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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걷다
우리땅걷기 도반들의 종횡무진 ‘걷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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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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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책을 펴내며
- 황토현문화연구소에서 우리땅걷기까지 40년을 회고하다

제1장. 우리땅걷기 40년의 의미

우리땅걷기 40년이 일군 국토사랑의 여정
황토현문화연구소가 우리땅걷기에 끼친 영향
1990년대 우리땅걷기 운동이 촉발한 2000년대 걷기 열풍의 의미

제2장. 황토현문화연구소, 올곧은 우리 문화를 세우다

우리 시대의 올곧은 문화 정신을 일깨웠던 황토현문화연구소의 의미
뜻을 찾아 떠난 우리 문화역사기행
올곧은 우리 정신의 뿌리, 동학 문화 재조명 사업

제3장. 대한민국 10대 강을 걷다

’90년대 대한민국 10대 강 걷기 프로젝트 실현의 필요성
2000년 초 금강, 섬진강, 한강 답사 개척의 여정들
남도 답사의 시발점, 낙동강 답사 개척 여정

제4장. 삼남대로, 우리 옛길을 걷다

삼남대로, 옛길에서 찾은 우리 땅의 의미
조선 역사의 숨결이 깃든 영남대로
천혜의 절경을 보듬은 관동대로
옛선인들이 걷던 길

제5장. 대한민국 명품길을 만들고 걸어온 시간들

남도의 풍정이 담긴 길을 걷다 - 남해 바래길, 다산 유배길
바닷길, 강길로 마음을 실어나르던 시절 - 영덕 블루로드길, 남한강 여강길
해파랑길, 동해의 아름다운 절창으로 빛나는 영혼의 길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유장하게 펼쳐진 백두대간 산 자락길
호남의 역사와 애환이 깃든 변산 마실길, 고창 질마재길
꿈결처럼 달려올 통일을 기원하며 떠난 북한기행

제6장. 우리 산하의 가장 아름다운 길에 머물다

강원도의 아름다운 길
영남의 아름다운 길
호남의 아름다운 길
충청도의 아름다운 길
제주의 아름다운 길
서울, 경기도의 아름다운 길
봄, 여름, 가을, 겨울에 걷는 명품길

제7장. 걷는다는 것의 의미

걸으면서 만나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

저자 소개 1

신정일과 우리땅걷기 도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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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걷다》는 1985년 황토현문화연구소로부터 시작돼 2005년 사단법인 우리땅걷기로 이어져 오늘에 이른 우리땅걷기 40년의 발자취를 기록한 책이다. 신정일과 우리땅걷기 도반들은 이 책에서 생생한 육성으로 우리 산, 강, 바다, 호숫길을 개척하는 과정을 한 발 두 발 더듬고 있다. 우리땅걷기를 40년 동안 이끌었던 신정일 대표는 1985년부터 황토현문화연구소를 통해 동편제, 서편제 소리길을 시작으로 동학기행, 문학기행 등을 통해 올곧은 우리의 정신을 일깨우는 진정한 우리 문화 지키기 운동을 해왔다. 그리고 그 정신을 이어 2000년대부터 한국의 10대 강을 걷고 조선시
《대한민국을 걷다》는 1985년 황토현문화연구소로부터 시작돼 2005년 사단법인 우리땅걷기로 이어져 오늘에 이른 우리땅걷기 40년의 발자취를 기록한 책이다. 신정일과 우리땅걷기 도반들은 이 책에서 생생한 육성으로 우리 산, 강, 바다, 호숫길을 개척하는 과정을 한 발 두 발 더듬고 있다.
우리땅걷기를 40년 동안 이끌었던 신정일 대표는 1985년부터 황토현문화연구소를 통해 동편제, 서편제 소리길을 시작으로 동학기행, 문학기행 등을 통해 올곧은 우리의 정신을 일깨우는 진정한 우리 문화 지키기 운동을 해왔다. 그리고 그 정신을 이어 2000년대부터 한국의 10대 강을 걷고 조선시대의 옛길을 걸으며 우리땅걷기 도반들과 함께 ‘길 위의 인문학’을 우리 산천을 걸으며 몸소 실천해 왔다. 이후 해파랑길, 변산 마실길, 소백산 자락길 등을 만드는 데 초석을 놓은 우리땅걷기는 걷기를 통해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의 속살을 발견하며 40여 년 동안 길에서 만나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대한민국을 걷다》에서는 우리땅걷기 40년 동안 우리 길을 묵묵히 걸었던 신정일과 도반들의 육성으로 우리 문화와 역사의 길들을 속속들이 증언하고 있다. 황토현문화연구소의 문화예술 답사를 경험하고(송하진, 김현조), 초창기 우리땅걷기 활동을 돌이켜보고(유재훈, 민승기, 유철상), 해파랑길, 낙동강길, 변산 마실길, 관동대로를 처음 개척할 때의 분투 여정을 생생하게 증언하며(박수자, 최명운, 김준희, 박동규, 정유순, 신용자), 우리 산하의 아름다운 길을 카메라에 담고(김종우, 전성수), 저마다의 길 위에서의 자유를 만끽하는 순간들(유연숙, 임제식, 손완주, 조재훈, 조건진, 한석희)을 소중한 기억으로 담아내고 있다.
우리땅걷기 도반들, 나는 왜 이 길을 걷는가?
항상 막다른 골목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서 망설일 때가 있었다. 곁에 누군가라도 있다면 뛰어가서 물으면 좋을 것이지만 길을 물을 사람도 없는 그런 시간, 그런 시간도 나를 위해 마련된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살다가 예까지 이르렀다. 꽃 피고 지고, 비 내리고 눈 내리는 시간 속에 살아온 많은 나날, 그 길들이 눈앞에 활동사진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시간 속으로 지금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있다.
- 신정일, ‘나는 왜 걸었을까?’

