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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부 영화의 기후: 포스트콘택트 존 1장 영화의 기후: 섬, 행성, 포스트콘택트 존 2장 이어도에 홀리다: 들썩임의 에코그래피 3장 위중한 사변 서사와 무빙 이미지의 장치(디스포지티브) 2부 코스모폴리틱스 4장 하위주체의 세계주의: 제국을 넘어선 세계와 영화 5장 아래로부터의 세계성 6장 포스트콘택트 존: 〈SF드롬〉 3부 영화의 물질적 선회 7장 〈기생충〉: 신유물론 8장 〈어쩔 수가 없다〉: 감각의 향연 혹은 사투 9장 걷는 자(행자)의 생태학 |
金素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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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페시 차크라바르티의 행성 시대는 인류가 역사와 사유의 지평 자체를 인간 너머로 확장해야 함을 의미한다. 자본의 국경을 다투는 글로벌한 시각으로는 기후위기라는 행성적 규모의 재앙을 포착할 수 없다.
---p.7~8 에밀리아 스카눌리터의 〈어둠의 깊은 지대〉는 빛이 닿지 않는 심해 채굴장인 무광지대를 기술의 힘을 빌려 탐사하고 보여준다. 인간 중심적 연대기를 넘어, 지질학적 시간과 기술적 인프라가 교차하는 지점을 탐사한다. 사람의 눈으로 지각할 수 없는 ‘행성적 규모’의 변화를 감각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며, 기술을 도구가 아닌 세계를 인지하는 감각 기관의 연장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 ---p.10 영화는 인간과 동물, 식물의 얽힘, 타자, 비인간에 대한 폭력을 환기하고, 환경을 근심하며 생명 윤리를 시사하기도 하고, 감각의 절묘, 절창의 순간을 구성한다. 그러다가 죽음에 이르는 부정적 영화의 기후를 보여준다. 기후라는 말 속의 ‘후候’는 단지 대기의 상태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안부를 묻는 행위, 생명의 상태를 살피는 몸짓을 포함한다. 따라서 영화의 기후를 말한다는 것은 곧 생명 있는 것, 인간, 비인간 행위자의 안부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p.13 새로운 역사를 타진하고자 하는 이 책은 ‘전시’에 주목한다. 개별 작가 연구로는 불가능한 지점, 다시 말해 1980-90년대에 진행된 ‘전시’라는 사건과 기록을 살펴봄으로써 당시 활발하게 활동했으나 현재에는 사라진 많은 작가를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승자 중심의 역사 기술이 아니라, 소외, 배제, 박탈, 누락으로 인해 사라졌던 ‘이름 없는 이름’을 되찾고, 당대 예술 실천의 의미를 재조명하고자 하는 이 책의 근원적인 목적이기도 하다. 즉 잊힌 이름을 호명해 그들을 망각의 강에서 건져내고, 그 억울함을 신원하고자 한다. ---p.12 〈어둠의 깊은 지대〉, 빛이 닿지 않는 곳, 바다, 호수의 깊고 어두운 부분, 일광이 닿지 않아 어둡고 광합성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생물이 빛에 의존하지 않는 생태계가 형성된다. 해양 과학자들이 기후위기를 이겨낼 새로운 산호종을 찾기 위해 멕시코만, 어둠의 깊은 지대로 잠수한다. 식민주의의 공포와 산업 오염으로 인한 지구의 생태계 파괴가 서로 얽혀 있는 지리적 공간에서 영화는 우주의 시적 리듬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p.27~28 이러한 디아스포라 파편들이 빚어내는 프리즘은 지금 한국의 주권 영역 단위보다 훨씬 더 광대한 영역을 보여주고 있다. 파편들의 분광은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 중심의 제국의 그림자 아래의 한국의 세계화에서 살짝 비켜나간 공간을 일별하게 한다. 이 공간들이 유토피아적 희망으로 가득 찬 것은 물론 아니지만, 후기 냉전 신자유주의가 그려내는 것과는 다른 세계의 그림을 보여주는 것은 사실이다. 이 세계의 세계성이란 무엇인가? ---p.97 나는 제국이 생산하려는 기억 장치, 기억 정치, 기억의 제국, 특히 소련 제국주의 및 강대국의 압제가 만쿠르티즘이라는 기억상실의 정치를 펼쳐낸 것을 ‘기억의 제국’이라고 명명하고, 소수민족들의 공동체가 이러한 제국의 기억 정치에 대항해 펼치는 영화 만들기를 비롯한 글쓰기 등을 ‘기억 사원’으로 명명한다. - ---p.129 [캐런] 버라드는 “원자(아톰)의 의미가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쪼개질 수 있는 양자 역학의 시대에, ‘얽힌다’는 것은 별개의 단위들이 연결되는 것처럼 서로 뒤얽히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이며 자기 보존적 존재의 결핍이다. 존재란 개별적 사태가 아니다. 개체들은 상호작용에 앞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개체들은 그들의 뒤얽힌 내부적 관계 맺기의 부분으로서, 또한 그것을 통해 출현한다. ---p.181~1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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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시대, 영화는 무엇의 안부를 묻는가
