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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프롤로그 1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_『법성게』로 들어가는 길 ‘어떻게’보다 ‘무엇’을 질문의 방향전환 삶의 자리로 ‘성숙하게’ 돌아온다는 것 회복의 공간 ‘이해’에 앞서 ‘보는’ 것 삶이 붙잡을 수 있는 기준 2부 삶의 제자리를 묻고 답하다 _『법성게』 읽기 의상 스님이 제시한 수행의 지도 01 자리(自利)의 세계 _세계의 구조를 바로 보는 눈 법성게 제1구 그대로의 온전함 법성게 제2구 변화 속 질서 법성게 제3구 이념과 분별 법성게 제4구 지식과 지혜 법성게 제5구 이해와 바라봄 법성게 제6구 본질과 인연 법성게 제7구 집합과 그물 법성게 제8구 하나와 전체 법성게 제9구 티끌과 우주 법성게 제10구 중심과 주변 법성게 제11구 시간과 경계 법성게 제12구 이 순간 법성게 제13구 시간의 밀도 법성게 제14구 시간의 동시성 법성게 제15구 처음 마음 법성게 제16구 대립 너머 법성게 제17구 원리와 현상 법성게 제18구 바라보는 눈 02 이타(利他)의 세계 _깨달음이 작용이 되는 지점 법성게 제19구 분별과 깨달음 법성게 제20구 불가사의한 작용 법성게 제21구 차별 없는 비 법성게 제22구 각자의 그릇 03 수행자의 방편과 이익 _삶 속에서 완성되는 수행 법성게 제23구 지금의 삶 법성게 제24구 망상을 버린 자리 법성게 제25구 먼저 건넴 법성게 제26구 각자의 여의주 법성게 제27구 함께 가기 법성게 제28구 장엄한 세계 법성게 제29구 머무는 것 법성게 제30구 부처의 삶 에필로그 부록 01 불교 경전의 성립 02 의상 스님의 삶과 죽음 03 깨우침의 인연들 법장 스님의 편지 모든 이의 마음을 얻은 스승 신라에 세운 첫 절, 낙산사 숭고하고 사랑스러운, 부석사 감사의 글 참고문헌 및 읽을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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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통은 왜 나에게 찾아왔는가?”
의학은 많은 답을 줍니다. 구조적 원인과 퇴행의 과정, 수술과 재활의 계획까지 설명은 점점 정교해집니다. 그러나 설명이 충분해질수록 환자의 눈빛 속에는 또 다른 질문이 떠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법성게』는 의상 스님이 『화엄경』의 핵심을 응축해 담은 게송입니다. 게송은 간단히 말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새기고 찬탄하는 노래이자 시입니다. 제가 이를 다시 읽게 된 것은 바로 그 질문 앞에서였습니다. 이 글은 교리를 설명하는 경전도 아니고, 위안을 건네는 문장도 아닙니다. 다만 세계가 어떻게 성립되어 있으며,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떤 자리에 서 있는지를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보여줄 뿐입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재활은 몸을 몰아붙이는 일이 아니라, 남아 있는 질서를 발견하고 키워가는 시간입니다. 회복은 결국, 무너지지 않은 부분을 다시 믿는 데서 시작됩니다.” 『화엄경』이 특별한 이유는 수행을 마친 이들을 위한 이상향만을 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화엄의 세계는 수행 이후에도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이제 이 세계를 어떤 시선으로 볼 것인가”를 묻습니다. 그래서 화엄의 깨달음은 고요한 열반의 독점으로 머무르지 않고, 중생과 함께하는 실천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 「1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질문의 방향전환」 중에서 환자분이 다시 걷기 시작할 때, 저는 종종 “돌아옴”이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회복은 단순히 아프기 전 상태로 되돌아가는 복귀가 아닙니다. 통증을 겪으며 몸의 한계를 이해하고, 생활 습관을 바꾸고, 자신을 돌보는 방식을 새로 배우는 과정까지 포함할 때 비로소 성숙한 귀환이 됩니다. 같은 일상으로 돌아오지만 이전과는 다른 선택과 리듬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 그것이 삶 속에서 드러나는 성숙한 귀환이라 생각합니다. 의상 스님의 귀국 역시 그러한 의미에서 수행이 현실로 돌아온 한 형태였는지도 모릅니다. --- 「1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삶의 자리로 ‘성숙하게’ 돌아온다는 것」 중에서 법성원융무이상(性圓融無二相) “법의 성품은 원융하여 두 가지 모습이 없다” (…) 우리는 종종 지금의 나를 ‘부족한 상태’로 규정합니다. 더 나아져야 하고, 고쳐야 하고, 언젠가는 다른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조용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지금의 나 역시 이미 전체의 일부이며, 삶의 흐름에서 떨어져 나온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 무릎의사의 짧은 메모 망가진 무릎과 살아온 몸을 둘로 갈라 보는 순간, 치료는 ‘수리’가 됩니다. 그러나 회복은 대개 그 무릎이 견뎌온 시간을 이해하는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시장에서 오래 서 있던 세월, 가족을 돌보느라 자신의 욕망을 미뤄둔 시간, 좋아하던 운동과 일상의 걸음들이 한 관절에 겹겹이 담겨 있습니다. 영상에는 닳은 연골은 보이지만 삶의 밀도는 찍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상태를 지적하기보다 “그 무릎으로 잘 살아오셨네요”라는 이해가 먼저 건네질 때 치료가 사람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회복은 관절만이 아니라, 자기 몸을 받아들이는 마음에서 함께 시작됩니다. --- 「2부 삶의 제자리를 묻고 답하다 법성게 제1구 그대로의 온전함」 중에서 “이름도 없고 형상도 없어, 모든 분별을 끊는다.” 