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부
프라하 너머 지젤 2 부 뉴욕, 가스파르 1부와 2부의 각 장은 씨줄과 날줄의 구조로 서로 교차하도록 정렬되었습니다. (전체 24장) |
김효준의 다른 상품
|
서로에게 간단한 인사를 하며 하선이 시작되었다.
육지에 발을 내딛는 순간, 약간의 어지럼증이 밀려왔다. 당황스러웠다. 마치 육지의 멀미처럼 무방비로 다가왔다. 오랜 시간 흔들리는 배 위에 있었던 몸이 단단한 바닥 위에 서게 되자, 오히려 혼란스러워했다. 적응했던 감각의 부정이었다. “이제 또 다른 현실의 시작이다.” 마치 고치를 뚫고 나온 성체처럼, 결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은 조금 무거웠다. 탈피의 껍데기는 배에 남겨질 것이다. 그리고 파삭하게 말라 사라질 것이다. --- p.95-96 나는 힘차게 날갯짓을 이어갔다. 그리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드디어 프라하의 붉은 지붕들이 하나둘 발밑으로 펼쳐졌다. 옛날 둥지에서 보았던 지붕보다 훨씬 넓은 세계였다. 나에게 고소공포증은 없었다. 다행이었다. 눈 아래 어우러진 모습은 놀라웠다. 새로운 세상이었다. 태양이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그리고 노을이 지면서 도시를 점차 금빛으로 물들여 갔다. 처음 보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어떻게 이런 빛깔이 나올 수 있을까? 이곳의 사람들은 축복 속에 살고 있구나. 나도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 p.103 책 냄새와 먼지가 떠다니는 축축한 저녁. 나는 이곳에서 ‘머물 수 있는 곳’의 기척을 느꼈다. 그리고 가슴 깊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 p.123 은빛과 먹빛이 섞인 거대한 날개가 내 옆을 스쳐 날아가는 것 같더니, 매의 날카로운 검은 발톱이 내 바로 뒤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쳤다. 공기가 섬뜩하게 찢어졌고, 그 순간 도시의 맥박도 적막 속으로 모두 사라졌다. 오직 심장만이, 내 안에서 쿵쾅거리며 북처럼 울리고 있었다. 아니 터질 것 같았다. --- p.161 지젤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우아한 성품은 물론, 타고난 것이었지만, 그녀가 가지지 못한, 온전하지 못한 다리, 즉 ‘결여’가 아니었다면, 자칫 오만함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녀에게는 이것이 한없이 겸손하게 만드는 ‘야곱의 어긋난 환도뼈’인 셈이었다. 성숙의 시간이 더해지면서, 그녀의 불안정한 걸음걸이를 보며 다가서는 많은 이들을,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는 아량의 깊이도 점차 깊어져 갔던 것이다. ‘항상’이라고는 말할 수 없더라도, 대체로 ‘결핍’이 ‘과잉’보다는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하는 것 아닐까? 역설적으로. --- p.283 아담한 공간은 묘하게 따뜻했다. 스피커에선 늘 적당히 낡은 재즈가 흘러나왔다. 커피 향은 민트색 벽을 따라 천천히 스며들었다. 로스팅되어 갓 쏟아져 나온 원두의 향은 매혹적이었다. 주변의 모든 냄새를 뒤덮어 버리는 강렬한 향. 그러나 질리지 않게 하는 미덕이 있는 향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책 대신 커피잔을 잡았다. 문장 대신 사람들의 이름을 불렀다. --- pp.307-308 내 안에서 차분히 이웃과 계절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일. 이 삶 속에 혼돈이 다시 스며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지금 나는, 굳이 기다리지도, 다그치지도 않는다. 무언가를 입증하기 위해 초조해하며 강박 속에 갇혔던 과거는 흘려보냈다. 다녀간 삶을 잔잔하게 남기는 일에 불과할 것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을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내가 써야 할 가장 중요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있다. --- pp.314-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