기후위기의 시대, 우리는 ‘기후’를 더는 비와 바람, 온도와 습도의 문제로만 말할 수 없다. 기후는 우리가 사는 세계의 상태이며, 생명 있는 것들의 안부를 묻는 말이다. 『행성의 순간, 영화의 감각』은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의 기후’를 묻는다. 영화는 지금 어떤 세계를 보고 있는가. 영화는 인간이 미처 감각하지 못한 행성의 변화를 어떻게 포착하는가. 그리고 영화는 지구, 생명, 비인간 존재, 기술, 역사에 어떤 방식으로 안부를 건네는가. 이 책이 말하는 행성 시대는 단순히 지구 행성 전체를 하나의 대상으로 내려다보는 시대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중심의 역사와 감각만으로는 세계를 이해할 수 없게 된 시대다. 자본의 국경, 국가의 경계, 인간의 시간만으로는 기후위기와 생태적 재난의 규모를 포착할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연결망을 감각하는 행성적 감각과 상상력이다. 영화이론가이자 영화감독이기도 한 저자는 영화와 시네미디어를 그 상상력을 훈련하는 장으로 제안한다. 섬, 바다, 심해, 동물, 식물, 디지털 장치들은 영화 속에서 서로 얽히며 새로운 감각의 지도를 만든다. 영화는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기술, 기억과 물질이 함께 세계를 구성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감각적, 정치적 장치인 것이다. 제국과 국가를 넘어, 아래로부터 다시 쓰는 세계성 『행성의 순간, 영화의 감각』이 말하는 세계성은 위로부터 주어지는 보편의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와 제국의 질서가 포착하지 못한 자리에서 시작된다. 망명자, 디아스포라, 하위주체, 국경 밖으로 밀려난 이들이 이동하고 기억하는 가운데 다른 세계성이 생겨난다. 이 책은 그 세계성을 “아래로부터의 세계성”으로 읽는다. 중앙아시아의 설산, 카자흐스탄의 우주 발사대, 핵실험 지대인 폴리곤, 알마티의 매연과 만년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곳들은 냉전과 제국, 사회주의와 식민성,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겹쳐 있는 장소들이자 국가가 기록하지 못한 삶과 역사를 영화적으로 불러낸다. 그런데 사라진 과거를 복원하는 데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그것은 지워진 기억들이 현재의 장소, 기술, 신체, 목소리와 다시 만나는 포스트콘택트 존을 만든다. 이 책에서 코스모폴리틱스는 추상적 세계주의가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감각이다. 그것은 제국의 지도와 국가의 경계가 지워버린 관계들을 다시 잇는 일이다. 또한 중심에서 주변을 내려다보는 시선을 거부하고, 주변이라 불린 자리에서 세계를 다시 구성하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세계성이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걷고 이동하고 기록하고 촬영하는 감각적 실천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행성의 순간, 영화의 감각』은 영화가 어떻게 국가주의와 제국주의를 넘어 다른 관계의 지도를 그릴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 지도 위에서 세계는 하나의 중심을 향해 수렴하지 않는다. 세계는 방황하고, 떠돌고, 마주치고, 다시 얽힌다. 그렇게 영화는 아래로부터 세계를 다시 쓰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생태, 젠더, 기술의 얽힘 속에서 다시 생각하는 영화의 감각 부제 “생태, 젠더, 기술의 얽힘 속에서”는 이 책이 영화와 세계를 바라보는 방법을 암시해준다. 여기서 생태는 자연환경만을 뜻하지 않고, 젠더는 인간 사회의 정체성 문제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며,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이 셋은 서로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오늘의 영화적 감각을 구성하는 복잡한 얽힘 상태에 있다. 심해를 탐사하는 원격조정탐사기, 바닷속을 비추는 조명과 카메라, 드론과 디지털 장비, AI와 산업 장치들은 인간의 눈을 대신하거나 확장한다. 그러나 이 기술들은 세계를 더 잘 보기 위한 중립적 수단이 아니다. 그것들은 때로는 탐사의 장치인 동시에 때로는 채굴과 감시의 장치이며, 때로는 보이지 않던 존재들을 감각하게 하는 새로운 기관이다. 『행성의 순간, 영화의 감각』은 바로 이 기술적 감각의 양면성을 주목한다. 에밀리아 스카눌리터의 심해 작업에서 빛이 닿지 않는 무광지대를 보게 되며, 인간의 시야 바깥에 있던 행성적 규모의 변화를 감각하게 된다. 제인 진 카이젠의 제주와 이어도 작업은 바다, 샤먼적 수행, 국가 폭력, 수중 장비가 얽히는 장소를 연다. 〈기생충〉을 읽는 장에서는 물, 계급, 집, 몸, 비인간 물질의 작용을 신유물론적 시각으로 다시 사유한다. 〈어쩔 수가 없다〉를 다루는 장에서는 AI와 노동, 감각 경험의 기술적 매개가 영화의 문제로 등장한다. 이 책에서 영화는 인간 배우와 서사만으로 이루어진 예술이 아니다. 물, 빛, 소리, 기계, 동물, 식물, 노동, 젠더, 기억이 함께 작동하는 감각의 장이다. 그렇기에 영화의 물질적 선회는 인간 중심의 시선만으로 더는 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는 절박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행성의 순간, 영화의 감각』은 영화가 인간 너머의 세계를 어떻게 감각하고, 그 감각을 통해 우리 시대의 생태적·정치적 위기를 어떻게 다시 생각하게 하는지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