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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와 함께 읽는 기독교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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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세계사와 함께 읽는 기독교 역사(고대 편) 12
제1장 서양 고대사에 대한 이해 13
1. 그리스: 서양 문명의 기원 14
2. 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제국의 형성 31
3. 로마(1): 로마 공화정 시대 41
4. 로마(2): 로마 제정 시대 53

제2장 서양 고대사에 나타난 기독교 역사 62
1. 기독교 역사의 기원 63
2. 교회의 성립과 그리스도인의 등장 76
3. 사도 시대: 기독교의 성립 81
4. 사도적 교부 시대: 기독교 박해와 성장 89
5. 공의회 역사의 시작: 삼위일체설 교리의 정립 95
6. 교부 시대: 기독교 신학의 정립 103
7. 정경의 등장(성경의 정경화 과정) 111
8. 교회 조직과 교황 제도의 성립 119

제2부 세계사와 함께 읽는 기독교 역사(중세 편) 126
제1장 서양 중세사에 대한 이해 127
1. 중세 유럽 사회의 형성 128
2. 서유럽 문화권: 프랑크 왕국 132
3. 동유럽 문화권: 비잔티움제국 141
4. 이슬람 문화권: 이슬람제국의 성립과 발전 147
5. 중세 유럽 사회의 변화 164

제2장 서양 중세사에 나타난 기독교 역사 176
1. 교회와 국가의 결합 177
2. 기독교의 분열: 로마가톨릭과 정교회 184
3. 교황권(교회)과 황제권(국가)의 대립 192
4.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충돌 198
5. 교회의 부패와 교황의 권위 실추 204
6. 교회 개혁 운동의 전개 210

제3부 세계사와 함께 읽는 기독교 역사(근세 편) 218
제1장 서양 근세사에 대한 이해 219
1. 르네상스 220
2. 신항로의 개척 228
3. 아메리카 문명과 신항로 개척 236
4. 절대 왕정 244
5. 서유럽의 절대 군주 249
6. 동유럽의 절대 군주 256

제2장 서양 근세사에 나타난 기독교 역사 263
1. 종교개혁의 배경 264
2. 독일의 종교개혁: 루터, 종교개혁의 시작 269
3. 스위스의 종교개혁: 개혁교회의 탄생 278
4. 영국의 종교개혁: 영국 국교회(성공회)의 성립 285
5. 로마가톨릭 내부의 종교개혁 293
6. 종교 전쟁 시대 298
7. 개신교 정통주의 신학 306

제4부 세계사와 함께 읽는 기독교 역사(근대 편) 315
제1장 서양 근대사에 대한 이해 316
1. 시민 혁명(1): 영국 혁명 317
2. 시민 혁명(2): 미국 독립 혁명 325
3. 시민 혁명(3): 프랑스 혁명 331
4. 자유주의의 발전 342
5. 민족주의의 발전 352
6. 산업 혁명 360

제2장 서양 근대사에 나타난 기독교 역사 365
1. 회중 교회와 침례교의 탄생 366
2. 이신론의 등장 375
3. 경건주의 운동과 감리교의 태동 382
4. 미국의 신앙 회복 운동: 대각성 운동 393
5. 자유주의 신학의 확산 401
6. 근본주의 신학의 등장 408

제5부 세계사와 함께 읽는 기독교 역사(현대 편) 416
제1장 서양 현대사에 대한 이해 417
1. 제국주의 418
2. 제국주의 열강의 대립 427
3. 제1차 세계 대전 435
4.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세계 445
5. 제2차 세계 대전 453
6. 냉전 체제의 성립 468
7. 냉전 체제의 완화와 붕괴 474
8. 현대 사회의 분쟁 484

제2장 서양 현대사에 나타난 기독교 역사 499
1. 제국주의 시대와 기독교 선교 500
2. 신정통주의 신학 504
3. 고백 교회 운동과 바르멘 선언 512
4. 교회 연합 운동: 에큐메니컬 운동 519
5. 해방신학의 등장 526
6. 팔레스타인 분쟁 532

참고 문헌 544

저자 소개 1

현직 고등학교 역사 교사(25년 차)이자 신학대학원에서 〈세계사와 성경 역사〉, 〈세계사와 기독교 역사〉를 강의하는 역사신학 교수이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였고, 신학대학원에서 성경학 석사(M.A.)와 역사신학 석사(Th.M.)를 졸업하고 역사신학 박사 과정(Ph.D.)에 있다. 『THEME로 정리하는 세계사』, 『THEME로 정리하는 한국사』 등 매년 직접 제작한 교재를 통해 역사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역사학을 전공한 역사교육자이자 역사신학을 전공한 역사신학자로서 세계사(역사)를 통한 성경과 기독교 역사 이해를 돕는 저작 활동과 강의를 소명으로 살아가고 있다.
현직 고등학교 역사 교사(25년 차)이자 신학대학원에서 〈세계사와 성경 역사〉, 〈세계사와 기독교 역사〉를 강의하는 역사신학 교수이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였고, 신학대학원에서 성경학 석사(M.A.)와 역사신학 석사(Th.M.)를 졸업하고 역사신학 박사 과정(Ph.D.)에 있다.
『THEME로 정리하는 세계사』, 『THEME로 정리하는 한국사』 등 매년 직접 제작한 교재를 통해 역사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역사학을 전공한 역사교육자이자 역사신학을 전공한 역사신학자로서 세계사(역사)를 통한 성경과 기독교 역사 이해를 돕는 저작 활동과 강의를 소명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의 행적에 대한 답사(순례) 이야기를 담은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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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6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548쪽 | 153*224*35mm
ISBN13
9788934129639

