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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고조선~삼국초기머리말 1편 전한 소제의 4군 폐합과 『후한서』의 기사 2편 낙랑군고 [부설] 고구려의 영동 경략 3편 요동의 현도군과 그 속현 4편 고구려의 건국 전설과 역사상의 사실 5편 진번군의 위치에 대해 [부설] 동가강 유역의 선주민先住民과 맥·예맥·예의 이름 6편 무순의 역사 유적 7편 현도군의 속현 고현의 터 8편 한·위·진의 현도군과 고구려 9편 고대 고구려 왕실의 세계 10편 공손씨의 대방군 설치와 조위의 낙랑군·대방군 11편 조위의 동방 경략 [부설] 관구검의 고구려 정벌에 관련된 『삼국사기』의 기사 12편 진대晉代의 요동 13편 고구려의 5족과 5부 14편 부여고 주 옮긴이의 글 찾아보기 원서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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池內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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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주요 연구 성과는 다음과 같다.1권 5편에서는 진번군眞番郡의 남재설을 주장했다. 저자는 일본의 주류적 학자들(북재설의 대표자인 시라토리 구라키치 등)들의 견해를 날카롭고 치밀하게 비판한다. 4편에서는 고구려가 기원전부터 뚜렷한 세력이었음을 인정한다. 주몽의 건국 전설에 역사적 사실이 반영돼 있음을 긍정하는 동시에 그 구조가 부여의 동명 전설과 일치하는 것은 민족의 본류와 지류 관계 때문에 나타난 것으로 생각했다. 전한前漢 소제 원봉 4~5년 어떤 사정에 따라 송화강 유역에서 남하한 부여족의 한 세력이 요동군과 한반도 4군의 통치 밖에 있던 동가강 유역을 차지하고 그곳에 고구려를 건국한 것으로 보인다.(4편)고구려의 건국을 뜻하는 그 이족夷族이 동가강 유역을 차지한 시기는 제2현도군의 성을 쌓은 것이 소제 원봉 6년(기원전 75) 정월이었다는 것에서 미뤄 그 전해, 곧 원봉 5년(기원전 76)이었음이 거의 분명하다고 보았다. 이런 견해는 『삼국사기』의 고구려 건국 연도(기원전 37)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는 것이다. 다만 주몽이라는 구체적 인물과 그 전설적 행적, 그리고 태조왕까지의 고구려 역사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요컨대 4군 설치 뒤 30년이 지나면서 한이 이미 7년 전 폐지한 진번군 외의 세 군을 병합하는 동시에 옥저성의 현도군 이름을 이어받은 제2현도군을 요동군 동쪽 변방에 신설한 것은 고구려가 동만주에서 건국하면서 일어난 정세 변화에 곧바로 대응한 조처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케우치 히로시의 견해다. 그러므로 제1현도군의 폐지와 함께 이뤄진 제2현도군의 신설과 고구려의 건국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9편에서는 고국원왕 남무의 실재 여부에 대한 비판이 이뤄진다. 이 견해는 그뒤 좀더 정밀하게 보강돼 현재 일본 학계의 주류적 견해가 된다(다케다 유키오 등). 이것을 부정하려면 정확한 근거를 갖고 논리적으로 비판해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역자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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