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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면서
1부 일탈과 권력을 꿈꾸다 양녕대군 폐세자의 불행한 운명과 긴 인생 반성문과 항의서―양녕대군이 태종에게 올린 글 두 편 유자광 서자에서 일등공신에 오른 논쟁적 인물 상반된 시각―남곤이 본 유자광과 유몽인이 본 유자광 윤원형 권력을 전횡한 조선 중기의 외척 “윤원형의 죄는 머리털을 뽑아서도 세기 어렵습니다”―이이가 쓴 윤원형 탄핵상소論尹元衡疏 정여립 논란에 싸인 기축옥사의 주인공 용납되지 못한 혁명적 학자―신채호가 평가한 정여립 2부 역경을 극복한 의지 이순신 자신과 나라의 역경을 극복한 명장 모든 전공의 기록―이순신이 쓴 한산대첩 장계見乃梁破倭兵狀 곽재우 임진왜란의 대표적 의병장, 홍의장군 의병장의 편지―곽재우가 김덕령에게 보낸 회신答金將軍德齡書 안용복 희생과 고난으로 독도를 지킨 조선의 백성 경륜이 담긴 판단―전 영의정 남구만이 영의정 유상운에게 보낸 답변答柳相國 최영의 극진 가라테를 창시한 ‘바람의 파이터’ 고향 산천을 잊을 수 없다―최영의의 말과 글 3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 윤선거 윤증의 아버지, 조선 후기 소론의 태동 보내지 않은 편지 1―기유년 송영보에게 보내려던 답신擬答宋英甫 己酉 윤증 노론과 소론의 갈라섬, 그 기점에 있던 인물 보내지 않은 편지 2―신유년 여름 회천에게 보내려던 편지擬與懷川書 辛酉夏 숙종 환국 정치의 명암 세 환국의 시작―『숙종실록』의 기록들 희빈 장씨 환국정치의 중심에 섰던 비극적 운명의 왕비 희빈 장씨의 마지막 순간―『숙종실록』의 두 기사 사도세자 부왕에게 사사된 비극적 운명의 세자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정조의 첫 윤음 4부 자신의 신념을 지키다 최윤덕 북방 개척에 공헌한 조선 전기의 명장 무장의 간결한 글―최윤덕이 건의한 국방 강화책備邊事宜 최만리 한글 창제에 반대한 집현전의 수장 한글 창제에 반대하다―최만리의 ‘갑자 상소’ 임경업 대명對明 의리를 실천한 비운의 명장 의리를 실천하다가 죽다―송시열이 쓴 「장군 임경업전林將軍慶業傳」 최익현 위정척사론을 실천한 최고령 의병장 도끼를 지니고 대궐문에 엎드려 화의를 배척하다―최익현의 「지부복궐척화의소持斧伏闕斥和議疏」 황현 「절명시」와 『매천야록』을 남긴 조선 말기의 지사 멸망한 나라의 지사―황현의 「절명시」와 한용운의 추모시 5부 격랑의 시대를 헤쳐가다 이항복 격동의 시대를 헤쳐간 조선 중기의 명신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이항복이 정자 최유해에게 보낸 편지與崔正字有海書 이덕형 능력과 덕망을 겸비한 조선 중기의 명신 “나이가 어리면 처벌할 수 없도록 법률로 규정하고 있습니다”―이덕형의 영창대군 처벌 반대상소陳大君不可加罪箚 유몽인 정치적 균형과 자유로운 문학을 추구한 『어우야담』의 저자 문명 비판의 우언―유몽인의 「호랑이를 잡는 함정虎穽文」 이시백 호란의 수습과 국방 강화에 기여한 대신 혼란의 시대를 지탱한 대신을 기리다―윤휴가 쓴 이시백의 제문 참고문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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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뚝한 면모부터 그늘진 모습까지22명의 역사인물이 책은 조선시대부터 구한말, 현대에 이르기까지 22명의 역사인물을 소환해낸다. 멀게는 양녕대군부터 가깝게는 ‘바람의 파이터’ 최영의까지 왕실, 학자, 무장, 경계인 등 그 층위도 다양하다. 일탈과 권력을 꿈꾸기도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을 겪기도 하며, 그러나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역경을 극복하며 격랑의 시대를 헤쳐 온 그들. 사료와 함께 읽어 그들의 이야기는 더 깊으며, 더 생동적이다. 지위를 떠나 여느 아버지와 아들이 빚은 불화와 파열음을 그대로 보여주는‘양녕대군의 반성문’유자광을 바라보는 남곤과 유몽인의 상반된 시선이 여실히 드러나는‘유자광전’, ‘어우야담’장수는 물론 군졸과 노비까지 생각하는 이순신의 깊은 인간애가 그대로 담긴‘한산대첩 장계’송시열을 향한 윤선거와 윤증 부자의 불편한 마음을 담은 보내지 않은 편지‘기유의서’, ‘신유의서’“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조선 국왕들의 언어 중 가장 인상적인 첫 문장‘정조의 첫 윤음’에둘러 말하지 않고 간결하지만 59세 武將의 올곧은 삶과 디테일이 돋보이는‘최윤덕 비변사의’이념도 중요하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호소했던 한 지식인의 강변‘이항복의 편지’훈민정음 창제에 반대하지만 한글의 유용성과 세종의 열정을 반증하기도 하는‘최만리의 상소’그들은 어떻게 역사가 되었는가? 사료를 읽는 즐거움보통 사람(역사학자가 아닌 사람)이 고서(번역된 고서라도)인 1차 사료를 접할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여 사료는 어렵고 무미건조할 뿐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 안에 적힌 상황은 소설 속 광경처럼 눈앞에 그려지며 때로는 어떤 뭉클함을 주기도 한다. 왕에게 올리는 승전 보고서인 ‘한산대첩 장계’에서 이순신이 노비의 이름까지 하나하나 불러주는 행위는 그 어떤 승전의 과시와 화려한 미사여구보다 눈물겹다. 최윤덕이 건의한 군더더기 하나 없는 국방 강화책 ‘비변사의’는 청렴결백한 변방 무장의 진심이 그대로 전해지며,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시작하는 정조의 ‘첫 윤음’은 자신의 정체성과 세손 시절의 어려움, 앞으로 펼칠 정치의 구상이 응축돼있다. “죽어야 옳았지만 그러지 못했다/오늘은 정말 어쩌지 못할 상황이 됐는데”라는 황현의 ‘절명시’에는 나라가 속절없이 무너진 상황에 부딪친 지식인의 고뇌가 절절히 새겨져 있다. 이처럼 사료는 단지 과거의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읽기의 즐거움’이라는 것을 이 새로운 평전은 말해준다.사람과 그의 글,전체를 보는 감동을 전해주다난세일수록 뛰어난 인물이 많이 배출되는 것은 역설과 순리를 넘나들거나 그 경계에 있는 현상일 것이다. 뛰어난 인물이 그리 많았는데 어째서 난세가 닥쳤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고, 난세를 극복하려면 출중한 인물들이 그만큼 더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그래서 역사 속 인물은 언제나 우리의 관심사이다.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현재를 진일보시킬 교훈을, 혹은 반면교사라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을 누군가의 시각에 의해 접해야 했다는 점에서 그 교훈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료의 적나라한 생생함과 구체성을 곁들인 이 평전은 독자가 스스로 역사 속 인물을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큰 산을 종주하고 긴 곡 전체를 들어보는 감동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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