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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1 예술은 아이를 키우고 꿈꾸게 한다 모든 아이는 예술가로 태어난다|예술은 인생의 든든한방패|예술은지적발달의무한한연료 | 예술에숨겨진회복탄력성의비밀|예술은조화와창의의시대를살아가는힘 2 예술은 집밥처럼… 아이가태어나면가정은예술로충만하다|예술에대한오해와편견| 예술교육에서버려야할흔한욕심들| 가족이함께즐기며교감하는예술|예술활동의중심은언제나아이가되어야|예술로소통하고관계맺기 3 예술은 누구에게나, 그 어디에나 있다 예술은온마을을키운다|학교는왜예술이필요한가|국가의 미래를위한예술교육|예술교육은모두의몫이다| 예술로품어야할아이들 4 예술 감상 교육: 아는 만큼 보이고, 느낀 만큼 가까워진다 예술은보는이의마음속에서완성된다|예술의다양성을즐길수있는예술근육|아이에게알맞은공연·전시의선택과관람| 예술장르별로어떻게접근할까|예술감상의효과를최대로높이려면|예술감상의효과를높이는대화법| 모든예술작품은존중받아야한다 5 예술 참여 교육: 공감과 감동을 넘어 직접 해본다는 것의 의미 창의와열망을꽃피우는예술참여교육|도전과협력의가치를배우는예술참여교육|창의력을키워주는미술교육| 인내심과집중력을키우는음악교육| 공감과협동의의미를심어주는연극교육|전인적성장발달을위한통합예술교육| 아이를직업예술가로키운다는것은 - 에필로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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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예술이 우리 아이들의 성장과 앞날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왜 우리가 아이의 예술 밥상에 집중해야 하는지 좀 더 깊이 고민해볼 때입니다. 결과 중심, 평가 중심의 예술교육이 아이의 정서에 영양 결핍을 가져오지는 않았는지, 대중문화에 쏠린 예술 편식이 아이의 예술 근육을 약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합니다. 모든 것이 풍요로워졌지만 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모른 채 경쟁에 내몰린 우리 아이들에게 이제는 육체적 건강뿐 아니라 좋은 삶을 위한 정서적 건강을 챙겨줘야 할 때입니다. (중략) 키도, 몸집도 엄마 아빠를 훌쩍 넘어설 만큼 커졌지만 타인과 감정을 나누고 공감하는 데는 젖먹이처럼 미숙한 우리 아이들. 예술 이 결핍된 시대, 정서의 공터에 서 있는 우리 아이들을 향해 이제는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쳐줘야 하지 않을까요? “얘들아, 예술 먹자!”
--- p.24-25 교육심리학에는 ‘시각 절벽(visual cliff)이라는 유명한 실험이 자주 인용됩니다. 이 실험은 바닥을 파서 유리를 얹은 뒤 절벽 같아 보이는 유리 위를 아기에게 엄마의 표정만으로 건너가게 하는 것입니다. 먼저 엄마가 끊임없이 웃어주고 즐거운 모습을 보여준 아기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도 쉽게 시각 절벽을 건너갑니다. 그런데 엄마가 부정적인 신호를 주고 무서운 표정을 보여준 아기들은 끝까지 시각 절벽을 건너가지 못합니다. 결국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에게는 백 마디의 말보다도 부모의 표정이나 행동이 더 큰 신호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 신호에 따라 지금 하는 일이 안전한지 아닌지, 즐거운 일인지 아닌지, 따라해야 할지 말지를 결정하게 됩니다. 일상생활에서 예술 감상을 가까이하고 즐거워하는 부모의 표정은 ‘예술이란 정말 즐겁고 좋은 거야!’라는 백 마디의 말보다 강력하게 작용합니다. --- p.65 우리나라 학교 예술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학 입시 위주의 교육과정으로 인해 학년이 올라갈수록 예술 교과의 시수가 크게 줄어들고, 예술교육이 즐거운 경험보다는 평가와 점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입니다. 교육 당국과 학교, 교사와 부모들은 흔히 예술교육이 학업과 입시에 방해가 된다거나 예술 교과가 다른 교과목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 p.108-109 EBS 다큐 프로그램인 [세계의 교육현장]에서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십의 대표 폴 콜라드를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학교와 예술가의 파트너십이 왜 필요한지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폴 콜라드는 우리 아이들이 미래에 종사하게 될 직업의 60%는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제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직업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업을 창조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학교는 예술가와 함께 창조적인 영역의 준비를 아이들에게 해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결국 오늘날 학교가 필요로 하는 예술교육자는 아이들에게 잠시 기능만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학교와 함께 협력하여 학교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창조적으로 일궈나가는 진짜 예술가, 즉 크리에이터(creator)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 