책 속으로

십자가 형벌은 로마가 정치범에 한정하여 행하는 형벌이었다. 대제사장과 유대교 지도자들은 행정 장관(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Pontius Pilatus)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반역죄로 고발하였다.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us)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자신과 무관하다고 말하며 그 죄를 유대인들에게 돌렸다.
기독교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현재, 이스라엘) 나사렛 지역 출신의 예수(Jesus)를 그리스도(Christ)로 고백하는 종교이다. 기독교는 ① 로마 가톨릭(서방 교회), ② 정교회(동방 교회), ③ 프로테스탄트(개신교)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기독교(基督教)라는 명칭은 그리스도(Christ)를 한자로 음역한 기리사독(基利斯督)에서 유래하였다.
---pp.63-64

기독교에 대한 박해 시기에 기독교 신자들이 기독교도(그리스도인)를 상징하는 단어로 사용한 것은 그리스어 익투스(ΙΧΘΥΣ)이다. 익투스는 물고기(fish)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이지만, 익투스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글자이기도 하다. 초기 기독교 신자들은 두 개의 곡선을 겹쳐 만든 물고기 모양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사용하였다.
A.D. 313년 로마 제국의 두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서방 황제)와 리키니우스(동방 황제)는 밀라노 칙령을 통해 모든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였다. 기독교도 종교의 자유를 인정받게 되었다. 이와 함께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날이라 부르며 예배를 드리던 태양의 날을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또한, 태양신을 기념하는 12월 25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기념하기 시작하였다.
---p.89

A.D. 508년 12월 25일 클로비스(Clovis)는 3,000명의 부하와 함께 랭스(Reims)에서 세례를 받았다. 클로비스의 아타나시우스파 기독교 개종은 프랑크족과 로마인의 융합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이는 프랑크 왕국이 서유럽 대부분 지역을 차지하며 오랜 기간 존속하는 배경이 되었다.
A.D. 756년 피핀 3세(Pepin Ⅲ)는 롬바르드족을 토벌하고 얻은 이탈리아 중부(라벤나에서 로마에 이르는) 지역을 교황에게 기증하였다. 교황 스테판 2세가 그의 왕위를 지지하여 준 것에 대한 답례의 차원이었다. 이 사건은 교황령의 시초가 되었다. 하지만 A.D. 1440년 이탈리아의 로렌초 발라(Lorenzo Valla)는 문헌학적 분석과 언어학적 연구를 통해 교황령의 근거가 된 콘스탄티누스 기증장이 위조된 문서임을 밝혀냈다.
A.D. 800년 12월 25일 교황 레오 3세는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샤를마뉴(Charlemagne)를 아우구스투스(Augustus)로 칭하며 서로마 제국 황제의 관을 씌우고 기름을 부었다. 레오 3세는 샤를마뉴를 ‘로마인들의 황제’라고 선언하였다. 로마 교황과 교회는 프랑크 왕국과의 결탁을 통해 비잔티움(동로마) 제국 황제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pp.177-178

특정 분야나 세대(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나 사물을 아이콘(icon)이라고 한다. 컴퓨터(스마트폰) 사용자가 컴퓨터(스마트폰) 시스템을 탐색하고 실행하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화면에 표시된 그림 문자(상징)도 아이콘이라 부른다. 아이콘은 본래 정교회에서 사용하는 성화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이콘(εικόν, εἰκών)에서 유래하였다. 기독교 신앙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사도, 성인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성화를 의미한다. 이콘을 포함한 성상은 중세 기독교 세계가 동과 서로 갈라지는 원인이 되었다.
---p.184

하일스호프 미술관 정원에는 “여기서 마르틴 루터가 황제와 제국 의회 앞에서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루터,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 대주교가 앉았던 자리를 표시하고 있다. A.D. 1689년 화재로 보름스 궁전이 소실되었고, A.D. 1884년 하일스호프 미술관이 건축되었다.
A.D. 1521년 카를 5세는 보름스 제국 의회를 소집하여 루터에게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기회를 제공하였다. 하지만 루터는 이를 거부하였다. 결국, 카를 5세는 루터에 대한 법적 보호를 박탈하였다. 루터는 교황 레오 10세와 황제 카를 5세의 파문을 동시에 받게 되었다.
​ 루터는 카를 5세와 대립하고 있던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의 보호를 받았다. 루터는 발트부르크성에 은거하여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고 교회에 대한 개혁을 진행하였다.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루터의 저서와 성경이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독일은 물론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pp.269-270

