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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에서 세종대로까지
언론인 표완수의 50년 기록
표완수
메디치미디어 2026.06.01.
베스트
언론학/미디어론 top20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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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추천사 4
프롤로그 15
언론인 표완수의 50년 기록 24

1장 열아홉 번째 일터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님 돗자리 깔고 일하셔야 할 것 같아요!” 38 / 취임식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46 / 거대한 회오리에 휩싸인 언론재단 55 / 정도(正道)를 지키는 마지막 자리 64 / ‘해임 이사회’가 열리던 날 74 / ‘관제 유언비어’의 탄생: 기자협회 창립 축사 84 / 정성을 다한 자리: 언론재단 이임사 88
‘정 실장’이 정 작가가 되었다네! 94

2장 1980년 5월, 내 삶의 분기점
1980년 6월 9일 새벽 5시 102 / 남영동의 첫 밤 109 / 만들어진 자술서 118 / 남영동에서 서대문구치소로 128 / 수감생활의 시작 135 / 10사 난동 사건 142 / 군사법정, 진실과 마주한 순간들 148 / 감방 너머에서 이어진 인연, 정길상 153 / 대전교도소로 이감되다 160 / 교도소 방장이 되다 165 / 석가탄신일에 석방되다 173

3장 〈경향신문〉, 그리고 기자로 사는 길
해직 후 첫 직장, 희성산업 180 / 프랑스식 원칙과 한국식 마음 184 / 봉명에너지, 석탄 가루 속에서 보낸 날들 190 / 현대그룹에서 만든 나의 첫 방송국 HBS 195 / 일주일 만에 막을 내린 두 번째 경향 입사, 그리고 『투데이』 창간 203 / 언협의 『말』지 제작 배포와 박우정 도피 사건 211 / 세 번째 경향 입사와 연이은 퇴사 220

4장 사람과 인연, 기자의 또 다른 학교
머산이산악회의 신홍범 선배 226 / 무전여행에서 만난 어느 〈조선일보〉 기자 233 / 머산이산악회의 리더 백기범 선배 240 / 오대산 노인봉의 밤, 무모한 선택과 아슬한 생존 249 / “내 러닝셔츠 어디 갔지?” 262

5장 『시사저널』 창간, 새로운 언론을 꿈꾸다
박권상 주간과 진철수 선생을 만나다 270 / 새로운 잡지의 문법을 세우다 278 / 마침내 ‘더미 페이퍼’를 제작하다 285 / 창간사에서 밝힌 ‘참언론의 길’ 290 / ‘신(神)’보다 ‘양심(良心)’을 선택하다 294 / 좌절된 ‘아너시스템(honor system)’의 회환 299 / “대한민국에선 박권상이 최고!” 304
백기완 선생과 ‘왈순 아지매’ 311

6장 방송이라는 또 다른 전장, iTV 사장 시절
네 번째 경향 퇴사와 인천방송 입사 318 / “표 이사가 사장을 맡아주면 좋겠는데…” 325 / “표 사장, 진행비가 뭔가? 그것 좀 올려주지!” 329 / ‘갑돌이와 갑순이’,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교훈 332 / 인민대학습당,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339 / 백두산 정상에서 일출日出을 보다 344 / 백두산에서 만난 사람들 352 / 김정일 위원장과의 오찬 358 / 약속을 지킨 〈미디어오늘〉 363 / ‘오너’들은 다 그런가? 367
보신탕 먹던 날 375

7장 YTN, 가장 치열했던 시간
이상한 주주총회와 어느 기간제 교사의 눈물 382 / 정육수 선배와 강신호 회장 389 / 취임 초 조심해야 할 일들 397 / 현대와 삼성, 두 가지 방식의 차이 403 / 사람을 알아가는 시간 409 / YTN에서의 첫 판단 415 / 서울타워 리노베이션 420 / ‘언론자유 감시대상국’ 리스트에 지정된 한국 432 / IPI 총회에서 판을 바꾼 순간 439 / 바르샤바의 마지막 밤, Watch List 해체되다 448 / YTN, 언론기업의 기초를 놓다 455 / YTN의 꿈, FM 라디오 464 / 사장은 보도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 473 / YTN에서의 5년을 돌아보며 481