* 걷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일상을 보며 그의 모든 것을 체득할 수 있는 유용한 삶의 태도~ - 유재훈

* 걸으면서 다가오는 자연이나 사물을 느끼고 사유하며 좋은 생각과 건강한 생각이 나왔다.
- 유철상

* 우리땅걷기는 길을 통해서 삶의 방향을 정하는 방식을 가르쳐 줬다. - 송하진

* ‘길’이라는 과정을 통해 내면의 길을 밝혀준 우리땅걷기! - 김현조

* 내가 여행을 가는 이유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기 위해서이다. - 민승기

* 길은 나를 사람답게 만들었고, 강은 나를 낮추어 흘러가게 해주었다. - 김종우

* 길 위에서만 만나는 문화적인 흥취와 어울림으로 온전히 자유인이 되는 순간! - 박동규

* 나에게 걷기는 풍경을 내 마음에 들이는 것이고, 나의 정서에 맞는 것이다. - 김준희

* 사는 일에 지쳐서,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한계를 확인하러 길을 찾았다. - 신용자

* 걷기는 새로운 세상, 새로운 지식을 깨닫고 나를 자극하는 새로운 마중물이었다.- 유연숙

* 계곡의 청량한 물소리, 숲속의 스치는 바람소리와 청아한 새소리를 들어봤는가? - 전성수

* 같이, 또 따로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던 우리땅걷기!- 민운기

* 걷는 동안엔 다 평등인이고 자유인이다. - 박수자

* 야생에 지천으로 널린 자연의 존재가 내 몸으로 들어오는 감흥에 빠지는 순간! - 최명운
* 변산에서 당대 문학인, 사상가의 시대를 앞서간 자유애민사상을 본다. - 정유순

* 한 번 가본 길보다 두 번 세 번 간 길이 더욱 다른 인상으로 나에게 남겨진다. - 손완주

* 새로운 세상을 보고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했던 소중한 경험. - 임제식

* 송림이 우거진 길을 걸으면 도시에서 찌든 폐를 크리닝하는 마음이 들곤 합니다.- 조재훈

* 많은 국민들이 우리의 아름다운 길을 시간을 내서 일부러 걸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조건진

* 때 묻지 않은 절경과 바닷가의 우거진 솔숲들을 보며 경탄하며 걷던 영혼의 길! - 한석희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440쪽 | 652g | 153*224*30mm
ISBN13
9791171740796

