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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伯庸,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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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나귀는 시종 느릿느릿 걸었다. 나귀의 걸음걸이를 따라 이선덕의 마음도 이리저리 흔들렸다. 새집을 샀다는 사실에 기뻤다가, 빚 갚을 생각을 하면 또 금세 머리가 아파왔다. 계산은 이미 수차례 했지만 잠시 쉴 틈이라도 생기면 못 참고 또다시 계산해보았다. 이선덕의 수입은 알량하기 그지없었다.
--- p.17 이선덕의 수염이 덜덜 떨렸다. 제 귀로 들은 말인데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생여지요? 서령께서도 여지의 특성을 잘 아시잖습니까. 하루 지나면 색이 변하고, 이틀이면 향이 변하고, 사흘이면 맛이 변하는 것을요. 영남에서 장안까지 못해도 오천 리 길입니다. 무슨 짓을 해도 시간 안에 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 특사 자네가 애를 많이 써야겠지. 성상께서 기다리시니 말일세.” 류 서령은 냉랭하게 한마디하고는 악의가 가득 담긴 말을 덧붙였다. “잘 좀 보게. 조서에 분명히 써 있잖나. 성상께서 원하시는 것은 영남의 여지라고!” --- p.33 여지 운송은 실패가 정해진 일이다. 아내와 빨리 합의이혼을 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헤어지면 둘은 서로에게서 벗어나 남이 되니, 이후에 일이 터지더라도 가족에게 누를 끼치지 않을 것이다. 이선덕은 이 최후의 넉 달간 전횡을 휘둘러 챙긴 막대한 돈으로 향적전을 최대한 갚음으로써 아버지를 여읜 딸과 과부가 될 아내에게 집 한 칸이라도 남겨줄 수 있을 것이다. --- p.52 “그쪽은 다른 도시 사람들과는 좀 다르네요. 그 사람들은 여지 농장에 오면 하나같이 거들먹거리며 이것저것 요구하고, 우리를 바라보는 눈빛도 거의 개 보듯 하거든요.” 이선덕은 생각했다. 나 역시 개나 다름없긴 마찬가지인데 다른 사람을 경멸하고 자시고 할 게 있겠는가. --- p.100 이선덕은 그제야 자신이 이렇게 오래 분주하게 일만 하느라 신선한 여지를 먹어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동 농장의 여지는 크기가 달걀만했다. 그는 그녀가 시킨 대로 움푹 들어간 곳을 눌러 붉은 비늘 같은 얇은 껍질을 살살 벗겼다. 반짝거리는 투명한 과육이 속살을 드러냈다. 말랑한 옥 같은 속살은 두부처럼 야들야들했다. 입안에 넣고 한입 깨물자 과즙이 사방으로 퍼지며 달콤하고 향긋한 쾌감이 삽시간에 온몸의 핏줄을 타고 흐르는 것 같았다. 자기도 모르게 전신이 저릿해오며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 p.149 급격히 잿빛으로 변한 그의 얼굴색을 보고 이선덕은 말하지 말라고 황급히 말렸다. 임읍 노비는 오히려 기를 쓰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사님이 권해주신 술 한 사발은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은 술이자 처음 사람으로서 대접받아 마신 술이었습니다. 정말 맛있었어요.” 그가 다 갈라진 마른 입술을 핥았다. 얼굴에 미소까지 띤 것 같았다. “대사님이 그러셨지요. 우리가 다르지 않다고, 다 좋은 벗이라고. 그러니 저는 벗으로서 본분을 다해야 합니다……” --- p.180 “양원 형님, 관리의 처세술은 세 마디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세상과 다투지 않고 시류를 따르고, 이익은 고루 나눠 가지며, 꽃가마는 다 같이 드는 것. 독식하려고 하면 오래가지 못해요.” --- p.214 맞다. 우상의 명령은 지나치다. 양을 늘리라는 말 한마디 던져놓고 일선에서 일하는 사람의 고충 따위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우상이다. 보잘것없는 일개 여지사는 도저히 대항할 힘이 없다. 게다가 지금 벌목을 중단하라고 지시한다면 저 관리들은 즉시 손을 떼고 모든 일을 중단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지 운송대는 출발조차 할 수 없다. 모든 게 끝이다. 이렇게 복잡한 일을 그는 아동에게 잘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런데 소녀는 여전히 두 눈을 자신에게 고정한 채 애통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 p.272 “우상 어르신, 이 생여지 두 단지를 장안성에 보내기 위해 영남에서 다 자란 나무를 얼마나 많이 베었는지 아십니까? 삼십 묘짜리 과수원에 바친 이 년 동안의 수고가 완전히 짓밟혔습니다. 도성의 귀인들에게 생여지 한입 먹이기 위해 한 그루 키우는 데 이십 년이 걸리는 여지나무가 도끼에 맞아 베여나갔습니다. 또 얼마나 많은 기수가 위험을 무릅쓰고 달렸으며, 얼마나 많은 목감의 말들이 중도에 쓰러져 죽었고, 얼마나 많은 노가 강 위에서 부러졌는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것 때문에 목숨을 잃었는지 아십니까?” --- p.3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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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이면 상해버리는 까다로운 과일 여지를