p.114 학교 예술교육은 아이들이 행복하고 새로운 감성적 경험을 하도록 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미국의 영향력 있는 예술교육 전문가 에릭 부스(Eric Booth)는 예술교육에서의 ‘예술’은 명사가 아닌 동사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루 종일 진흙을 만졌다고 해서 예술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진흙을 통해 아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보고 그 속에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때에야 비로소 예술을 경험했다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동사로서의 예술이라는 것입니다. --- p.116 아이들은 다양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예술교육을 받습니다. 또 어떤 아이들은 아직 예술교육의 목적이나 필요성을 미처 알지도 못합니다. 아이들에게 바로 악기를 쥐어주거나 그림을 그리게 하기 전에 먼저 예술이 얼마나 가치 있고 즐거운 것인지를 알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아이들을 전공자를 위한 교육 방식으로 틀에 가두고 코스에 맞춰서 가르치며 진도와 성과에만 치중한다면 기술적인 실력은 빠르게 늘 수 있겠지만, 지속될 수 있는 관심과 흥미는 금방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중략) 어린 시절에 피아노학원이나 학교에서 오랜 시간 음악 교육을 받고 피아노를 어느 수준까지 쳤는데도 불구하고 예술과 담쌓고 사는 어른들이 많은 것도 바로 기능과 결과 중심의 예술교육이 낳은 부작용입니다. 조금 늦고 조금 시간이 걸려도 창조와 창작을 기반으로 아이에게 예술적 기쁨을 깨우쳐 주는 것이 예술 참여 교육의 목적이고, 예술교육자의 소명입니다. --- p.215-216 많은 부모들은 피아노학원이나 미술학원을 언제까지 보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한 번씩 하게 됩니다. 아이가 학원에 다니기 싫다고 할 때나 학년이 올라가면서 학업에 쏟아야 할 시간이 늘어날 때면 학원과 레슨을 계속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민은 예술교육에 대한 두 가지 오해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술교육은 어릴 때만 하면 되지 않느냐는 오해입니다. 학습량이 많아지는 고학년이 될수록 예술교육을 계속 시킬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인 것입니다. --- p.216-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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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교육이 미래투자다
문화예술 교육이야말로 곧 다가올 미래 삶의 질을 좌우한다. 문화예술 교육을 통해 삶이 풍요로워지고 또 다른 차원의 미래가 열리기 때문이다. 또한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 또 우리가 처한 현실과 현상을 극복해나가고 미래로 한 걸음 내딛기 위해서는 예술적 상상력과 창조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21세기에는 새로운 역량이 필요하다. 그 동안은 지식, 정보와 같은 것들이 중요한 힘이었다면 이제는 이러한 정보를 어떻게 조합하고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또 문제와 갈등을 해결하고, 국제적인 관점을 갖고 자기와 다른 사람들과 차이점을 극복하고, 서로 협력하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준비시키는 것은 새로운 시대에 기본적인 자산을 갖출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아이들은 예술을 통한 상상력으로 나와 다른 세계를 만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면서 경험과 이해, 생각의 폭을 넓혀간다. 예술은 문제해결, 비판적 사고, 종합적 사고, 다양성과 공감,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 등 여러 가지 역량을 키워준다. 예술은 아이를 키우고 꿈꾸게 한다 예술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궁무진하다. 아이는 문화예술적 경험과 체험을 통해서 얻은 삶의 자양분으로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격려하며 그를 바탕으로 인생의 뜻하지 않은 숱한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열고 펼치며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예술은 복잡다단한 인생의 우여곡절을 견뎌내게 하는 든든한 방패이며 안전한 완충재가 되어주고, 아이의 학습이나 지적 발달을 돕는 무한의 연료가 되어준다. 무엇보다 예술은 조화와 창의의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 예술은 집밥처럼…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는데, 예술교육에서도 맞는 말이다. 사실 어려서부터 습관이 들지 않으면 나이 들어서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기가 쉽지 않다. 클래식 음악도 아동?청소년기에 접하면 거리감이 덜한데, 그렇지 않으면 어렵고 낯설게만 느껴지기가 쉽다. 