책 속으로

1989년 9월, 이청준의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의 천국 소록도를 찾으면서 문학역사기행을 시작하였는데, 첫 번째 문학기행을 소록도로 잡은 것은 내 오랜 염원의 발로였다. 1981년 8월 말 안기부에 ‘간첩 혐의’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지만 가까스로 풀려났고, 그 뒤 정신과 육체가 피폐해져 삶의 갈피를 못 잡고서 책만 읽던 어느 날이었다. 어느 순간 소록도 나환자촌을 배경으로 쓴 『당신들의 천국』을 읽던 중 나에게 운명처럼 하나의 문장이 다가왔다.
“내 말은 결국 같은 운명을 삶으로 하여 서로의 믿음을 구하고 그 믿음 속에서 자유나 사랑으로 어떤 일을 행해 나가고 있다 해도 그 믿음이나 공동운명의식은, 그리고 그 자유나 사랑은 어떤 실천적인 힘의 질서 속에 자리 잡고 설 때라야 비로소 제값을 찾아 지니고, 그 값을 실천해 나갈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절망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내가, 이 땅에서 조그맣게나마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할 수 있는 힘, 그 힘의 실마리를 발견했다. 그것이 〈시인과의 대화〉와 〈여름문화마당〉으로 발전했고, 우리 국토를 거닐면서 문화와 역사를 배워서 생활 속에 실천하는 돌파구였다.
*
1월 11일을 ‘길의 날’로 지정한 사단법인 〈우리땅걷기〉는 이날 하루나 아니면 몇 시간은 자동차를 타지 않고 우리 국토를 걸으며 우리 국토를 이해하는 운동을 펼치자고 하였다.
나라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의 하나인 문경새재를 걸으면서 니체가 설파한 “가장 중요한 것은 길 위에 있다”는 주제를 가지고 전국에서 모인 130여 명의 도반들과 함께 치른 축제는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전주시 중심가에 있는 건지산 길을 걸으면서 숨겨진 보석 같은 길을 발견했고, 다가산, 완산, 보광재, 남고산성, 기린봉, 황방산 길을 걸으면서 전주에 있는 아름다운 옛길을 발굴하여 시민들과 나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자는 의미로 전주 천년고도옛길 12코스를 개발했다.
우리땅걷기에서는 전주 천년고도옛길 12코스를 만들어 우리 길의 원형을 찾아가면서, 선조들의 삶의 궤적과 지혜를 배워가는 길문화축제를 매년 개최했다. 보광재 길을 국가 명승길로 만들고자 하였고, 건지산 길을 국가 산림문화자산으로 선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전주천의 가을 하늘 아래 휘날리는 억새 사이로 꽃상여가 나가는 풍경과 기와집과 관광객 사이를 나가는 꽃상여는 한폭의 그림이었다. 전주의 이곳저곳에 산재한 문화유산 사이를 거닐며 진행되는 길문화축제는 전주를 찾은 사람들에게 아름답고 고운 추억으로 남았다.
*
선생님께서 걸은 길 중에서 초창기부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걷기 코스는 어디였습니까?
- 저는 영덕 블루로드 코스가 선명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이 구간은 우리가 걸을 때만 해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길이었습니다. 블루로드 코스는 부산에서 시작해 기장-울산-포항-영덕으로 이어져 있는데 사람들이 포항까지는 많이 여행을 갔던 곳이지만 영덕은 실제로는 포항에서도 무척 멉니다. 그러니까 거리상 멀고 워낙 외지다 보니까 사람들이 영덕을 갈 생각을 못했죠. 실제로 서울에서 한 4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로, 부산보다 더 멉니다.
그래서 사람들한테 약간 오지 느낌이었는데 해파랑길이 연결되면서 블루로드 구간이 사람들한테 엄청 많이 알려지게 됐죠. 지금은 영덕을 우리가 편하게 생각하고 대게 먹으러 잘 가는데 그때는 그렇지 않았어요. 일단 고속도로가 직접 닿지 않았어요. 영덕을 가려면 대구나 포항 쪽에서 다시 산을 넘어가는 코스가 되기 때문에 일단 대중교통이 없어서 불편했죠. 기차도 없고 버스도 오래 걸리고 그랬던 것이 선생님이 해파랑길 코스를 개발하면서 블루로드를 해파랑길에 연결하면서 비로소 대중들이 여행 코스로 인식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도 같이 걸었었고 또 그 작업이, 어떤 길을 연결시키면서 실제로 대중들에게 보여지는 코스가 됐다는 점에서 무척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고래불이나 괴시리마을 같은 영덕의 특색 있는 마을, 낯선 풍경 같은 것들이 알려지게 됐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단순히 코스와 코스를 연결했다는 개념보다는 실제로 괴시리마을은 우리땅걷기에서 도반들이 찾아가면서 하나둘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면서 문화적인 부분까지 강조되면서 문화마을로 특화돼 조성되는 계기가 됐죠. (유철상, 상상출판 대표)
*
선생님에게 길 걷기는 어떤 의미이고 신정일 선생님은 어떤 분이셨는지요?
-말 그대로 인생 자체가 길 걷는 일 아니겠습니까? 길이 꼭 눈앞에 보이는, 내가 걸어 다니는 길만이 길이 아니고 우리가 가는 곳, 생각의 방향이 다 길이죠. 로드도 있지만 웨이도 있다는 것이죠. 내 생각의 방향을 따라서 가고 있는 것이 길이죠. 그 길을 어떻게 보면 방향성을 잘 잡도록 해준 사람이 신정일 선생님이었다고 봅니다. 아까 나한테 신정일은 어떤 존재인가? 톰과 제리인가 하고 농담식으로 말씀하셨지만 저에게는 말 그대로 그냥 동반자, 도반입니다. 인생의 어떤 길이든 얼마든지 같이 갈 수 있는 사람. 얼마든지 같이 걸을 수 있는 사람, 같이 가면 참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 사람과 관계를 맺고 지내다 보면 누구는 만나고 오면 별로 기분이 안 좋은 사람이 있는데, 신정일 씨하고 걷고 오면, 그 사람이 쓴 책을 읽고 나면 뭔가가 남아 있습니다. 책 속에든 마음속에든 그 뭔가가 남아 있는 사람. 뭐 그런 관계면 훌륭한 거 아니에요? 그냥 재밌으면 좋은 건데, 남아 있는 것까지 있다면, 또 그 안에 어떤 방향이나 가치 같은 개념이 있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송하진, 전 전라북도 도지사)
*
사진으로 표현한 동네 중에 동강 외에 여기는 정말 선경(仙境)이라고 할만한 곳이 있다면 어디였습니까?
- 나는 강을 보면 왠지 숙연해지고 무언가 존재의 본류랄까 그런 철학적인 감흥에 젖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한강이나 동강이 아직도 내 걷기의 근원적인 사고를 불러일으키는 소중한 자연의 대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강은 검룡소라는 조그마한 샘물에서 시작합니다. 태백에 있는 그 조그만한 샘물에서 시작해 그게 동강으로 흘러서 남한강을 거쳐 한강까지 도달하는 강물의 흐름이 정말 신기해요. 그런 내용으로 그림을 그려도 하나의 진경산수화가 나올 수 있을 정도로 눈에 선하죠. 나는 단연코 동강이 가장 기억에 남는 기행이었습니다. 동강은 몇 번을 걸어도 또 다른 모습으로 저를 계속 설레게 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나는 동강을 몇 번 걸으면서 사진 촬영할 때마다 전혀 다른 풍경들이 사진에 담겨 있는 거예요.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갔다고나 할까. 여기가 외국이라고 해도 믿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이국적인 풍광이 넘쳐나는 곳이에요. 동강은 정말 우리나라에 이런 절경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강의 백미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요즘 걷는 해파랑길도 갈 때마다 서로 다른 자연의 절경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부산을 떠나 울진이나 영덕이 굉장히 인상 깊습니다. 울진 같은 데는 지금 걷는데도 ‘아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울울창창한 숲이며 천혜의 자연 비경이 너무 아름다운 것 같아요. 망향정에서부터 왕피천, 그 강이 부딪치고 은어가 노니는 강가까지. 은어가 살 정도로 물도 깨끗하고 해안가 모래사장을 병풍처럼 두른 솔숲에서 은은히 맡아지는 소나무 향기까지 ‘이런 데서 한번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나오더라고요. (김종우, 자유여행가)
*
취미가 걷기이고 걷는 게 인생의 낙이신 박동규 선생님에게 ‘걷기’는 어떤 의미신지요?
- 저는 현장의 감리단 단장을 오래 했기 때문에 직장에서는 현장을 이끌어가는 리더의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철도라는 작업장은 좀 특수한 데라서 어떤 경우는 시비를 거는 사람도 많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을 때도 많습니다. 그러면 그런 것들을 차단하고 현장 조건에 맞게 일을 해 추진하려면 조금은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가다가 우리땅걷기에서 그런 나의 기질이 드러날까 봐 상당히 조심을 하게 됩니다. 그런 현장에서의 직업적 습성이 배어 있어서 일단 저는 평상시에 남들한테 좀 배려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여야 마음이 편안하니까요.
