히 지지받아야 한다. 최악이 정권을 잡으면 안 되니까. 이번 대선이 바로 그 전형이다. 잘못할수록 지지할 이유가 더 커지는 정당이니 민주당은 참 복도 많다. 이 논리는 완전히 똑같이 국민의힘 쪽에도 적용된다. 이래서 두 당은 겉으로는 죽도록 증오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서로 간절하게 의존하는 사이다.
--- p.194~195

한국의 정치는 극우 정당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정당 민주당이 왜곡된 제도를 통해 정치를 과점한 체제에 지나지 않는다. 최악의 극우를 피해, 그보다는 좀 덜 나쁜 강경 보수가 노동자와 힘없는 약자들에게 베푸는 약간의 호의를 기대하자는 것. 이것이 소위 민주화 이후 30년이 훨씬 지나도록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의 주문이다.
--- p.198

사회대개혁의 열망이 추운 광장을 메웠다. 농민도, 불안정 노동자도, 청년 여성도, 장애인도, 성소수자도, 이주민도, 당신과 우리도 좀 더 나은 삶을 외쳤다. 그 목소리에 힘입어 선거가 이뤄지자, 정치는 광장에 없던 기득권자들 몫을 챙겨주는 데 몰두하고 있다. 압도적 승리를 위해 우경화해야 한단다. 압도적으로 승리한 이명박 정권이 안정적이었던가? 한때 지지율이 90퍼센트에 이르던 김영삼 정권의 말로는 어땠나? 사람의 삶이 사라지면 지지율은 신기루일 뿐이다.
--- p.221

신도시의 유가 계급이 된 후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아졌다. 이웃에 임대 단지, 행복주택 따위나 들어온다며 불평하는 게시물들을 볼 때면 절망하게 된다. 벌써 올챙이 적 잊었느냐며 꾸짖는 댓글들도 있어서 희망을 얻는다. 그중 나 자신의 이기적 변화가 제일 흥미롭다. 집값에 관심이 생기고, 개발 소문에 귀가 팔랑거린다. 내 내면의 눅눅한 저 아래에 집값에 대한 욕망이, 강인한 이기심이 있다.
--- p.227

그날 사당동에서 나와 금선 할머니 가족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을 것 같다. 그 후로는 많이 멀어졌다. 나는 외곽이라고는 해도 수도권에 아파트를 가진 자산 계급이 됐다. 할머니 가족은 여전히 그 영구 임대 주택에 산다. 참 열심히 살았지만 가난은 잡목 덤불처럼, 서로 연결된 불행들의 연쇄같이 뒤엉켰다. 작은 충격을 세상이 완충해주지 못하니 조금만 삐끗해도 불행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영구 임대 주택만으로 가난을 극복하기 어려운 이유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잘 모르겠다. 사실 이들은 평생 권리라곤 가져본 적 없이 없다. 조직화는커녕 아파트단지 임차인 대표 회의조차 임의단체일 뿐이다. 분양 아파트의 입주자 대표 회의가 법적 기구인 것과 대조된다. 중산층 민주주의의 소란 속에 이들의 목소리는 없다. 몫 없는 자들이 몫을 주장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왜 쫓아냈냐고, 왜 돌아오지 않았냐고 이들이 물어올 때 민주주의가 시작된다. 두렵게 들어야 한다.
--- p.235~236

중산층인 채로 양심적으로 살려고 애쓰는 건 좋은 일이다. 양심으로 해결되지 않는 불평등한 세상이 집 밖에 있다. 착한 사람들이 모자라서 세상이 이렇게 모진 것은 아닐 것이다. ‘불편한 말, 위험한 정치가 필요한데 집이 너무 편안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었다. 밖에서는 억수같이 계속 비가 내렸다.
--- p.241~242

