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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제1부 집은 땅이 꾸는 꿈이다 자연에서 생겨나는 집 _ 까사 가이아 서로 대화하듯 이어지는 집 _ 프라즈나의 집 빛과 바람을 담은 집 _ 금산주택 사람을 닮은 집 _ 자기 앞의 집 자연과 사람이 만나는 집 _ 간청재 시간의 우물에서 길어올린 집 _ 도문 알레프 수평과 수직이 만나는 집 _ 선의 집 자연이 주인인 집 _ 평온의 집 비상하면서 내려앉는 집 _ 네 개의 날개를 가진 집 즐거움을 끝없이 펼치는 집 _ 장락재 제2부 집은 생각을 담는다 즐거운 놀이터가 되는 집 _ 상안주택 두 개의 태양을 품은 집 _ 존경과 행복의 집 움직임이 가득한 집 _ 라비린토스 반려동물의 눈높이에 맞춘 집 _ 숨숨하우스 아이들과 함께 자라는 집 _ 적당과 작당의 집 마당을 수직으로 쌓아올린 집 _ 장연재 산과 물을 즐기는 집 _ 요산요수 따로 또 같이 꿈꾸고 자라는 집 _ 더블헬릭스 하우스 한 지붕 아래 단독주택 아홉 가구가 있는 집 _ 맑은구름집 사찰의 고정관념을 깬 집 _ 제따와나 선원 제3부 집은 시간이 짓는다 단순함과 여백이 있는 집 _ 루치아의 뜰 들꽃으로 가득한 집 _ 들꽃처럼 피어나는 집 아버지의 꿈을 이어 지은 집 속의 집 _ 언포게터블 고요히 머물며 온기를 나누는 집 _ 적이재 반석 위에 지은 집 _ 도무스 페트라 각각 원하는 대로 지은 집 _ 어사재 가족과의 유대가 끈끈한 집 _ 산조의 집 가장 따뜻하고 포근한 집 _ 층층나무집 도시의 천이를 준비하는 집 _ 웃음 베이커리 역사의 풍경을 담은 집 _ 지구의 한 조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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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땅이 꾸는 꿈이다
- 까사 가이아, 금산주택, 도문 알레프…… ‘까사 가이아’는 바다색이 아름다운 김녕 바닷가에 제주도의 풍광을 그대로 담은 집이다. 제주 토박이 건축주 부부의 요구사항은 단 하나, 바다가 훤히 보이는 욕실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다를 가리지 않으며 바닷바람에 견딜 만한 집을,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던 제주도의 돌처럼 단단하게 세우는 일이었다. 지붕은 최대한 도로보다 낮게 얹었고, 바다를 향한 외벽에는 검은색 제주석을 붙였다. 땅의 모양이 올록볼록한 비정형이라서 집의 평면은 부드러운 곡선의 입술 모양이 되었다. 그 형상은 무수한 비바람을 견디며 살아온 제주도의 강인한 여성성을 상징하는 듯했다. 그렇게 ‘까사 가이아’는 어머니의 안온한 품처럼 바다와 오름 사이를 넘나들며 오가는 햇빛과 바람을 모두 품어 안은 집이 되었다. 우리에게 맞는 적합한 크기의 집은 얼마만큼일까? 경북 안동 도산서원에 있는 퇴계 이황의 도산서당은 마루와 방과 부엌으로 구성된 일자형 남향집이다. 이 집은 모든 것이 아주 단순하며 실용적이다. 아주 작은 집이지만, 아주 큰 생각을 담고 있다. 즉, 작고 소박한 집이지만 우주가 담겼다. 이황이 평생 추구했던 ‘경(敬)’이라는 정신을 바닥에 깔고 실용성과 합리성을 추구한 평생의 삶이 그 집에 스며 있다. 우리가 꿈꾸는 집은 규모가 큰 집이 아니라 생각이 담긴 집이다. 충남 금산에 지은 ‘금산주택’은 거주 면적 약 13평, 마루 약 8평의 동서로 긴 네 칸 반짜리 아주 소박한 집이다. 이 집은 마루에 앉으면 산이 걸어 들어오고, 발아래 경쾌하게 흘러가는 도로를 내려다보는 시원한 조망을 가졌다. 강원도 속초에 집을 짓고 싶다는 건축주 부부는 원래 서울에서 살다 회를 워낙 좋아해 속초에 자리를 잡은 지 꽤 되었다고 한다. 그곳에는 100년이 넘은 10평 정도의 옛집이 있었는데, 그 집을 허물어 주차장으로 쓰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래된 나무 외장은 세월이 쌓여 멋지게 변색되었고 녹슨 철판 지붕은 낡았지만, 조금만 손을 보면 당장이라도 들어가 살아도 될 정도였다. 다행히 새집을 지으면서 낡은 집을 고치는 일을 동시에 진행했다. 그리고 옛집을 고치며 건축주는 원래 짓고자 했던 새집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삶에 적당한 크기와 편안한 재료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도문 알레프’는 원래 있던 집의 모양과 닮고, 집을 에워싸고 있는 산들과도 비슷한 모양으로 지어졌다. 집은 생각을 담는다 - 숨숨하우스, 더블헬릭스 하우스, 맑은구름집…… 요즘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며 사는 집이 많다. 2024년 말 기준으로 전체 가구의 약 26.7퍼센트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 반려동물은 생활을 보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온기를 주거나 정서적인 안정을 위해 필요한 존재로 바뀐 것이다. 