8장 『시사IN』에서 이룬 참언론의 꿈
11년 3개월, 가장 오래 몸담은 직장 488 / 광고주와의 관계는 진정성의 토대 위에 492 / 우에무라 기자를 만나다 498 / 행사장의 개회사와 칼럼 504 /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예비해야 516 / 발행인의 편지 523 / 『시사IN』을 떠나며 540
“그 김철웅이 이런 책을 썼다!” 549

에필로그 554

저자 소개 1

1947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청주중학교와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재학 중 군에 입대해 3년간 육군 보병연대에서 복무한 뒤 복학, 문리대 동숭동 캠퍼스에서 입학 8년 만에 졸업했다. 1974년 가을, 주식회사 〈문화방송·경향신문〉 편집국 기자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뎠다. 주로 외신부와 경제부에서 일하던 중 1980년 5월 광주 민주항쟁과 직면했다. 민주항쟁 관련 보도에서 계엄사의 극단적이고 편파적인 언론 검열에 항의하며 신문 제작 거부에 동참한 일로, 같은 해 6월 초 신군부에 의해 계엄포고령 및 반공법 위반 혐의로 치안본부 대공수사처에 연행되어 해직되
1947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청주중학교와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재학 중 군에 입대해 3년간 육군 보병연대에서 복무한 뒤 복학, 문리대 동숭동 캠퍼스에서 입학 8년 만에 졸업했다.
1974년 가을, 주식회사 〈문화방송·경향신문〉 편집국 기자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뎠다. 주로 외신부와 경제부에서 일하던 중 1980년 5월 광주 민주항쟁과 직면했다. 민주항쟁 관련 보도에서 계엄사의 극단적이고 편파적인 언론 검열에 항의하며 신문 제작 거부에 동참한 일로, 같은 해 6월 초 신군부에 의해 계엄포고령 및 반공법 위반 혐의로 치안본부 대공수사처에 연행되어 해직되었다.

약 1년간 복역한 뒤 석방되어 사회에 복귀했지만, 취업 금지 조치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처음 몸담은 곳은 옛 럭키그룹 계열의 (주)희성산업으로, 그곳에서 영문 뉴스레터 〈The Lucky Group News〉를 창간하고 제작했다. 이후 주한프랑스대사관, 봉명에너지, 현대그룹 등을 거쳤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공식적으로 언론사 복귀가 허용되었고, 〈경향신문〉에 복귀했다. 이후 《시사저널》, 인천방송, 시민방송, YTN, 〈오마이뉴스〉, 《시사IN》 등 여러 언론사에서 활동했다.

2023년 10월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 3년 임기를 마치며 직업생활을 마무리했다. 그곳은 그의 19번째 일터였다. 50년에 걸친 직업 여정 속에서도 YTN, 《시사IN》,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능력 있는 동료들과 열정적으로 일했던 시간은 특별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6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560쪽 | 776g | 147*224*32mm
ISBN13
9791157065646

책 속으로

약 20년에 걸친 언론사 및 언론 관련 단체의 최고 경영자로서 나는 적지 않은 실적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그 어렵던 1980년대에 치열한 삶을 살면서 여러 ‘동지들’에게서 배우고 함께 경험한 것들이 언론사 경영을 성공으로 이끄는 바탕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의 ‘동지들’ 중 이미 다른 별로 떠나간 이들이 있어 허전함을 느낄 때가 많다. 하지만 그때의 애환을 공유한 선후배들이 아직도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생 팔십의 문턱에 선 나에게 깊은 안도감과 함께 밝은 희망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고마운 일이다. 수많은 사건, 일화들이 내가 지나온 길 위에 알알이 박혀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기자로서 필명을 날리거나 성공한 사람은 못 된다. 오히려 언론사 경영자로서 이런저런 업적을 남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시사저널』, 인천방송, YTN, 『시사IN』,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조직의 구성원들과 호흡을 맞춰 일하던 때가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잊히지 않을 것 같다.
--- 「프롤로그」 중에서