제가 좋아서 걷는 거니까 그냥 재미로 즐거운 마음으로 했지, 뭐 어떤 욕심은 없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오랫동안 지내온 동료들과 DMZ 평화의 길 걷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도보여행의 매력은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냥 생각을 잊고 무념무상으로 걷는 거지요. 생각 없이 그냥 걷다 보면 머리를 비워버리는 상쾌한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오늘은 여기서 여기까지다 하는 코스를 정하고 걸으면서 이것저것 해찰도 하면서 내 안의 나와 솔직하게 대면하는 겁니다. 그것이 걸음의 종착역입니다.(박동규, 철도건설사업관리부 부사장)
*
선생님에게 길 걷기는 어떤 매력이 있길래 서명숙님의 제주 올레부터 시작해서 신정일 선생님의 우리땅걷기까지 자연속으로 걷는 걸 멈추지 않는 건가요?
-확실히 매력이 있죠. 저는 해마다 해외여행을 혼자 오래 갑니다. 한 10년 정도 된 것 같네요. 2015년부터 길게는 65일에서 70일 정도 가곤 했으니 아무래도 저한테 무슨 방랑벽 같은 게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남자들은 그걸 역마살이라고 한다는데 그건 신정일 선생님한테 딱 맞는 말인 것 같고 저는 역마살보다는 약간 방랑벽이 있는 사람인 거죠. 매년 안 가면 진짜 몸이 근질근질해서 혼자서 며칠이라도 산이라도 갔다 오죠. 그냥 내가 걸으면서 그 풍경 같은 거, 공기 같은 거 그런 걸 내 몸속에 받아들이는 게 좋더라고요. 두 발로 걷고 몸속으로 받아들이는 것, 정말 매력적이에요. 제가 서명숙씨의 제주 올레를 갔던 것도 매번 제주에 가면 겉핥기식으로 여행하는 게 싫어서였어요. 당시 서명숙씨가 하는 제주 올레의 모토는 ‘제주의 속살을 걷는다’였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관광지 같은데 가서 돈 내고 딱 보여주는 것만 보는 게 아니라 옛날 길, 사람들이 지나다녔던 제주도민들의 길을 구석구석 걷는다는 데 반해서 제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제주로 향했던 것이거든요. 신정일 선생님이 주도하시는 우리땅걷기도 제가 모르는, 가보지 못한 흙길, 산길, 바닷길, 강 길 등 4대 강과 긴 코스(해파랑길, 서해랑길 등)를 걷는다기에 그런 길을 따라 걷는 게 너무 좋아서 우리땅걷기에서 걷게 된 거예요.(김준희, 자유여행가)
*
다산 유배길은 언제 조성됐고, 처음 이 길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다산 유배길의 의미와 대략의 코스를 설명해 달라.
-다산 정약용은 1805년 겨울부터 강진읍 뒤에 위치한 보은산에 있는 고성사 보은산방으로 자리를 옮긴 후 그곳에서 주로 주역 공부에 전념하였다. “눈에 보이는 것, 손에 닿는 것, 입으로 읊는 것, 마음속으로 사색하는 것, 붓과 먹으로 기록하는 것에서부터 밥을 먹거나 변소에 가거나 손가락을 비비고 배를 문지르던 것에 이르기까지 하나인들 『주역』이 아닌 것이 없었소”라고 썼던 시절이었다. 그다음 해 가을에 강진시절 그의 애제자가 된 이청(李晴)(자는 鶴來)의 집에서 기거했다. 다산이 만덕산 자락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긴 것은 유배생활이 8년째 되던 1808년 봄이었다.
다산의 유배지인 다산초당은 본래 귤동마을에 터 잡고 살던 해남 윤씨 집안의 귤림처사 윤단의 산정이었다. 정약용이 다섯 살 되던 해 세상을 떠난 그의 어머니가 윤씨였고 귤동마을 해남 윤씨들은 정약용의 외가 쪽으로 먼 친척이 되었다. 유배생활이 몇 해 지나면서 삼엄했던 관의 눈길이 어느 정도 누그러지자 정약용의 주위에는 자연히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그 가운데 윤단의 아들인 윤문거(尹文擧) 세 형제가 있어서 정약용을 다산초당으로 모셔갔던 것이다.
다산초당에서 천일각 지나 도암만을 바라보며 백련사로 넘어가는 산길은 다산이 주역에 밝았던 혜장스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면서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켜켜이 서린 역사의 길이다. 그런 연유로 이 길을 다산 유배길이라고 부른다.
*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도보 코스가 해파랑길이다. 해파랑길은 부산에서 시작해 동해까지 이어지는 유장한 길 코스로 유명한데, 해파랑길의 구체적인 코스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
-동해 해파랑길은 포구에서 포구로 이어지는 새로운 풍경과 새로운 시간을 만나는 길이고 역사 속에서는 신라 화랑들의 순례길을 만나는, 매혹적인 동해안 비경을 두루 섭렵하는 길이다.
5천 년 숨결이 서리고 서린 역사의 현장이 도처에 산재해 있고, 빼어난 자연 풍광에 어린 전설과 설화의 보고(寶庫)이다. 『삼국유사』에 실린 처용과 박제상의 이야기 그리고 문무왕 수중릉과 이견대가 있는 경주 일대 바닷가, 호미곶과 칠포의 바위그림, 그리고 포스코가 있는 포항을 지나 영덕에 들어서면 신돌석 의병장과 영해 민란이라는 참혹하지만 의기를 되살려주는 역사 무대가 펼쳐지고, 그곳을 지나면 관동팔경으로 꼽히는 월송정과 망양정이 있는 울진이다.
그곳을 지나 죽서루, 경포대를 거치면 설악산이 지척이다. 청간정을 지나 고성에 이르면 김일성 별장과 이승만 별장이 있는 화진포가 멀지 않고, 금강산 자락의 통일전망대에 이른다. 여기까지가 현재 우리가 갈 수 있는 해파랑길이다. 그러나 북한과 협의만 된다면 길은 다음의 여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고성에 있는 삼일포를 지나면 통천의 총석정이다. 명사십리 해당화가 흐드러진 원산을 지나면 함흥에 이르고 “바람 찬 흥남부두 가봤으면 좋겠네”라는 노랫말 속에 나오는 흥남을 거쳐 칠보산이다.
*
아마도 우리땅걷기의 날것으로서의 길의 체험은 한번 경험한 사람에게는 끊을 수 없는 유혹 같은 강렬한 끌림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닉네임으로 부르며 ‘길에서 자유롭게 다니는 도반들’의 모습일 텐데요. 선생님께서 느끼시는 우리땅걷기의 닉네임 문화는 도반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제가 느낀 건 여러분들이 우리땅걷기에 오셔서 해방이 된다는 거예요. 해방! 개개인의 어떤 진면목이나 잘난 부분은 캐치가 쉽지 않고 본인이 드러내지 않는 이상 잘 모르죠. 그런데 각자 이곳에서 걸으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방되시는 걸 보게 됩니다.
우리땅걷기에서 자기만의 해방을 맛보는 데는 닉네임으로 도반들의 이름을 불러준 것도 좀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자기가 누구다, 라고 이름을 밝히는 게 아니라 닉으로 명명되고 나면 닉 속에서도 자기의 어떤 추구하는 바가 좀 드러나는 것 같거든요. 가령 제 본명인 최명운보다는 낡은책상이 좀 더 제 내면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달까요.
마찬가지로 맨날맨날, 스칼렛, 타이슨, 매버릭… 각자가 우리땅걷기에서 활동하는 모습과 오버랩 되면서 정말 그 사람을 80%는 확실하게 명명해 준다고 생각해요. 서로 닉을 부르면서 님자만 붙이거나 생략해서 부르면서 각자 방식으로 해방이 되면서 흥이 있는 사람은 흥이 나오고 조용히 사색하는 사람은 홀로 사색하면서 진짜 되고 싶었던 자기로 자유롭게 풀어지는 것 같아요. 이름 호칭이 들어갔을 때 불편한 상하의 어떤 지위나 세속의 명예, 계급 같은 게 사라진 자리에 온전히 해방된 자기가 표출되는 거죠. 이건 저 혼자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느끼죠. 길에 나와서 그렇게 자신을 자연으로 풀어놓는 게 걷기의 목적이죠.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우리땅걷기는 걷기라는 행위를 육체적으로도 받아들이지만 인문학적 문화적으로도 상당히 독특하게 신정일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그 길과 지리와 풍물과 유적이 갖고 있는 의미도 충분히 설명이 되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박수자 선생님 같은 경우에 제대로 우리나라의 문화를 배우려면 우리땅걷기에서 걸어야 된다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시는 게 있어요. 그러니까 걷기와 답사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아요.
걷기의 비중과 답사의 비중이 상호 보완하는 거죠. 이 원칙을 우리땅걷기는 아주 단단하게 같이 갖고 가죠. 그러면서 걷는 개인이 스스로 길에서 해방되고 자유로워지는 자연의 존재로 훠이훠이 길에서 풀어지는 것. 제가 우리땅걷기를 통해서 길에서 배웠던 진정한 삶의 방식이었습니다.(낡은책상, 자유여행가)
*
우리 땅에서 여름에 꼭 걸어야 할 명품길이 있다면 3곳만 길 코스와 걸어야 할 이유 등을 토대로 소개해 달라.

