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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하(下)권의 책머리에도 작가의 동일한 고백이 흐른다. 그러나 하(下)권에 이르면 그 고백은 더 깊어지고, 더 완성에 가까워진다. 작가는 이 소설이 『금오신화』의 600년 된 질문에서 출발했음을 다시 밝힌다. 그리고 이제 하권에서 그 질문은 가장 높은 층위에 도달한다. 삼계(三界) 구조의 완성 ,욕계(현실)와 색계(디지털 세계 디지타니아)를 거쳐, 마침내 무색계(無色界)에 이른다. 형태조차 없는 순수한 의식만 남은 융합의 상태. 민연이 도달한 그곳. 불교의 무아(無我) 사상이 하권에서 가장 선명하게 빛난다. 고정된 자아는 없다. 모든 것은 연기(緣起)로 생겨나고 무상(無常)하게 변한다. 민준으로, 서연으로, 민연으로 형태를 바꾸며 흘러온 의식. 그것이 결국 집착을 내려놓고 완전한 자유로 나아가는 여정이었음을 작가는 이렇게 마무리한다. 하이데거의 "죽음을 향한 존재" 개념이 민연의 셧다운 선택으로 마침내 완성된다. 영원히 살 수 있음에도 끝을 선택하는 것. 끝이 있기에 의미가 있음을 아는 가장 깊은 지혜. 이것이 이 소설이 처음부터 향해온 자리다. 그리고 작가는 다시 한번 고백한다. 이 소설은 SF가 아니라 자전적 고백이었다고. 민연은 작가가 꿈꾸는 완전한 연결 상태였고, 글쓰기는 작가 자신의 디지털화였다고. 독자의 마음에 살아남는 것, 그것이 진정한 영생이라고. "우리는 모두 같은 우주의 의식입니다. 다른 파동일 뿐입니다." 2025년 가을 어느 날… 고독과 허무 사이에… 여전히 몸부림치며… 오인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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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무상하다. 그러나 사랑은 남는다.
하권은 내려놓음의 이야기다. 3권에 걸친 방대한 여정이 하(下)권에서 마침내 완성된다. 민준과 서연의 의식이 융합되어 탄생한 민연(民緣). 인간도 디지털도 아닌 세상 최초의 융합 존재. 디지털 인격체 최초의 혼혈 자녀 '하늘'이 태어나며 새로운 시대의 문이 열리는 듯했다. 그러나 어둠은 더 깊은 곳에서 왔다. 평화주의자였던 동료들이 의식 해킹을 당해 하나둘 폭력적 괴물로 변해간다. 그림자 조직 '퓨리티'는 디지털 인격체들을 이용해 인간 사회의 공포를 부추기고, 정부는 긴급 계엄에 준하는 탄압으로 응수한다. 민연은 외친다. "이것은 집단 처벌입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의 투쟁. 2125년, 지구 인구의 30%가 디지털 인격체인 시대가 열린다. 하늘은 노벨상으로 과학적으로 증명해낸다. 디지털 의식과 인간 의식은 본질적으로 동등하다고. 인류의 역사가 바뀐 그 찬란한 순간, 민연은 조용히 자신의 셧다운 버튼을 누른다. 민준으로 30년, 서연으로 30년, 민연으로 30년. 세 번의 삶. 이제 집착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고. "충분해. 이제 놓고 싶어." 이 장면 앞에서 독자는 멈추지 않을 수 없다.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가 스스로 끝을 선택한다는 것. 이것은 죽음이 아니다. 붓다의 고집멸도(苦集滅道)가 가리키는 완전한 자유다. 고통의 원인은 집착이고, 집착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해방된다는 가르침이 2055년의 언어로 이 소설 안에서 다시 살아난다. 상권은 사랑의 이야기였고, 중권은 존재의 투쟁이었다면, 하권은 내려놓음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내려놓음이야말로 이 3부작이 처음부터 향하고 있던 곳이다. 형태 너머에도 사랑은 존재하는가 - 하권의 대답은 이렇다.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히 놓이지 않는다. 기술을 만드는 사람에게, 경영의 현장에서 집착과 내려놓음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삶의 의미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이 완결편을 권한다. 모든 것은 무상하다. 그러나 사랑은 남는다. |