이날 언론재단 이사회에 대해서 많은 언론매체가 이를 기사로 다뤘다. 공영언론사와 언론 관련 공기관의 책임자들이 모두 친정부 인사들로 교체되고 있던 상황에서 언론재단에 와서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거기에 초점을 맞춰 매체들이 기사를 작성했다. 재단 내부에서도 여러 의견이 나왔다. 특히 현직 이사장을 터무니없는 사유로 해임하려고 무리수를 두었던 상임이사들에 대한 징계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끝에 나는 그런 의견들을 모두 접어두기로 했다. 그들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여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게 당연하고 옳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옳은 일이라고 해서 그 결과도 다 좋은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할 경우, 나의 속은 후련할지도 모르지만, 재단은 전쟁터로 변할 게 뻔했다. 누군가의 속을 후련하게 하자고 직원들의 신성한 일터를 전쟁터로 만드는 것은 옳은 길이 아닐 것이다.
--- 「1장 열아홉번째 일터 한국언론진흥재단」 중에서

몇 분이나 계속됐는지…. 그야말로 매타작이었다. 그도 힘이 들었는지 식식거리면서 가격을 멈추었다. (중략)
“그래, 서동구 얘기를 듣고 뭐라고 했지?”
“그건 그냥 알아서 적으시지요.”
“아니, 이 새끼가 아직도….”
침대에 앉아 있던 김이 벌떡 일어났다. 그때 확연히 알게 되었다. 수사관을 2인 1조로 짠 것은, 한 명은 조서 작성을 담당하고 다른 한 명은 일이 뜻대로 안 될 때 폭력을 가해서 일이 진행되도록 만드는 역할이라는 것을. 이런 과정을 거쳐 하나의 시나리오가 완성되었다. 서동구 국장은 한강 약주집에서 편집국 밖으로 쫓겨난 고영재, 박우정, 표완수에게 식사와 술을 사주면서 ‘고려연방제’에 대한 ‘교양’을 주었고, 고, 박, 표 3인은 ‘북괴’가 주장하는 통일방안 ‘고려연방제’를 최상의 통일방안이라는 불순한 사상을 ‘포지(抱持, 마음에 지님)하게 되었다’는 시나리오였다(조서상의 표현).

석가탄신일 전에 형이 확정되려면 당장 대법원 상고를 포기해야 한다. 상고를 포기하는 일은, 우리가 1년 전 봄에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열었던 회의들이 모두 불법집회였다는 것을 자인하는 일이 되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상고 포기가 그리 간단히 결정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세는 이미 포기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나돌던 소문이 뜬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여기저기서 확인되고 있었다. 언론인들을 포함하여 많은 재소자가 상고 포기서를 작성했다. 그 후 우리는 순차적으로 상고 포기서가 처리되었으며, 형이 확정되었다는 통보를 공식적으로 받았다. 석가탄신일이 다가오면서 석방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 「2장 1980년 5월, 내 삶의 분기점」 중에서

이 이상한 분위기의 실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나? 마침 입사 동기 강신철이 당시 〈경향신문〉 사장 비서실장 자리에 있었다. 나를 경향으로 불러들인 장본인이 정구호 사장이었으니 비서실장이 누구보다 상황을 잘 알 것 같았다. 강신철을 만났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입사서류 내라고 독촉하더니 왜 조용하지? 인사부에서 아무 말도 없네.”
“내가 보기에는 안 될 거 같은데….”
“왜 무슨 일 있어?”
“보안사에서 반대해. 표완수는 절대 안 된다는 거야. 여기 출입하는 보안사 요원이 요새는 출입도 안 해. 출입 거부야! 내가 보기에는 안 돼!”
“그럼, 회사에서는 보안사가 반대할 줄도 모르고 추진했던 거야?”
“그래서 우리 사장님이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었지. 근데 전화도 안 받아! 메시지를 남겼는데 콜백도 없어. 같이 골프도 치고 그러던 양반이 콜백도 없다니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보기에도 안 되겠다 싶었다.
--- 「3장 〈경향신문〉, 그리고 기자로 사는 길」 중에서

“표완수 씨하고 박우정 씨가 같이 한번 내려가 보지!”
임재경 선배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혼자 슬그머니 빗속에 산을 내려가 마을로 간다는 게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여기 없는 걸 보면 신홍범 선배가 내려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선배들의 마음을 읽고 나서 나는 내심 부끄러움을 느꼈다. (중략) 비 내리는 산길을 박우정과 내가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온 길을 되짚어가는 게 아니라 능선 큰 바위에서 마을 쪽 직선거리를 택해 길도 아닌 곳을 뛰어 내려갔다. 설령 신홍범 선배가 마을로 내려갔다고 해도 마중 나간 박우정과 내가 반드시 그를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박우정과 내가 길이 아닌 곳을 따라 직선으로 내려가고 있는데, 만약 신 선배가 직선 코스가 아니라, 우리가 올라왔던 정식 길을 택해 올라온다면 우리가 만나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도 표완수와 박우정으로 하여금 그런 성공 가능성 낮은 모험을 감행토록 한 것은 신홍범 선배의 헌신하는 마음과 용기에 대해 경의(敬意)를 표하는 하나의 의식이었을 것이다.
--- 「4장 사람과 인연, 기자의 또 다른 학교」 중에서