1. 통영 미륵섬 장군봉 일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라고 노래한 정현종의 시 구절이 떠오르며, 그 아름다운 미륵도의 일주도로를 따라가다 멎는 곳이 통영시 삼양면 삼덕리 원항(院木)마을이다. 나리꽃과 이팝꽃이 만발한 장군봉에서 원항마을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마을 제당이 남아 있으니, 바로 중요민속자료 제9호로 지정된 삼덕리 마을 제당이다. 마을 입구에 서 있는 당산나무 밑에는 돌장승이 있다. 언제나 그곳에 가면 어느 때 누가 기도를 드리고 갔는지 모르지만 기도를 드린 흔적으로 막걸리병이 놓여있다. 당산나무는 대개 생명의 유지와 수태시키는 생식기능, 악귀와 부정을 막고 소원을 빌면 성취시켜 주는 당신(堂神)의 표상이며 신체라고 할 수 있다.
이곳 삼덕리의 마을 제당은 마을을 지켜주는 장군당, 산신도를 모신 천제당. 그리고 마을 입구에 서 있는 돌장승 한 쌍과 당산나무 등이 모두 중요민속자료 제9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마을 제당은 삼덕리 사람들의 다신(多神)적 신앙 예배처이고 풍요와 번영을 기원하는 기도처이다. 마음이 쓸쓸하고 울적할 때, 글이 잘 나가지 않을 때 문득 찾아가서 쉬었다 오는 곳이 삼덕마을의 서쪽에 있는 장군봉이다,
장군봉으로 오르는 고갯마루에는 양쪽 길을 사이에 두고 서 있는 돌장승이 있다. 큰 것이 남자 장승으로 높이가 90cm이고 여자 장승은 크기가 63cm쯤 된다. 예전에는 나무로 만들어 세웠으나 70여 년 전에 돌로 만들어 세웠다고 전한다.
장군봉으로 가는 길은 세상 끝 무릉도원으로 향하는 길처럼 신비롭고 아름답다. 좌측으로 펼쳐진 삼덕리 포구에 배들은 눈이 부시게 떠 있고, 쉴 새 없이 작은 배들이 들고나는 항구는 그림 속처럼 평안하기만 하다. 울창한 나무 숲길을 헤치고 오르다 보면 암벽이 나타나고 조심스레 오르다 보면 밧줄이 걸려 있다. 겁이 많은 사람들에게 쉬운 코스는 아니지만 조심스레 오르면 갈만하다. 그 코스를 지나면 마당 같은 바위에 오르고 그곳에서 바라보는 미륵섬 일대와 한려수도, 말 그대로 장관이다. 자연은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모든 시간이 멈춘 듯한, 그 풍경을 바라보는 눈망울마저 정지된 듯한 시간이 지나고, 나리꽃과 이팝꽃이 만발한 넓은 마당 바위에서 서쪽을 바라본다.
한려수도의 진주 같은 풍경에 젖어들고 서남쪽으로 쑥섬, 곤리도, 소장군도가 보이고, 북서쪽으로는 오비도, 월명도 등 크고 작은 섬이 점점이 박혀 있으며, 서쪽으로는 그 아름다운 섬 사량도가 보인다. 이곳에서 날이 저물어 갈 때 사량도를 넘어 남해 쪽으로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면 그 시간이 얼마나 복된 시간이었던지를 가슴 시리게 깨닫게 된다.