이 말은 세상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허무의 뜻이 아닙니다. 이름과 형상이 없다는 것은 존재가 비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존재를 고정시키는 틀이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이름을 붙이지만, 그 이름에 갇히는 순간 더 이상 대상을 온전히 보지 못하게 됩니다. 살아 있는 흐름은 멈추고, 박제된 규정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실패’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배움의 가능성이 사라지고, ‘문제’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안에 숨어 있던 방향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무릎의사의 짧은 메모 “끝난 무릎”이라는 단정이 먼저 내려지는 순간, 환자의 몸은 가능성보다 한계를 먼저 따라가기 시작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몸을 말로 이해하고, 그 말이 다시 움직임을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임상에서는 “이제 못 걷는다”는 말을 자주 들은 환자일수록 통증을 더 크게 느끼고, 시도 자체를 줄이는 모습을 봅니다. 반대로 단정 대신 경과와 가능성의 언어를 건넬 때, 몸은 예상보다 빨리 회복의 방향을 찾습니다. 진단은 필요하지만, 그 말이 몸의 미래까지 결정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2부 삶의 제자리를 묻고 답하다 법성게 제3구 이름과 분별」 중에서 우리는 깨달음을 결과로 생각합니다. 오랜 노력 끝에 도달하는 어떤 상태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의상 스님은 이 생각을 정면으로 뒤집습니다. “처음 마음을 내는 그때가 곧바로 바른 깨달음이다.” 여기서 초발심(初發心)은 막연한 열정이나 순간적인 결심이 아닙니다. 세상과 자신을 향해 처음으로 올바른 방향을 잡는 마음, 더 이상 자기 중심의 분별에 머물지 않겠다는 분명한 전환의 순간을 가리킵니다. --- 「2부 삶의 제자리를 묻고 답하다 법성게 제15구 처음 마음」 중에서 몸의 언어는 언제나 구체적입니다. 통증은 분명하고, 기능의 제한은 명확하며, 시간은 회복과 노화라는 이름으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작용합니다. 그러나 같은 현실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전혀 다른 장면이 됩니다. 『법성게』는 그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끊임없이 되묻는 시였습니다. 한 순간의 몸 상태, 하나의 증상 속에 이미 그 사람의 삶과 시간이 함께 들어와 있음을 알아볼 수 있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이 시는 더 많은 설명을 요구하지도, 더 높은 경지를 약속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지금의 삶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지를 묻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이 몸, 이 관계, 이 시간은 깨달음과 분리된 바깥이 아니라 이미 그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는지, 그 한 가지를 묻습니다. 솥 전체를 비우려 애쓰지 않아도, 지금 손에 쥔 한 숟가락에서 이미 맛이 드러나고 있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 「에필로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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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불안한 것은 삶의 근본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근본이 늘 그대로 있다는 사실을 잊었기 때문이다.” 의상 스님의『법성게』가 일깨운 나의 ‘단단한’ 바탕 회복하기 “불법은 구체적인 현실에 적용되어야 하는 가르침이라는 점에서, 오늘날의 불교 해설서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_정목 스님 『화엄경』은 부처의 가르침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체계화한 불교의 대표 경전이자 동양 철학의 근간이기도 하다. 신라 시대를 대표하는 고승이자 화엄종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의상 대사가 저술한『법성게』는 방대한『화엄경』의 핵심 가르침을 7언 30구 210자로 담아낸 게송이다. 게송이란 부처의 가르침을 새기고 찬탄하는 노래이자 시를 일컫는다. 환자의 병은 물론 삶과 마음을 보살피는 무릎의사 김태균은『법성게』는 경전에 대한 해석이나 위로를 건네는 문장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이 세계가 어떻게 성립되어 있고, 그 세계 속에서는 어느 자리에 서 있는지를 은은하지만 방향을 분명하게 비추는 등대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 이에 우리가 삶의 순서를 세우고, 나의 제자리를 찾아, 단단한 바탕을 세울 수 있게 길을 안내하는 지도와도 같은『법성게』를 찬찬히 안내하며 함꼐 읽어가고자 한다. 대학 시절부터 부처의 가르침을 배우고 삶 속에서 실천하고 나눠온 저자는 병원에서 수술과 재활치료를 마치고 퇴원을 앞둔 환자들을 모시고 퇴원 이후의 삶을 안내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졸업여행’이라 이름 붙인 이 시간에 그는 환자들에게 운동 교육과 함께 간단한 인문학 강의와 명상을 나눈다. 그리고 그는 그 시간을 마무리하며『법성게』의 두 구절,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생사열반상공화(生死涅槃常共和)”를 함께 읽는다. 