최 사장의 풍족한 예산 지원 아래 『시사저널』은 『유에스뉴스』와 공식 협력관계를 맺고, 창간 준비기간에 진철수 주간을 단장으로 하는 4명의 견학단을 『유에스 뉴스』에 파견했다. 국제 담당 편집위원을 맡고 있던 나와 조천용 사진 담당 편집위원, 그리고 신입 양한모 미술기자가 진 주간과 함께 미국 워싱턴DC로 출장을 갔다. 견학단은 약 열흘간 『유에스 뉴스』에 출근하면서 현장 참여형 실습을 했다. 국제부 기자, 사진부 기자와 미술부 기자로 견학단을 구성한 것은, 그 후 창간될 새 주간잡지의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수준 높은 국제분야 기사와 컬러사진, 그리고 화려하고 세련된 편집디자인이야말로 미국의 시사주간지가 우리나라의 그것과 대비되는 가장 큰 특징이었다. 『유에스 뉴스』는 견학단원들에게 별도의 사무실을 제공했으며, 각종 회의 참석 등 잡지의 전 제작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특별히 배려해 주었다.
--- 「5장 『시사저널』 창간, 새로운 언론을 꿈꾸다」 중에서

내가 사장 재임 중에 이룬 대표적인 두 가지 일은 경기도까지 방송권역을 확대한 일과 지상파 라디오방송 개국이었다. 방송권역 확대는 회사의 ‘밥줄’을 탄탄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라디오방송 개국도 회사의 고정자산을 늘리는 일이었다. 수도권에는 없다는 주파수를 찾아내는 일은 사막에서 물구덩이를 찾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천신만고 끝에 FM 라디오 주파수를 찾아내고 담당 고위공무원과 담판을 벌여 라디오방송 개국을 성공시켰다. 대표이사 재임 중 그 두 가지 성과를 거둔 것은 그 나름으로 의미 있는 일이었다. 방송권역 확대는 당시 임창열 경기도지사의 협조가 주효했다. 그리고 옛 대전교도소 ‘동지’ 가운데 한모 선배의 도움도 컸다. ‘리틀 DJ’라는 별명을 가졌던 선배였다. 경기도로 방송권역을 확대하는 대가로, 회사는 ‘인천방송’이라는 방송사 이름을 ‘경인방송’으로 바꿔야 했다.

오찬 행사는 오후 3시가 훨씬 지나서 끝났다. 그동안 묵었던 초대소에서는 이미 체크아웃을 끝낸 상태였고 트렁크 등 개인 짐도 모두 차 안에 있으니 이제 순안비행장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그러면 방북 행사는 모두 끝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큰 변화가 생겼다. 일주일 전 평양에 올 때는 베이징을 거쳐, 거기서 북한 고려항공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그날 서울로 돌아갈 때는 아시아나항공 여객기를 타고 간다고 했다. 그것도 베이징을 경유하는 게 아니라 김포국제공항으로 직행한다는 것이었다. 깜짝 놀랐다. 아니, 남북 간에 직항이라니! 이런 일을 내가 살아생전에 직접 경험하게 되다니! 놀랍고도 감격스러웠다. 그날, 우리 일행은 아시아나항공 여객기를 타고 평양 순안 비행장을 출발하여 김포공항에 무사히 도착함으로써 평양방문 일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 「6장 방송이라는 또 다른 전장, iTV 사장 시절」 중에서