2. 다도해에 숨겨져 있던 보석, 금강죽봉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구역인 고흥군 도화면 지죽리에 숨겨져 있던 보석이 만천하에 알려진 것은 2021년 6월이었다. 몇 년 전, 산악회에서 올린 몇 컷의 사진을 보고 신기해서 찾아갔더니,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이 다도해를 바라보며 숨어 있었다. 필자는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을 실감하고 문화재청에 알렸다.
2020년 10월 문화재청에서 현장답사를 한 뒤 2021년 5월 26일 제5차 천연기념물분과위원회 회의를 거쳐 9일 ‘고흥 지죽도 금강죽봉’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 확정 고시한 것이다. 여성적이고 웅장한 미를 자아내는 주상절리 지죽도는 고흥반도 끝에 딸린 작은 섬으로 대염도와 목도·죽도·대도 등 주변의 여러 섬들과 함께 육지와 연결되어 있어서 이 일대 섬 사이에서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배를 타고 가던 지죽도에 지죽대교가 건설된 것은 2003년이었다.
이 다리가 놓이면서 배를 타지 않고 자동차로 갈 수 있게 된 섬이지만 지죽도라는 이름은 아직도 여행자들에게 생소한 편이다. 이 지역 사람들조차 별로 내세울 것이 없다고 자랑하지 않았던 작은 섬의 유일한 자랑거리가 금강죽봉이다.
그런데 금강죽봉이란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지죽도(支竹島)란 지명에 걸맞게 섬을 떠받치고 있는 주상절리를 사람들이 금강죽봉(金剛竹峯)이라고 명명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고흥 사람들은 어째서 이렇게 진귀한 보석과 같은 금강죽봉의 진가를 몰랐을까? 참으로 아름다운 명승은 아무에게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누구나 접근할 수 없는 곳에 숨겨져 있다.
그 가치를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보여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금강죽봉은 어떤 말이나 수식어로도 대체할 수 없는 천하의 절경이다. 한여름에 금강죽봉에 올랐다. 이 산으로 오르는 길은 지호마을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마을 안 골목길로 들어가 탐방로를 따라 산길을 1시간가량 올라가면 금강죽봉에 이른다. 땀으로 범벅이 된 육신은 아랑곳하지 않고 “신기하다!, 신기해!”를 연발하면서 경탄에 경탄을 금할 수 없는 금강죽봉은 돌병풍처럼 동서로 길게 펼쳐져 있었다.
그 죽봉 가운데서도 오른쪽 맨 끝부분에 홀로 떨어진 돌기둥은 ‘송곳바위’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우뚝우뚝 치솟은 금강죽봉 위로 건너갈 수도 있고 올라갈 수도 있다. 하지만 발아래는 천 길 낭떠러지라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지역 사람들은 이곳 금강죽봉의 주상절리를 보고 작은 금강산이라고 불렀는데, 태산 자락의 모든 바위 군락들이 다 주상절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보는 위치에 따라 경관이 달라진다. 이곳저곳에 층층이 쌓여 있는 주상절리는 자연이라는 석공이 오랜 세월에 걸쳐 한 땀 한 땀 빚어낸 듯 싶어,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3. 아름다운 절의 으뜸인 완주 화암사 가는 길
언제나 마음속에 남아서 ’어서 오라‘고 속삭이는 절 화암사 가는 산길은 적막하다. 어느 계절에 가건 언제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고적하고 그윽한 절, 그리고 격조 있는 문화유산이 남아 있는 화암사로 가는 정경이 15세기에 쓰여진 〈화암사중창기(華巖寺重創記)〉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절은 고산현(高山顯) 북쪽 불명산(佛明山) 속에 있다. 골짜기가 그윽하고 깊숙하며 봉우리들은 비스듬히 잇닿아 있으니, 사방을 둘러보아도 길이 없어 사람은 물론 소나 말의 발길도 끊어진지 오래다.
비록 나무 하는 아이, 사냥하는 남정네라고 할지라도 도달하기 어렵다. 골짜기 어구에 바위벼랑이 있는데, 높이가 수십 길에 이른다. 골골의 계곡물이 흘러 내려 여기에 이르면 폭포를 이룬다. 그 바위벼랑의 허리를 감고 가느다란 길이 나 있으니, 폭은 겨우 한자 남짓이다.
이 벼랑을 부여잡고 올라야 비로소 절에 이른다. 절이 들어선 골짜기는 넉넉하여 만 마리 말을 감출만하며, 바위는 기이하고 나무는 해묵어 늠름하다. 고요하되, 깊은 성처럼 잠겨 있으니, 참으로 하늘이 만들고 땅이 감추어둔 복된 땅이다.”
복된 땅을 밟으면 복을 받는다고 했던가. 화암사 가는 길은 더욱 고요하다. 아쉬운 것은 오르기 힘들었던 바위벼랑 아래 철 계단이 놓여서 그 옛날의 정취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이 절의 내면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만이 오르던 그 길이 고려 때 사람 백문절(白文節)의 글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어지러운 산 틈 사이로 급한 여울 달리는데, 우연히 몇 리 찾아가니 점점 깊고 기이하네. (중략)
조용히 와서 하룻밤 자니 문득 세상 생각을 잊어버려, 10년 홍진(紅塵)에 일만 일이 틀린 것 알겠구나. 어찌하면 이 몸도 얽맨 줄을 끊어버리고, 늙은 중 따라 연기와 안개에 취해볼까. 산 중은 산을 사랑해 세상을 나올 기약이 없고, 세속 선비도 다시 올 것 알지 못하는 일, 차마 바로 헤어지지 못해 두리번거리는데, 소나무 위에 지는 해 세 장대 기울었도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린 글과 같이 화암사 가는 길은 마치 첩첩산중처럼 깊고도 적막하다.
폭포 사이로 난 철제 다리가 아니고, 옛사람들이 다니던 절에 가파른 길을 오르자 도착하자마자 다시 폭포가 나타나고, 조금 오르면 우화루에 이른다.
화암사 우화루(보물 662호)는 목조로 지은 정면 3칸과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으로 누각형식이다. 외부는 기둥을 세우고 안쪽은 마루를 깔았다. 대웅전을 바라보고 있는 전면 기둥들은 이층이며 계곡을 바라보고 있는 후면은 축대를 쌓은 후 세운 공중 누각의 형태를 띠고 있다. 우화루는 건축형식으로 보아서 극락전을 세운 시기에 만들어진 건물로 추정되고 있다.
신라 문무왕 때의 초창된 것으로 추측되는 천삼백여 년의 세월을 견디어 온 옛 절 화암사는 창건자나 창건연대에 대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선덕여왕이 이곳의 별장에 와 있을 때 용추(龍湫)에서 오색이 찬란한 용(龍)이 놀고 있었고, 그 옆에 서 있던 큰 바위 위에 무궁초가 환하게 피어 있었으므로 그 자리에 절을 지은 뒤 화암사라고 했다고 한다. 또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원효와 의상대사가 이곳 화암사에서 수행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서 신라 진덕여왕 때 일교국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함께 문무왕 때나 그 이전에 창건한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깊은 산중에 있는 절과 같이 깊고도 그윽한 절, 보물로 지정된 우화루와 국보인 극락전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절이 완주의 화암사다.