맞다, 이런 비판은 그동안 충분히 많았고 이제는 식상하다. 불편한 건 따로 있다. 지금도 불현듯 떠오르는, 그 인명록을 열심히 뒤적이던 내 모습 말이다. 문제 많은 기획이군, 제법 의식 있는 체하면서 나는 그 인명록을 끝까지 들췄던 것이다. 잘나가는 지인이 있기를 바라는 욕망이었으리라. 그게 뭐 대수일까? 그냥 인지상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인지상정일지언정 그것이 현실적인 욕망이 될 수 있는 자와 그저 몽상인 자 사이에는 넘기 어려운 벽이 있다. 바로 이런 것이 구조적 불평등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이제는 586세대, 또는 그냥 86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이 정부와 의회, 지자체의 고위 공직에 가득하다. 기업과 시민사회의 높은 자리에도 넘쳐난다. 개각 소식이나 기업 인사 소식에 혹여 아는 이름이라도 나올까 내 귀는 쫑긋거린다. 흔들어댈 꼬리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 p.250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임명을 둘러싸고 나라가 쪼개졌었다. 사안의 불법성 여부는 애초에 내 관심이 아니었다. 전부 합법이라고 해도 나는 이상했다. 그 정도 집안에서 자식 스펙 만들고 금융 투자도 하는 게 뭐가 잘못이냐는 항변들 앞에서 내 마음이 쪼개졌다. 이 집요한 계급 불평등 재생산을 부모의 인지상정이라고 항변하는 왕년의 민중주의자들 앞에서 내 마음이 아득해졌다. 검찰 개혁에 반대하는 거냐는 성난 부라림에 내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산업재해로 떠나간 노동자 유가족들을 내보낸 다음 유예 조항으로 얼룩진 중대재해처벌법을 처리한 여당에 대해, 그만하면 애썼다는 변호들이 들려서 내 마음이 까마득해졌다. “학삐리들…” 하며 끌려가던 그 여성 노동자의 눈빛이 내내 어른거렸다. 두 번째 구속 때 조사받던 시경 대공분실 밀실에는 빈 공간이 있었다. “여기가 욕조 있던 자리야. 종철이 때문에 없앴어” 하면서 형사는 물을 틀었다. 그때부터 나는 줄줄 불었다. 이번 주에 그이의 기일이 돌아온다. 사는 게 부끄러워서 몇 년 전부터 추모제에 참석하지 못했다. 올해도 그럴 것 같아 마음이 더 춥다.
--- p.259

그의 진중한 성찰을 읽다가 얼마 전 처와 노후 대책을 의논하면서 주택연금을 받으면 그리 힘들지는 않겠다며 안도한 일이 떠올랐다. 마흔 중반까지도 자가는 꿈꾸지 못했는데 어쩌다 삶이 변했다. 서울 전셋값 폭등에 쫓겨 경기도 외곽의 아파트를 할인 분양받아 이사 온 게 십여 년 전이다. 시간이 가도 아파트는 분양가 회복을 못 했다. 그사이 우리는 이웃살이에 빠져들었고, 결국 이웃 생활의 중심지에 땅을 샀다. 땅은 빚으로 샀지만, 건축비는 무대책이었다. 어떻게 되겠지 했는데 문재인 정부 때 아파트값이 치솟았다. 심지어 이곳 경기도 외곽까지 집값이 올랐다. 그 덕에 집 팔아 작은 집을 지었다. 그러고는 다행이라며 안심했다. 그 폭등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의 가슴이 멍들었던가? 성찰의 글을 읽다 보니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졌다.
--- p.262

지금은 내란 막기에 힘을 모아야 하니 ‘탄핵 이후의 세상’ 같은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들 한다. 주로 더불어민주당 주변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래 놓고 자기들은 탄핵 이후의 세상을 거침없이 그리고 있다. 내란을 막자면서 왜 부자가 더 잘사는 세상을 만들자는지 모르겠다. 윤석열은 나쁘지만, 세상의 고통이 모두 그의 탓은 아니다. 어떤 슬픔들은 당신들에게서 나온다. 지지하거나 묵인하는 우리의 응원을 받으며.
--- p.264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활동에서조차 잡일은 곧잘 간과되곤 한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본 어느 진보 정당 당원의 글이다. “피케팅 하는 것보다 여러 피켓을 지고 나르고 다시 보관하는 일이 80프로”를 차지한다. 차가 없으니 새벽에 나와야 하고, 피켓 탓에 지옥철에서 욕도 듣는다. 운동의 대부분은 이런 시간이며, 아래로부터의 진보운동은 이런 시간을 견디는 일이라고 믿는다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잡일이 노선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잡일의 가치를 높이지 않는 진보는 허구다.
--- p.304~305