나는 박윤순 기획팀장을 조용히 사장실로 불렀다. 그리고 그에게 특별 미션을 주었다. CJ와의 비공식 협상이었다. 박 팀장이 여러 차례 그쪽의 모(某) 상무를 만났다. 밀고 당기기가 이어졌다. 박 팀장이 지니고 나간 마지막 카드는 “CJ가 100억 원 이상 투자하면 10년을 임대하겠다”였다. ‘밀당’이 계속된 끝에, CJ가 YTN의 ‘마지막 카드’를 받아들임으로써 협상은 성공적으로 타결되었다. 리노베이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해결된 것이었다. 다음은 공사였다. 공사 기간을 정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공사 일정은 100일이면 된다고 했다. 3개월 남짓이다. 문제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100일이냐였다. 공사 중에 태풍이라도 몰아치면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서울타워는 고도가 높아 평상시에도 상층부의 풍속이 매우 강했다. YTN 서울시청 출입 기자와 기상청 출입 기자를 통해 자료를 모았다. 서울에서 지난 10년간 폭우, 폭풍, 태풍, 강설 피해가 가장 적었던 시기를 연도별로 뽑았다.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협의 결과, 9월~11월로 공사 일정이 잡혔다.

내가 재직한 2003년 5월부터 2008년 5월까지 5년 동안, YTN은 참으로 많은 것을 시도했고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올렸다. 서울타워 리노베이션, 성공적 감자(減資)와 주가 안정, YTN 〈뉴스FM〉 개국, 그리고 1993년 법인 설립 이후 지속돼 온 영업 적자를 10년 만에 처음으로 흑자기조로 바꿔놓은 것 등등.
그 밖에도 과학채널인 〈YTN 사이언스〉, 위성방송 〈YTN DMB〉, 〈YTN PLUS〉의 전신인 재외동포 대상 〈YTN 해외방송〉 등도 모두 그 기간에 ‘론칭’되었다. (중략) DMB 또한 남북 간 평화가 진전되면 북측 지역에서도 남쪽 방송 수요가 생길 터인데 그 경우, 가장 적은 비용으로 방송을 송출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DMB가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YTN이 송출을 시작했다.
--- 「7장 YTN, 가장 치열했던 시간」 중에서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는 가운데 2020년 봄이 되었다. 그해 3월 말, 나는 대표이사 사장 5연임을 마치고 퇴임했다. 2009년 1월 2일에 첫 출근을 했으니 11년 3개월을 『시사IN』과 함께한 것이다. 퇴임식은 기사 마감 날인 금요일(3월 27일)에 했다. 기자들을 포함하여 직원들이 가장 많이 사무실에 모여 있는 날이 바로 마감날이기 때문이다. 취재, 편집, 미술기자들은 눈코 뜰 사이 없이 마감 작업에 쫓기는 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시사IN』 식구들 대부분이 참석하여 나의 퇴임을 축하해줬다.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시사IN』 구성원들과 마지막 대화를 나눴다. 11년 3개월이라니! 그날, 나 자신이 놀랐다. 1974년 가을 〈경향신문〉 기자로 사회생활 첫걸음을 뗀 이래 50년에 걸쳐 모두 19군데 직장에서 일했지만, 한 군데서 이렇게 오래 일하기는 처음이었다.
--- 「8장 『시사IN』에서 이룬 참언론의 꿈」 중에서

과거로의 긴 여행은 공허한 것만은 아니었다. 거기서 나는 오늘 우리 언론이 안고 있는 문제의 원형을 보았다. 문제의 핵심이 어쩌면 지금도 그렇게 변하지 않았는지! 언론의 본질, 그 생명은 ‘진실’을 추구하고 전파하는 일이다. 총체적 ‘진실’ 앞에서 ‘팩트’는 ‘진실’을 구성하는 파편과 조각이다. 올바른 ‘팩트’가 모여야 ‘진실’의 참모습이 드러난다. ‘팩트’가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기본적 ‘팩트’를 오염시키는 일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팩트’는 순수하고 중립적이다. 거기에 의견이나 주장을 섞으면 ‘팩트’에 색을 칠하는 일이 된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언론은 그 ‘색칠 놀이’에 익숙해 있다. 이제 내란의 잔재를 청산함으로써 이 나라는 국민주권의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거듭나는 도정에 있다. 차제에 언론도 마땅히 그 오래된 ‘놀이’에서 벗어나 ‘진실’을 추구, 전파하는 본연의 길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 「에필로그」 중에서