---본문중에서

출판사 리뷰

우리땅걷기 도반들의 우리 길 개척의 아름다운 분투기(奮鬪記)!

『대한민국을 걷다』는 ‘우리땅걷기 도반들의 걷기 이야기’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우리땅걷기 도반들이 40년 동안 우리 산, 강, 바다, 호수를 쉼 없이 걸으면서 개척해 온 우리 길 만들기의 숨 가쁜 도전기이자 아름다운 성장기이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2000년대 ‘국내 길 걷기’ 열풍의 진원이 된 길들을 문화사학자 신정일과 우리땅걷기 도반들이 한발 한발 디뎠던 우리 길의 원형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이는 곧 엄혹했던 제5공화국의 서슬 퍼런 시대상황에 맞서 올곧은 우리 정신과 문화를 세워보고자 전주에서 싹텄던 황토현문화연구소의 동편제, 서편제 소리길 등의 문학문화기행으로부터 시작된다. 동학기행, 문학기행 등을 통해 진정한 우리 문화 지키기 운동을 해왔던 황토현문화연구소의 국토사랑정신을 계승해 우리땅걷기는 2000년대부터 한국의 10대 강을 걷고 조선시대의 옛길을 걸으며 ‘길 위의 인문학’을 몸소 실천해 왔다.

이러한 우리땅걷기 도반들의 우리 길 개척의 아름다운 분투가 있었기에 우리는 이제 스페인의 산티아고길도, 일본의 오헨로길도, 중국의 차마고도도 부럽지 않은 우리 국토의 아름다운 절창으로 빛나는 매혹적인 해파랑길, 백두대간 산 자락길, 남해 바래길이라는 영혼의 길을 온몸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20인의 우리땅걷기 도반들이 길에서 느꼈던, 고통 속에서도 빛난
저만의 영혼의 사유를 만끽하는 순간들을 소중한 기억으로 담아내고 있다.

『대한민국을 걷다』에서는 이처럼 우리 국토의 아름다운 영혼의 길들 - 해파랑길, 변산 마실길, 소백산 자락길 등 -을 만드는 데 초석을 놓은 우리땅걷기의 우리 길 문화답사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걷기를 통해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의 속살을 발견했던 40년간의 길에서 만난 수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우리땅걷기 40년의 길 위에서의 분투기는 ‘현대판 김정호’라는 인문사학자 신정일의 의미 있는 우리 길 문화·역사답사 개척 여정에 그치지 않고 저마다의 이유로 우리 길을 걸었던 20인의 우리땅걷기 도반들이 길에서 느꼈던, 고통 속에서도 빛난 저만의 영혼의 사유를 만끽하는 순간들을 소중한 기억으로 담아내고 있다.

저마다의 빛깔을 달리하며 ’길 명상 에세이‘로서의 독특한 내면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걷다』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우리땅걷기 40년의 여정을 촘촘하게 소개하고 있다. 먼저 황토현문화연구소에서 우리땅걷기까지의 40년 역사문화행사-문학기행, 소리기행, 여름문화마당, 동학재조명 운동 등-의 의미를 톺아본다. 다음으로 문화사학자 신정일이 90년대부터 걸었던 10대 강 도보답사에서부터 우리 옛길 찾기, 그리고 우리땅걷기 도반들과 함께 만들어간 해파랑길, 낙동강길, 변산 마실길, 소백산 자락길, 서해랑길 개척의 과정을 다룬다. 마지막으로 우리땅걷기 도반들이 걸었던 그 많은 길 중에서 경기, 강원, 충청, 영남, 전라, 제주의 명품길과 봄, 여름, 가을, 겨울에 걷기 좋은 계절별 영혼의 길이 소개되고 있다.

신정일과 우리땅걷기 도반들이 온몸으로 내디뎠던 40년의 길에서의 경험과 사유의 순간들은 걷는 자의 기쁨으로 승화되며 그대로 한 편의 시가 되고, 유장한 역사의 현장 이야기가 되어 독자들에게 아름다운 우리 산, 강, 바다, 호수의 영혼의 길을 펼쳐 보인다.

나라 밖에서 들리는 흉흉한 전쟁 소식과 불안한 시대 징후에 마음 잡을 곳 없는 요즘 같은 하수상한 시절에 더욱 필요한 것은 자기만의 내면의 소리를 듣고 자연 속에서 자신을 다잡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아닐까. 이럴 때는 자연 속으로 두 발을 디디며 우리 산하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자신만의 마음의 평화와 내면의 충만을 다지는 것도 불안한 시대를 건너가는 안성맞춤의 자기관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걷다』는 우리땅걷기 도반들이 40년간 디뎠던 아름다운 우리 길에 관한 지극한 애정을 담아 그윽한 산길과 울울창창한 숲길, 가슴이 확 뚫리는 푸른 바닷길들을 저마다의 빛깔을 달리하며 ’길 명상 에세이‘로서의 독특한 내면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하고 있다.