마트와 새벽배송, 배달 앱을 사용하면서 우리의 마음에 어떤 거리낌이 느껴진다면 거기에 윤리라는 이름을 붙여도 좋겠다. 윤리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것 없이는 세상을 바꾼다는 꿈조차 꿀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먹으면 병 걸리고 죽는 게 아니라면 없는 사람들이 부정 식품이라도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우리를 분노하게 만든 것도 바로 그 윤리적 감각일 것이다. 그 감각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아이들이 16시간 일하는 세상에서 ‘선택의 자유’를 외치고 있을 것이다.

--- p.319

출판사 리뷰

“불편한 말, 위험한 정치가 필요한데, 집이 너무 편안하다”

아는 것과 사는 것, 그 긴장과 균열
자꾸만 화해하려는 마음에 대하여


“어중간한 사람들”(5쪽)은 책임의 주체로 호명되기 어렵다. 이들은 대단히 큰 잘못은 저지르지 않으며, 주로는 선하고 무해한 선택을 한다. “법을 지키면서 자기 이해를 추구할 뿐”(7쪽)이다. 세상에는 이런 이들이 절대다수다. ‘어중간한 주체’는 할 말도 궁색하다. 한편에는 모든 것은 구조의 문제이니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무력감과 합리화가, 다른 한편에는 이미 범속한 욕망에 물든 인간으로서 비판적 목소리를 낼 자격을 잃었다는 옅은 자괴감이 따르기 때문이다. 한때 ‘독재’와 ‘자본’에 맞서 싸우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가장 치열하게 목소리를 내던 이들(86세대)은 이제 아는 대로 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고, “행여 진짜 그렇게 살게 될까 두렵기도 하다”(5쪽). 자녀 교육과 부동산, 세금 문제 등의 온갖 세속적 국면에서 “정의로운 평등주의자들의 이중성이 폭로될 때”면 “위선적인 도덕가보다는 차라리 솔직한 악당이 낫다고 여기게도 된다”(176쪽). 누구나 아는 것과 사는 것 사이의 긴장과 균열을 의식하더라도, 이를 더 분별 있게 인지하며 아는 대로 살고자 노력하기보다는 죄책감을 동반하는 불편한 마음과 화해하려는 쪽으로 마음이 쉽게 기우는 까닭이다.

이 책은 학력, 자산, 사회적 관계 등의 자원을 둘러싼 저자 자신의 위치성을 가감 없이 성찰하며 ‘노력하여 성취하는 삶’에 복무해왔을 뿐인 ‘어중간한 소시민들’을 정치적 책임의 주체로 호명한다. 다름 아닌 이 ‘작은 개인들’의 행위로 인해 “독일에서는 나치 파시즘”이 탄생했고, “1987년 한국에서는 군부 독재가 뒤집”혔으며, “2024년의 내란도 막”(6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많은 부정의는 거악과 구조의 탓이지만, 소시민들 개개인이야말로 그 구조와 상호 작용하는 개별 행위자라는 사실을 비추며 이 책은 책임의 경중을 섬세히 분별하는 ‘작은 사람들’의 윤리 감각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319쪽)는지 보인다.

