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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 여는 글 4
【 오늘의 한국어로 다듬은 『춘향전』】 5월의 꿈 39 〈이야기 너머〉 이야기의 고향, 남원 45 누구라도 놀기 좋은 계절 55 〈이야기 너머〉 책방 도련님 ‘이몽룡’의 탄생 62 직녀의 외출 71 〈이야기 너머〉 사랑하려거든 광한루로 오세요 80 속이 타는 도련님 89 〈이야기 너머〉 관아 풍경 엿보기 97 보름밤의 연인 105 〈이야기 너머〉 불망기에 비춰 본 춘향의 세상 113 사랑이야 121 〈이야기 너머〉 조선의 애창곡이 된 열여섯 살의 사랑 노래 124 울음이 둑 터지듯 129 〈이야기 너머〉 수령이 해야 할 일곱 가지 일 142 마음을 지키는 데 위아래가 있는가 147 〈이야기 너머〉 기생의 초상 159 매 열 대에 부쳐 167 〈이야기 너머〉 연출가의 고뇌 176 눈콩알 귀콩알 있으면 누구나 알지 183 〈이야기 너머〉 과거장에서 암행어사의 길까지 208 암행어사 출두야! 219 〈이야기 너머〉 춘향은 누구인가? ‘기생이다’와 ‘아니다’의 문턱에서 231 추천의 글 _ 시공을 초월하여 사랑받는 로맨스의 힘 2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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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은 한껏 민란 직전의 분위기로 달아오릅니다. 바로 그때, “암행어사 출두야!” 소리가 터지고 탐관오리의 잔칫상이 뒤집힙니다. 그리고 춘향은 한 인간으로서 사랑할 권리를 화끈하게 쟁취해 냅니다. 그리고 그렇게 무시무시해 보이던 탐관오리 수령 변학도는 단박에 무너져 내리죠. 아, 얼마나 통쾌한 순간인가요! 21쪽
광한루와 오작교 일대는 춘향과 몽룡 사이, 앞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품을 사랑,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마음으로 현실의 제약을 극복하는 인물 의 행동 들을 넌지시 암시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82쪽 매질을 하면 할수록 맞는 쪽이 당당해집니다. 이 또한 국가와 봉건적 억압에 시달리며 입 다물고 살던 당시 보통 사람들에게 이루 다 표현할 길 없는 통쾌함을 안겼겠지요. 177쪽 몽룡이 그제야 좋아라 하며 붓을 찾아 들었다. 단정히 꿇어앉아서는 과거 답안지라도 쓰듯 정성스럽게 편지를 써 내려갔다. 92쪽 이 코, 저 코, 춘향 코, 춘향 코는 내 코에 대면 좋을 코. 94쪽 이 독하고 독한 서울 양반들. 높은 사람, 낮은 사람, 있는 사람, 없는 사람으로 나뉜 이 원수 같은 세상. 134쪽 마음이 타 연기가 날 것 같구나 171쪽 꽃이야 봄을 보내려 하지 않지만 제 스스로 떠나는 봄을 보게 되는 법이야. 173쪽 수령은 주망이요, 책실은 노망이요, 아전은 도망이요, 백성은 원망이요, 이리하여 네 가지 망조가 물밀듯하지요. 188쪽 중문을 바라보니 몽룡 자신의 손으로 쓴 “충忠”에서 “중中”은 어디로 가고 “심心”만 남아 있었다. 원래는 완연한 “충忠”이었건만. 195쪽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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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희망 없이, 저항하라 거침없이”
