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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형제
----- (이야기 너머) 먼저 알아 두어야 할 것들 집안에서 내몰린 흥부 ----- (이야기 너머) 복덕골로 간 흥부네 가족 흥부네 살림 ----- (이야기 너머) 조선 시대의 상속 제도에 대하여 다시 만난 형제 ----- (이야기 너머) 새로운 농업과 농촌 어떻게든 살아야지 ----- (이야기 너머) 흥부 부부의 날품팔이와 워킹 푸어 뜻밖의 손님 ----- (이야기 너머) 이어지고 이루어지다 박타는 흥부 ----- (이야기 너머) 흥부네의 환호 놀부의 시샘 ----- (이야기 너머) 화초장 타령 박타는 놀부 ----- (이야기 너머) 박타다 망한 놀부, 그리고 오늘의 『흥부전』이 정리되기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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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없어 농민일 수가 없고, 밑천이 없어 장사를 할 수 없는 흥부네더러 ‘게으르다’, ‘그러니 못살지’ 하는 것이 온당한가요. 자신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비난할 수 있을까요. --- p.12
낙심한 채 돌아온 흥부는 아내와 부둥켜안고 웁니다. 우리 살림은 왜 이렇게 늘 쪼들리느냐며. 일을 해도 해도 쪼들리기만 하다니, 오늘날 언론 사회면을 장식하고 있는 ‘워킹 푸어’란 말이 새삼스럽군요. --- p.13 예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민중들이, 서민들이 실제로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박에서 튀어나온 금은보화는 흥부로 대표되는 민중 또는 서민의 생활이 어떻게든 나아지길 바라는 모든 이들의 응원이 뭉치고 뭉친 것으로 보면 어떨까요. 또는 초자연적인 ‘대박’ 말고는 궁핍함을 벗어날 여지가 없는 현실을 드러낸다고 읽으면 어떨지요. --- p.16 “쌀이 많이 있다 한들 너 주자고 노적을 헐며, 벼가 많이 있다 한들 너 주자고 섬을 헐며, 돈이 많이 있다 한들 너 주자고 돈궤의 문을 열며, 찬밥에 보리등겨에 술지게미 너 주자고 우리 집 개돼지를 굶기랴! 겨가 섬으로 있다 한들 너 주자고 우리 집 소를 굶기랴!” --- p.75 날품 파는 흥부네의 모습에서 오늘날의 워킹 푸어를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하다 하다 결국 흥부가 다다른 곳은 남을 대신해 매를 맞는 최악의 날품팔이였습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가족을 돌보려는 가난한 가장의 선택은 당시 마찬가지로 궁핍했던 다수의 보통 사람들을 울리고도 남았겠지요. --- p.96 “(…)어기여라 톱질이야, 당겨 주소 톱질이야. 제비의 보은인가, 하늘의 감응인가. 박 속에서 밥이 나고, 박 속에서 옷이 났네. 복받은 우리 부부 길이길이 즐겨 보세.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된다네. 어기여라 톱질이야, 당겨 주소 톱질이야.” --- p.1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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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고 무능한 주제에 자식만 줄줄이 낳은 대책 없는 흥부?’
_누가 ‘가난한 선함’을 조롱하는가 우리는 그저 흥부의 한결같은 ‘선함’을 조롱하고 싶었던 걸까? 그는 정말 무능한 가장이었기에 그토록 가난했던 걸까? ‘가난한 선함’은 조롱받아야 마땅한 오지랖인 걸까? 돈이 곧 ‘능력’이자 ‘인격’이 된 시대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을 재산이 많은 태생적 ‘금수저’는 세상 두려울 것이 없고,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을 마냥 농담처럼 들을 수만은 없는 세상이다. 부와 권력을 거머쥔 이들의 몰상식한 ‘갑질’ 앞에 분노하면서도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예의 천박한 물질주의적 프레임을 흥부에게마저 덧씌우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흥부의 ‘선함’은 선함 그 자체로 평가받지 못하고 '가난한‘이라는 수식이 더해져 조롱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흥부는 부유했던 집안에서 맨몸으로 쫓겨나 각종 날품팔이, 심지어 대신 곤장을 맞는 매품까지 팔려 했을 만큼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발버둥 쳤다. 밤낮없이 일을 하여도, 아니 일을 하면 할수록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에 저자는 “땅이 없어 농민일 수가 없고, 밑천이 없어 장사를 할 수 없는 흥부네더러 ‘게으르다’, ‘그러니 못살지’ 하는 것이 온당한”(12쪽)가 반문한다. 그렇다면 놀부의 부유함은, 밥 한술만 달라며 찾아온 아우의 뺨을 후려쳐 쫓아내는 카리스마 덕분이었던 걸까? 부유한 놀부의 어떠한 면이 우리에겐 ‘능력’으로 비쳐졌었던 걸까? 어떻게 놀부의 몰인정함과 탐욕은 그만의 매력이자 개성으로 포장될 수 있었던 걸까? 결론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오로지 장자(長子)라는 이유로 집안의 재산을 독차지했을 뿐이고, 그에 대한 책임과 도리는 모두 져버린, 자신의 이익과 쾌락을 위해서라면 살아있는 생명마저 함부로 다룰 수 있었던 무뢰한이었을 뿐이다. 경제력에 있어 흥부와 놀부는 그 시작점부터가 달랐다. 오늘날 금수저와 흙수저의 시작점이 다름과 같은 모습이다. 돈도 없고 빽도 없는 흙수저, 일을 할수록 가난해지는 워킹 푸어, 우리 시대 대다수의 서민들에게 ‘열정이 없다’, ‘더 노력해라’라고 말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의지,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버티며 올곧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난한 주제에’라며 하대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흥부전』과 오늘 우리의 현실 사이에서 저자는 ‘권선징악’이라는 기존의 반사적이고 일차원적인 해석, 그 너머에 담긴 서민의 애환과 바람에 공감해 볼 것을 제안한다. 부조리한 사회와 인간 탐욕에 대한 풍자 한 마당 _역사·정치·문화의 창을 통해 읽는 판소리계 소설의 맛과 멋 고전이 어렵고 지루한 이유는 그 맥락을 읽어 낼 배경지식이 충분치 않아서다. 저자는 총 9개 부록과 친절한 해설을 통해 오늘의 시선으로 작품을 읽도록 다리를 놓고 있다. 『흥부전』의 근원 설화로 알려진 ‘방이 설화’부터 판소리로 정리된 「박타령」, 소설로서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 「연의각」 등을 살펴보며 『흥부전』의 내력을 되짚어 본다. 또, 『흥부전』의 공간적 배경인 삼남 지방의 특성과, 조선 후기 농업과 상업의 발달, 장자 중심의 상속제도, 붕괴되기 시작한 신분제도 등 익숙한 이야기 이면에 감춰진 당대의 역사·정치·문화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며 『흥부전』이 탄생하게 된 시대상을 알아본다. 이를 통해 박 속에서 튀어나온 복과 벌, 이 초자연적인 힘에 의한 『흥부전』의 결말은 팍팍했던 현실 속에서 이 같은 상상으로밖에는 위안을 얻을 수 없었던 민중들의 삶을 대변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