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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발견
새로 쓰는 고구려 문명사
김용만
바다출판사 1999.11.30.
베스트
동양사/동양문화 top100 5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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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저자 : 김용만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정신문화연구원 대학원 역사학과에서 공부했다. '10년간 폭넓게 공부하고 그 다음에 글을 쓰라'는 대학원 은사 김철준 선생의 유훈에 따라, 지난 10년간 고구려에 대한 연구에 전력을 다해왔다. 그리고 그 결실을 이 책『고구려의 발견 - 새로 쓰는 고구려 문명사』에 담아냈다. 현재 저자는 고구려를 비롯한 한국 고대사연구에 천착하고 있으며, 문화공학연구소 연구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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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1999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564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7180212

책 속으로

아직도 고구려는 역사가 아니라 신화일 따름이다. 고구려에 대한 막연한 자부심과는 달리 우리는 고구려를 너무나 모른다. 고구려와 수,당과의 전쟁은 세계사 전체에서도 유례를 착기 힘든 대규모의 장기전이었다. 고구려는 어떻게 이와 같은 대규모의 전쟁을 치를 수 있었을까? 거기엔 막강한 군사력만이 아닌 다른 무엇이 존재한다.그것은 바로 고구려문명의 힘이다.

--- p.17

고구려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하지만 고구려의 자랑스러운 역사만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고구려는 역사상 가장 크게 실패한 나라이다. 왜냐하면, 고구려의 역사는 너무나도 심하게 왜곡되어 정당한 해석과 평가가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도 고구려는 역사가 아니라 신화일 따름이다. 고구려에 대한 막연한 자부심과는 달리 우리는 고구려를 너무나 모른다. 고구려와 수. 당과의 전쟁은 세계사 전체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대규모의 장기전이었다. 당시 인구 비율로 따지자면 20세기의 2차세계대전보다 더 많은 군사력이 동원되었다. 고구려는 어떻게 이와 같은 대규모의 전쟁을 치를 수 있었을까? 거기엔 막강한 군사력만이 아닌 다른 무엇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고구려문명의 힘이다.

황하유역의 중국문명과 더불어 발전했던 동방문명을 토대로 고구려는 705년간 독자적인 문명권을 형성했으며, 특히 4세기 말부터 7세기 중엽까지는 당대 세계 최고의 문명을 꽃피웠다. 강서대묘의 생동감 넘치는 사신도는 고구려 문명의 수준을 한눈에 보여주었다. 야만의 시대였던 서유럽과는 비할바도 아니었고, 중동의 국가들도 당시에는 사산조 페르시아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발전이 없었으며, 오로지 경쟁자라면 수와 당뿐이었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중국 남북조의 어떤 국가와도 비교할 수 없는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고구려는 중국의 남북조와 북방의 유목세력과 더불어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를 조정하는 4대 강국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국가였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문명사의 시각으로 바라 본 본격 고구려 통사
고구려 각 분야사의 연구 성과를 총괄해 써 내려간 2,500매의 고구려 문명사 중화 문명과는 다른 독자적 천하관을 가지고 있었던 고구려 705년의 기록 중국과 함께 고대 동아시아를 지배하던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그리고 좌절의 이야기 고구려인들의 생활을 벽화와 유적, 문헌에 기초해 재구성한 재미있는 문화사 124컷의 사진 자료, 23컷의 지도, 16컷의 화보 등 고구려의 이해를 돕는 풍부한 자료들이 실려 있다.

이 책 『고구려의 발견- 새로 쓰는 고구려 문명사』는 '우리에게 고구려란 무엇인가'를 화두로 삼아 고구려를 문명사의 시각으로 접근한 본격적인 고구려 통사이다. 기존 역사 학계의 연구 성과를 충실히 반영하면서도, 이 책에서 저자가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고구려의 문 명사적인 위상이다.

고구려는 그 동안 우리에게 어느 정도는 '신화'이거나, 고대 동아시아의 지역 강대국이었을 뿐이었다. 그러 나 역사적으로 고구려는 조선왕조보다 200여 년이나 긴 7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동방의 제국이었다. 고구려 는 황하를 중심으로 한 앙소문화와 달리 홍산문화와 하가점하층문화를 기반으로 독자적으로 발전했다. 이처 럼 고구려가 독자적인 문명권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대릉하(大凌河)에서 한강에 이르는 비옥한 농경 지 대를 차지하고 있었고, 농경 문명이 가지는 무력의 약점을 '정착형 기마문명'으로 보완함으로써 강력한 무력 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구려는 수많은 고분벽화와 유물에서 보여지듯 중국의 천 하관에 편입되지 않은 독자적인 천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고구려인들은 자신들을 천손의 후손이라 고 믿으며,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문명을 형성해 나갔다.

고구려가 독자적인 문명권을 형성하면서 700여 년의 역사(학계의 통설로는 약 705년)를 거치는 동안, 중국 은 한나라의 분열 이후 후한과 삼국시대, 남북조의 극심한 혼란을 거친 후에야 수나라와 당나라로 통일되었다.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는 자신들의 문명권에서 벗어나 있던 고구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저자에 따르면 고 구려와 수,당 간의 전쟁은 겉으로는 국제질서의 패권을 다투는 싸움이었지만 속으로는 중화문명과 고구려 문명의 자존심과 세계관의 일대 격돌이었던 것이다. 고구려와 수당간의 전쟁은 70년 이상에 걸쳐 수백만의 인구가 동원된 그야말로 세계사에도 드문 대전쟁이 었다. 70년 이상의 전쟁 끝에 당나라와 신라의 협공에 내부 분란까지 겹쳐 고구려는 멸망하였다. 고구려의 몰락은 4세기부터 형성된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종말이었다. 반면 고구려 멸망으로 야기된 국제질서의 변화 는 동아시아 역사에서 다시는 동방문명이 문명적으로 중국문명에게 대항할 수 없는 열악한 상태로 떨어지 게 만들었다. 요동과 한반도 북서부지역의 농업적 생산기반이 붕괴된 이후, 동방에서 일어난 어떠한 나라도 동방지역에서 독자적인 문명권을 형성하지 못함으로써 더 큰 제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국지역 으로 진출해야만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것은 결국 자기 종족의 정체성 마저 상실하게 했다. 오로지 고 구려의 직계 혈통을 유지하는 한국인만이 한반도에 남아서 자기 종족의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였지만, 고구려가 가졌던 문명권의 형성에는 실패했다. 고려시대 윤관의 9성 실패, 묘청의 난 실패, 위화도 회군 등 으로 더 이상 만주지역을 차지하며 동방의 독자문명권을 형성할 기회를 상실하여, 중국문명의 위성문명으로 그 위상이 떨어지고 말았다.
리뷰 총점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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