세상에는 왜 악, 고통, 부정의가 만연할까? 소수의 권력자, 힘센 이들에게서 악이 연원한다는 설명이 있다. 선명한 말이지만 과연 그 소수만 사라지면 좋은 세상이 올까 갸우뚱하게 된다.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설명도 있다. 윤리적으로 들리지만, 모두가 문제라면 어느 누구의 문제도 아니다. 결국 두 측면 모두를 직시해야 한다. 힘센 소수의 잘못을 엄하게 따지되, 보통 사람이 져야 할 책임도 외면해선 안 된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그런 책임의 경중을 고민하며 세상을 비판하고 우리를 돌아본 흔적들이다. _〈들어가며: 어중간하게 살아온 당신과 나에게〉 중에서

“거악은 나쁘지만, 세상의 고통이 모두 그 탓인 것만은 아니다.
어떤 슬픔들은 당신들에게서 나온다. 지지하거나 묵인하는 우리의 응원을 받으며”

‘내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만 진보적’인 소박하고 무해한 삶을 둘러싼 성찰


이 책은 저자가 정규직 교수를 사직하고 ‘동네 사회학자’를 자처하며 삶에 기반한 앎을 지향해온 2019년부터 2025년까지 매체에 발표했거나 개인 소셜미디어에 기록한 글을 선별한 산문집이다. 12.3 계엄과 미얀마 내전, 코로나19 팬데믹,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아리셀 공장과 SPL 제빵 공장에서의 산재 사망사고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부터 저자의 집과 가족, 이웃과 마을, 동료와 친구를 둘러싼 사적인 일화들까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함께 겪은 정치?사회적 국면들과 다수가 공감할 만한 일상적 장면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만 거악을 지목하고 구조를 비판하기보다는 각각의 사안과 이에 얽힌 사회 구조 속 ‘작은 개인들’의 책임을 분별하고 발견한 흔적이 주로 담겼다. 누구보다 저자 스스로가 가장 먼저 날카로운 성찰의 대상을 자처한다는 점에서 독자들은 보다 이완된 마음으로 저자의 시선에 자신의 삶을 포개보게 된다.

1부 ‘내 안의 타자와 마주하기’에서는 ‘우리’와 ‘타자’의 경계를 사유한다. 성소수자, 여성 노인, 장애인, 난민, 이주노동자, 불안정 노동자, 중국인, 내전을 겪는 미얀마인, 동물 들의 사회적 위상과 그에 따른 자원의 배분, 차별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들과 ‘나’와의 거리, 관계에 대해서 생각한다.

2부 ‘불평등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에서는 자산, 지역, 언어, 학력, 고용 형태 등을 축으로 한 불평등 양상이 일상을 좌표로 어떻게 재생산되는지 돌아본다. ‘법을 지키며 이해를 추구’할 뿐인 행동이 누군가의 슬픔과 닿아 있는 일, 매력에 이끌리는 일이 위력을 지지하게 되는 일, “공정하게 경쟁”(253쪽)할수록 불평등을 심화하는 일, “침묵으로 강자를 편”(130쪽)들게 되는 일에 대해 생각하고, “기울어진 현실”(132쪽)에서 사유해야 할 정의 감각에 대해 논한다.

3부 ‘냉소를 넘어, 꿈꾸는 약자들의 정치’에서는 “정치란 결국 진영 간의 전쟁”(164쪽)이라는 오랜 믿음에서 벗어나 ‘작은 사람들’의 정치적 가능성에 주목하기를 제안한다. 선거용 위성 정당의 난립, 진영을 막론한 음모론과 부정선거론, 두 거대 정당의 “내로남불”(178쪽)과 “최악의 극우를 피해, 그보다는 좀 덜 나쁜 강경 보수가 노동자와 힘없는 약자들에게 베푸는 약간의 호의를 기대하”(198쪽)는 정도에 머무르게 된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의 현실에 대해 돌아보고, 과거 시민운동과 정당 정치가 결행했던 불평등 축소의 시도들, 정치적 기울기의 교정을 요청하는 내란 이후 광장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이후의 가능성을 살핀다.