영남에서 몇 달이 걸리는 오천 리 길 장안까지 신선하게 운송하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당 현종은 온갖 파견직을 만들어 사적인 일을 처리하곤 했다. 정식 품계는 없어도 황제의 명을 직접 수행하는 자리였기에 파견직은 명예와 부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황궁에서는 양귀비의 탄일인 유월 초하루까지 여지를 대령하라는 명을 내리며 ‘여지사’라는 파견직을 신설한다. 여지사로 임명된 이선덕은 오랜 세월 말단 관리로 일했던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이라 느끼며 기뻐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여지사에게 주어진 임무가 실은 성공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절망에 빠진다. 꿀에 절여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여지전’이 아니라, 사흘이면 색도 향도 맛도 변해버리는 ‘생여지’를 오천 리 떨어진 머나먼 영남에서 장안까지 운송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이선덕의 수염이 덜덜 떨렸다. 제 귀로 들은 말인데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생여지요? 서령께서도 여지의 특성을 잘 아시잖습니까. 하루 지나면 색이 변하고, 이틀이면 향이 변하고, 사흘이면 맛이 변하는 것을요. 영남에서 장안까지 못해도 오천 리 길입니다. 무슨 짓을 해도 시간 안에 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 특사 자네가 애를 많이 써야겠지. 성상께서 기다리시니 말일세.” 류 서령은 냉랭하게 한마디하고는 악의가 가득 담긴 말을 덧붙였다. “잘 좀 보게. 조서에 분명히 써 있잖나. 성상께서 원하시는 것은 영남의 여지라고!” (33p) 얼마 전 잔뜩 빚을 내 장안성 끄트머리에 있는 집을 겨우 구한 이선덕은 자신만 믿고 있는 아내와 딸아이를 걱정하고, 친구들은 그에게 서둘러 합의이혼이라도 해야 가족을 살릴 수 있다고 조언한다. 죽을 때 죽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싶은 이선덕은 영남에 내려가 지역 관리들의 도움을 받고, 여지 재배지도 직접 둘러보며 방법을 찾아보려 한다. 그러나 실패로 귀결될 일임을 알아챈 영남 지역의 총수 하이광은 이선덕에게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는다. 그 아래에서 일하는 하급 관리 조신민 역시 이선덕의 성패에 따라 기회를 잡을 틈만 노린다. 돈도, 인맥도, 빠져나갈 방법도 없는 이선덕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은 여지 농장 주인의 호의뿐이다. 이선덕은 과연 때맞춰 장안까지 신선한 여지를 운송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양귀비의 미소를 위해 희생되었던 백성들의 삶에서 집도 성과도 없이 고군분투하는 직장인의 애환을 짚어내다 이선덕이 목숨을 걸고 수행했던 여지사 임무는 양귀비의 일순간 기쁨을 위함이었으나, 수많은 진상품 중 하나에 불과했던 여지 한 알에는 큰 희생이 뒤따랐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조정으로부터 외면당한 말단 관리의 사투뿐 아니라 수많은 백성들의 노역과 세금, 베여나간 수십 그루의 여지나무, 쓰러질 때까지 달려야 했던 말, 위험한 길을 달린 기수들이 있었다. 여지를 맛본 양귀비는 환하게 웃었지만, 힘이 없어 온몸으로 고난에 부딪혀야만 했던 이들의 삶에는 일말의 연민이나 존중도 찾을 수 없었다. 그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동안 그들이 악의를 품었었다면 묻힐 땅 하나 없이 죽었을 테고, 일말의 인정이 있었다면 손쉽게 구해주었을 것이다. 생사 여부는 오롯이 그들 신선의 조화에 달렸고, 정작 자신은 생을 한 점도 장악하지 못하는 하찮은 버들개지 부평초와 같았다. 이런 지극히 황당한 느낌은 역로를 내달릴 때보다도 깊은 피로감을 느끼게 했다. 이 일은 귀비가 무심코 내뱉은 감탄사 한마디로 시작해 마침내 귀비의 웃음소리로 끝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들 귀비를 에워싸고 떠받드는 데 온 힘을 다하느라 다른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327p) 일하는 사람들의 고충은 헤아리지 않고 손쉽게 명령을 내리는 황제와, 목숨과 돈이 아쉬워 쩔쩔매며 문제를 해결하는 백성들의 모습은 현대사회와 닮아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불안정한 일자리, 박봉, 높은 세금, 전 국민의 꿈이 되어버린 ‘내 집 마련’이라는 목표 아래 이리저리 치이며 매일을 살아내는 직장인들의 모습을 이선덕에게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보융은 ‘여지를 좋아했던 양귀비를 위해 신선한 여지를 진상했다’라는 역사 속 한 문장에 가려진 이들을 불러내고, 과거의 이야기에 빗대어 먹고사는 일에 매몰되어 분주히 살아가는 우리의 애환을 애틋하게 그려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