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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
빛의 폭발들 우리는 달아나려는 바로 그것을 향해 달아난다 평범함의 비범성 의미의 과잉 노출 침묵의 증언 에너지 악몽들 쓰러진 나무들 아나파에서 벽 위의 그림자에서 종이 위의 흔적으로 위험 식물 표본이란 무엇인가 방사능의 수많은 사후 생명 체계가 붕괴하다 체르노빌, 장소와 단어 낙진 귀향의 꿈 식물은 여전히 길을 가리킬 수 있을까 사르코파구스, 육체를 삼키는 묘비 아나파-체르노빌 접근 금지 구역과 예외 상태 방사능의 불 타임캡슐 심연이 심연을 부른다 감각을 회복한다는 것... 의미를 되찾는다는 것 세계의 끝 이후에 숭고한 아름다움 헌사 반감기, 생의 반, 반으로 잘린 삶, 삶의 (또 다른) 절반 |
Anais Tondeur
Michael Ma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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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4월 26일이다. 나는 모스크바에서 아나파(Anapa)로 향하는 침대칸 열차에 타고 있다. 북서쪽으로 약 8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이 바로 사건(Event)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사건은 우리가 그것을 알아차리기 전에 일어난다. 다시 말해,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일어난다. 그것은 사물 그 자체 안에 갇힌 채 일어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포함하고 우리를 자신의 집합 속으로 끌어들인다.
---p.5 인간의 언어가 추상적인 기호 속에 사물을 가두고 박제하려 든다면, 식물의 해석은 어둠을 뚫고 뻗어 나가는 뿌리의 궤적이나 빛을 향해 비틀리는 줄기의 각도 그 자체로 서술되는 구체적인 존재론이다. (...) 성장하는 식물은 그 자체로 자신 바깥을 향해 나아가는 이중의 운동을 수행한다. 싹을 틔우는 순간부터 식물은 이미 자신을 벗어난 존재다. 식물의 삶은 단순히 노출된 ‘상태’가 아니라, 노출 그 자체이며 외부성, 곧 바깥으로 향하는 존재성이다. ---p.15 방사능은 단 한 번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겹겹의 사후 생명 거느린다. 대개 이 사후 생명들은 더 안정적인 원소로 변모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으로 측정되지만, 그 잔여 원소들 또한 다음 반감기에 이르기까지 방사능의 불씨를 품은 채 살아간다. ---p.31 소련의 붕괴는 나의 첫 번째 이주를 추동했고, 체르노빌이라는 사건... 혹은 사건조차 되지 못한 그 거대한 공백은 그 불안의 농도를 짙게 만들었다. 체제의 내파는 국외로의 추방으로 이어졌고, 원자로의 폭발은 더 깊은 자기 성찰의 불꽃을 당겼다. ---p.33 원자적 주권은 인간의 자기소외가 도달한 가장 어두운 형태다. 그것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인간적 시간 감각으로는 다룰 수 없는 시간대를 갖는다. ---p.49 방사능은 우리를 더 이상 한가로운 관찰자로 남겨두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몸을 곧바로 관통해 침투된 존재로 바꾸어 놓으며, 위협과의 거리를 완전히 지워버린다. 이로써 칸트의 숭고가 전제하던 주체와 객체의 이원적 배치는 무너진다. ---p.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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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년의 망각을 뚫고 나온 식물의 유령들, 우리는 이 독성 세계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 식물 스스로가 품은 방사능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 30점의 포토그램 * 1986년의 폭발이 2026년의 우리에게 던지는 여전한 경고와 성찰 폭발한 의식을 수습하는 30개의 철학적 조각, 에코-마테리알리즘 철학자 마이클 마더는 이 이미지들을 '파편화된 의식의 조각들'이라 부른다. 원자로의 폭발은 단순히 물리적인 파괴에 그치지 않고,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인간의 근대적 오만을 산산조각 냈다. 그는 40주기를 맞아 쓴 단상들을 통해, 부서진 조각들을 억지로 이어 붙이기보다 그 파편들을 응시하며 식물적 생존의 지혜를 배울 것을 권한다. 식물이 독성을 흡수하면서도 묵묵히 삶을 이어가듯, 우리 또한 재난 이후의 지구에서 새로운 사유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2026년, 다시 '체르노빌'을 읽어야 하는 이유 기후 위기와 에너지 위기가 가속화되는 2026년의 시점에서 『체르노빌의 식물 표본』은 단순한 예술 서적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 책은 '독성(Toxicity)'이 더 이상 예외적인 사건이 아닌, 우리 일상의 배경이 된 시대의 윤리를 다룬다. 40년 전의 폭발음은 멈췄을지 몰라도, 식물의 몸속에 각인된 그날의 기억은 오늘날 우리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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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철학자와 사진가는 체르노빌 방사능이라는 초객체(hyperobject)에 깊이 천착한다. 이들은 빅토리아 시대 식물학자들이 사용했던 식물 표본 개념을 매개로, 글자와 셀룰로오스 섬유가 교차하는 하나의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한다. 종이와 픽셀 사이를 오가는 이 섬세한 장치 속에서, 방사능이라는 거대하고 비가시적인 존재를 어떻게 시각화할 수 있을지를 탐색하는 것이다. 사유의 과정은 생태적 자각이라는 감각의 층위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자각은 단순한 미적 감수성의 확장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여전히 진행 중인 과업이기도 하다. - 티모시 모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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