수술을 계기로 이제부터 자신의 몸을 아끼며 더 나은 삶을 살아가겠다고 마음을 내는 그 순간이 바로 초발심이며, 그 마음을 낸 자리 자체가 이미 깨달음의 자리라는 것을 환자들과 함께 나눈다. “부처란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며 “흔들림 없는 상태가 아니라, 흔들리는 현실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태도”라는 점을 일깨움으로써 환자들의 불안과 걱정을 다독이며 다시 일상을 살아갈 용기를 북돋는 시간이다. 김태균 원장은 의료 현장에서 매일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고 그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법성게』에 담긴 의미를 좀더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고 한다. 우리 몸의 언어는 언제나 구체적이다. 통증은 분명하고 기능의 제한은 명확하며,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작용한다. 누구도 노화를 피해갈 수 없고, 질병 앞에 걱정과 불안을 내려놓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같은 현실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의료 현장에서 그 같은 일은 드문 일이 아니다. 같은 병증으로 똑같은 치료를 받고도 회복의 속도와 정도는 환자마다 달라진다. 한편으로 의사 역시 겉으로 드러난 통증만으로 병증에 대한 판단이 어려울 때가 있다. 다년간 쌓은 의학 지식과 지난 경험을 아무리 되새겨도 환자의 상태를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김태균 원장은, 이럴 때는 환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망가진 몸은 우리가 살아온 시간과 별개일 수 없다. 시장에서 오래 서 있던 세월, 가족을 돌보느라 자신의 욕망을 미뤄둔 시간, 때로는 건강을 위해 했던 운동과 일상의 걸음을 살핀 후에야 정확한 진단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 삶의 자리에 회복의 방법도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김태균 원장은 현장에서 자주 체험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회복은 나의 근본이 애초에 무너진 적이 없다는 사실을 믿는데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이다. 결국『법성게』가 일깨우는 것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다시 걷게 하는 힘은 결국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과도한 기대와 의구심을 내려놓고 그 단단한 바탕을 믿으라는 것이다. 이 책은 크게 2부와 불교 역사와 의상 스님의 생애와 인연을 간략하게 요약한 부록으로 구성되었다. 1부에서는『법성게』를 좀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질문과 그에 대한 간단한 답을 담았고, 2부는『법성게』30구에 대한 해설을 담았다. 각 게문의 의미를 하나하나 충실히 새기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경전에 대한 학술적 해석은 아니다. 경전의 뜻을 새기는 것은 내가 선 이 자리를 비추기 위해서이다. 삶을 비추는 거울이자,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등대가 된 『법성게』의 가르침이 저자의 삶과 진료 현장에서 어떻게 드러났는지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법성게』제25구에서는 “인연이 아직 없는 이에게도 여의주를 쥐어준다(緣善巧捉如意)”라고 했다. 여의주는 무엇이든 이뤄주는 신비한 보석이 아니라, 삶을 지탱할 수 있는 가능성, 자신의 자리를 언젠가 스스로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작은 지혜의 씨앗이다. 김태균 원장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두려움, 몸의 통증으로 삶의 중심을 잃고 다시 걸을 힘을 잃었다는 이들이, 이 책에 기대 자신의 근본을 믿고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바라며, 먼저 손을 내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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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수술을 마치고 퇴원을 앞둔 환자에게 이 구절을 건네는 의사, 이는 환자가 평생 받아본 그 어떤 처방전보다도 귀하고 향기로운 선물일 것입니다.
몸의 통증으로 인해 삶의 질이 떨어지고 마음마저 무너진 이들과, 그리고 삶의 무게에 눌려 처음에 품었던 소중한 마음(初發心)을 잃어버린 모든 분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김태균 원장이 평생에 걸쳐 증명해 온 “인술이 곧 불법(佛法)”이라는 진리가 이 책을 읽는 모든 분의 아픈 자리를 친절하고 따뜻하게 어루만져줄 것입니다. - 정목 손 모음|정각사 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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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시대로부터 1,300년이 지난 신라시대 의상 스님의 깨달음의 감흥이 그로부터 다시 1,3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이 책에서 이해하기 쉬운 현대어로 되살아났습니다. 독자는 의상 스님이 깨달은 세계에 깊이 공감하게 됩니다. 전문 불교학자가 아닌 의사이면서,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깊은 울림을 주는 김태균 원장님의 불교적, 인문학적 소양과 역량에 다시 한번 감탄합니다. 종교와 상관없이, 불교의 한량없이 넓은 가르침을 이해하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 최순용|명상하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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