열녀비를 거꾸로 세운 춘향의 메시지 『춘향전』은 동서고금의 로맨스 공식 “만났다, 사랑했다, 그런데…”에 충실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소설을 그토록 생명력 있는 작품으로 만든 것일까요? 저자는 춘향의 “그런데”가 당대를 부정할 만한 담대한 반전으로 달려 나간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지배계층이 전파한 고결한 열녀 의식과 신분 질서를 사정없이 패대기친 파격적인 주인공이라 역설합니다. 그 모습은 형장에서 매를 맞는 춘향이 부르짖는 '십장가'에 잘 녹아 있습니다. 매 한 대에 한마디씩 “팔도방백 수령님들, 다스리러 내려왔지 괴롭히러 내려왔소?” “열녀의 진정이 매 앞에서 변할까!” 라며 악을 지르는 춘향. 그 장면은 우리가 춘향을 폄하할 때 흔히 드는 논리, 즉 ‘봉건 의식에 갇혀 구원의 손길만을 기다리는 순종적인 여성상’이란 안일한 인식을 여지없이 깨뜨립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지배계층의 압정에 그들의 이념(열녀)을 창이자 방배로 삼아 맞서 싸우는 혈기방장한 기상이야말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춘향의 진면목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사랑이라는 열쇠말로 볼 때 멜로드라마 속 춘향은 그저 일편단심의 아이콘처럼 안쓰러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지키고자 했던 것이 사랑 이전에 자신의 삶과 생각이었다면, 신분 해방을 열망했던 조선 민중은 물론이고 자유롭고 건강한 삶을 꿈꾸는 현대인의 마음을 뒤흔들기에 충분치 않을까요? 줏대 있는 고전 인문학 역사·정치·문화의 창을 통해 본 ‘주석 달린 춘향전’ 고전이 어렵고 지루한 이유는 그 맥락을 읽어 낼 배경지식이 충분치 않아서입니다. 저자는 총 11개 부록과 친절한 해설을 통해 오늘의 시선으로 당대의 풍속을 읽도록 다리를 놓고 있습니다. 양반들은 왜 『춘향전』에 몰입했을까요? 남원은 어떤 특성 덕에 『구운몽』 『최척전』 같은 걸출한 고전과 더불어 이 작품의 공간배경이 되었을까요? 광한루·오작교는 왜 하필 이 작품의 무대로 호명됐을까요? '십장가' 장면에서 무대극 연출가들은 왜 논쟁을 벌였을까요? 암행어사의 소설 속 역할과 실제 행보 사이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변학도가 임무 방기한 수령의 책무는 무엇일까요? 이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책에 실린 다양한 문헌, 그림, 지도, 사진, 음원 들은 작품을 보다 감각적이고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경국대전』은 강력한 조선 법전의 실체로 존재감 있게 다가오고, 제도와 행정 사이의 괴리는 오늘의 정치만큼이나 옛날도 만만치 않았다는 안타까움 또한 절절하게 느끼게 됩니다. 수령이니 정1품이니 하는 케케묵은 과거의 호칭 또한 뚜렷한 인상을 지닌 명사로 다가옵니다. “춘향은 누구인가” 조선에서 여성으로, 기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춘향전』의 열혈 독자 한 부류는 양반 남성이었다고 합니다. 춘향은 신분이 낮은 여성의 로망 속에서만 탄생한 게 아니라 때로는 양반 남성의 로망을 품고 수백 가지 판본에서 저마다 다른 얼굴로 그려져 왔습니다. 춘향이 어엿한 평민의 딸로 설정된 판본도 있습니다. 춘향이 끝내 죽음을 맞이하는 판본도 있습니다. 그 다채로운 변형 속에서 독자들은 ‘춘향은 기생이다 기생이 아니다’, ‘열녀다 신분 상승을 노린 창기일 뿐이다’ 하는 논쟁을 벌이곤 했습니다. 이 책의 주된 번역 판본인 『열녀춘향수절가』는 특히 ‘非-기생계’ 판본의 대표 격으로 말해지지만, 양반의 서녀이자 퇴기의 딸이라는 신분적 한계를 뛰어넘어 제 삶의 주인이 되려 했던 춘향의 고뇌가 여실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의 번역 및 집필 과정에서 ‘춘향은 누구인가’라는 문제에 이분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대신 세부 묘사와 설정이 풍부한 소설 판본들, 판소리 사설 들을 참고해 춘향의 고뇌와 갈등을 절실하게 살려내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를 통해 조선에서 여성 또는 소수자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양반 남성 또는 지배 권력의 욕망은 어떠했는지 등을 섬세하게 복원해 놓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