서울의 어느 경사진 동네의 맨 끝, 산과의 경계 지점에 있는 ‘숨숨하우스’는 주변 이웃과 불화를 피하고 좀더 편안하게 고양이를 돌볼 수 있도록 자연이 가깝고 주변의 시선에서 독립된 곳에 지어졌다. 건축주는 ‘캣맘’들이 모여 사는 집을 짓고 싶다고 했다. 가족이 된 고양이의 눈높이와 습성을 고려해 창턱을 계획하고, 두께가 두껍고 미끄럼 방지가 되는 장판을 사용하고, 캣타워를 설치하고, 방묘문과 방묘창도 달았다. 그렇게 반려동물과의 삶을 위한 ‘숨숨하우스’가 탄생했다. 집 안에 꽈배기처럼 이중나선 계단이 있는 ‘더블헬릭스 하우스’는 부산의 오래된 골목 안쪽에 있는 집이다. 이 집은 두 살 터울의 남매가 함께 집을 짓고 공동육아를 하는 방법을 찾아보기 위해 지은 집이다. 집은 첫째 따로 또 같이, 둘째 동등한 조건, 셋째 동래향교 쪽 전망 확보를 우선으로 두었다. 그리고 집의 중간에는 채광과 환기가 가능한 중정을 넣었다. 꽈배기 계단은 우측과 좌측을 번갈아가면서 오를 수 있어 두 집 모두 네 방향의 전망을 갖고, 서로 만나지는 못하지만 창문을 통해 교류가 가능하다. 1층과 3층과 5층은 공적인 공간이고, 2층과 4층은 침실이 있는 사적인 공간이다. 다섯 개의 층으로 구성된 집의 편의성을 위해 양방향으로 열리는 엘리베이터도 설치했다. 그렇게 ‘더블헬릭스 하우스’는 두 집이 꿈꾸고 자라는 집이 되었다. ‘맑은구름집’은 가족의 구성원도 제각각이고, 기호도 취향도 다른, 단독주택 아홉 채가 한 건물에 담긴 공동체 주택이다. 이웃이 될 가구원들은 일찌감치 모여서 대지를 마련하고 각자의 개성과 용도를 반영하며 집을 구성했다. 땅의 모양도 남북으로 좁은 사다리꼴 형태여서 가구마다 채광, 조망, 주방이나 화장실의 형태가 다르다. 심지어 복층까지 결합된 복잡한 구조로 완성되었다. 방의 크기나 개수도 제각각이다 보니 밖에서 보는 창문의 모양도 불규칙적이다. 지하에는 공동 주방과 거실이면서 각자의 책을 모은 도서관이자 음악실이 있다. 여분의 짐들을 가구별로 보관할 수납공간과 세탁실도 마련했다. 그렇게 ‘맑은구름집’은 단독주택과 공동주택의 장점이 결합된 집으로 지어지고, 이웃을 맺고 함께 사는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 집은 시간이 짓는다 - 루치아의 뜰, 언포게터블, 층층나무집…… 충남 공주의 ‘루치아의 뜰’은 원래 세 칸짜리, 즉 10평이 조금 넘는 가장 일반적이면서 전형적인 살림집이었다. 또 지은 지 50년이 조금 넘어 아주 오래된 한옥은 아니었다. 주인은 그 집을 보고 뜰이 마음에 들어 사들였고, ‘루치아의 뜰’로 고치고 싶다고 했다. 집의 뼈대는 멀쩡했고 지붕도 새는 곳이 없어 청소만 잘하면 될 것 같았다. 집의 정면에 유리창을 달고 막혀 있던 다락은 시원하게 열고 서까래를 노출해 누마루처럼 만들었다. 두 개의 문은 틀을 그대로 살려 창호지만 새로 발랐다. 그렇게 먼지를 걷어내고 남은 살림살이들은 소소하게 되살렸더니, 단순한 삶과 여백이 있는 집으로 다시 태어났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 신부가 찾아와 신부의 고향에 있는 지은 지 20년 된 콘크리트 창고를 자신들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신혼집으로 삼고 싶다고 했다. 이 창고는 20년 전 신부의 아버지가 지었으며, 아버지는 나중에 창고 옆에 2층집을 지어 가족이 단란하게 살 예정이었다. 그러나 1년 후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언포게터블’은 집 안에 집을 넣는다는 개념에서 출발했는데, 1층은 주방과 식당과 거실과 벽 뒤로 숨겨져 있는 작은 서재로 구성하고, 2층은 가족실과 욕실과 드레스룸을 갖춘 침실로 구성했다. 집의 외관의 거친 콘크리트 벽에는 벽화를 그려 넣었다. 그렇게 ‘언포게터블’은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달팽이 집 같은 포근한 껍질 속에 딸이 화음을 곁들이며 아버지가 꿈꾸던 2층집을 집어넣은 집으로 탄생했다. ‘층층나무집’은 60대에 접어든 부부가 80대 부모를 모시고 살아갈,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포근한 집이다. 부부가 평생 타인을 위해 살아온 탓에 많은 돈을 모으지 못해 소박한 집을 지어야 했다. 더구나 삼대가 사는 집이다 보니 작게 지을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 집은 장년과 노년이 새롭게 시작하는 삶을 담을 수 있어야 했다. 이 집은 단순한 집이 아니라 가족을 다시 모이게 하는 의미 있는 공간이었다. 층층나무가 있는 샘 옆으로 주방과 부엌을 놓아 안주인이 늘 바라보게 했고,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입구 쪽으로 노부모가 앉는 거실을 놓았다. 그렇게 건축주 부부가 여태껏 살아온 삶, 지켜온 방향에 의해 지어진 집이자 동시에 평생을 보낼 ‘층층나무집’이 완성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