그래서 문화예술 교육은 어려서부터 생활 속에 스며들 듯이 이뤄져야 한다.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나누었던 예술적 경험은 아이의 삶에 큰 선물을 선사한다. 결과보다도 과정 속에서 아이와 함께 일상 속의 예술적 삶을 나누는 부모는 아이들이 자신만의 무한한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예술근육과 정서적 건강을 갖게 한다. 예술교육은 어렵고, 돈이 많이 들고,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오해와 편견을 넘어 예술이 집밥처럼 일상적이고 아이의 성장에 가장 큰 자양분이 되게 하는 핵심은 ‘부모가 예술을 즐기는 모습’이다. 예술은 누구에게나, 그 어디에나 있다 2010년, 서울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에서 브라질의 안나 마에 바르보사(Ana Mae Barbosa)는 문화예술 교육에 대해 ‘모두의 예술, 어디에나 있는 예술(art of all, art in everywhere)’이라고 정의했다.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고, 예술은 온 마을을 키운다. 더구나 어린 시절의 문화예술적 경험은 성인된 이후 성취감과 자신감의 토대가 되기 때문에 아무런 차별이나 장벽 없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을 예술적 토양에서 키우기 위해서는 가정에서부터 마을, 지역사회, 국가의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이 필요하다. 예술교육은 모두의 몫이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이 삶과 별개로 존재하지 않듯 문화예술 교육 역시 사회맥락적 차원에서 그 목표 설정과 실행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문화예술 교육을 통한 변화가 실천적 힘을 지닐 수 있다. 예술 감상 교육: 아는 만큼 보이고, 느낀 만큼 가까워진다 터너상 수상자인 앤서니 곰리(Anthony Gormly)는 “아이들은 작품의 복잡성이나 미술사적 위치에 대한 이해나 지식 없이도 작품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직접적으로 사물들을 경험한다. 결국 예술은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예술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라면, 예술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예술교육의 본질은 지식을 주입하는 행위가 아니라 느낌의 세계를 열어주려는 노력이다. 그래서 예술교육은 느낌을 주고 공감의 힘을 길러주는 것이 우선이다. 먼저 느끼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면서 억지로 기능적인 배움만 있으면 곧 싫증내고, 지쳐버리고 외면하게 된다. 예술 감상만으로도 예술을 인생의 훌륭한 벗으로 삼기에 충분하다. 언어교육의 목적이 언어를 의사 표현이나 소통의 도구로서 잘 사용하기 위한 것이듯 예술교육의 목적도 예술을 인생의 도구로 보다 잘 활용하는 데 있다. 감상 교육만으로도 부족함 없는 예술교육의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폭넓게 예술을 접하고 깊이 있는 예술 감상을 하다 보면 저절로 모방하고 창조하고픈 욕구도 함께 생겨날 수 있다. 예술 참여 교육: 공감과 감동을 넘어 직접 해본다는 것의 의미 예술 감상 교육이 완성된 ‘결과로서의 예술’을 만나는 것이라면, 예술 참여 교육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이뤄지는 ‘과정으로서의 예술’을 만나는 것이다. 열 번을 이야기 듣고 백 번을 상상해본들, 단 한 번이라도 직접 해보는 것만 못하다. 예술 참여 교육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예술 체험을 직접 해보는 그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값지다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이 시간을 들여 예술 활동을 할 때 단순히 기법과 순서만 익히는 것이 아니다. 연습 과정을 통해 창의적인 힘을 키울 뿐만 아니라 인내심을 기르고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 또,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소통의 과정을 겪으면서 아이들은 예술을 즐기고 나누는 것, 더 나아가 삶을 즐기고 나누는 것에 대해서까지도 열망을 가질 수 있다. 예술 참여 교육은 ‘창작’과 ‘기능’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균형 있게 갖춰져 있어야만 한다. 어떤 일이든 아이디어는 있지만 구현하지 못한다면 쓸모가 없고, 기능은 있지만 창작을 못 한다면 다른 사람의 하청을 받는 일 외에는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창작’이 빠진 예술 참여 교육은 아이를 단순한 기능인으로밖에 키울 수 없다. 피아노를 악보대로 틀림없고 정확하게 연주하는 아이(player)로 키울지, 피아노곡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여 연주하는 아이(creator)로 키울지는, 혹은 그림을 교사가 시키는 대로 그리는 아이(player)로 키울지, 자기 나름의 독특한 기법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그리는 아이(creator)로 키울지는 그 길을 안내하는 부모와 교사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