스트라스부르는 알자스-로렌 지역에 있는 도시이다. A.D. 17세기 이전(30년 전쟁)에는 독일(신성 로마 제국)의 영토였다. 칼뱅은 프랑스에서 온 망명자들을 위한 교회를 세워 목회 활동을 하였다. 그가 세운 교회에서는 시편을 찬송가로 많이 불렀다.
칼뱅은 A.D. 1538년에서 A.D. 1541년까지 3년간 부끌리에교회(방패교회)에서 사역하였다. 그는 목회와 함께 저술 활동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부끌리에교회 옆에는 칼뱅이 거주하던 집이 있는데, 지금은 교회 참사회 건물로 활용되고 있다. 부끌리에교회 벽면에는 자전거 타는 칼뱅의 모습이 익살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p.278

A.D. 1620년 12월 21일 청교도들은 현재 매사추세츠 플리머스(Plymouth)에 도착하여 뉴잉글랜드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교회를 세웠다. 첫 지사로 선출된 윌리엄 브래드퍼드는 〈히브리서〉 11장 13절을 설교하였다. 이 설교에서 순례자들(Pilgrims)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청교도들이 유래하였다.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는 A.D. 1620년 12월 21일 뉴잉글랜드 최초의 영국 식민지가 된 매사추세츠주(州) 플리머스에 정착한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다. 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새로운 대륙으로 이주한 청교도 분리주의자들이었다. A.D. 1820년 플리머스 정착 20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식에서 필그림 파더스라는 단어가 최초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pp.366-367

이신론(Deism)은 신은 세상을 창조한 이후 자연법칙에 따라 운행되도록 하였고 더 이상 세상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인식하는 합리주의 신학 이론이다. 이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 ‘시계를 만든 장인으로서의 하나님’이다. 하나님과 세상의 관계는 시계공과 시계의 관계와 같다는 것이다.
이신론은 미국 독립 혁명과 건국 이념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 독립 선언문에는 이신론자들의 인식이 반영되었다. “모든 인간은 신 앞에 평등하다.”라는 미국 독립 선언문에서 이야기되는 신은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신론적 신이다. 모든 세계와 모든 종교의 신을 이야기한다.
---p.376

『자연신학』(Natural Theology)은 신정통주의(新正統主義)를 대표하는 신학자 에밀 브루너와 칼 바르트의 계시 논쟁과 관련하여 두 권의 책을 하나의 책으로 엮어 출판된 책이다. 에밀 브루너는 A.D. 1934년 『자연과 은혜』(Nature and Grace)-칼 바르트와의 대화-를 통해 일반 계시를 인정하는 자신의 주장과 함께 칼 바르트를 비판하였다. 이에 칼 바르트는 A.D. 1934년 10월 30일 종교개혁 기념일에 『아니오!: 에밀 브루너에 대한 답변』(Nein! : Antwort an Emil Brunner)을 통해 일반 계시를 인정하는 에밀 브루너의 입장을 비판하였다. 에밀 브루너와 칼 바르트의 계시 논쟁은 A.D. 20세기 가장 뜨거운 신학 논쟁으로 평가받고 있다.
---p.504

고백 교회(Confessing Church)는 교회를 국가에 종속시키려는 히틀러의 나치즘(국가사회주의)에 순응하는 독일 교회에 저항하여 설립되었다. A.D. 1934년 고백 교회는 바르멘 선언(The Barmen Declaration)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계시임을 선언함으로 히틀러에 대한 불복종을 분명하게 밝혔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히틀러의 제국 교회에 저항하여 고백 교회 운동을 전개하였고, 히틀러 암살 계획에도 가담하였다. 신학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산상수훈)을 따르는 제자도를 강조하였다.

---pp.512-513

추천평

『세계사와 함께 읽는 기독교 역사』를 저술하며 역사학을 전공한 역사교육자이자, 역사신학을 전공한 역사신학자로서 기독교 역사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서술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늘 뒤따랐다. 가령, 종교개혁 이전 중세 교회의 모습을 프로테스탄트(신교)적 시각으로만 편협하게 서술해서는 안 되며, 제국주의 시대 기독교 선교의 과정에서 나타난 불의함을 회피하거나 미화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결코 올바른 역사가(역사교육자)의 자세도 역사신학자의 자세도 아니기 때문이다.
본서가 독자들에게 기독교 역사를 이해하는 시각과 지평을 제공하여 주기를 기대한다. 『세계사와 함께 읽는 기독교 역사』를 읽는 독자들이 서양 고대사에서 서양 현대사에 이르는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기독교 역사, 곧 교회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이해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그 속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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