4부 ‘중산층의 욕망, 그 범속함을 성찰하기’에서는 교육의 기회, 부동산과 투자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무해하고 성실하고 범속한 ‘우리’들의 삶과 욕망을 들여다보며 ‘중산층이 되고자 하는 욕망’과 이를 추동하고 부응하며 “중산층 자산 만들어주기에 올인하는”(232쪽) 역대 정부의 일관된 정책 기조를 비판적으로 돌아본다. 셋방을 전전하다 “글로는 옮기기 힘든 행운들이 겹쳐”(239쪽) 마련한 자가, 수도권 지역 분양과 재개발 소식에 절로 솔깃해지는 귀, 빈민 추방의 역사와 맞닿은 서울의 발전 서사, 공공 임대 주택 정책의 실패와 옥탑방, 반지하,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의 거주자들의 삶을 겹쳐 생각하며 ‘남들만큼 누리고픈’ 소박하고 온화한 욕망이 그러한 꿈에서조차 배제된 이들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내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만 진보적”(261쪽)인 태도가 방치된 문제를 어떻게 심화하는지 짚는다. 5부 ‘끝나지 않는 질문,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서는 앞서 나눈 고민을 바탕으로 ‘우리’의 경계를 넓히는, 좀 더 나은 삶을 모색하기 위한 크고 작은 실천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런 세상을 만든 데 나의 기여분이 있기 때문이다”

슬픔을 반복하는 구조 속에서 우리 각자는 어떤 위치에 있는가?
변화의 주체로 호명된 ‘어중간한 사람들’의 책임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 세계적으로 구조적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사회구성원 개개인의 책임 논리는 약화해왔다는 분석이 있다. ‘소시민’으로서는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여겨지는 사안들에 관해 특정한 입장을 갖기가 난망해진 때다. 이러한 소시민들에게 이 책은 ‘구조적 부정의’라는 개념을 사유하기를 제안한다. ‘구조적 부정의’란 “누가 잘못했는가?” “위법이 있었는가?”의 질문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정의를 말한다. 이를테면 기업은 비용 절감과 유연성 추구라는 합리적인 판단에 의해 합법적으로 비정규?파견 인력을 양산하고, 그 결과 소비자는 빠르고 저렴한 서비스의 이용이라는 경제적 합리를 누린다. 이 과정에서 누구도 법을 어기지 않았지만, 위험, 저임금, 불안정 노동이 특정 집단(청년, 노인, 여성, 이주노동자 등)에게 집중되었고, 산재, 해고, 노후 불안이 개인의 부담으로 전가되었다. “수백, 수천만 명 개인들의 평범한 욕망”이 “특유의 제도”(7쪽)와 뒤섞이며 누구 한 명을 탓할 수 없는 조용한 불의를 빚었다.

사실 성숙한 산업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고통 중 상당수는 구조적 부정의라는 틀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기후 위기, 성별, 지역, 인종 사이의 차별, 불평등 같은 문제도 그렇다. 기후를 망치겠다거나 특정한 사람들을 차별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는 악인이 흔할까? ‘지방’이 못 살기를 바라는 서울 사람이 있을까? 그저 편리한 것이 좋고, 친숙한 사람들과 일하고 교류하고 싶다는 평범한 욕망이 모여 풀기 어려운 부정의를 만드는 것이다. _〈들어가며: 어중간하게 살아온 당신과 나에게〉 중에서

고요히 반복되는 부정의 앞에서 이 책은 “어떠한 사회 구조가 이러한 슬픔들을 계속 만들어내는가?”, “그 구조 속에서 우리 각자는 어떤 위치에 있는가?”로 질문을 바꿀 때 보이는 것들에 주목한다. 이러한 질문 아래서는 나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안이 아닐지라도, 특정한 구조가 유지됨으로써 내가 모종의 이익을 얻고 있고, 그 구조를 유지하는 데에 나의 일상이 연결되어 있다면 ‘나’는 정치적 책임의 주체가 된다. “이런 세상을 만든 데 나의 기여분이 있기 때문이다.”(7쪽) 윤석열 전 대통령이 “없는 사람들이 부정 식품이라도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319쪽)고 말했을 때 일었던 대중적 분노와 1987년 군부 독재를 뒤집고 2024년의 내란을 막아낸 집단행동 등 이 ‘어중간한 사람들’이 사회 전체의 윤리 감각을 조정하고 바꿔온 과정을 상기하며, ‘소시민의 책임’에 관한 이 책의 강조는 죄책감을 가지라는 질책이기보다 변화의 여지를 잃지 말자는 제안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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