이 책의 구성

우리땅걷기가 40년 동안 일군 우리 길 개척의 아름다운 분투 여정을 담은 현장 길 답사기!

『대한민국을 걷다』에서 우리땅걷기가 길 위에서 펼친 우리 길문화 답사의 여정은 그대로 한편의 드라마틱한 코리안 둘레길 개척사이다. 책에는 황토현문화연구소에서 신정일 대표가 홀로 개척한 90년대의 국내 10대 강 답사에서부터 우리땅걷기 도반들과 함께한 대한민국 명품길 개척의 역사가 신정일과 우리땅걷기 도반들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다. 이는 곧 2000년대 전국의 걷기 열풍이 일어나기 전에 우리땅걷기가 한강을 걷고 낙동강을 걷고 해파랑길을 두 발로 직접 디디며 땀과 열정으로 엮어낸 우리 길 개척의 남다른 이면을 발견하는 소중한 현장 답사기로 독자들에게 우리 길의 아름다움을 독특하게 전해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딘지도 모르는 영덕의 한 이름 없는 포구에서 아름다운 블루로드길을 알게 되었고, 동해 바다와 명산들을 두루 섭렵하며 눈에 담을 수 있는 해파랑길이라는 한국의 자연명품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책에서는 황토현문화연구소에서, 한강에서, 낙동강에서, 해파랑길에서, 변산 마실길에서 아름다운 길에의 매혹에 휩싸였던 20인의 땀에 젖은 육성을 통해 걷는 자의 자유와 사유의 길을 다채롭게 펼쳐 보여주고 있다.

우리땅걷기가 직접 걸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별·계절별 명품길 소개!

책에는 우리땅걷기 도반들이 직접 걸은 길 중에서 지역별, 계절별로 도반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매혹적인 명품길들이 엄선돼 소개되어 있다. 그래서 서울/경기에서 가장 걸을 만한 길로 서울 서촌길, 강화 교동도, 남한산성길이, 강원도의 명품길로 구룡령 옛길, 대관령 옛길, 상원사 적멸보궁길이 소개된다. 또한 충청도의 아름다운 길로 외선유동길, 계립령과 미륵사터, 부여 성흥산성길이, 전라도의 매혹적인 길로 고창 선운사길, 누릿재, 금성산성~강천사 가는 길이 소개된다. 그리고 경상도의 절경이 빛나는 길로 화림동계곡 길, 남해 노도 가는 길, 문경새재 길이, 제주도를 온몸으로 느끼는 길로 올레 7코스 외돌개~월평포구, 수월봉~용수포구 길이 소개되고 있다.

또한 봄날에 걷고 싶은 길로 남한강 여강길과 괴산 화양동구곡, 하동 쌍계사 가는 길, 곡성 고달면-유곡나루 길을 소개하고 있고, 녹음이 우거진 여름에 걷는 길로 백두대간 산 자락길, 동해 무릉계곡~두타산 산행, 고흥 지죽도 금강죽봉, 회문산 자락~구미리 섬진강 길 등이 걷는 자를 매혹할 만한 길로 전해진다. 그리고 형형색색으로 물든 가을을 느끼는 길로 영월 서강변 청령포, 인제 수산리 자작나무숲길, 청량산 퇴계 오솔길, 진안 섬진강변 수선루 등의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길들이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계절을 마무리하는 적요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겨울 길로 대관령 눈꽃마을길, 함양 화림동계곡 길, 월정사~상원사~적멸보궁 길 등이 소개되고 있다.

길은 철저히 도보여행가의 눈과 마음으로 부여잡은 현장의 가슴 뛰는 언어로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진득하게 묻어나오는 땀내와 가슴 벅찬 길의 현장의 직설들이 때로는 투박하게, 가끔은 미끈한 말투가 돼서 길 여행자의 육성으로 툭툭 던져져 나온다. 우리땅걷기 도반들이 길어 올린 매혹의 길 풍광은 40년을 걷고 또 걸으며 가려 뽑은 계절의 백미로 선정할 만한 명품길 여정이다. 책에는 사계절 두서없이 찾고 또 찾은 그 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때를 기억할 만한 길을 정성스레 담아 놓았다.

아름다운 우리 길을 걷는 도반들의 생생한 길의 매혹을 앵글에 담은 소중한 113장의 가치

글이 내면의 세계의 표현이라면, 사진은 직관의 풍경을 표현하는 효과적인 도구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걷기의 사유’를 보다 깊고 진한 울림으로 표현해주는 건 바로 그곳에서 찍은 길 사진들이다. 지난 30년 동안 황토현문화연구소와 우리땅걷기의 거의 모든 도보답사와 문학기행을 참여하며 ‘걷는 자의 사유’를 카메라에 담았던 김종우님의 아름다운 우리 길 사진은 독자들에게 길 걷는 도반들의 땀방울 하나하나까지 그대로 전해주는 현장의 느낌을 그대로 전해줄 것이다. 부산에서 고성까지 해파랑길을 걷고, 만경강을 걸으며, 변산 마실길이며 한강, 소백산 자락길 등 산과 강과 바다에서 자연과 하나가 돼 묵묵히 걷고 있는 도반들의 모습을 담은 김종우의 ‘자연 속 걷기 풍광’은 이 책이 지닌 40년의 우리땅걷기 여정을 그 무엇보다 더 명징하게 113컷의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을 주제로 한 김종우의 묵직한 울림을 주는 사진들이 길을 걷고, 느끼고, 사유하며 체험했을 저자의 아픔과 고통, 환희와 생명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 숨 쉬며 가슴 저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뜨거운 감동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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