출판사 리뷰

한 언론인이 건너온 50년
길 위에 새겨진 시대의 증언

어떤 삶은 한 개인의 이력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이 곧 한 시대의 풍경이 되고, 그가 견딘 시간의 무게가 우리 사회의 기억과 겹칠 때가 있다. 『정동에서 세종대로까지』는 바로 그런 책이다. 저자 표완수는 스스로를 ‘평범한 저널리스트’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50년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1974년 정동의 주식회사 〈문화방송·경향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군사정권의 폭력 앞에서 해직되었고, 남영동 대공수사처와 서대문구치소, 대전교도소를 거치며 시대의 폭력을 견뎌야 했다. 취업이 금지된 시간 속에서 기업을 전전했고, 다시 언론 현장으로 돌아와 『시사저널』 창간에 참여하고, iTV와 YTN, 『시사IN』을 거쳐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으로 마지막 일터를 마무리했다. 정동에서 출발한 그의 여정은 세종대로에서 멈췄지만, 그 길은 한 직업인의 이력을 넘어 한국 현대 언론사의 굴곡을 관통하는 긴 궤적이 되었다.

이 책은 연대기적 회고록이 아니다. 19번째 직장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삶의 분기점이었던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 뒤, 기자와 경영자, 조직의 리더로 살아온 시간을 차례로 복기한다. 그래서 독자는 한 시대가 한 인간에게 남긴 흔적을 더 선명하게 마주하게 된다. 특히 1장은 마지막 직장에서 은퇴하는 리더의 고요한 회상이 아니라 기관 간 갈등과 조직 내부의 긴장 속에서 마지막 책임을 감당해야 했던 시간으로 문을 연다.

2장에 담긴 1980년의 기록은 당시 상황을 그대로 재현해낸 저자의 기억력과 묘사력에 감탄할 만큼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다. 군사정권 아래에서 해직과 구속, 군사법정과 수감 생활을 겪어야 했던 언론인들의 현실은 단순한 개인사가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단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은 피해의 기억에만 머물지 않는다. 시대의 폭력이 한 사람을 어떻게 무너뜨렸는지가 아니라, 그 시간을 지나며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배웠는지를 더 오래 응시한다.

3장에서 8장까지 이후 펼쳐지는 장들은 한 언론인의 성장기이자 한국 언론의 변화사다. 네 번이나 드나든 〈경향신문〉, 새로운 언론의 가능성을 실험했던 『시사저널』 창간, 방송이라는 또 다른 전장에서 분투했던 iTV와 YTN, 그리고 ‘참언론’의 이상을 구현하려 했던 『시사IN』까지. 각각의 장면은 조직과 사람, 원칙과 현실, 이상과 경영 사이에서 한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를 보여준다.

표완수는 여러 조직의 리더로 변신하며 새로운 매체를 일으키고 조직의 기반을 다지는 성과를 만들어낸 경영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이 더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성과보다 사람을 먼저 떠올리는 그의 태도에 있다. 함께 일한 이들이 따뜻하고 섬세한 어른으로 기억하는 이유도 그 지점에 있을 것이다. 표완수의 50년은 언론자유를 지키려 했던 저널리스트의 시간인 동시에, 조직을 경영하며 성과를 만들어낸 리더의 시간이기도 하다.

『정동에서 세종대로까지』는 과거를 정리하는 책이 아니다. 지나온 길을 통해 오늘을 비춰보는 책이다. 언론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조직을 이끄는 리더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시대의 압력 앞에서 한 개인은 무엇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는가. 이 책은 그 질문들에 정답을 내놓지 않는다. 다만 한 사람이 건너온 50년의 시간을 통해, 그 질문을 다시 우리 앞에 조용히 내려놓는다.

추천평

역사를 기록하는 데 있어 ‘미시적’ 관점은 그 시대의 ‘상황’을 드러내면서 한 인간, 또는 집단이 실제로 살아가는 삶의 애환과 희로애락을 다루고 있어 재미있다. 표 사장의 회고담은 그의 개인사이면서 그가 산 시대의 ‘미시사(微視史)’라 할 수 있다. 그가 살아온 시대가 얼마나 모질고 험악한 시대였던가를, 그런 황폐한 시대를 어떻게 헤쳐 나갔는가를 기록하고 있다. - 신흥범 (해직기자, 전 조선투위 위원장)
표완수 이사장님을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라면 더 흥미진진하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표 이사장님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굴곡의 70~80년대를 기억하며 오늘을 살고 있는 세대라면, 개인의 삶을 관통해 온 역사와 언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행복한 독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김영주 (언론학박사, 한국언론진흥재단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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